성격의 중요성: 근면
주님은 모든 부모들에게 자녀들이 주님의 계획과 목적을 성취하는 데에 그분께 유용하도록 그들을 양육하라는 책임을 주셨다. 이것은 단지 교육의 문제만이 아니라 훈련의 결과이다. 사람이 주님께(또는 사람에게) 유용하려면 반드시 의로 교육을 받고 성격이 훈련되어 모든 선한 일에 적합하도록 완전히 갖추어져야 한다. 특별히, 우리 자녀 한 명 한 명의 성격은 반드시 합당하게 세워져야 한다. 우리의 유용성은 우리의 성격이 어떠한 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위치만 니는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의 성격>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일을 하기에 자격이 없는 이유는 그들의 성격과 인격에 결점이 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우리 성격의 훈련을 결코 경홀히 여기지 말라. … 우리의 성격을 훈련하는 기본적인 일은 경시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의 성격이 세워져 있다면 우리는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다. 그러한 성격이 없다면 우리는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성격을 훈련함
성격의 훈련은 반드시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자녀들의 성격을 합당하게 세워야 하는 부모들의 책임은 참으로 막중하다.
주님 자신과 그분께 유용한 모든 종들은 근면했다. 우리는 자녀들과 주님께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훈련받아 합당한 성격을 갖도록 양육해야 한다. 주님은 한 달란트를 받고 그것을 땅에 숨긴 종을 “게으르고 악한 종”이라고 묘사하셨다.
그 종은 천성이 게을러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근면하게 자신의 책임을 이행하도록 훈련받지 못했다. 우리는 그의 어머니가 항상 그를 대신해서 방을 청소해주고 침구를 정리해주며, 한 번도 그에게 집안일을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상상해볼 수 있다. 우리가 자녀들을 그들이 시작한 일을 근면하게 완수하도록 훈련시키지 못하거나 그들이 잘 한 일에 대해 합당하게 보상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그들이 게으르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근면한 성격을 갖지 못할 것이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 유용한 일꾼이 될 자격을 갖추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들의 조성과 성격
주님의 일꾼이 주님의 일에 자격이 있는지의 여부는 그의 일상생활에 의해 결정된다. 주를 섬기는 길에서 우리는 많은 젊은 형제들이 아주 유용하게 잘 자라는 것을 본다. 그리스도인 생활의 시작부터, 당신은 그들이 좋은 씨앗으로 심겨져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와 반대로 우리는,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자신을 좋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주의 길에서 얼마 가지 않아 결국 쓰러지고 마는 것을 본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 쓸모가 없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매우 욕되게 한다. 왜냐하면 그의 길은 더 이상 넓힐 수 없을 정도로 넓은 길이기 때문이다. 이외에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초기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는 주목할 만한 특별한 점이 없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가치가 더 두드러지는 것을 본다.
당신은 이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들의 조성과 성격에는 어떤 기본적인 특성이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특성을 가진 사람은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봉사의 길에서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많은 면에서 훌륭한 일군이 될 자질이 있으나 기본적인 특성이 결여된 사람은, 사역을 하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할 지라도 그의 사역은 성공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자기 몸을 다스릴 줄 모르는 일꾼이 주의 일을 잘하는 사례를 보지 못했다. 다른 일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그분의 종들 가운데 자기 몸을 쳐 복종케 할 수 없는 사람이 유용하게 되는 사례를 보지 못했다. 또 우리는 고난 받을 마음가짐이 없는 사람이 사역을 잘하는 경우도 보지 못했다. 또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도 본 적이 없다.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에게는 언제나 이러한 기본적인 성품들이 있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에게는 이러한 자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러한 자격을 가지고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긍휼을 주셔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겉사람의 허물어짐과 세워짐이 필요하다. 만일 당신이 바르지 않고 많은 일에서 제멋대로 하고 자신을 느슨하게 풀어 놓는다면, 당신이 나가서 사역을 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기술이나 지식이나 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성품과 성격에 문제가 잇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그르치는 것은 바로 여기에 그 원인이 있다. 그들은 이것 때문에 사역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의 말을 듣기를 배워야 하며,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기를 배워야 하고, 하나님을 추구하기를 배워야 하며, 많은 면에서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다룸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성품의 훈련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만일 당신의 성격이나 성품이 성령의, 깊은 다룸을 받지 않았다면, 당신이 한 일들은 그렇게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성격의 훈련은 하나라도 누락되어서는 안 된다. 당신에게 이러한 훈련이 있다면, 당신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에게 이러한 것이 없다면, 당신은 주님의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들여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것들을 하나씩 처리해야 한다.
게으르지 않고 근면함
이제 우리는 게으르지 않고 근면한 것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라 …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이 단락의 성경 구절은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는 것이 주님의 일꾼의 기본적인 필요인 것을 보여 준다. 주님은 여기에서 상당히 분명하게 이 종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악(惡)하고 게으른 것이다. 그의 ‘악함’은 감히 주님께,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안다.”라고 말함으로 폭로되었다. 또 한 면에서 그 종은 게을렀다. 그가 달란트를 땅에 묻으러 갔을 때, 마음에 생각한 것은 악한 것이었으며 그의 손이 한 일은 게으른 것이었다.
그가 마음속으로 주인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은 악한 것이며,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달란트를 땅에 묻은 행위는 바로 게으름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 게으른 성격이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게으른 사람은 할 일을 찾지 않는다. 오히려 일거리가 생기면 슬쩍 피하며 일이 없어지기를 기다린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그들은 큰일을 작은 일로 여기고 작은 일은 아예 없었던 일로 여기는 태도를 취한다).
체험에 비추어 볼 때, 오직 한 종류의 사람만이 유용한데, 바로 부지런한 사람이다. 게으른 사람은 가장 악한 사람이다. 어떤 형제는 말하기를, 사탄까지도 이런 사람은 쓸모없어서 성낸다고 했다. 잠언 19장 23절은 “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라고 말한다. 게으른 사람은 아무 일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는가? 피곤해질까 두려워서이다.
게으른 사람은 손을 그릇 안에 넣고서도 들어올리려 하지 않는다. 그는 먹지 않을 수 없으므로 누군가가 대신 그릇 속의 음식을 그의 입에 넣어주기를 바란다. 세상에 아주 쓸모없는 한 부류의 사람은 바로 게으른 사람이다. 하나님은 게으른 사람을 쓰지 않으신다. 형제자매여!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 가운데 게으른 사람을 보았는가?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고생스럽게 수고하며 바쁘게 일한다. 그들은 그들의 시간이나 정력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는. 항상 쉬려고 하고 요양하려는 사람은 주님의 종답지 않다. 주님의 종은 게으른 생활에 익숙하지 않다. 그들은 시간을 구속하여 생활한다.
사도들의 본
베드르부터 바울에 이르기까지 신약 안의 사도들을 보자! 그들에게서 조금이라고 게으른 면을 찾아낼 수 잇는가? 우리는 그들에게서 게으른 면을 조금도 찾을 수 없고 그들이 시간을 헛되이 낭비한 것을 발견할 수 엇ㅂ다. 그들은 부지런히 수고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길 기회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바울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라고 말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는 항상 복음을 전해야 한다. 때를 얻을 때에 힘써야 하고 때를 얻지 못할 때에도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때를 얻어도 사역을 해야 하고 얻지 못해서 사역을 해야 한다. 이것은 부지런함을 요구한다. 사도들은 매우 부지런했다. 바울이 평생 이룩했던 놀라운 사업을 생각해 보라. 당신은 80세까지 사역을 한다 해도 그가 한 것의 십분의 일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 근면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울이 한 일만 보아도 우리는 그가 참으로 근면했으며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각처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지 않을 때에는 사람들과 변론하거나 말씀을 전하거나 서신을 썼다. 가장 영적인 것들을 다룬 그의 서신서 들은 도리어 감옥에 있을 때에 쓴 것이다. 비록 그가 갇혀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매이지 않았다. 그는 정말로 근면한 사람이었으며 주님처럼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
게으름
‘게으름’이란 무엇인가? 게으름이란 시간을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질질 끌면서 한 가지 일을 아주 천천히 하는 것이다.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을 열흘에 끌고, 한 달에 할 수 있는 일을 3개월에 걸쳐 느릿느릿하게 끄는 것이 바로 게으름이다. 어떤 번역본은 게으름이라는 단어를 ‘배회(徘徊)’로 풀이한다. 배회란 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 단어가 어떤 곳에서는 ‘곤란함’으로 번역되었다.
바울은 빌립보의 믿는 이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라고 했다. 어떤 형제 자매는 자기에게 일이 맡겨지면 즉시 나태해져 버리고 매우 곤란해 하며 탄식한다. 이 일이 그에게는 상당히 어려움이 많은 일로 보여서, 너무나 무거운 짐이 그에게 놓여졌다고 느낀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옥에 갇혀 있었지만 편지를 썼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편지를 썼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바울은 거기에서 편지를 썼으며, 형제들에게 ‘기뻐하라’, ‘주님으로 인하여 항상 기뻐하라’라고 권면하였다. 환경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 괴롭고 수고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라고 말했다. 그는 게으르지 않았으며 어렵다고 느끼지 않고 오히려 쉽다고 여겼다.
그는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의 의욕과 게으르지 않고 어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바울에게서 볼 수 있다.
많은 형제자매들은 일을 보고 두려워하고 어려워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크게 쓰임받지 못한다. 그들은 항상 일이 많아지는 것보다 적어지는 것을 더 좋아하며, 가능하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들에게는 근면한 성격이 없다. 만일 우리가 게으른 사람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 될 수 없을뿐더러 사람의 충성되는 종이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위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그들 위에 그들을 다스릴 사람이 없는 것 같고, 형제자매도 그들을 상관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그들을 상관할 수 없는 것같이 여긴다.
그런데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주인을 바꾸어 세상 직장에 고용된다면 그들의 쓸모없음이 즉시 드러난다. 왜냐하면 고용주는 그들이 대충대충 일을 처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을 번거로워 하지 않고 섬기는 것을 좋아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시간과 힘과 물질을 쏟는 것을 기뻐하며, 손으로 일하고 수고하도록 우리의 생활과 성품을 끊임없이 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종이 될 자격이 없다.
바울은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라고 말했다. 이 손은 너무나도 좋다. 이 손은 낮에도 일하고 밤에도 일하는 조금도 게으르지 않은 손이다.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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