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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을 수 없는 사랑 댓글[0]
사랑, 관심 (2014-03-28 오후 8:08:53) http://blog.somang.net/holylove/8110
끊을 수 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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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롬8: 34- 39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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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이 군인이 군대에서 제대를 하니까 자기 부인이 아기를 놔두고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다른 남자하고 바람이 나서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린 아기를 등에 업고 직장도 없이 구걸하면서 삼천리 방방곡곡을, 잃어버린 자기 아내의 얼굴을 그리면서, 밤이나 낮이나 찾아서 헤매고 헤매다가 기진해서 돈도 없어지고 마음도 쇠해졌습니다. 3년이 지난 후에 그는 부산 거리에서 행려병자로 죽어 버렸습니다. 어린 아이는 계속 그의 등에 업혀 있었습니다. 그 몸에서 사진 한 장과 유서가 나왔는데 자기를 버리고 간 아내의 사진 뒤에다가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여, 나는 그대를 사랑했었다.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앞으로 영원히 사랑하겠노라.' 얼마나 순정을 가진 상이 군인입니까? 과거에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아마 인간의 애정 속에서 이만큼 철저하고 고귀한 사랑은 드물 것 같습니다. 만일 그 부인이 어디서 이 소식을 들었다면 그 부인의 마음속은 뜨거운 감동으로 벅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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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로 파가니니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어느 날 아주 중요한 연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연주 중에 갑자기 바이올린의 줄 하나가 끊어졌습니다. 파가니니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남은 세 개의 줄로 계속 연주했습니다. 한 줄이 또 끊어졌지만, 그는 여전히 연주를 이어 갔습니다. 그때 세 번째 줄까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줄 하나로 끝까지 연주했습니다. 그날 그 사건이 파가니니를 세계적인 연주가로 명성을 날리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줄 하나의 파가니니!' 이것이 그의 명예로운 별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외 없이 '인생'이라는 연주를 멋있게 하고 싶어 합니다. 모든 사람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기대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줄이 끊어집니다. 건강, 젊음, 물질, 직장, 사업, 부모라는 줄이 뚝뚝 끊어집니다. 멋진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가진 것들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갑니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하나의 줄을 절대로 끊어지지 않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연결된 '사랑의 줄'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끊어져도 이 줄은 튼튼합니다. 그 줄 때문에 더 멋진 연주를 하게 될 것입니다.
포기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을 신뢰하라. 오늘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라.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예비하신 놀라운 복을 안겨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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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폭풍우가 집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나무들이 쓰러지고 전기와 전화선이 끊겼습니다. 변압기에 연결돼 있던 몇 가닥의 전선마저 견디지 못하고 끊어지자 순식간에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몰려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사랑의 빛 아래에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폭풍우로 빛이 사라진 집처럼, 하나님과 떨어져 어둔 삶을 살도록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과거에 지은 죄로 인해 진정한 사랑의 능력을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온정과 돌보심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과거의 죄를 지워 버리고 새 삶을 제시하실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와 과거의 부당한 일을 더 이상 셈하지 마십시오. 과거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과거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용서하시고 깨끗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로운 소망을 갖게 해달라고 간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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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랑은 이렇게 끊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람같이 조변석개(朝變夕改)하여 그 사랑이 변하지 않으십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랑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살면서 좌절될 때, 기억하고 있어야 할 사실은 주께서는 우리를 위해 승천 이후에도 여전히 기도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 34)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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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후 모든 인간적인 사랑을 끊을만한 악 조건들을 나열해 놓았습니다.
(1) 바울은 첫째로 환난이냐고 물었습니다. 사람이 환난을 만날 때 과연 그 사람의 참 인품을 알만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기 스승이 환난을 만났을 때 모두 도망쳤습니다. 베드로도 자신이 받을지 모를 환난 앞에서 비겁해 져서 예수님을 센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는 환난을 만났을 때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진다”고 하셨습니다(마13:21). 그러나 이 환난이 혹 그리스도인들을 잠시 넘어뜨릴는지 모르지만 그리스로의 사랑에서 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환난 중에도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와주시고 결코 떠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2) “곤고냐”고 물었습니다. 곤고란 우리의 생애 중에 질병 또는 정신적 번민, 갈등, 어려움으로 말미암은 괴로움을 뜻합니다. 사람이 이 곤고한 밤을 만났을 때 앞이 캄캄해집니다. 사람의 위로도 거절합니다. 살아 있는 목숨이 한스러울 정도의 괴로움이 그의 생애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곤고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반드시 우리를 이 곤고한 밤에서 건져내실 것이며 우리의 곤고한 생애에 들어 오셔서 우리와 함께 그것을 맛보시며 급기야 영광으로 우리를 맞이하시는 것입니다.
(3) “핍박이냐”고 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위해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핍박에 대하여 이처럼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마5:11,12).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능욕 받은 일에 기뻐했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다”고 했습니다(행5:41).
(4) “기근이냐”고 물었습니다. 기근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무서운 재앙입니다.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에워쌌을 당시, 성중 사마리아인들이 기근에 허덕일 때 아들을 삶아 먹는 일로 두 여인의 싸우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처럼 기근은 처참한 것입니다(왕하6:28,29). 그러나 이 같은 기근일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보다 더 더욱 강한 것입니다.
(5) “적신이냐”고 물었습니다. 적신이란 벌거벗은 몸을 말합니다. 이 같은 표현은 모든 자신의 소유가 다 없어지고 단지 자신의 육신만 남아 있는 상태의 표현입니다. 지난날의 욥이 그러했습니다. 욥이 사단의 궤계로 인하여 모든 것을 다 상실하고 오직 그의 몸만 남았을 때 그는 이처럼 기도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은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고 했습니다(욥 1:21). 사업에 실패하고, 또 여러 가지 재앙을 만나 비록 우리의 처지가 적신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6) “위험이냐 칼이냐”고 물었습니다. 위험이란 공포나 협박, 칼이란 순교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때마다 위험을 무릅썼다고 했습니다(고전15:30). 믿음의 선진들은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려 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히11:35). 이런 것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자신에 찬 확신입니다. 성경이 증거해 주는 바요, 자신이 체험한 바에서 나온 확신입니다.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존재로 몇 가지를 예로 들었습니다. 사망이란 인생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으로 이 권세를 가진 자는 사단입니다. 생명이란 우리가 소유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까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에 비교할 바가 아닌 것입니다. 천시들이란 하나님이 부리시는 영입니다. 그들까지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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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강한 것은 없습니다. 죄, 원수, 어두운 과거 등은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강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자신을 용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수 있는지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씻기고 자유케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 어떤 폭풍우로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의 힘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접속될 때 하나님의 마음과 영원히 직결됩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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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장 9- 17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9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 가운데 한 구절입니다. 그는 인간의 모든 생활의 슬픔, 고통, 환난 죽음에까지 동참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깊은 사랑의 표현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의 생활은 이 같은 희생이 얼마나 있습니까? 다른 사람의 영혼과 육체를 구원하기 위해서 생활의 어떤 면에 희생했습니까? 시간의 희생입니까? 물질의 희생입니까?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13절)고 하셨는데 그는 원수를 위해서도 목숨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교훈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다고 하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이 없이 무한하신 불변의 사랑으로 그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신 줄 생각합니다. 이상과 같은 교훈은 너무 많이 들었으므로 그저 대수롭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의 최후 교훈을 우리가 되새겨 보면서 은혜 받아야하는 때입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전도 운동이요 다음으로는 사랑의 운동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4-35)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엡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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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변함이 없으신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지금까지 사랑과 은혜로 보호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은혜의 주님께서는 이토록 변함이 없으시건만 저희 인생들은 바람에 흔들림같이 이리 저리 요동하며 변하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주님의 형상을 잃은 지 오랜 저희들이 얼마나 추한 모습을 하고 주님을 반역했던가를 생각하면 감히 고개를 들 수도 없습니다. 오직 부활의 주님만 의지하고 여기 나와 섰습니다.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사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가 예수님의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 진실한 사랑을 깊이 생각하고, 이 사랑에 동참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나게 하옵소서. 우리를 항상 변함없이 사랑해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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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릴리 공동체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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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라 댓글[0]
사랑, 관심 (2013-11-20 오전 8:13:35) http://blog.somang.net/holylove/8018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라
 

본문: 신6: 4- 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스라엘 민족이 위대한 것은 그들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식탁에서 쉐마 이스라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는 전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은 오직 하나뿐인 여호와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세 때부터 이어져온 이 같은 신앙고백이 오늘날 작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대한 민족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신이 존재하지만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독생자로 이 땅에 보내주셔서 우리의 죄를 청산하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 길을 열어주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 막12:30)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내 목숨과 내 삶을 다 바쳐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8)

 
나의 꿈이 있습니다. 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 예수에게 미친 사람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성실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범생들이 많이 있고 선행을 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나의 꿈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꿈은 오직 사람들을 예수에게 미치게 하는 것입니다. 돌아버리는 광신자가 되게 하는 것이 나의 꿈입니다.
교양있고 우아한 신자가 아닌 철저하게 빠져버린 신자..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전 재산을 팔아서 천국보화를 사는 사람을 일으키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부르실 때 야곱아, 이스라엘아.. 하고 부르십니다. 야곱은 주께 속한 사람들의 대표입니다.
 
그는 성실한 사람이었을까요? 온전한 사림입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갈망이 있는 사람의 전형입니다.
 
사기를 쳐서라도 장자권을 원했고 이는 팥죽을 원하는, 물질과 세상을 구하는 사람과 대비되어 오직 예수를 구하고 찾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의 임재와 얼굴을 구하며 거기서 성취할 때까지 주의 옷자락을 놓지 않는, 그는 갈망의 사람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부족하고 재능도 부족하고 많은 연약함이 있어도 오직 예수에게 미치고 하나님께 함몰되기를 원하는..그런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 야곱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성공을 위하여 매진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자아의 성취를 위하여 전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얼굴을 구하여 목숨을 거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이들은 아주 쉽게 우주보다 크신 보화를 얻기 원하며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주의 은혜가 멀다고 한탄합니다.
 
주를 향하여 목숨을 거십시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지 마십시오. 우리가 주님께 드릴 것은 오직 한 가지 목숨밖에 없습니다. 목숨을 드리고 눈물을 드리며 가슴 중심에서 나오는 한탄과 고통어린 탄식으로 주의 얼굴을 구할 때 주님은 그 사모하는 자의 안타까움을 보십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은 미칠 것 같은 강렬한 사랑의 표출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절규하는 주님의 부르짖음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시며 사랑을 고백하는 고통의 고백입니다.
그 가슴을 찢는 주의 눈물 앞에서 우리가 같은 사랑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모독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먹다 남은 찌꺼기 음식을 주님께 던져 놓고 우리는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적은 시간과 마음을 드리고 우리의 중심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기 원한다면, 알기 원한다면, 당신의 목숨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당신의 가슴을 찢으십시오. 우아함을 버리고 창자가 쏟아지듯이 주님께 당신의 마음을 쏟으십시오. 주님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를 살피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들에게 나타나시며 능력과 은총을 베푸십니다.
 
세상의 많은 일에 대하여 소극적이더라도, 주의 얼굴을 구하는 것에 적극적이 되십시오. 목숨을 던져 주를 구하십시오. 주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처리하십시오.
갈망이 있는 곳에 주님은 오시며 당신은 그분을 가까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온 세상을 천 번 얻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이 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감옥에 죄수가 석방의 날을 기다리듯이 사병이 제대하기를 고대하듯이 굶주린 사람이 먹기를 기다리듯이 구차한 살림이 풍요하게 되기를 바라듯이 파숫군이 새벽 날새기를 고대하듯이 어린아이가 그 어머니의 젖을 사모함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진리를 갈급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잠시도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음부에 가서 숨을지라도 하나님의 눈이 거기 계십니다. 미치도록 예수를 사모하는 생활을 합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63: 1)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130:6)

 
당신은 미쳐야 합니다. 미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미쳤다'라고 말할 때도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정신병이 들었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옳다고 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 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명을 거는 것을 말합니다. 가슴에 있는 불을 아무도 끌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미친 사람이고, 여러분은 안 미친 사람이에요.
 
당신은 미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미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미쳐야 합니다. 좋은 일에 제대로 미쳐야 합니다. 아무나 제대로 미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 그 너머에 꿈 너머 꿈이 있는 사람,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사람만 미칠 수 있습니다. 미친 사람만 새 길을 낼 수 있습니다. 좋은 길을 새로 낼 수 있습니다.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잠10:9)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잠12:28)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 있습니다.(잠14:12)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고 목적지가 달라집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디론가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 지옥의 길과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 두 갈래 길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과 풍성한 복된 삶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 13, 14)
 
많은 이들이 가고 있는 길, 죄인들의 길로 가지 말고 의인의 회중을 찾으세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 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 1- 6)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미지근한 기독교인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교회에 설교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별로 없고 노인들만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냉담하였습니다. 설교 내용에 대하여 반감을 갖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에 모두 기도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시작되었는데도 모인 무리들은 고요하고 교회당 안에는 을씨년스러운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그 누구의 기도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모든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기도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불러도 도무지 기도의 영이 느껴지지 않는 공동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 숨길 수 없도록 그대로 반영됩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하여 가장 잘 표출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기도보다 더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배하고 기도하기 위하여 모이는 대부분의 모임 가운데는 어찌하든지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과 교제해야겠다는 단호하고도 끈질긴 마음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타성에 젖어서 교회와 집 사이를 오고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삶의 모습입니다.
‘나는 네 행위를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한다. 이와 같이 네가 미지근하여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므로 내가 너를 내 입에서 뱉어내겠다.’(계3:15, 16)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요2서: 9)

 
갈릴리 공동체는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예수와 복음을 위해 미친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옛적 길 곧 선한 길, 생명과 진리로 인도하는 좁은 길인 갈릴리 공동체를 찾으세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6:16)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용광로처럼 항상 불이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식으면 우리 인생에 갖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이 꺼지면 우리 인생은 그야말로 파산이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미치도록 열정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모와 열정, 기도와 말씀과 전도와 봉사와 사명에 대해 미치도록 열정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고, 기도와 말씀과, 전도와 맡은 바 사명과 봉사에 미치도록 열심있는 신앙을 회복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주님께 완전히 미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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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라 댓글[0]
사랑, 관심 (2013-11-20 오전 8:13:35) http://blog.somang.net/holylove/8017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라
 

본문: 신6: 4- 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스라엘 민족이 위대한 것은 그들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식탁에서 쉐마 이스라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는 전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은 오직 하나뿐인 여호와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세 때부터 이어져온 이 같은 신앙고백이 오늘날 작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대한 민족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신이 존재하지만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독생자로 이 땅에 보내주셔서 우리의 죄를 청산하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 길을 열어주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 막12:30)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내 목숨과 내 삶을 다 바쳐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8)

 
나의 꿈이 있습니다. 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 예수에게 미친 사람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성실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범생들이 많이 있고 선행을 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나의 꿈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꿈은 오직 사람들을 예수에게 미치게 하는 것입니다. 돌아버리는 광신자가 되게 하는 것이 나의 꿈입니다.
교양있고 우아한 신자가 아닌 철저하게 빠져버린 신자..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전 재산을 팔아서 천국보화를 사는 사람을 일으키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부르실 때 야곱아, 이스라엘아.. 하고 부르십니다. 야곱은 주께 속한 사람들의 대표입니다.
 
그는 성실한 사람이었을까요? 온전한 사림입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갈망이 있는 사람의 전형입니다.
 
사기를 쳐서라도 장자권을 원했고 이는 팥죽을 원하는, 물질과 세상을 구하는 사람과 대비되어 오직 예수를 구하고 찾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의 임재와 얼굴을 구하며 거기서 성취할 때까지 주의 옷자락을 놓지 않는, 그는 갈망의 사람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부족하고 재능도 부족하고 많은 연약함이 있어도 오직 예수에게 미치고 하나님께 함몰되기를 원하는..그런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 야곱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성공을 위하여 매진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자아의 성취를 위하여 전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얼굴을 구하여 목숨을 거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이들은 아주 쉽게 우주보다 크신 보화를 얻기 원하며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주의 은혜가 멀다고 한탄합니다.
 
주를 향하여 목숨을 거십시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지 마십시오. 우리가 주님께 드릴 것은 오직 한 가지 목숨밖에 없습니다. 목숨을 드리고 눈물을 드리며 가슴 중심에서 나오는 한탄과 고통어린 탄식으로 주의 얼굴을 구할 때 주님은 그 사모하는 자의 안타까움을 보십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은 미칠 것 같은 강렬한 사랑의 표출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절규하는 주님의 부르짖음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시며 사랑을 고백하는 고통의 고백입니다.
그 가슴을 찢는 주의 눈물 앞에서 우리가 같은 사랑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모독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먹다 남은 찌꺼기 음식을 주님께 던져 놓고 우리는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적은 시간과 마음을 드리고 우리의 중심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기 원한다면, 알기 원한다면, 당신의 목숨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당신의 가슴을 찢으십시오. 우아함을 버리고 창자가 쏟아지듯이 주님께 당신의 마음을 쏟으십시오. 주님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를 살피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들에게 나타나시며 능력과 은총을 베푸십니다.
 
세상의 많은 일에 대하여 소극적이더라도, 주의 얼굴을 구하는 것에 적극적이 되십시오. 목숨을 던져 주를 구하십시오. 주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처리하십시오.
갈망이 있는 곳에 주님은 오시며 당신은 그분을 가까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온 세상을 천 번 얻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이 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감옥에 죄수가 석방의 날을 기다리듯이 사병이 제대하기를 고대하듯이 굶주린 사람이 먹기를 기다리듯이 구차한 살림이 풍요하게 되기를 바라듯이 파숫군이 새벽 날새기를 고대하듯이 어린아이가 그 어머니의 젖을 사모함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진리를 갈급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잠시도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음부에 가서 숨을지라도 하나님의 눈이 거기 계십니다. 미치도록 예수를 사모하는 생활을 합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63: 1)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130:6)

 
당신은 미쳐야 합니다. 미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미쳤다'라고 말할 때도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정신병이 들었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옳다고 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 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명을 거는 것을 말합니다. 가슴에 있는 불을 아무도 끌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미친 사람이고, 여러분은 안 미친 사람이에요.
 
당신은 미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미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미쳐야 합니다. 좋은 일에 제대로 미쳐야 합니다. 아무나 제대로 미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 그 너머에 꿈 너머 꿈이 있는 사람,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사람만 미칠 수 있습니다. 미친 사람만 새 길을 낼 수 있습니다. 좋은 길을 새로 낼 수 있습니다.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잠10:9)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잠12:28)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 있습니다.(잠14:12)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고 목적지가 달라집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디론가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 지옥의 길과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 두 갈래 길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과 풍성한 복된 삶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 13, 14)
 
많은 이들이 가고 있는 길, 죄인들의 길로 가지 말고 의인의 회중을 찾으세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 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 1- 6)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미지근한 기독교인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교회에 설교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별로 없고 노인들만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냉담하였습니다. 설교 내용에 대하여 반감을 갖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에 모두 기도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시작되었는데도 모인 무리들은 고요하고 교회당 안에는 을씨년스러운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그 누구의 기도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모든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기도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불러도 도무지 기도의 영이 느껴지지 않는 공동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 숨길 수 없도록 그대로 반영됩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하여 가장 잘 표출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기도보다 더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배하고 기도하기 위하여 모이는 대부분의 모임 가운데는 어찌하든지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과 교제해야겠다는 단호하고도 끈질긴 마음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타성에 젖어서 교회와 집 사이를 오고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삶의 모습입니다.
‘나는 네 행위를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한다. 이와 같이 네가 미지근하여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므로 내가 너를 내 입에서 뱉어내겠다.’(계3:15, 16)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요2서: 9)

 
갈릴리 공동체는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예수와 복음을 위해 미친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옛적 길 곧 선한 길, 생명과 진리로 인도하는 좁은 길인 갈릴리 공동체를 찾으세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6:16)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용광로처럼 항상 불이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식으면 우리 인생에 갖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이 꺼지면 우리 인생은 그야말로 파산이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미치도록 열정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모와 열정, 기도와 말씀과 전도와 봉사와 사명에 대해 미치도록 열정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고, 기도와 말씀과, 전도와 맡은 바 사명과 봉사에 미치도록 열심있는 신앙을 회복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주님께 완전히 미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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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추가 자료편(사랑) 댓글[0]
사랑, 관심 (2012-07-22 오후 1:36:04) http://blog.somang.net/holylove/7419

주제별 추가 자료편(사랑)

 

사랑 확인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다면, 그것은 상대가 아닌, 자기 스스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정말 사랑이라면 그걸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즐겁게 마음으로 전해지게 되는 것이니까.

- 위지안의《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중에서 -

 

* 사랑은 값진 보석과 같습니다. 보석함에 넣어 장롱 깊숙한 곳에 간직합니다. 그 보석함을 수시로 열어 확인하나요? 사랑은 확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마음 깊은 곳에 남몰래

품고 사는 것입니다. 믿고 가는 것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사랑의 사칙연산

 

재키 로빈슨은 미국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야구선수였다. 인종 차별이 자행되던 시기에 그는 최초로 야구 타석에 섰던 흑인 선수였다. 그가 어느 날 브루클린 구장에 서게 되었다. 경기가 한창 진행되던 중 그가 볼을 놓치는 실수를 범했다. 많은 사람들, 특히 백인 관중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는 그에게 야유를 보내면서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백인 선수인 리즈가 로빈슨에게 다가가 끌어안고 청중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중들은 일순간 조용해졌다. 이후 로빈슨은 이때를 회상하며 자신의 어깨를 감싸준 동료의 팔이 자신의 인생을 구원해줬다고 고백했다.

한 사람의 따뜻한 배려와 사랑은 타인에게 구원을 느낄 만큼 큰 힘이 된다. 사랑을 나누는 것은 주님께 사랑의 빚을 갚는 것이다. 그 사랑을 나눔으로 말미암아 슬픔은 반이 되고 그 나눔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사랑은 배가 된다. 내 손에 쥐고 있다면 그 사랑의 사칙연산의 값은 0이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면 슬픔은 반에서 반으로, 사랑의 열기는 2배, 4배, 16배의 값으로 무한하게 성장할 것이다.

/안성우 목사(일산 로고스교회)

 

사랑을 연상시켜라

 

본문 : 요일 2:29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지난 2011년 최신개정판을 내면서 ‘Wag’, ‘Singledom’의 단어들을 새로 실었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많은 신조어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Wag’은 원래 축구선수의 아내나 여자 친구를 일컫는 말이었지만, 현재는 매력적인 아내나 여자 친구를 총체적으로 일컫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singledom’은 독신생활을 뜻하는 단어로, 원래는 없는 단어이지만, 혼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그들을 표현하는 대표어로 인정을 받은 케이스입니다. 그런데 이번 개정판에는 ‘♡’도 기호가 아닌 단어로 인정받아 실렸습니다. ‘기호♡’는 ‘사랑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는데, 옥스퍼드 사전 역사상 기호가 단어로 인정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편집자인 그레이엄은 기호를 사전에 싣게 된 이유로 “다른 기호들도 많이 쓰이지만 ‘♡’처럼 직접적으로 단어의 뜻을 연상시키는 기호는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기호가 문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는, 누구나 그것을 보고 사랑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으로 일을 하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섬길 때, 세상에 하나님을 나타내는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됩니다. 사랑을 연상시키는, 하나님을 연상시키는 사람이 되십시오.

* 기도: 주님! 세상에 조금이라도 주님을 알리는 자로 쓰임 받게 하소서!

* 묵상: 행함으로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사랑과 속박

 

본문 : 시 146: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앙드레 모아는 ‘행복한 결혼’이라는 책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부간의 대화란 자고로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사랑만이 전부가 되어서도 안 되며, 너무 정직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에 치우치면 이성을 마비시키고, 너무 정직하면 사랑이 사라지게 됩니다. 뜨거운 사랑은 때론 질투로 쉽게 변하게 되고 이것은 결혼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합니다. 과도한 정직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며 이것은 종종 결혼 생활을 끝나게 만들기도 합니다.”

칼릴 지브란은 자신의 시집 ‘예언자’에 이런 시를 실었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사랑을 속박하지는 마십시오. 서로의 잔을 채워주고, 서로의 빵을 드십시오. 그러나 너무 가까이 있지는 마십시오.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에서는 자라나지 못하니까요.’

사랑과 속박의 차이는 믿음의 존재에 따라 갈라집니다. 진정한 믿음이 없을 때 타인의 자유를 속박하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이것으로 인해 다른 개인과 하나님의 관계를 속박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상대방의 자유를 속박하지 마십시오.

* 기도: 주님! 주님이 주신 진정한 자유를 생활에 적용하며 살게 하소서!

* 묵상: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사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사랑은 보이지 않는 힘

 

어떤 사람이 두 개의 양파를 동일한 조건에 놓아두고 키웠다. 그러면서 하나는 무관심하게 지나치고 다른 하나는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축복의 말을 했다. 그리고 하나는 미운 사람의 이름을 붙여놓고 다른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붙여놓았다. 그 결과 양파의 발육 상태가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나도 모르게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아프거나 힘든 일이 생길 때는 ‘누가 나를 미워하는가보다’ 하고, 힘이 나고 기쁠 때는 ‘누가 나를 위해 사랑의 마음을 주는가보다’라고.

진정한 사랑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아도 전달된다. 그래서 교인 중에 나에게 불평을 하거나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도 그를 탓하려고 하지 않는다. 내 사랑이 언젠가 전해지게 되면 나 역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기다릴 수 있게 됐다. 보이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게 더욱 중요하다. 돈만이 영양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도 뛰어난 영양소다. 진실한 사랑이 있는 곳에는 건강 웃음 능력이 있다.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최승일 목사(서울 상도교회)

 

더 깊이 사랑하는 법

 

슬프고 힘든 일, 분명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고마운 벗이기도 합니다. 슬프고 힘든 일이 아니면 끝내 모르고 말았을 더 깊이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해주었으니까요.

- 고도원의《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중에서 -

 

* 슬픈 일 때문에 우리는 함께 울 수 있습니다. 아프고 힘든 일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 더 깊이 부둥켜안을 수 있습니다. 슬픈 마음을 다스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아픈 몸을 일으켜 함께 춤을 추는 것, 그것이 깊은 사랑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인기 있는 암컷 빈대

 

수컷 빈대의 생식기는 칼처럼 생겼다. 수컷은 아무 암컷에게나 붙은 다음, 암컷 몸에 무자비하게 그 칼을 찔러 넣는다. 인기 있는 암컷 빈대는 따라서 몸의 이곳저곳에 상처와 흉터를 안고 살아간다. 인기 있는 암컷은 덜 인기 있는 암컷에 비해 일찍 죽는다. 빈대도 미인박명, 아니 미빈대박명이다.

- 명로진의《몸으로 책읽기》중에서 -

 

* 한낱 빈대도 사랑에 살고 죽습니다. 사랑의 칼을 수시로 사용하고 그로부터 생긴 상처와 흉터를 안고 삽니다. 미물이든 사람이든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사랑하고 상처받고, 사랑하고 상처받고... 그래도 다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살아있는 생명의 특권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사랑으로 연 마음의 문

 

본문 : 고전 16: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4년 연속 전도 왕을 차지한 권영희 권사님은 MBC의 김주하 앵커의 어머니로서, 전도 왕을 몇 년씩이나 했습니다.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권사님의 전도 비법과 체험에 대해서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권 권사님이 전도를 시작한 것은 2008년도부터인데, 지금까지 200세대가 넘는 가정을 전도했습니다. 등록한 신자 수의 90%가 교회에 정착해서 계속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도를 시작한 첫 해부터 100세대가 넘는 가정을 전도했는데, 그 비결을 묻자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전도 대상자와의 만남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고, 자영업을 하는 경우에는 물건도 많이 구입을 합니다. 때로는 잠깐을 만나기 위해 반나절 이상 기다린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렇게 권사님이 열심히 전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실직한 남편을 위해 기도를 하자 새 직장을 구하게 되었고, 두 자녀를 위해 기도를 하자, 한 명은 앵커로, 한 명은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어렵던 가정형편도 넉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도 더욱 값진 것은 영적인 부자가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할 때 전도하게 됩니다. 그 사랑을 전함으로 전도 대상자의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 기도: 주님! 모든 벽을 허무는 것은 사랑뿐임을 알게 하소서!

* 묵상: 사랑을 통해, 기도를 통해 전도 대상자들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나는 없고 당신만 있는 사랑

 

사랑의 가장 큰 핵심은 상대방만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대상만 있는 겁니다. 상대방이 잘되면 내가 어떻게 되든 좋은 겁니다. 나에겐 관심이 없는 겁니다. 자녀들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맛이 쓴 것을 좋아하시더라. 딸기도 꼭 짓무른 것만 드시고 밥도 꼭 누룽지만 긁어서 물에 말아 드시더라. 이상하게 생선도 구우면 내장만 드시고 살코기는 나한테 주시더라." 하지만 부모가 정말 맛있는 데를 몰라서 그렇습니까? 자녀에게 좋은 것을 먹이느라고 그러는 겁니다. 밤골에 사시는 어떤 할아버지가 전한 말입니다. 가을에 밤이 주렁주렁 열리면 주말에 선남선녀가 온답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오면 서로 큰 것을 권한답니다. "이거 크다, 이거 먹어." 그러면 남는 것은 작은 밤들입니다. 그렇지만 나이가 지긋이 드신 부부가 오면 서로 아무 말 없이 먹는데 서로 상대방에게 큰 것을 먹게 하려고 작은 것부터 먹으니까 나중에 남는 것은 큰 밤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이 잘되게 하는 겁니다. 여러 해 전에 어느 장로님과 함께 심방을 갔던 길에 제가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딸기가 나왔는데 (여러분도 가게에서 사 보셔서 아시겠지만) 위에 얹어 있는 몇 개만 싱싱하고 밑의 것은 짓물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계속 짓무른 것만 드시는 겁니다. 저를 좋은 거 먹게 하려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박영선

 

*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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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관심 (2012-07-16 오전 8:16:24) http://blog.somang.net/holylove/7412

사랑과 관심의 힘

 

본문: 빌2: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아들 3형제에게 식물을 하나씩 가꾸게 했습니다. 얼마 안 있다가 기른 식물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가장 별 볼 일없어 보이고 약한 아들이 가장 잘 기르고 왔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식물학자가 될 거야!!”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후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매우 긍정적인 사람으로 돌진하며 매사에 큰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이튿날 물을 주러 아침 일찍 식물을 향하고 있는데 그만 아버지가 먼저 물을 주고 오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아버지가 약한 나를 이토록 사랑하고 있고나 생각하며 열정적인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나중 최고의 식물학자는 못 됐지만, 그 위대한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

 

보스턴의 한 정신병원의 지하병동에는 심한 정신질환자들만 수용해 놓는 독방이 있습니다.

한 소녀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심한 공격적 성향을 보여 그곳에 갇혀 있었습니다. 부모조차도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라고 말하며 그녀를 포기한 채 면회조차 오지를 않았습니다. 혼자 갇혀 있는 소녀는 점점 포악해졌으며 전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미 은퇴한 간호사가 우연히 이 소녀를 보고선 사랑과 관심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음식을 가져다 주면 집어 던졌고 말을 건네도 대답이 없었지만, 그 간호사는 매일같이 6개월 동안 그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6개월이 지나자 그 소녀는 간호사에게 마음을 열었고 차츰 회복되더니 결국엔 정신질환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나온 그녀는 평생을 봉사의 삶으로 살았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앤 설리반, 헬렐켈러의 스승입니다. 사랑과 관심의 힘은 위대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이뤄냅니다. 사랑과 관심은 모든 것을 변화시킬 힘이 있습니다.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나 악인은 알아줄 지식이 없느니라’(잠29:7)


킴볼은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그는 ‘무디’라는 아이가 교회에 나오지 않자 걱정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어 무디가 일하고 있는 구두방으로 찾아갔습니다. 무디는 생활이 어려워 학교에 다니기 힘들었고, 어려서부터 구두 수선으로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무디는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킴볼은 그를 기억하고 그가 일하고 있는 곳까지 찾아와 주었습니다. 킴볼은 무디의 손을 붙잡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무디는 다시 교회를 찾았고, 훗날 목사가 되어 미국을 변화시킨 대 부흥사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한 소년에 대한 교사의 작은 관심이 소년을 위대한 종교 지도자로 성장시킨 것입니다. 지금 내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친구가, 자녀가, 제자가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의 삶을 방관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사랑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누구에게든지 보석 같은 미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다가가 응원해 주세요. 그의 미래가 세상을 변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시41:1)


한 선교사가 이제 막 예수를 믿기 시작한 인도 사람에게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주 이상한 방법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허리를 구부리고 땅에 앉더니 마른 나뭇잎을 모아 동그라미를 만들어 놓고 그 가운데 벌레를 한 마리 놓은 다음 나뭇잎에 불을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불은 삽시간에 빙 돌아 붙었습니다. 그러자 벌레는 겁에 질려 밖으로 기어 나오려고 꿈틀거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힘에 부쳤는지 꼼짝도 못하고 자신을 구해 내려는 노력은 헛수고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인도 사람은 손을 내밀어 그 불쌍한 처지에 있는 벌레를 죽음에서 건져내었습니다. 그리고 땅에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바로 이렇게 하셨소”

우리 주변에는 도와달라고 절규하는 이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성경에 기록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일깨워 행케 하시는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먼저 우리의 이기심을 버리고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셨던 것처럼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손을 펼쳐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마음 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잠 24:11)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백부장은 자기의 종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중풍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에수님 앞에 아뢰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랑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부장처럼 이웃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자신만을 너무 생각한 나머지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죄를 범치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겠습니다.(잠28:27, 잠22:9)

존 템플턴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순수한 관심뿐이란 걸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관심입니다. 그리고 관심이란 사랑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관심을 기울이면 거기에 사랑의 해답이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려면 우리의 손발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깨어 있고 사랑에 깨어 있는 사람은 손발이 살아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선하다고 부르는 것은 그 사람이 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선합니다. 그는 가슴이 깨어 있었습니다. 눈과 발과 손과 온몸이 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포도주나 나귀나 돈과 같은 재산도 깨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관심입니다. 이것이 그가 선하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

 

*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천하만민 중에서 저희들을 택하여 주시고 저희들에게 주를 경외하는 마음을 주시고, 자유와 건강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감사와 찬송과 기도를 받아주시옵소서. 우리는 세상의 많은 것들 중 무엇에 가치와 관심을 두어야 할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님의 일에 관심과 정열을 쏟을 수 있게 하여 주시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에 빠져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죄를 범치 않게 하시고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본받아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세상사람들처럼 썩어질 것, 허탄한 것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우리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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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관심 (2012-06-25 오전 7:13:07) http://blog.somang.net/holylove/7399

주제별 추가 자료편(사랑)

 

사랑 확인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다면, 그것은 상대가 아닌, 자기 스스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정말 사랑이라면 그걸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즐겁게 마음으로 전해지게 되는 것이니까.

- 위지안의《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중에서 -

 

* 사랑은 값진 보석과 같습니다. 보석함에 넣어 장롱 깊숙한 곳에 간직합니다. 그 보석함을 수시로 열어 확인하나요? 사랑은 확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마음 깊은 곳에 남몰래

품고 사는 것입니다. 믿고 가는 것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사랑의 사칙연산

 

재키 로빈슨은 미국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야구선수였다. 인종 차별이 자행되던 시기에 그는 최초로 야구 타석에 섰던 흑인 선수였다. 그가 어느 날 브루클린 구장에 서게 되었다. 경기가 한창 진행되던 중 그가 볼을 놓치는 실수를 범했다. 많은 사람들, 특히 백인 관중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는 그에게 야유를 보내면서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백인 선수인 리즈가 로빈슨에게 다가가 끌어안고 청중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중들은 일순간 조용해졌다. 이후 로빈슨은 이때를 회상하며 자신의 어깨를 감싸준 동료의 팔이 자신의 인생을 구원해줬다고 고백했다.

한 사람의 따뜻한 배려와 사랑은 타인에게 구원을 느낄 만큼 큰 힘이 된다. 사랑을 나누는 것은 주님께 사랑의 빚을 갚는 것이다. 그 사랑을 나눔으로 말미암아 슬픔은 반이 되고 그 나눔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사랑은 배가 된다. 내 손에 쥐고 있다면 그 사랑의 사칙연산의 값은 0이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면 슬픔은 반에서 반으로, 사랑의 열기는 2배, 4배, 16배의 값으로 무한하게 성장할 것이다.

/안성우 목사(일산 로고스교회)

 

사랑을 연상시켜라

 

본문 : 요일 2:29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지난 2011년 최신개정판을 내면서 ‘Wag’, ‘Singledom’의 단어들을 새로 실었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많은 신조어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Wag’은 원래 축구선수의 아내나 여자 친구를 일컫는 말이었지만, 현재는 매력적인 아내나 여자 친구를 총체적으로 일컫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singledom’은 독신생활을 뜻하는 단어로, 원래는 없는 단어이지만, 혼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그들을 표현하는 대표어로 인정을 받은 케이스입니다. 그런데 이번 개정판에는 ‘♡’도 기호가 아닌 단어로 인정받아 실렸습니다. ‘기호♡’는 ‘사랑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는데, 옥스퍼드 사전 역사상 기호가 단어로 인정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편집자인 그레이엄은 기호를 사전에 싣게 된 이유로 “다른 기호들도 많이 쓰이지만 ‘♡’처럼 직접적으로 단어의 뜻을 연상시키는 기호는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기호가 문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는, 누구나 그것을 보고 사랑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으로 일을 하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섬길 때, 세상에 하나님을 나타내는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됩니다. 사랑을 연상시키는, 하나님을 연상시키는 사람이 되십시오.

* 기도: 주님! 세상에 조금이라도 주님을 알리는 자로 쓰임 받게 하소서!

* 묵상: 행함으로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사랑과 속박

 

본문 : 시 146: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앙드레 모아는 ‘행복한 결혼’이라는 책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부간의 대화란 자고로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사랑만이 전부가 되어서도 안 되며, 너무 정직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에 치우치면 이성을 마비시키고, 너무 정직하면 사랑이 사라지게 됩니다. 뜨거운 사랑은 때론 질투로 쉽게 변하게 되고 이것은 결혼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합니다. 과도한 정직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며 이것은 종종 결혼 생활을 끝나게 만들기도 합니다.”

칼릴 지브란은 자신의 시집 ‘예언자’에 이런 시를 실었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사랑을 속박하지는 마십시오. 서로의 잔을 채워주고, 서로의 빵을 드십시오. 그러나 너무 가까이 있지는 마십시오.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에서는 자라나지 못하니까요.’

사랑과 속박의 차이는 믿음의 존재에 따라 갈라집니다. 진정한 믿음이 없을 때 타인의 자유를 속박하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이것으로 인해 다른 개인과 하나님의 관계를 속박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상대방의 자유를 속박하지 마십시오.

* 기도: 주님! 주님이 주신 진정한 자유를 생활에 적용하며 살게 하소서!

* 묵상: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사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사랑은 보이지 않는 힘

 

어떤 사람이 두 개의 양파를 동일한 조건에 놓아두고 키웠다. 그러면서 하나는 무관심하게 지나치고 다른 하나는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축복의 말을 했다. 그리고 하나는 미운 사람의 이름을 붙여놓고 다른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붙여놓았다. 그 결과 양파의 발육 상태가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나도 모르게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아프거나 힘든 일이 생길 때는 ‘누가 나를 미워하는가보다’ 하고, 힘이 나고 기쁠 때는 ‘누가 나를 위해 사랑의 마음을 주는가보다’라고.

진정한 사랑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아도 전달된다. 그래서 교인 중에 나에게 불평을 하거나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도 그를 탓하려고 하지 않는다. 내 사랑이 언젠가 전해지게 되면 나 역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기다릴 수 있게 됐다. 보이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게 더욱 중요하다. 돈만이 영양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도 뛰어난 영양소다. 진실한 사랑이 있는 곳에는 건강 웃음 능력이 있다.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최승일 목사(서울 상도교회)

 

더 깊이 사랑하는 법

 

슬프고 힘든 일, 분명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고마운 벗이기도 합니다. 슬프고 힘든 일이 아니면 끝내 모르고 말았을 더 깊이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해주었으니까요.

- 고도원의《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중에서 -

 

* 슬픈 일 때문에 우리는 함께 울 수 있습니다. 아프고 힘든 일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 더 깊이 부둥켜안을 수 있습니다. 슬픈 마음을 다스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아픈 몸을 일으켜 함께 춤을 추는 것, 그것이 깊은 사랑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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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사랑 댓글[0]
사랑, 관심 (2012-02-27 오후 7:50:57) http://blog.somang.net/holylove/7232
움직이는 사랑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비참히 세상을 떠나야 했던 동생. 그 일로 인해 세상을 등지며 살다 결국 정신병원에 수용, 아무와도 말하지 않고 자기를 건드리는 사람을 때리고 물고 뜯고 난동을 부리던 사람이 변화되었다. 그녀는 보모로부터 나누어 받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또 다른 이의 어두움을 밝혀주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바로 그녀의 이름은 앤 설리반. 헬런 켈러의 가정교사로 유명한 그녀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말하지도 못하는 헬런 켈러에게 자신이 받은 사랑을 나누어 주었던 앤 설리반 선생은 모두가 포기했던 헬런 켈러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48년 동안 헬렌 켈러 옆에서 그 사랑을 전했다. 그로 말미암아 헬렌 켈러는 당당히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사랑. 그 사랑은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그 사랑을 받았다면 그 사랑을 흘려보내야만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혹시 내 안에 고인 예수님의 사랑이 있지는 않은가? 그 사랑이 고이면 더 이상 능력을 행할 수 없다.

/안성우 목사(일산 로고스교회)

 

진정한 사랑은 표현되어야

 

배우자간에 자주 사랑을 표현해 안아주십시오. 아주 거룩하다고 하는 청교도들도 감상적인 애정 표현을 개발해야 하며, 진정한 사랑은 표현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것을 나타난 사랑이라고 합니다. 어느 보험회사의 조사에 의하면 아내가 아침에 "다녀오세요" 하고

키스를 해주면 남편의 사고율이 감소되고 5년 이상 더 산다고 합니다. 헨리 매튜 워드가 이런 시를 썼습니다.

부속품도 필요없고, 건전지도 필요없다. 다달이 돈 낼 필요도 없고 소모품 비용도 들지 않는다. 은행 금리와도 상관없으며 세금 부담도 없다. 도둑맞을 염려도 없고 시간이 지나 퇴색할 염려도 없다. 한 가지 사이즈에 모두가 맞으며 질리지도 않는다. 가장 적은 에너지를 사용해 가장 감동적인 결과를 낳는다.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행복감을 키워준다. 절망을 물리쳐주며 당신의 눈을 빛나게 하고 스스로 당신 자신을 존중하게 해준다. 감기, 얼굴에 난 종기, 골절상에도 효과가 있으며 불치병까지도 극적으로 낫게 한다. 이 약은 특히 가슴에 난 상처에 특효약이다. 이 약은 전혀 부작용이 없으며 오히려 혈액 순환까지 바로잡아준다.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약이다. 처방은 이것이다. 최소한 하루에 한 번씩 식후 30분이든 식전 30분이든 서로 껴안으라는 것이다.

행복은 전염성이 강하다 / 송길원

 

▣ 아빠는 너를 사랑한다.

 

사막을 지나가던 한 경비행기가 폭풍을 만나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그 경비행기 안에는 한 사업가의 아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수색대가 며칠 만에 비행기의 잔해와 비행사의 시체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사업가는 일단 자신의 아들이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먼저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 아들이 살았는지, 살았으면 어디에 있는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저와 제 아들을 도와주십시오.”

기도를 끝낸 후 그는 수백만 장의 전단을 사막에 뿌리기로 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지금 아이는 가정과 부모로부터 격리되어있기 때문에 고독감을 가장 많이 느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 아들아, 아빠는 너를 사랑한다’라고만 써서 전단을 뿌렸습니다. 며칠 후 극적으로 구조된 아들은 아버지에게 달려와 안기며 말했습니다.

“아빠, 제가 사막에서 탈진했을 때 그 전단지를 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 그렇다면 아빠는 반드시 나를 찾아올 것이다. 용기를 가지고 버티자’라고 다짐하면서 힘을 내었어요.”

사랑의 힘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아버지의 눈물의 기도와 사랑이 있었기에 아들은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과 동일합니다. 하나님과 부모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하십시오.

* 기도: 주님! 하나님과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하게 하소서.

* 묵상: 당신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희생을 돌아보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사 랑

 

아빠와 엄마, 그리고 일곱 살 난 아들과 다섯 살짜리 딸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 아빠가 아들과 딸을 데리고 등산을 가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아들이 심하게 다쳤습니다. 응급수술을 받던 중 피가 필요했는데, 아들과 같은 혈액형은 딸뿐이었습니다. 다급한 아빠가 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 오빠에게 피를 좀 줄 수 있겠니?"

딸아이는 이 질문에 잠시 동안 무얼 생각하는 것 같더니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수술이 끝난 뒤 의사가 대성공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때까지 딸아이는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 있었습니다.

"네 덕분에 오빠가 살게 되었어!" 아빠의 말을 들은 딸이 낮은 목소리로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와! 정말 기뻐요. 그런데... 나는 언제 죽게 되나요?"

아버지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죽다니. 네가 왜 죽는단 말이냐?"

"피를 뽑으면 곧 죽게 되는 게 아닌가요?" 잠시 숙연한 침묵이 흐른 뒤 아빠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럼, 넌 죽을 줄 알면서 오빠에게 피를 주었단 말이냐?"

"예... 전 오빠를 사랑하거든요."

 

▣ 사랑의 힘

 

광복 직전 스물두 살의 청년이 폐병에 걸렸는데 석 달 정도 살 것이라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는 산기슭의 격리된 오두막집에서 혼자 외롭게 요양 생활을 했다. 어머니가 매일 음식을 갖고 오셨다. 청년은 허무감과 절망감 속에 기진맥진해 있었다. 당시 청년은 40㎞가 넘는 ‘결핵환자 보호소’까지 기차를 타고 다녔다. 그런데 미모의 간호사가 환자의 어머니로부터 모든 사정을 전해 듣고 자신이 보증을 서서 무료 치료를 받게 해주었다. 간호사는 “병 고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니까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환자는 병원까지 수십리 길이었지만 그 간호사를 만난다는 기쁨 때문에 새 힘이 불끈 솟구치곤 하였다. 간호사는 틈틈이 찾아와 “회복이 멀지 않다”고 격려해 주었다. 청년은 간호사에게서 사랑과 희망을 느꼈고 건강도 놀랍게 회복됐다. 이 청년이 바로 한국 교회 부흥에 크게 공헌한 고 최순직 목사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치유의 힘이 있다.

-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 가시 면류관에 담긴 사랑

 

그리스도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초자연적 능력을 일신의 안위를 위해 사용치 않으셨다. 예수님은 눈썹 한 번 치켜 올리시면 가시 면류관을 엮는 군병의 손을 마비시킬 수 있으셨지만 그러지 않으셨다. 놀랍다. 하지만 이것이 그분이 오셔서 행하신 사건 중에 가장 놀라운 부분일까? 별들로 구슬치기를 하시던 분이 자신의 무한성을 포기하신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성육신의 가장 멋있는 부분을 알고 싶은가?

예수님과 가장 가깝다는 친구들이 그분을 배반하고 달아날 때도 그분이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으셨다는 사실? 아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남녀 죄인들의 온갖 죄를 대신 뒤집어쓰시면서도 주님은 자기 변호를 거부하셨다. 그러나 그것도 가장 놀랄 만한 사실은 아니다. 천국의 법정에 무수한 유죄 판결이 울려 퍼지고 빛의 창조자가 죄인들이 가득한 밤의 냉기 속에 버려졌을 때도 여전히 침묵을 지키셨다. 그러나 이것 역시 아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무덤에서 사흘을 보내신 후 환한 웃음으로 부활의 아침 햇살 속으로 당당히 걸어 나오시며, 초라한 루시퍼에게 “그것이 제일 센 주먹이더냐?”라고 물으셨다. 그러나 심지어 그 부분도 아니다. 이러한 것들도 멋있다. 말할 수 없이 멋있다. 그러나 천국의 면류관을 버리고 가시 면류관을 쓰신 그분의 가장 멋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그것은 바로 당신을 위해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바로 당신을 위해.

-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 맥스 루케이도

 

▣ 사랑의 치유력

 

사랑에는 능력과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병원에서 한 산모가 쌍둥이를 조산으로 낳아서 인큐베이터에 따로 따로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쌍둥이 동생의 심장이 안 좋아서 숨이 고르지 못하고 점점 죽어가자, 의사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 때, 간호사가 “선생님 이왕에 며칠 있으면 죽을텐데 제 형하고 같이 인큐베이터에 있게 하지요.”라고 말했답니다. 병원법으론 안 되는 것이지만, 죽을 아이니까 한 인큐베이터에 형과 동생을 나란히 눕혀 놓았답니다. 그런데, 그 쌍둥이 형이 오른손으로 동생의 목을 감아주었고, 하루가 지나자 동생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조산아지만, 형이 동생을 사랑으로 포옹해 줄 때, 놀라운 치유력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며칠 후에 건강해져 잘 살고 있다고 합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치유력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면 건강해집니다.

 

▣ 아파하는 사랑

 

자녀 셋을 잘 키운 한 여인이 있었다. 하루는 심방을 온 목사님이 그녀에게 물었다. “자녀 셋 중 누구를 가장 사랑했나요.” 그러자 여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막내가 병들었을 때, 그때는 막내를 가장 사랑했습니다. 둘째가 집을 떠나 방황했을 때, 그때는 둘째를 가장 사랑했고요. 큰 아이가 학교성적과 이성문제로 괴로워할 때, 그때는 큰아이를 가장 사랑했답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사랑이다. 자녀가 고통스러워할 때 그것을 피하지 않고 사랑으로 끌어안는 사람이 바로 부모다. 사자는 병든 새끼를 절벽에 던져버린다. 독수리는 상처 입은 새끼를 둥지에서 떨어뜨린다. 그러나 부모는 항상 자녀와 고통을 함께 나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보다도 한 차원 높다. 인간이 죄악의 올무에 빠져 고통당할 때 독생자를 보내 우리를 구원해주시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병든 자, 낙심한 자, 고통당하는 자, 방황하는 자를 불러 사랑으로 치유해주신다.

/임창한

 

▣ 아름다운 사랑

 

성경: 아2: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흰 구름이 정처 없이 바닷가를 내려다보며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닷가 소나무 밑에서 서로 등을 나무에 기대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젊은 남녀를 보게 되었습니다. 흰 구름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봤습니다. 남자는 가방을 하나 메고 모자를 푹 눌러 쓴 모습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남자는 눈썹이 없었습니다. 문둥병에 걸린 환자였는데 그 흉한 모습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썼던 거죠.

“제발 날 잊어버려. 난 문둥병자야. 나 같은 환자는 소록도에 가서 살아야 하는데, 당신까지 문둥병자로 만들기는 싫어.”

그러자 눈썹이 솔잎같이 아름다운 여인이 말했습니다.

“전 제가했던 맹세를 지키기를 원해요. 기쁘거나 슬프거나 몸이 아프거나 병들었을 때에도 서로를 사랑하겠다는.... 전 당신의 겉모습과 결혼한 것이 아니랍니다. 당신의 자상함, 그 인간미를 사랑했어요. 저도어디까지든 따라 가겠어요.”남자는 여인에게 화를 내었습니다.

“이 바보야. 난 사실 널 사랑하지 않아. 난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 그와 같이 소록도에 가서 살기로 했단 말이야.” 여인은 할 말을 잃고 머뭇거렸습니다. 아마도 심한 충격을 받았나 봅니다. 그 사이에 남자는 배에 올랐고 배는 곧 떠나 버렸습니다. 여인은 눈물어린 모습으로 떠나는 배를 쳐다보고 있었고, 남자는 그제야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흰 구름은 비로서, 그 남자가 여인을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흰 구름은 안타까웠습니다. 늦은 밤. 소록도로 가는 마지막 배위에 여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흰 구름은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얄미운 바람이 흰 구름을 멀리 멀리로 날려버렸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여름, 가을, 겨울 .... 오랜 시간이 흐른 후 흰 구름은 다시 그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흰 구름은 열심히 그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던중 소록도 바닷가 푸른 언덕위에 지게를 풀어놓고 쉬고 있는 두 사람을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밀짚모자에 고무신을, 여인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흰 구름은 아주 흐뭇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수건을 풀어 땀을 훔치는 여인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솔잎 같던 눈썹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산들바람에 밀려 떠나가는 흰 구름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비록 모습의 아름다움은 잃었지만 그보다 더욱 아름다운 사랑을 얻었습니다. 사랑은 잃어버림조차도 아름다운 얻음이 될 수 있는 그런 것이랍니다.

오늘도 참 사랑으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높고 깊고 넓은 사랑

 

한 영국인이 요크셔 해안에 아름다운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해안 한쪽에는 커다란 바위가 바다를 향해 불쑥 나와 있었다. 어느 날 이 영국인은 딸을 데리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갔다. 그들이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는 딸에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애야, 위를 올려다 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번에는 아래를 내려다 보아라."

아버지의 말대로 딸은 하늘이 비춰지는 바다를 내려다 보았다.

"이번엔 저 앞을 내다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했다.

"내 딸 도로시야, 이처럼 높고 한없이 깊고 끝없이 넓고 아름다운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말을 들은 딸은 아버지를 향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이처럼 높고 깊고 끝없이 광활하다면 우리는 그 한가운데서 살고 있군요." 하고 똑똑히 말했다. 아버지는 딸의 이 말을 평생 잊지 못했다고 한다.

 

▣ 사랑의 불씨를 가꾸는 지혜

 

사랑의 불씨를 가꾸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사랑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 때문에 살고, 사랑 때문에 죽는다. 사랑 때문에 기뻐하고, 사랑 때문에 슬퍼한다. 사랑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사랑 때문에 흐느낀다. 사랑 때문에 만나고, 사랑 때문에 헤어진다. 사랑 때문에 힘을 얻기도 하고, 사랑 때문에 낙심하기도 한다.

사랑하면 우리의 전 존재가 새롭게 태어난다. 감정이 살아나고, 온몸의 감각이 살아난다. 사랑하면 온몸으로 듣고, 온몸으로 느끼고, 온몸으로 깨닫는다. 온몸으로 말하고, 온몸으로 반응한다. 사랑하면 감춰진 사랑의 언어가 살아난다. 플라톤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

사랑하면 약한 자가 강해진다. 또한 사랑하면 강한 자는 약해진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대상에게 언제나 지게 된다. 힘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지는 것이다. 져주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이기는 법이 없다.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약해짐으로 사랑하고, 약해짐으로 친밀해진다. 그래서 사랑은 신비로운 것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 주는 것이다. 주면서 더 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하면 참는다. 사랑하는 것만큼 참는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참는 것은 참는 것이 아니라 벼루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벼루지 않는다. 사랑하면 용서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용서한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살린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소망을 준다. 힘을 심어 준다. 삶의 의미를 준다. 살아야 할 이유를 갖게 해 준다. 사랑은 산소와 같다. 산소가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처럼 사랑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사랑은 불씨와 같다. 불씨는 돌보지 않으면 쉽게 사라진다. 사랑은 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작은 불씨를 가꾸듯 늘 가꾸어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전해주신 작은 사랑의 불씨를 가꾸는 것이 영성관리다. 사랑의 불씨가 작다고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하자. 그 불씨를 잘 가꾸어 외로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자. 우리 손에 있는 사랑의 불씨가 작더라도 낙심하지 말자. 그 작은 불씨로 차가운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어두운 세상을 밝히도록 하자.

/강준민(LA동양선교교회 목사)

 

▣ 가장 좋은 치료법

 

어느 저명한 소아과 전문의는 체중 미달의 연약한 어린이를 치료하는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병원에서 회진할 때 아이의 진료기록표에다 다음과 같은 처방을 써놓는다.

“이 아기는 세 시간마다 사랑을 받아야 함.”

애정이 필요한 것은 갓 태어난 아기뿐만이 아니다. 의사들은 신체적 질병이 대부분 불안이나 고독, 그리고 버림받는다는 느낌에 기인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영적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웃을 사랑할 때 힘이 생겨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방법으로 우리도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사랑은 최선의 양약이다. 사랑보다 좋은 약은 없다. 사랑하라, 무조건 사랑하라.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하라.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 목숨을 바친 사랑

 

전쟁 중 우리나라에 있었던 실화라고 한다. 한 만삭이 된 어머니가 아기를 낳기 위해 어떤 집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그 어머니는 그만 그 집을 다가지 못하고 길에서 진통을 하기 시작했다.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어머니는 어느 다리 밑에 겨우 자리를 잡아 아기를 분만하게 되었다. 추운 겨울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이 없는 가운데 그 어머니는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하고는 아기가 춥지 않도록 자기 옷을 모두 벗어서 아기를 감싸주었다. 해산 직후 추위에 어머니는 그만 얼어 죽고 말았다. 얼마 후 어느 미군 장교 한 사람이 차를 타고 그 근처를 지나가다가 휘발유가 떨어졌다. 그는 부대로 연락을 취해 놓고 차에서 내려 그 부근을 거닐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아기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그 군인은 그 소리를 따라 다리 밑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거기서 그 군인은 기가 막힌 장면을 목격했다. 어머니는 벌거벗은 채 얼어죽어 있었고 어머니의 옷에 둘러싸인 갓난 아기가 몹시 울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기름이 떨어진 것이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살리시기 위함인지도 모르겠군." 이렇게 생각한 군인은 그 아기를 데려다가 양자를 삼아 잘 키웠다. 그 아들은 미국에서 훌륭하게 자라 성인이 되었다. 늘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고 싶어하던 그 아들은 어느 날 자기를 키워 준 아버지로부터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아들은 무덤을 찾아 한국에까지 나왔다. 그 아들은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자기 옷을 벗어서 무덤 위를 덮으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얼마나 추우셨어요! 나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는 그런 희생을 치르셨군요! 저는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벌거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겠어요!"

 

▣ 아낌없는 사랑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연설이 ‘젖소에 대한 예화’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젖소 한 마리를 사려고 우시장에 갔다. 부모님이 젖소 주인에게 물었다.

“이 소는 혈통이 어떠합니까? 우유는 얼마나 생산합니까?” 주인의 대답은 한 가지였다.

“모릅니다.” 그는 돌아서는 손님을 향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소는 정말 정직합니다. 자신이 가진 우유와 모든 것을 주인에게 바칠 것입니다.”

이제 며칠 후면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게 된다. 참 하나님으로서 참 인간이 되셔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몸소 가르쳐 주신 분이 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우리의 영혼을 사랑하신 분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는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셨다. 입으로의 사랑이 아니라, 삶으로 사랑을 보여주셨다. 그 사랑이 차고 넘친다.

/설동욱 목사 (예정교회) <국민일보/겨자씨>

 

▣ 끝없는 사랑

 

철강의 창업자인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의 일화입니다. 그가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같이 일하던 게으르고 불량기가 있는 바비라는 동료인 카네기가 열심히 일하는 것을 늘 못 마땅히 여겨 카네기에게 험한 말들을 퍼붓기도 하였습니다. 하루는 바비가 카네기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참다못한 카네기도 그와 함께 싸웠습니다. 얼마 후 게으른 바비는 공장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돈이 떨어진 바비는 카네기 집에 와서 카네기의 어머니를 속이고 돈을 훔쳤습니다. 이 사실을 안 카네기는 바비 집을 찾아갔습니다. 바비네 집은 누추했고 눈먼 어머니만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카네기에게 “회사 동료라구요? 바비는 불쌍한 아이입니다. 잘 도와주세요”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에 카네기는 바비를 돕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공장장을 찾아가 바비를 다시 써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장장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결국 카네기는 친구 바비를 위해 자신이 인정받고 일하던 공장에 사표를 냈습니다. 그리고 바비와 함께 일할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그 후 그들은 함께 취직하게 되었고 바비는 칭찬받는 직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며, 보호해 주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나의 가족, 친구, 주위의 모든 이들을 사랑하십시오.

* 기도: 주님! 주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게 하소서.

* 묵상: 지금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사랑과 기쁨

 

기쁨이 없는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슬픈 사랑"은 시의 언어가 될 수는 있을지라도 삶의 언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에는 꼭 기쁨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가볍고 즐겁고 기쁜 것입니다. 기쁨이 없는 사랑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육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일 것입니다. 이 사랑은 대개 자신을 남고 비교하게 만들고 종종 고통스러운 질투와 기쁨의 사라짐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에는 항상 기쁨이 수반됩니다. 사랑은 기쁨의 햇빛! 햇빛이 없는 곳에 아름다움이 빛나지 못하듯이 기쁨이 없는 곳에 사랑은 빛나지 못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을 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나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 아홉 가지가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 구절에서 사랑의 열매 바로 다음에 무엇이 옵니까? 바로 희락의 열매, 즉 기쁨의 열매입니다. 사랑과 기쁨은 떼어놓아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기쁨 없는 신앙생활은 죽은 것입니다. 기쁨 없는 찬송도 죽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쁨 없는 사랑도 죽은 것입니다. 인간은 깊은 본성 속에 죄성을 가지고 있기에 내 사랑으로 사랑할 때는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때 놀라운 기쁨이 생기게 됩니다. 그 사랑은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의 조건을 발견하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희생이 더 큰 고통일까요? 고생이 더 큰 고통일까요? 고통의 크기로 말한다면 희생이 고생보다 클 것입니다. 희생이 더 감수하기 쉬울까요? 고생이 더 감수하기 쉬울까요? 희생이 고생보다 감수하기 쉬움은 희생에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보십시오. 자녀를 위해 큰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어머니는 기뻐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을 하게 되면 공연히 밥맛도 생기게 되는 현상입니다. 항상 신경질적으로 가족을 대하던 어떤 청년에게 사랑하는 이성이 생기면 기뻐서 가족에게 기쁨으로 대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겠지요. 진정한 사랑을 해 보십시오. 진정 기쁨이 넘치는 즐거운 삶이 펼쳐질 것입니다.

/김양기 목사

 

▣ 하나님의 사랑

 

어느 어머니가 자녀를 키우면서 쓴 글이 있다. 아픈 아기를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잔잔하게 녹아 있는 글이다.

“엄마가 되고 나니 왜 그렇게 눈물이 많아지는지, 이제야 조금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아이가 자주 아픕니다. 이틀째 계속 열이 나고 기침을 하면서 토하고, 콧물도 계속 흘러나와서 코 밑이 헐었습니다. 그런 아기를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파서 끙끙거리는 아기를 돌보느라 밤새 잠을 설치고, 아침이면 피로를 느낄 겨를도 없이 우리 아기 숨 잘 쉬도록 코가 뚫리는 방법을 찾아봅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마음도 이렇겠지?’라고 생각해 봅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더 많이 알아 가는 나 자신을 보면서 주님께 감사하는 오늘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가장 많이 닮은 마음은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 땅 위에서 가장 큰 사랑을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우리 어머니들의 사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사랑보다 훨씬 더 크고 위대한 사랑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어머니가 자기가 낳은 자식을 혹여 잊을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결코 이 백성을 잊지 않으실 것이다.

「영혼의 혁명을 일으키시는 성령」/ 김지철

 


▣ 양치기의 사랑

 

한 양치기가 매일 연한 풀을 가지고 양 우리로 들어갔습니다. 한 주민이 너무나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들이나 산에서 풀을 뜯기지 않고 풀을 뜯어 먹이는 것이 이상했던 것입니다. 가보니 다리가 부러진 양을 안고 풀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다리가 왜 부러졌습니까?”라고 물으니 “제가 일부러 부러뜨렸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상해서 다시 물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당신처럼 양을 사랑하는 목자를 나는 본 적이 없는데요?” “이 양은 자꾸만 길을 잃어버립니다. 내가 가까이 가면 자꾸만 슬슬 도망치곤 합니다. 그래서 다리를 부러뜨려서 다른 곳으로 가지 못 하게 하고 매일 풀을 주면서 쓰다듬어 주고 사랑을 주고 있습니다. 제 목자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이렇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품을 떠나려고 애를 쓰지만 목자 되신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을 주고서라도 바른 길을 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참 목자이신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의 그 마음을 느끼며 사십시오.

* 기도: 주님, 목자가 되신 주님 품 안에서 늘 살게 하옵소서.

* 묵상: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잘 듣고 계십니까?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사랑고백

 

어떤 노인이 런던의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는데 유난히 눈에 띄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초상화였습니다. 그 그림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노인의 귀에 예수님의 이러한 질문이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도 나를 사랑하느냐?” 노인은 무릎을 꿇고서 흐느끼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도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곁에서 그 모습을 쳐다보던 어린 학생도 노인 곁에서 “저도 예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 어떤 부인도 그 초상화를 보면서 “저도 예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그들은 곧 한 음성으로 외쳤습니다. “저희 모두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할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고백은 일회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께 매일, 매순간 사랑한다는 고백을 드리며 사십시오.

* 기도: 주님,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품고 살게 하옵소서.

* 묵상: 사랑의 감격 속에서 살고 있습니까?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조건 없는 사랑

 

본문: 요일4: 10- 11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동물원은 누구에게나 기쁨과 즐거움을 줍니다. 그런데 동물보호라는 추세 때문에 동물들을 사들여 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황금원숭이, 이구아나 등 희귀동물 40여종 153마리를 기증받게 되었습니다. 기증자는 스리랑카 라자팍세 대통령입니다. 이런 기적 같은 쾌거는 지구촌 사랑나눔 김해성 목사, 한 사람의 공로로 된 것입니다.

김 목사는 1996년 스리랑카 노동자들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몰려오는 스리랑카 노동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2003년에는 한 노동자의 작은아버지 곧 야당 국회의원을 초청해 주었습니다. 김 목사는 그와 친분을 쌓고 2004년 쓰나미 재난 때에 한 달간 현지에서 진료봉사를 했고 한기총 도움을 받아 430만 달러 의료품과 생필품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그간 야당 의원은 국무총리, 또 지금의 라자팍세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라자팍세 대통령은 김 목사와 한국 국민에게 고마운 마음에서 그 희귀한 동물들을 기증한 것입니다. 이것이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푼 결과이자 기적인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 4- 7)

 

하나님의 사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귀한 참 사랑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1. 연약할 때 사랑입니다. 2. 경건치 않을 때 사랑입니다. 3. 죄인 되었을 때 사랑입니다. 4. 원수 되었을 때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할 아무런 조건이 없을 때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6- 8)

이렇듯 하나님이 우리에게 향하신 사랑은 아무런 조건 없이 값없이 주신 것이기에 그 사랑의 위대함은 이 세상 그 어떤 언어로도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주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계산적으로 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이일을 하면 복을 받고 하늘에 상급이 있기 때문에 하고 있지는 않는지...

고귀하신 주님의 사랑을 진정 깨달은 자라면 주를 위해 아까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우리도 주를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는 삶이 아닐까요!

 

* 기도: 오 사랑의 주님, 주님이 주신 사랑의 선물을 어느 누구에게든지 기꺼이 나누어 주게 하옵소서. 사랑의 모범을 보이신 예수님처럼 그렇게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조건 없는 크신 사랑을 마음속에 풍성히 채워주소서. 나의 이웃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빛의 사자

 

아버지의 사랑

 

본문 : 요 5: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미국 텍사스주에서 소방관을 하는 샤논 스톤 씨는 여섯 살 난 아들과 함께 야구장을 찾았습니다. 직업상 아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스톤 씨는 야구장에서 아들에게 홈런 볼을 잡아주고 싶었는데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텍사스의 외야수 조시 해밀턴 선수에게 이닝을 마무리하는 공을 잡게 되면 던져 달라고 미리 만나 부탁까지 해놓았습니다. 해밀턴은 2회 말을 마무리하는 공을 잡고는 약속대로 스톤 부자가 있는 쪽으로 공을 던졌는데 펜스와 관중석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공이 조금 모자라게 갔습니다. 그러나 스톤씨는 아들을 위해 그 공을 놓치지 않으려고 몸을 최대한 뻗었고 실수로 난간으로 추락하게 되며 목숨까지 잃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공 하나 때문에 일어난 미련한 일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행동에는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엄청난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2달이 지난 뒤 텍사스 야구팀 구단은 스톤 씨의 아들 쿠퍼를 시구자로 초청하는 선물을 주었고,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며 시구를 던졌습니다. 5만 명의 관중들은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로 쿠퍼를 응원했고, 해밀턴 선수는 쿠퍼에게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분이었는지 알길 바란다’며 존경의 마음을 아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어 하는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가하면 모든 인류를 구원하고 싶어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크나큰 하늘 아버지의 사랑에 감사하십시오.

* 기도: 주님! 구원이라는 가장 큰 선물을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게 하소서!

* 묵상: 하나님의 큰 사랑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하루를 사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파프누티우스의 사랑

 

어느 희극 배우를 개종시키겠다는 일념으로 그 배우의 노예로 팔려 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파프누티우스입니다. 그가 배우를 회개시키는 데는 무려 20년이 걸렸고, 회심한 배우는 회개하면서 그를 자유의 몸으로 놓아주었습니다. 그런데 파프누티우스는 아주 가난한 과부의 어려움을 덜어주려고 다시 자신을 노예로 팔아서 그 값을 그녀에게 전했습니다. 두 번째로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그는 겉옷 한 벌과 웃옷 한 벌, 그리고 성경을 받았습니다. 외투는 그가 맨 처음 만난 거지에게 주었고, 웃옷은 두 번째 만난 거지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그는 또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 가난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어찌 혼자서만 차지할 수 있는가? 그는 그것마저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그의 입에는 마른 빵과 물 이외에는 들어간 게 없었고, 성경 말씀 이외에는 나온 게 없었습니다.

주님의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주님의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됩니다. 그 가족의 수를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 즉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는 길은 사랑과 희생입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주님은 파프누티우스와 같은 사랑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소울 카페) 유재덕

 

진짜 사랑을 가려내는 테스트

 

중학교 2학년이 되기 직전 방학 때 나는 래리라는 친구를 사귄 적이 있다. 우리 동네에 새로 이사를 온 래리에게 우리 학교 미식축구 팀에 들라고 권했다. 다른 친구들도 사귈 수 있고, 체격 좋은 래리가 출전 선수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래리는 내 말대로 했다. 그 결과는 성공과 실패, 반반이었다. 성공은 그가 선수로 뽑힌 것이다. 실패는 그가 내 포지션을 가져갔다는 것이다. 나는 래리가 잘된 것을 기뻐하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그런데 경기 시즌이 시작된 지 몇 주 지난 어느 날, 래리는 모터사이클에서 떨어져 손가락 하나가 부러졌다. 나는 그가 우리집 현관에 붕대를 감은채 나타났던 순간을 기억한다. "이제부터는 네가 뛰어야 할 것 같아." 나는 래리의 아픔을 공감하려고 애썼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말은 쉬워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그 구절대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누군가를 향한 당신의 사랑의 깊이를 재 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다음 질문에 답해 보라. 그 사람이 실패할 때 당신은 어떤 느낌을 갖는가? 진정으로 슬퍼하는가, 아니면 속으로 기뻐하는가? 통곡하는 자와 함께 통곡하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할 때, 당신의 사랑은 진실하다.

「아주 특별한 사랑」/ 맥스 루케이도

 

▣ 사랑의 하나님 (찬송가 17장)

 

1. 사랑의 하나님 이곳에 계시니

주 영광이 성전에 가득히 넘치네

거룩한 주님앞에 죄인된 우리들

경건한 마음으로 찬양합니다.

2. 은혜의 예수님 우리 죄 인하여

속죄의 큰 사랑을 이루어 주셔서

율법의 멍에에서 해방해 주시니

복음의 자유 누림 감사합니다.

3. 위로의 성령님 우리의 마음에

늘 함께 계시오니 큰 힘이 됩니다

슬픔도 두려움도 넉넉히 이기니

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소서 아 멘

 

▣ 하나님 사랑은 (찬송가 299장, <통> 418장)

 

1. 하나님 사랑은 온전한 참사랑 내 맘에 부어 주시사 충만케 하소서

2. 내 주의 참사랑 햇빛과 같으니 그 사랑 내게 비추사 뜨겁게 하소서

3. 그 사랑 앞에는 풍파도 그치며 어두운 밤도 환하니 그 힘이 크도다

4. 하나님 사랑에 참자유 있으니 내 맘과 영에 채우사 새 힘을 주소서 아-멘

 

▣ 사랑에 관한 성경 말씀

 

0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13:34-35)

0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사로 사랑 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1)

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0 유월전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0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4:21)

0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엡5:1-2)

0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잠10:12)

0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엡4:2)

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0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4-35)

0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고전8:3)

0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0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0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3:18)

0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 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습3:17)

 

▣ 사랑에 관한 금언

 

0 사람이 건강을 잃고 명예를 잃는다는 것은 커다란 손실이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자비심을 잃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큰 손실이다. 어떠한 사상도 금전도, 음악도, 예술도 자비심이 없으면 남을 감화하지 못한다.(서양 격언)

0 미움은 항상 부족함에서 비롯된다.

0 인간의 운명은 대부분 그 사람이 주위에서 받는 사랑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인간의 가치는 얼마만큼 남에게서 사랑을 받느냐보다는 얼마만큼 그 가 그의 주위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있었느냐에 달려 있다.(에픽테투스)

0 사람은 사랑할 때 누구나 시인이 된다.

0 사랑하는 곳에 고생은 없다. 만일 고생이 있다고 한다면 그 고생이야말로 즐거움이다.

0 사랑은 인생의 소금이다.

0 사람이 건강을 잃고 명예를 잃는다는 것은 커다란 손실이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자비심을 잃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큰 손실이다. 어떠한 사상도 금전도, 음악도, 예술도 자비심이 없으면 남을 감화하지 못한다.(서양 격언)

0 불이 빛의 모체가 되는 것처럼 사랑은 항상 평화의 모체가 된다.(칼라일)

0 사랑의 비극이란 없다. 오히려 사랑이 없는 곳에 비극이 있다.(테스카)

0 불신자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믿음이요, 성도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사랑이다.(빛의 사자)

0 사랑은 제자를 낳는다. 사랑없는 이벤트성 전도는 종교인을 낳을 뿐이다.(브라이언 멕라렌)

0 하나님 사랑은 생명나무의 뿌리요, 이웃 사랑은 생명나무의 열매다.(월리엄 템플)

0 우리는 사랑의 빛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 땅에 보냄 받았다.(윌리엄 블레이크)

0 사랑은 그 안에 고귀함을 지니고 있다. 곧 남의 좋은 점을 인정하고 그를 소중히 여기고 높이 평가한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느끼게 한다. 사랑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지닌 폭력을 완화해 주고 불쾌한 것들을 멀리 함으로써 불행과 고통을 덜어준다. 이러한 자세는 이웃에게 참다운 삶을 살게 하고 고통스런 환경을 무난히 극복하게 하며, 그의 내적 상처와 피해를 생각하면서 그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에 사랑의 근원적인 특징이 드러난다.(마틴 루터)

0 아가페는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원리다. 이것은 정복이고, 승리며, 성취다.(윌리엄 바클레이 )

0 기독교의 핵심은 사랑이다. 참과 거짓, 이단괴 진리를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그 안에 사랑이 있는가 없는가 이다. 아무리 성경 말씀과 방언과 예언, 천사의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거짓이요, 이단이다.(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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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실천하며 살자 댓글[0]
사랑, 관심 (2012-02-17 오전 7:49:15) http://blog.somang.net/holylove/7189

사랑을 실천하며 살자

 

세상에서 가장 부자 가운데 하나였던 아리스토틀 오나시스는 17세에 그리스를 떠나 아르헨티나로 가서 21세에 벌써 백만장자가 되었고 그 후 더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냉정하고 단호한 사업가로 평판을 날렸고 오직 부를 쌓을 일과 부가 가져다 줄 수 있는 것만을 위하여 살았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밖에 없다. 돈 있는 사람이 왕족이고 귀족이다.” 그가 했던 말이다. 하지만 어느 날 사랑하는 아들 알렉산더가 비행기 사고로 죽자 그는 순식간에 늙기 시작해 2년 만에 죽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사랑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쳤다. 사랑을 실천할 부는 있었으나 사랑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결코 부요하지 않았던 존 빅맨과 일레인 빅맨 부부는 25년 넘는 세월을 남부 멕시코 인디언 콜 족 사이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나누며 베푸는 삶을 살았다. 그가 세운 콜 족의 교회는 1만3000명 이상으로 성장하였으며 그는 자신의 부인에게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며 죽음을 맞이하였다. “여보, 우리의 인생은 참으로 아름다웠지? 부족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로 살 수 있었으니까.”

/김상현 목사(인천 부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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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향한 사랑 댓글[0]
사랑, 관심 (2012-02-15 오후 11:16:16) http://blog.somang.net/holylove/7186

주님을 향한 사랑

 

영국의 한 시골 노인이 난생 처음 런던 관광을 왔습니다. 그는 그림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화실에 들러 이 그림 저 그림을 구경하다가 신앙이 독실한 대 화백이 필생의 걸작으로 그린 예수님의 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경건하고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한참 그림을 쳐다보다가 노인은 두 눈에서 두 줄기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못하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오! 주여,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관람객 중의 한 부인이 그 노인에게 가서 손목을 꽉잡으며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또 한 학생이 이 장면을 보고 “할아버지, 저도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의 이름 아래서 그들은 서로 통했고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삽시간에 칠 명의 사람들이 그 앞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주님을 향하는 뜨거움이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항상 있어야 됩니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사랑합니까? 당신의 삶 속에서 육체의 일보다 성령의 열매가 더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만일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자리를 빼앗아 버리면 우리는 그릇된 길에 서있는 것입니다. 참신앙이란 무엇일까요? 이는 하나님께 대한 애정, 사모, 앙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갈급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믿음이요, 관념과 지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온종일 주님을 바라는 생활을 합시다.

예수님이 부활한 뒤 제자들에게 세 번째 나타나셨습니다.(요21:1-3)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어부 출신의 제자들이 디베랴 바다에서 밤새 고기잡이를 했으나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주님없이 일한 제자들은 실패했습니다.(요21:4-8)

예수님이 나타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고기를 많이 얻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이와같이 주님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성도의 삶이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것은 예수님을 의지하고 사느냐, 예수님 없이 맥없이 사느냐 하는데 관건이 달려 있습니다.

또한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와 보니 몇가지 은혜의 사실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21장9절을 보면 고기를 잡은 제자들이 희희낙락해 육지에 올라와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가지 비유적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숯불입니다. 하나님은 불로 재를 사르는 역사를 하십니다. 실패한 제자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기 위해서는 성령의 불이 필요했습니다.

이사야가 죄를 회개할 때에 하나님은 숯불로 이사야의 입을 지지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제자들도 성공하려면 성령의 불을 받아야 했습니다. 숯불은 성령의 불로써 온전히 제물을 사르게 됩니다. 제물은 불타야 하나님에게 흠향돼 응답이 됩니다.

둘째, 떡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느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떡도 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더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떡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육신의 떡을 준비하시면서 영혼의 떡도 준비하셨습니다. 영혼의 떡이란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셋째, 물에서 잡아 불에 구워진 생선입니다. 전에는 세상 멋대로 살던 죄인이던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로 세상에서 거듭나고 성령의 불로 태워지면 그는 변하여 향기를 내는 아름다운 성도가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주님의 뜻대로 살게 되고 주님께 바쳐진 제물처럼 됩니다. 숯불에 구워진 떡과 생선을 먹은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으로부터 사명을 재확인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시몬 베드로를 찬찬히 보며 말씀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21:15)하시고 또 두 차례 더 물으셨습니다.(요21:17-18)

베드로는 근심어린 표정이 됩니다. 이처럼 오늘 예수님이 당신에게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확인 하신다면 당신은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베드로는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에 예수님께선 나를 따르라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쓰임받는 귀한 그릇이 되려면 먼저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을 떠나면 실패만 거듭됩니다. 그러나 주님과 같이 동행하는 생활을 하면 성공과 승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성령의 불에 태워져 변화된 성도가 되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쓰임받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에서 천년을 사느니 내 주와 함께 하루를 살겠네

육에 속하여 천년을 사느니 영에 이끌려 하루를 살겠네

주를 사모하는 자 복이 있나니 주께 부르짖는 자 복이 있나니

주께 의지하는 자 복이 있나니 항상 주를 찬송하라

세상에서 천년을 사느니 내 주와 함께 하루를 살겠네 (복음성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한 태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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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관심 (2012-02-15 오후 12:28:05) http://blog.somang.net/holylove/7178

안개 속에 피어나는 사랑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이면 이별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릅니다. 1년 동안 함께 하였던 친구들을 아침 안개 속에 떠나보내고 새로운 학년에 새로운 친구를 맞이한다는 것이 여린 가슴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안개는 아픔이 아니라 그리움으로 찾아왔습니다. 안개 속에 그동안 잊었던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안개는 그 시간의 끝을 너무나 쉽게 이어 준 것이었습니다. 2월의 아침 안개는 이제는 아픈 이별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2월의 안개는 언제나 봄의 기운과 함께 우리에게 새로운 만남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제 도심에서 만난 사랑하는 얼굴들이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함께 떠오릅니다. 그래서 아무리 아침 안개가 짙게 내렸다 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새로운 사랑의 계절을 기대하게 됩니다.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긴 겨울의 터널은 안개가 끝나는 지점에서 멈출 것입니다. 안개가 아무리 짙다 할지라도 주님과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다 보면 그 끝은 날마다 새롭고 환한 봄날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배성식 목사(용인 수지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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