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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바라보는... 댓글[0]
기도방 (2010-04-03 오후 5:59:19) http://blog.somang.net/1234/5757



 

- 예수시대가 필요한 이유 -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역사가들은 한국교회의 현실이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만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한국교회가 세계적으로 이제껏 어느 나라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의 놀라운 성장과 발전을 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세계교회로부터 성장한 교회로는 인정을 받고 있으나 성숙한 교회로써는 아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도 일치하는 내용이다.


 

이 말은 또한 기독교 전래 1세기의 역사 속에서 사회에 끼친 공헌은 많지만 오늘의 현실은 제 2의 종교개혁, 즉 새로운 예수시대의 정립이 요청될 만큼 심각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이러한 점은 특히 젊은 그리스도인 된 모두가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이 시대를 바라보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의 의식 또한 보다 성숙되어져야 하는 것이 요청된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현실을 바라보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은 어떠한가를 논해 보자.


 

사회적 윤리적 영향력의 상실


 

먼저 사회적·윤리적 영향력을 상실해 가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지적하고자 한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Christianity Today」라는 잡지의 주필인 카넷트 칸서 박사는 교회의 윤리성 하락 추세에 대하여 동 잡지 1987년 8월호에서 “비판적인 시안이 없이 보는 사람의 눈에도 사람들이 더 이상 성경적인 가치관과 사회적 도덕을 전 세대보다 지키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에 대하여 염려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건전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교회가 사회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라고 논평하고 있다.


 

이러한 것이 사실이라면 사회의 윤리성 하락의 원인과 한국교회의 책임에 대해 단순히 넘겨버릴 수 없는 긴밀성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초기 한국교회가 사회적으로 미친 영향력은 대단했다. 물론 새로운 윤리관이 기존의 상충되는 윤리관을 뛰어넘는 것이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체 인구의 1%였던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전반적인 부분에까지 개혁하는 영향력이 오늘날에는 어떠한가를 물어보자. 전체 인구의 25%가 그리스도인으로 증가한 현 시점의 사회적·도덕적 성장과 윤리의식의 실현이 그만큼 기독교화 되었는가의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근거를 갖지 못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기독교의 중요한 덕목인 자유, 평등, 정의, 평화, 사랑의 질서가 그리스도인의 수적인 성장만큼 성숙했거나 혹은 성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현실에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서글픔을 가진다.


 

오늘날 서구 민주주의의 정신적인 뿌리는 기독교가 가르치는 정직, 책임, 봉사, 친절, 약속이행 등이 그 도덕적 기반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덕목들로 그 국민들은 그들의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지도자들에게 기대하며 또한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덕목에 어긋나는 지도자들은 여지없이, 냉정하게 거부하는 도덕적 기반을 또한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전통이 한국교회에서는 지난 100년 동안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지를 반성해야 한다.


 

예수시대의 도래를 기다리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한국교회가 담당해야 하는 사회적, 윤리적인 면을 직시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늘어나고 거기에 비례하여 교회당이 우뚝 서고 있는데도 사회의 기독교적 성장, 기독교적 윤리의 실천은 전혀 수반되지 못하고 있는 기이한 현실을 외면치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윤리문제가 가끔 비판을 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 토레이(한국명:대천덕) 성공회 신부가 요즘 한국 성직자들의 거짓말, 배금사상, 간음 등의 죄가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말하면서 성직자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유대가 바벨론에게 유린당한 것 같이 나라가 망한다는 경고의 소리를 발한 것을 기억나게 한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진노가 아직 임하지 않은 것은 한국교회의 끊이지 않는 기도 덕분인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한 자기개혁과 실천을 요구한다.


 

사랑의 공동체 모습이 퇴색


 

둘째로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교회를 지적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신앙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활을 본받아 신앙생활을 현실화하고 실천화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요즘의 현실은 교회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면서 봉사하는 것보다 교회 자체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강화함으로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 복음전파의 장애요소로 남는 경우가 흔히 있음을 보게 된다. 교회가 행하는 일들을 돌이켜 보면 솔직히 말해서 유대인들의 선민의식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여 왔음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너희와는 구별된 선민이라는 허구 속에 안주하고 있는 모습을 현대인의 교회가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초대교회가 보여준 아름다운 구제의 모습을 이야기하면서도 실상 교회 문을 열고나서면 수없이 부딪히는 소외된 계층의 눈물에는 인색한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교회의 참다운 사명을 수행하는 대신에 교인 숫자 불리기나 교회당의 지나친 치장 경쟁, 건축법에 어긋나는 교회당 건축, 교인쟁탈을 위한 분에 넘치는 버스 구입 등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교회 본연의 일들을 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젊은 그리스도인들의 경고를 들을 줄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개혁의 의지를 가꾸어야 한다. 또한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계급의식이나 잘못된 권위의식이 스며들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 백성의 단체이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다 같은 동류의식을 가져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분자들은 교회에서 주어지는 직분을 봉사직으로 인식할 때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레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사실 목사나 장로, 집사 등의 직분은 보다 더 낮아져서 섬기는데서 더 높아지고 칭찬을 받게 되는 직분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직분이 세상적인 수준으로 오해가 되어 보다 출세하고 명예직으로 높아지는 것으로 착각하여 다른 평교인들에게 군림하려는 자세를 가지는 잘못된 경향도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되는 안타까움이 있다. 이러한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깨우쳐야 할 측면들을 바탕으로 교회가 행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의 물음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답할 수밖에 없다.


 

즉 사도행전 2장 42절에서 47절까지의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본받으면서 ‘가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따르는 일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에 오라고 할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가야 하는 것도 깨우쳐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교회는 복 받기 위해 모인다는 것에서 한 차원 높여 이웃을 섬기기 위해 모인다는 것도 가르쳐야 한다.


 

기독교 문화관 수립의 미흡


 

셋째로 기독교 문화의 창달과 확산이라는 문화관 수립이 미흡함을 지적한다. 기독교 신앙은 단지 종교적인 의식의 차원에만 제한되지 않고 문화의 영역, 사회적 삶의 영역, 자연적 삶의 영역에까지 포괄하고 있다. 다른 삶의 영역은 나름대로의 역할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 문화적 영역에서의 삶은 그리스도인이 가진 종교적 감사와 은총에 대한 체험을 문화적인 상상력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인간 삶의 구체적인 활동인 문화를 기독교 신앙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문화를 하나님의 창조명령과 관련해서 이해하기 때문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 1장 28절)는 하나님의 창조명령은 곧 문화적인 명령인 것이다. 그래서 문화의 영역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적 삶 속에서 표현하는 모든 생활방식을 비롯하여 생활태도, 가치관, 역사의식, 직업관, 인간관계, 정치의식, 사회의식, 경제의식, 예술관, 문학관, 과학관 등을 내포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제 영역에 기독교 문화를 파종하기 위해 창조질서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한국의 무속신앙과 재래종교가 지니는 부정적 사고의식과 결합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수동적이고 무의식적인 토착화 현상을 탈피하여 보다 진취적이고 책임 있는 문화 창조의 삶을 이루어 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가진 세계관 자체가 세속적, 불교적, 유교적, 무속적인 것에서 탈피하여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정립시켜야 한다. 이 말은 원래 가진 세계관 위에 기독교적 세계관의 조각을 덧붙이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자기변혁에 의하여 완전히 모든 것을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재정립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기독교는 전파된 지역의 다양한 문화와 사회구조와 조우할 때마다 복음의 능력으로 그 구조 속에 내포된 비 복음적 불의의 요소를 비판하여 변혁시켜 왔다. 이러한 가운데 새로운 기독교 문화를 창출해 왔으며, 사회를 향한 문화적 비판기능과 아울러 교회가 가지는 역할을 수행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와 사회에서 기독교 문화의 창달과 확산을 위한 개혁 작업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시켜 나가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된다. 여기에 대한 답은 우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라는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부딪혀 오는 문화적 도전은 무시할 수 없다. 성경은 이에 대해 대결할 것을 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성의 낡은 의식으로 이러한 문화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오히려 부작용만 가중될 것이 분명하다. 생 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식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문화적 개혁 작업을 이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독교 문화를 발전시켜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문화적 승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을 이루는 방법과 방향은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성실하게 감당한다는 마음가짐뿐이다.


 

지압사들에게 사람의 몸을 눌러보면 어디가 가장 아픈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눌러보면 아픈 데는 저항하지요. 부드럽지 못하고 딱딱하게 응어리져 누를 때마다 누르는 압력에 완강히 저항하지요. 저항하는 곳은 틀림없이 고장 난 곳입니다.”


 

부패한 곳은 비판을 생리적으로 거부한다. 그러나 이 비판을 용납하지 못하면 교회는 썩어갈 수밖에 없으며, 비판이 쓰리고 아프더라도 참으로 건강한 교회건설을 위해 그 비판을 달갑게 받아야 한다. 물론 이 비판 또한 개혁을 위한 비판이어야 하며 그 기초는 성경에 의한 개혁이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반면에 비판을 하면 영웅이 되고 협조를 하면 어용이 되는 병들고 슬픈 사회적 풍조를 닮을 필요는 없다. 종국적으로는 비판을 하고 소리쳐 부르짖는 일보다 진실과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소리 없이 일어서는 일이 이 땅에 예수시대를 건설하는 가장 필요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명의 재인식


 

사실 문제가 많다고 해서 한국교회에 희망을 둘 수 없다고 속단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한국교회의 문제들을 스스로 기도하며 개혁해 나가려는 열의와 시도를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기성 지도자들이 젊은 그리스도인들의 지성을 북돋워 줄 필요가 있다. 사실 비판이 아프다고 비판하는 계층을 소외시키거나 가혹하게 대한다면 그 결과는 너무나 분명해진다.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지성이 빚어낸 창조적 실수를 관용해 주는 기성세대를 바라고 있다. 또한 그들의 실험적 미숙성을 나무라지 않고 격려하며 아껴주는 교회의 포용성을 바라고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가진 현실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하루 속히 안일한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교회는 스스로 서야 할 자리에 서서 시대를 분별하면서 교회 자체를 스스로 정화시키는 개혁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강한 정의감과 남달리 예민한 윤리적 감각으로 말씀에 입각한 판단과 함께 이 시대에 참으로 예수시대가 임하도록 갈구해야 한다.


 

우리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시행착오도 수없이 반복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 중에서도 참으로 예수시대의 도래를 위한 구상과 행동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져야 한다. 여기에다 우리의 생활원리인 하나님을 중심하며, 말씀(성경)을 중심하며, 교회를 중심하는 터전 위에서 오늘 우리 시대가 감당해야 하는 역사의 사명을 모든 그리스도인과 함께 재인식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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