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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사랑합니다. ~ 댓글[0]
기도방 (2009-02-02 오후 11:13:17) http://blog.somang.net/1234/4371

인생을 겉으로 보면
아름다울수 있겠지만,
속속들이 헤집어 들여다 보면
호수에 떠있는 백조와 같이
인생은, 버겁고 어렵습니다.

이전에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입니다.



미성숙이란,
자신만만한 마음입니다.

성숙이란,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몸으로 알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고싶을 정도로
삶이 힘든 이유는,
죽고 싶다고
죽을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는 것과 죽는 일조차,
내 맘대로 안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내가 태어나고 싶다고
태어난 사람도 없고,

태어나기 싫다고,
안 태어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의 목숨과 삶은,
나의 선택에 의존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그것을 소명이라 부릅니다.

소명을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절대절명의 순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순간이 오면 절망외에는,
떠오르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러나 절망이 떠오를 정도면,
덜 힘든 것입니다.

정말 힘든 순간은

절망이라는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는 상황으로
몰아 치는 순간입니다.

욥의 삶이 그러했고,
요셉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상식으로도 동의 할수 없는 삶이었고,
이해되지 않는...
끝을 모르는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소명에 대하여,
너무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요.

우리의 머리로 이해되면,
그일은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소명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알수도 이해되지도 않는것이
성경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이,
다 이해되고 동의된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닌,
훌륭한 사람중에 한분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해되지 않는
절대절명의 순간을,
헤일수 없이 보냅니다.

희망이라는 말조차 생각나지 않는,
터널을 통과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중에 반드시 알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는
허리가 꺽이는 형벌과 같은
고통속에 숨겨둔...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훌륭한 믿음의 사람과 우리가 다른 것은,
그분들의 고난이 경한것이 아니라

그분들은 하나같이
고난속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강하게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 한나를 보십시요.

한나는 무자했습니다.

그 당시 무자함은
차라리 죽는 것이,
사는것 보다 나을 정도의
고난의 무게였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무자함을 가지고,
숙명으로 생각하거나
자포자기 하지 아니하고

무자함이라는 고난을,

하나님이 보내오신 초청장으로 알고

하나님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결국 한나는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응답으로
얻기전에,

기도라는 통로를 통하여,

하나님의 깊은 능력과 터치가 일어남을
경험하게 됩니다.


응답보다 우선순위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이 사실을 통하여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말씀은,

모든 무자함(고난,시련,연단..)은,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과

무자함을 통하여
하나님은 나에게 원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실수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거나
심심하셔서 힘들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식언치 않으시며,
미세한 오차도 허락지 않으십니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들풀 한 포기가 피고 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하심과 목적이 있다는
뜻입니다.



한나는,
무자함이라는 숙명론적인 고난을,
실타래를 풀어내듯
하나님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욥도 동일합니다.
요셉도 그렇구요.


그 능력의 깊은 바다..  성령의 터치,
깊은 은혜의 단계로 진입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은
환경과조건을 초월하는,
희안한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은혜의 경지로 들어가 보면,


아들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괜찮고
결혼을 해도 괜찮고, 안 해도 괜찮고
직장이 있어도 괜찮고, 없어도 괜찮고
가난해도 괜찮고, 부요해도 감사하고

오래 살아도 좋고,
일찍 죽어 주 앞에 가도 괜찮고
아파도 괜찮고, 건강해도 좋고....

(알 사람이 없도다!)
이 수준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더 이상 세속적인 편견에 시달려,
비교가난과 열등감으로
그늘지지 않을수 있습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가려 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안가려고 버팅기는 것이지요.



절대절명의 순간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절대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응급실에 실려가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먼저 생각나고


다급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위기의 순간에도,
사람에게 전화하기 전에

하나님앞에 먼저, 기도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여호사밧 왕의 믿음입니다.


절대절망은
우리를 강력하게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장입니다.


나를 세우시려고 작정하신
하나님의 불타는 소원이십니다.

모든 고난의 초점은
나를 겨낭하고 있음을,
우리는 우매하여
나중에야 깨닫습니다.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은
공산권에 성경을 배포하다가,
루마니아 비밀 경찰에게 붙잡혀
14년동안이나
독방에서 고초를 겪습니다.


그러나 범브란트 목사님은,
무서운 고문과 지독한 독방에서
14년을 하루같이 보낼수 있었던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황홀할 정도의 만남..

성령의 강력한 터치(만지심)로 임재하는,
주체할수 없는 기쁨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독방에서
석방을 시켜 주실수도 있지만
독방에서도 궁궐같은 삶을 사는 힘을,
더 하시기도 하십니다.



욥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알아 가십시요.


요셉의 억울함을 통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십시요.


요나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과 상관없던 지난 삶을 토해 내십시요.



한나의 무자함 같은 고난을 통해,
통절함과 애절함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십시요.



그리고 하나님과 마음이 통할때까지
머무르십시요.



내가 그분을 만지든지,
그분이 나를 만지실때까지 말입니다.



죽을래야 죽을수도 없고,
피할래야 피할수도 없는 어려운 인생을
하나님으로 풀어야합니다.


하나님으로 풀지 않으면,
궁극적인 해결도 안되지만
우리의 갈등과 갈증은, 지속될 것입니다.



한나의 고통을
남편인 엘가나가 위로하지 못했듯이

우리의 아픔과 고통은
세상사람, 전부가 달려 들어 위로하여도
위로되지 못합니다.



한나의 고통과 아픔은,
결국 하늘 아버지 앞에 나아가
통절한 마음으로 기도의 자리를
눈물로 적실때
마침내 멈추게 됩니다.


고난을 통한 기도의 양을 채우십시요.


절대절명의 순간을 통한
눈물의 양을 채우십시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려야,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주 밖에는 누가 우리를 위로하며,
주 밖에는 무엇으로 소망을 삼겠습니까?


절망이라는 말도 생각나지 않을 순간에도,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그때도 우리는
절대믿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절대절명은,
절대믿음으로 만이,
절대소망으로, 변할수있기 때문입니다.




절대소망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숭고한소명임을
붙잡습니다.
소망중보기도회에  겸손히 감사함으로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이 포스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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