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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 선지자가 잠시 쉬어갔던 곳, 그런 곳처럼 나와 세상사람들에게 작은 그늘이 되어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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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 댓글[0]
명상, 수필 (2004-08-20 오전 10:40:54) http://blog.somang.net/sunup1/752
 
어제 케이블TV 평화방송(천주교 방송)에서

어떤 성직자에 대한 프로그램을 우연하게 보게 되었다.

호스피스 단체에서 평생을 섬기리라고 서원한 한 신부님의 이야기였다.

성당에 큰 TV를 틀어놓고 그 TV에서 임종을 맞는 한 여인을 위해

성도들이 기도를 해주는 장면이 있었다.

숨을 가쁘게 쉬는 어떤 여인과 그 곁에 있는 딸...

그 딸은 연신 눈물을 훔쳐내며 서서히 숨져가는 어머니를 향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딸이 어머니의 손을 꼬옥 잡고 소리 질렀다.

"엄마 사랑해. 엄마 사랑해... 잘가 엄마... 엄마 사랑해. 정말 사랑해... 잘가 엄마...! 엄마..."

성당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곁에 있던 신부는 표정의 변화 없이 성경을 읽고 안수를 하며 그녀를 떠나보냈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나의 가슴에 무언가 커다란 울림이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말은... 사랑한다는 것...

그 말 이외에 그 무엇이

혼자 먼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필요할 것인가?

삶속에서 사랑을 나눈다는 것

얼마나 축복된 것인가...

크리스챤은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다.

죽음과 부활을 믿기에... 그 길을 오히려 기뻐한다.

죽음은 절대 끝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

죽어가는 사람에게 사랑이 큰 위로이듯이

사랑이신 그분께로 가는 것은 오히려 우리에겐 큰 축복이라는 것...

그것은 우리만 아는 비밀일 것이다.

며칠전 아버지 생신이 있었다.

작은 아버님 내외님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였다.

자식들이 다 모여있는 곳에서 작은 아버님이 다른 아버님들께 제안을 하셨다.

"우리가 더 나이 들어서 움직이기 힘들기 전에

납골묘 하나 사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참고로 우리 친가쪽은 불교집안이다.)

우리 애들이 너무 멀어서 우리 보러오기 힘들면 안돼고,

자꾸 미루면 땅값만 비싸지니깐... 어서 서둘자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두가지 생각이 들었다.

저 세상으로 가시더라도 자식을 보고 싶어하시는 마음과

돈때문에 걱정거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으시는 마음...

작은 아버님의 사랑에 마음이 짠해졌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저희 가족은 다 소망 성도의 묘라는 곳에 들어갈겁니다."

웃으며 말씀을 드렸다.

다른 부모님들은 농담으로 들으셨지만 우리 가족은 그렇지 않음을 안다.

우리가 육신을 벗고 영혼이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미움을 벗고 사랑에 더욱 익숙해질 수 있을테니깐...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신다.

우리의 육신과 영혼... 그분이 지으신 모든 것

그분이 지으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것이기에...

우리는 또 기쁘게 그분께로 간다.

우리 안에 사랑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죽음을 이겨낼 수 있는 놀라운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그 분이시기에, 그 분은 사랑이시기에...

사랑은 우리 영혼을 아우른다.

사랑은 우리를 지키신다.

Rodem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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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심 ** 댓글[0]
명상, 수필 (2004-08-20 오전 10:37:18) http://blog.somang.net/sunup1/751

하루에도 많은 심상이 구름처럼 떠돈다.
세상속에서 사는 한 존재로서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이 그다지 쉽지 않다는 사실을 항상 깨달으며
하루하루를 지탱한다.
뭐가 그리 욕심이 많은지...

마음이 항상 편하지만은 않다.
욕심이 많아서 마음이 편하지 않은 사실이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나마 그 욕심이란 것을 인정한 셈은 되니깐...
사실 정확하게 무엇을 '욕심'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욕심이 이 세상을 향한 것인지, 하나님을 향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하여튼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는데,
자꾸만 근원을 알 수 없는 조바심이 생기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막연한 허탈감 때문이라고나 할까?

아마도 청년의 때에 짧디 짧은 자기 소견이
하나님의 큰 비전의 세계로의 첫걸음을 너무나도 두려워하는 까닭일 것이다.
욕심이 쓸데없이 많아질 것을 염려해서는 아니다.
잘못된 방향으로의 헛된 욕심일까가 조심스러운 것일 거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사역에 한한 철저한 욕심꾸러기 였을 것이다.
열두제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경주라고 표현했을 정도니 가히 그들의 열정은 대단했을 것이다.

오늘(2003.9.21) 주일말씀(대예배)을 들으면서
은혜에 대한 정의를 새삼스럽게 생각해보았다.
그분안에 있음... 무위조차도... 실패조차도...
그분안에 있다면 그것은 은혜이리라...
그것을 나는 견뎌낼 수 있을까?
저마다 잘난 사람들을 위한 잘난 프로그램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
멋들어지게 하나님을 전하고 증거할 수많은 방법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나약한 영혼은 그런 무위를 견뎌낼 수 있을까?

그분의 시간에 작은 나의 영혼이
그분의 뜻을 따를 수 있을 정도의 겸손이 남아있으면 좋겠다.
욕심의 먹구름을 거둔 후의 작은 소망의 기도제목이다.

rodem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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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ical Love ** 댓글[0]
명상, 수필 (2004-08-20 오전 10:33:57) http://blog.somang.net/sunup1/750
** Classic **

클래식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생각보다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영화였다. 추억이라는 것은 참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촉매제인 것 같다. 그 영화는 우리 젊은 날의 아름다운 단편을 조심스럽게 들추는 그런 슬프고도 즐거운 영화였다.

사랑의 아픔이라는 것, 그러나 그 아픔중에서도 참으로 아름다웠다는 것… 그것은 그 젊음이라는 시간의 특권이 아닐까? 빗속을 뚫고 그 사람이 날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뻐하며 뛰는 앳된 손예진의 모습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예뻐서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젊은날의 설레임이 뛰는 것만 같아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다. 그 사랑에 아플수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사랑의 존재라는 사실을 느끼는 그 아픈 순간에서조차도… 축복을 받은 존재이다. 우린 누구나 다 그런 설레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 저 하늘의 무지개가 되어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슬픔을 땅에 묻고 일상에 젖어 살고 있지만…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은 같은 하늘 아래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해할 수 있다. 언젠가 다시 만날거라는 설레임을 안고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초등학교 시절… 먼 발치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만해도 얼굴이 벌개지던 시절… 우리는 그런 추억을 디딤돌로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두근거리는 빨간 사과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우연을 더듬어 우리는 필연의 사랑을 이끌어 낸다.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만 앉아도 부끄러워 도망가던 기억… 친구의 연애편지를 대신 적어 도서관 안에서 종이 비행기 날리던 추억… 그러한 아련한 기억들이 사랑의 파편들을 다시금 조합해낸다. 얼마나 두근댔던지 추억을 되살리는 지금의 내 얼굴에도 그 당시의 두근거림이 전해지는 듯하다. 차가운 밤하늘에 별들을 바라보며 사랑이라는 그 자체에 행복해 하던 때…

사랑은 하나님의 멋진 작품이다. 거장의 조각 작품을 보고 우리가 감탄을 연발하듯이 사람들의 두근거림은 사랑이라는 작품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우리 영혼의 탄식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가에 사랑을 느끼는걸까? 아니, 영혼이 만남은 본디 두근거림일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영혼이 만나는 것…

육신의 사랑, 폭력, 쟁취, 불륜… 이 수많은 왜곡들 가운데서 그 영화는 잠시 쉼을 보여주었다. 그 쉼은 내 안에 생활의 피곤함가운데 지워져있던 두근거림을 되살려 놓았다. 사랑에 대한 두근거림… 순수한 느낌… 황순원의 소나기를 보면서 중학교때 느꼈던 두근거림처럼…

내가 사랑을 알고 있다면, 설사 그 사랑이 날 할퀴고 아프게 할지라도,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슬픈 결말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감사해야 할 것은…. 인간은 그 두근거림으로 인해 언젠가 서로를 만날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대 만일 두근거리고 있다면… 그대는 사랑받는 자이다.

Rodem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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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 ** 댓글[0]
명상, 수필 (2004-08-20 오전 10:33:09) http://blog.somang.net/sunup1/749
신하균 주연의 '지구를 지켜라'라는 영화를 보며 문득
이 세상에는 외계인을 동경(?)할 만큼
이 지구인들로부터 소외된 수많은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자식을 셋이나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자식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한국적 어머니상의 정반대되는 사람이 존재하는가 하면
불효막심한 아들의 신용카드 빚에 쫒겨
동반자살한 부모님의 황당한 뉴스도 이 지구를 장식하고 있다.

아무래도 외계인이 정말 쳐들어올거 같기는 하다.
지금까지 있어오지 않았던, 아니 인간안에 잠재되어왔던 광기가
바야흐로 분출되고 있으니깐...
천민적 자본주의의 폐해가 우리의 이성을 휘잡아 몰아치고 있으니깐...
그 외계인은 아마도 '소외'아닐까?

20세기의 화두는 소외였다.
문명의 거센 흐름에 치어 그 속도를 쫓아가지 못한 우리의 '이성, 감성, 영성'은
포스트모던이라는 과도기를 거쳐, 이데올로기의 붕괴기를 거쳐
911테러를 거쳐 21세기를 지나왔다.
너무나 빠른 속도는 그 속도에 견디고 적응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구분하기 시작하고
구분되어진 카테고리 안에서도 또한 몇등분으로 나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서로는 서로에게 무관심하게 되고
각각 저마다 삶의 당위와 변명만이 난무하게 되며
결국엔 서로간의 소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얼마전 하숙집에서 5개월간 숨져있던 대학생이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멀어져 있다.
우리의 영혼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각각의 골방에 갇혀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소속된 소수는 내가 소속되지 않은 다수로부터... 예를들어
신용카드 빚이 있는 사람은 '부자'를 외치는 대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수년간 취업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은 대다수 취업을 한 사람으로부터
어쩔 수 없이 범죄의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들은 대다수 비죄인들로부터
소외된다.

소외는 우리를 단지 고독하게만들 뿐만 아니라
공포에 빠지게 한다.

무엇보다 우리 내면에 있는 가장 무서운 소외는
나를 지으신 분으로부터의 소외이다.
절대자와의 유리됨은 결국 카인의 경우처럼
절대적인 소외감은 우리를 파멸로 이끈다.
카인에게 있어서 그것은 곧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은 엄청난 죄인에게도 그러한 절대적 소외를 원치 않으신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찌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창4:14~15)"

우리를 소외케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내가 소외되어있는지의 여부도 중요하지만
내 주변에 있는 사람에 대한 소외여부도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의 소외는 나의 책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외는 한 당사자가 홀로 일으킬 수 없다.
소외는 상호간의 무관심을 먹고살기 때문이다.
그것은 엄연히 쌍방과실이다.

세상을 잘 산다는 개념이 가끔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일까?
그것은 자꾸만 우리가 세상에서 제시해주는대로 잘 사는 방법에 골몰해서인것 같다.
세상은 사람을 자꾸만 소외시켜서 결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도 이끌어내는 것이
최종목표이자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rodem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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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잠 ** 댓글[0]
명상, 수필 (2004-08-20 오전 10:32:34) http://blog.somang.net/sunup1/748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내 목에 장식이 되리니
네가 네 길을 안연(晏然)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네가 누울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잠 3:21~24)"

더운 여름 밤에, 짜증나는 30대를 거치며
침대위에서 뒤척이며
불길한 미래에 대한 망상의 바다에서 어줍잖이 헤멜때

에어컨과 같은 시원한 말씀 한 귀절로
그분이 날 부르신다.

하나님으로 비롯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향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이 세상을 가득채울 그 무엇이라 할지라도
티끌과 같이 가볍고 무의미한 것임을 알기까지...

세속에 억눌린 수많은 가치관의 껍데기를 벗고야 직시할 수 있는 진실.
그것은 가난해진 마음만이 가능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警醒)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시127:1~2)"

시무룩한 지하철의 출근길 가운데
어제 단잠을 자고
밝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이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임에 틀림없다.

rodem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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