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소망교회 카페 블로그 메일 SMS 문자보내기
방명록 검색
나눔의 사랑, 오스트리아의 벽안의 간호원 '할매' 댓글[0]
밖에서 본 우리나라 (2010-01-12 오후 8:30:03) http://blog.somang.net/bhkim79/5563
2010년 새해들어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이곳 중앙아시아의 텐샨산맥의 밑자락 동네에 반가운 편지가 왔다. 70년대에나 볼 수 있을 구식 타자기로 주소기 타자된 항공우편 봉투에 마리안네 슈퇴거(Marianne Stoeger)와 마가레트 피사렉(Margreth Pissarek)의 한글과 영어로 쓴 글은 성탄과 새해 인사가 들어있었다:

 “반가운 소식와(과) 아름다운 달역(달력) 감사합니다. 우리도 보고 싶습니다. 다시 만나겟(겠)지요?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가족들에게 넘치는 사랑과 은총을 듬뿍 베풀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마리안내 합장“
 “Very Dear 선생님, I was deeply touched by your lovely Christmas greetings and wishes - thank you so much. (How can you remember me by all that many people you have?) I wish you a happy blessed year! Thankfully Margerat P.(issarek)"
 
글 밑에는 동정녀 마리아와 착한 요셉이 마굿간의 말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의 성당 창문의 프레스코 그림 사진을 오려붙였다. 그 새해인사말이 쓰인 뒷면은 아마도 한국의 많은 친지들과 답지하는 성원에 답하는 한글 편지 인쇄물이었다.
"... 오늘 이 지면을 통해 저를 찾아주시어 좋은 시간 아름다운 만남을 함께한 사랑하는 분들께 다시한번 고마움을 전화고 싶습니다. .... 구유의 아기예수를 유심히 살펴주세요. 그 눈 속에 당신의 눈이, 귀는 바로 당신의 귀입니다. 그 입은 당신의 입이 될 것이며 그 손을 당신의 손으로 여기세요. 그 미소가 당신의 미소가 되면서 당신의 인사가 곧 아기예수의 인사입니다. .... 나눔의 사랑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타자된 그 글 밑에 머리위에 두손을 올려 사랑을 표현하거나 웃고 있는 한센환우들과 함께한 슈퇴거와 피사렉의 사진이 인쇄되어있다.
 
 ‘그리스도왕의 시녀회’ 소속 마리안네와 마가레트는 43년간 간호사로써 소록도 한센인들을 위해 헌신하다가 2005년 11월 본국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이 두 벽안(碧眼)의 자매를 만난 인연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이 두 자매에게 한국의 달력을 성탄카드와 함께 보냈고 2006년 봄과 여름에 인스부르크의 피사렉 자매 아파트에서 두 자매를 만났다.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유명한 인스부르크의 작은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벽에는 붓글씨로 쓴 ‘무욕(無慾)’ ‘무상(無常)’ ‘무심(無心)’이란 글이 붙어 있었다.
 
1959년과 1962년 이들 ‘벽안의 천사’들이 한국에 들어와 전라도에 머물다가 소록도에 들어온 때는 할매’가 된 이들이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에서 얼마간 봉사하던 20대의 꽃다운 나이였다. 6.25 전쟁의 아픔과 국민소득 백 불도 안되는 빈국 한국에, 그것도 하늘이 내린 병이라는 한센병(癩病)으로 사회에서 버림받은 한센병 환우를 돕기 위해 소록도를 찾아왔다.
 
당시 오스트리아도 독일에 합병되어 2차 대전의 폐배국으로서 재건에 힘쓰면서도 힘겹게 돕던 때였다. 한국의 6.25 전쟁의 참상을 외면할 수 없었던 카톨릭 교회단체가 의약품과 지원금 등을 보내던 때였다. 카톨릭 국가 오스트리아 재속회(secular institute) ‘그리스도왕의 시녀회’에서 파견된 이들 간호사들은 환우들을 돌보면서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고 한다. 그들의 헌신적인 치료 활동 및 봉사는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인정을 받았지만 소록도 사람들은 그들을 그리워하여 2006년 5월 두 ‘할매’가 생활하였던 공간을「마리안느 스퇴거 와 마가렛 피사렉의 집」으로 명명하였다. 
 
한국은 이제 보건이 발달하여 한센환우는 찾아보기 어렵고 한센인이었던 흔적 때문에 소록도에 머무는 그들을 더 이상 돌볼 힘도 필요도 없어 오스트리아로 돌아왔다고 할매들은 말했다.
 
오스트리아에 이들을 위해 부어진 기여금으로 연금을 받는 이들은 그 연금을 쪼개 그리고 그들에게 부쳐지는 한국에서 온 돈을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는 한센가족들의 아이들에게 보낸다고 했다. 43년여 동안 소록도에 산 그들은 쪽빛 바다와 유채꽃을 그리워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인스부르크가 오히려 감옥 같아 갑갑하며 한국의 남쪽 바다를 그리워한다고 했다.
 
43년을 오스트리아에서 떨어져 살던 그들은 친척들에게 나눔(독일어 “Teilung”)을 가르치고 개인위주가 된 오스트리아 젊은이들에게 나눔의 고마움을 말하고 있다고 했다. 물질만능의 서구사회에 옛 유럽의 봉사와 헌신의 가르침을 몸소 묵묵히 보여주고 있었다.
 
수녀님이라고 부르면 자기들은 간호원일 뿐이라고 손사레를 친다. 
겸손한 마가레트 피사렉 그리고 발가락이 휘고 병을 알고 있는 마리안네 슈퇴거 ‘할매’에 건강과 평강이 늘 함께하기를 기도해본다.  샬롬

                                                  2010.1.12 중앙아시아 비쉬켁에서

이 포스트를...
상식이 통하는 선진국 통하지 않는 후진국 댓글[0]
밖에서 본 우리나라 (2009-12-20 오후 12:13:06) http://blog.somang.net/bhkim79/5519
상식이 통하는 선진국 통하지 않는 후진국
 
오랜만에 종로 1가에 친구들을 만나러 갔는데 시내버스 환승 연결이 잘되어 약속시간보다 20여분 일찍 왔는데 약속장소 입구에 헌혈부족이 심각하다며  적십자 요원이 빗속에서 헌혈을 호소하고 있었다.
 
약속 장소 바로 옆이 적십자사 헌혈센터였고 남는 시간에 헌혈을 해보려고 신청서를 다 채워 채혈실에 들어갔는데 혹시 최근에 외국에 다녀온 적이 있냐는 확인 질문이 있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미안하지만 외국에서 온 사람은 신종바이러스(H1N1) 위험 때문에 헌혈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이에 대해 전 국민 중 불과 두 자리 숫자의 신종바이러스 확진환자 밖에  없는 ‘청정’ 나라에서 왔고 오히려 한국에 수많은 확진환자와 사망자 소식에 신종바이러스 걱정을 하면서 왔다고 설명했다.
 
채혈 간호사는 그런 나라에서 여행 온 재외국민이라도 보건부의 방침이고 적십자사로서 어찌할 수가 없다면서, ‘이러니 헌혈을 할 사람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상부부서의 획일적인 관료주의적 지침은 하부 부서의 재량을 인정하지 않는다. 언젠가 러시아에 근무할 때 하절기 거리에 물을 뿌리는 살수차가 비가 오는데도 물을 뿌리는 것을 보고, 왜 그런 것인지 물었더니 공산주의 시절에 위에서 시키는 것에 대해 하부조직은 판단이나 의견개진이 없었던 것이 굳어진 것이라고 한다.
 
헌혈이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도 신종바이러스에 철저한 대처는 필요하겠지만 이런 획일적인 행정은 곰씹어 볼만 한 것이 아닐까? 적어도 나라별로 상황을 파악하여 우리나라보다 못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제한하여야 하겠지만, 오히려 우리가 못한 상황에서 외국이라고 획일적으로 선을 그어 대처하는 신축성이 필요할것 같다. 그렇지 못한 획일적 관료주의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여러 분야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음하는 우리나라에서 탁상공론식의 획일적인 행정지침에 현지의 목소리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이를 시정해야 하는 것 아닌지 생각에 접하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면서 챙겨할 것이 무엇이며 그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자문하게도 되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경제, 정치, 사회 지표 등 여러 기준이 있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하라면, 상식이 통하면 선진 사회와 국가이라고 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이런 것은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는 것은 되어 있고, 상식적으로 이런 것은 안 되어야 한다면 안 되는 사회와 나라가 선진사회요 선진국가라고 할 수 있다.
 
후진국에서는 상식적으로 되어야 할 것은 되지 않고, 반면 되어서는 안 될 것은 되며, 이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이 길고 견강부회하는 논리가 뒤 따른다. 상식이 아닌 상식에서 동떨어진 이해관계에 따라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파적 이해일 수 도 있고 독재가의 개인적인 판단과 선호에 따른 것일 수 도 있는데 이를 정당화하려고 설명이 길어진다. 결국은 진실을 호도(糊塗)한다. 그래서 후진국에 가면 까다롭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이 전개된다.
 
반면 선진국은 법령이 아무리 복잡하게 발달해도 대체로 상식에서 어긋나지 않고 쉽게 이해된다. 상식대로 하면 대체로 맞고 상식적인 판단이 올바른 판단이 된다. 후진국에서는 엄청나게 복잡한 지침이 서로 어긋난 상태로 혼재하고 이를 해석하는 관료나 하급 공무원의 부패의 원인을 제공한다.
 
그런 잣대로 한국의 사회와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를 재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와 국가의 하는 일에 후진적인 면이 많이 드러난다. 국회나 지방의회에서 의결 방맹이를 지키거나 빼앗으려고 몸싸움하는 것이나 국회 의사당이나 회의실을 점거하거나 이를 깨부시는 폭력을 휘두르는 행태는 상식에서 볼 때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우리 국회 역사를 살펴보면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고 한다. 한밤중에 의사당을 옮겨가며 날치기 통과했던 것을 막기위한 고육지책이었고 한다면 ‘아 그래서 이렇게 되었구나’ 어렵게 이해는 하게 되나, 상식에 맞지는 않는다. 외국의 언론에는 이런 상식에서 벗어난 행태는 재미있는 가십성 보도거리가 된다. 한국의 국가 체면이 구겨지고 얼굴이 화끈해진다.
 
국력이나 국격은 나무통 짜는 데 나무길이라야 같고 틈새가 없어야 물을 통의 높이 만큼 담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어느 한 쪽의 나무가 짧게 통이 짜지면 물은 그 짧은 나무 높이 만큼만 담긴다. 담겨지기 시작하는 물은 그 통에서 물이 빠져나갈 틈이 없어야만 그 수준을 유지하면서 높아질 수 있다. 새로 들어오는 물 못지않게 일단 들어온 물의 수준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에 걸쳐 꾸준히 국력을 높여왔고 국격이 높아졌다. 그러나 모든 부서 모든 분야에서 국력을 높이고 수준을 높이는 노력이 어우러져야만 노력한만큼 국력이 높아지고 국격도 뒤따른다. 이런 의미에서 헌혈을 둘러 싼 보건부의 획일적인 행정, 불합리한 지침에 만감이 교차한다.
 
현장의 목소리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 어쩌면 국력을 높이는 통 짜는 노력에서 길이가 짧거나 수준이 맞지 않는 구석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닌지, 헌혈의 획일적인 지침은 이러한 면을 보여주는 빙산의 일각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적십자 채혈 간호사의 한숨이 뇌리에 맴돈다.    
                                                        2009.11월 비내리는 서울에서
이 포스트를...

처음페이지  이전페이지  1  다음페이지  마지막페이지

최근방문자
즐겨찾기
즐겨찾기가 없습니다.
최근댓글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