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24 오전 8:24:08)http://blog.somang.net/1234/4519
기독넷 발췌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예배하는 것이다
1부]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예배하는 것이다
1장 먼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예배하라
예배 행위
예배는 사랑하는 대상과의 연합을 추구한다. (하나님.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마음과 우리가 숭모하는 하나님 사이의 간격을 메우려는 적극적인 행위가 최고의 예배이다.
예배의 대상
예배의 대상은 물론 하나님이시다. 니케아 신경은 우리가 한 하나님, 즉 천지를 지으신 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지으신 분, 전능하신 아버지를 믿는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바로 이런 분을 예배하는 것이다.
"저는 너의 주시니 너는 저를 경배할지어다"(시45:11)
전폭적인 하나님 경배
예배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전 인격을 다 바쳐 예배하지 않으면 우리의 예배는 온전한 예배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모든 정성을 다해 최대한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예배 아닌 것을 예배로 착각하는 사람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위로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님을 지적하여 그들을 착각에서 구출해주어야 한다.
마술적 힘에 대한 유혹
신앙에서 마술적 힘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안에서 강력하게 역사하려면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교회에 가서 예배한다.
그러나 주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한 후 그 다음 주일이 돌아오기까지 6일 동안 계속해서 우리의 예배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주일에 드리는 예배는 참예배가 아니다. 우리 안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까지 우리는 쉬어서는 안 된다.
나의 생각까지 하나님의 성소가 되도록 당신의 생각이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성소가 되도록 하라. 삶의 어떤 부분에서도 그분의 영광을 해치지 않도록 노력하라. 모든 시간과 장소를 하나님께 넘겨드려라. 그러면 당신은 그분을 올바르게 예배할 것이고, 그분은 그 예배를 받으실 것이다.
2장 우리는 예배드리기 위해 구원받았다
인간의 존재 이유
하나님의 창조의 첫째 목적은 도덕적 존재를 영적으로, 또한 지적으로 준비시켜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있었다.
우리는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구원받았다. 그리스도께서 과거에서 하신 모든 것, 그리고 지금 하고 계신 모든 것은 바로 이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이다.
예배를 사모하는 자들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드리는 것이 내 안에 전혀 없어야 비로소 나의 예배가 그분을 온전히 기쁘게 해드릴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에는 부족한 것이 거의 없다. 그런데 문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없는 것은 우리 자신을 참되고 거룩하게 드리려는 결단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즉 하나님을 위한 예배이다.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려고 하는 자는 무엇보다 우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전심으로 참예배를 드린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 예배를 지겨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이다! 참예배를 위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성령님이 찾아오시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찾아오셔서 예배의 영을 허락하셔야 우리가 참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보다 예배가 먼저이다.
하나님은 일꾼을 갖기보다 예배자를 갖기 원하신다. 기도하지 않고 예배드리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를 운영하고 이끌고 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모순이다.
이렇게 예배하라.
우리가 월요일에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면 우리는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토요일에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우리는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존중하고 진실함과 정직함으로 예배드려야 한다.
마음속의 제단
영적 세계의 제단과 현실 속에서의 예배를 완벽하게 조화시키려면 바로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제단을 세워야 한다.
지식, 경이, 사랑 우리가 예배하려는 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 없이는 그분이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예배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경험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배를 드린다. 그분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배자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교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그들이 성숙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전하는 복음이 영혼을 구원할지는 몰라도, 성숙한 예배자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갈망과 하나님의 갈망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 하나님도 갈망을 가지고 계신다. 그 갈망이란 하나님을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높이겠다고 영원히 결단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갈망이다.
[2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라
3장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도 있다
참예배가 아닌 예배
성령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참예배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참예배를 드리려면 우리 안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이 활동하셔야 한다.
가인에게서 배우는 교훈 구약에서 하나님은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는데, 가인의 예배에는 세 가지 중대한 잘못이 있었다.
첫째, 가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했다. 둘째, 가인은 그가 하나님과 참된 관계를 맺지 못했으면서도 그런 관계를 맺고 있다고 착각했다. 셋째, 가인은 죄의 심각성을 모르고 그것을 아주 가볍게 여겼다.
공허한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몹시 공허하고 무의미하다. 성령님의 능력이 함께하지 않는다. 참예배가 되려면 성령님과 진리가 있어야 한다. 예배는 성령님 안에서, 성령님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준엄한 메시지
성령님은 오직 예배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일보다 예배가 앞서는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순서이다.
4장 영혼의 눈으로 영광의 하나님을 바라보라
영적인 집중력
영적인 집중력을 기르도록 스스로 훈련하라. 나는 우선 한 달만이라도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조용히 말씀을 묵상해볼 것을 강력히 권한다.
대가를 지불하는 영성
성공하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수많은 일들을 뿌리치고 오직 하나님의 일에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을 바라보라!
우리 영혼의 눈이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의 눈길이 우리의 눈길과 마주칠 때 바로 여기 이 땅에서 천국이 시작된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우리 육신의 눈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세상의 일들을 바라보는 동안에도 우리 영혼의 눈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음성은 계속 들려온다. 그 음성은 우리의 대답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너무 바쁘거나 너무 완고하여 그 음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주의 깊게 듣는 자는 하늘의 음성을 들을 것이다.
5장 하나님의 황홀한 임재를 체험하라
하나님 임재의 중요성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해야 한다. 우리가 그분의 면전에서 이렇게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예배의 시작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역사의 교훈
만일 성도들과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했다면 그들의 변화된 삶을 설명할 수 있을 만한 다른 근거는 없다. 그들이 그토록 큰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의식적으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일했고, 자신에게 임하신 하나님께 기도드린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성막이 가르쳐주는 영적 진리
구약에 나오는 성막은 죄악의 황무지를 떠나 하나님의 면전으로 가는 영혼의 내적 여행을 잘 설명해주는 좋은 예가 된다.
하나님께 대한 집중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되시며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을 맛보고, 내적으로 느끼고, 그분의 말씀을 듣기 시작할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보편적 임재는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유행하는 기독교는 그분의 임재를 단지 이론으로만 알고 있다. 현제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영적 지위가 하나님의 면전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을 위로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 지위에 안주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 개인적인 체험의 부재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나님의 임재 체험의 부족
대체로 경건한 두려움, 경외심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없다는 것이 오늘날의 문제이다.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은 아름답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배요 사랑이며 경외이기 때문이다.
6장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라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분은 이기적이거나 신경질적이거나 변덕스럽지 않으신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 그분은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을 즉시 알아주신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돌들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일하는 사람보다 예배하는 사람을 먼저 찾으신다. 거룩하고 주권적인 하나님께서 능력은 있으나 도덕적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일꾼으로 사용하실 만큼 일꾼 기근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필요하다면 돌들도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며, 수많은 천사들이 몰려와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일할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가 기쁨으로 예배하는 자들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죄는 우리를 다른 모든 것들로 이끌었으되, 우리를 예배로 이끌지는 않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로 인해 우리는 중생의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과 다시금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7장 하나님의 능력을 간절히 사모하라
텔레비전을 꺼라
다른 것들을 제쳐두고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만을 추구하라. 텔레비전을 꺼라. 그 대신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기뻐하라.
부흥은 자정을 넘어서 찾아온다
다른 것들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고 오직 영적인 것만 추구할 만큼 영적 갈망이 크지만 때때로 그 갈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생겨난다.
자신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거나 기도의 응답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면 그는 늦도록 계속 기도한다. 그의 간절함은 그를 한밤중에도 교회로 오게 만든다. 부흥은 자정이 넘어서 찾아온다는 말은 그를 두고 하는 말인 듯 하다.
8장 모든 것을 다 바쳐 하나님을 숭모하라
예배와 경외심
경외심은 아름다운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경외심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모든 교인들이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가식적인 음성으로 말한다고 해서 경외심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예배의 신비적 요소
각 사람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하나님의 신비한 활동과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은 너무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제3자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한다.
예배보다 낭만에 빠진 사람들
복음주의적인 교회 어디서나 음란한 이 시대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집회에서 부르는 많은 곡에서도 성령님의 감화보다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더욱더 지배적이다. 그리스도를 모신다고는 하지만 그분에게 나타내는 친밀감은 그분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부적절한 것일 경우가 많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단절되어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분에게 순종하거나 그분을 사랑하지 않게 되었고, 죄책감과 두려움 때문에 최대한 그분의 면전에서 멀리 도망했다.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사모하는 사람들
하늘나라를 소유한 복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거부하고 마음속 소유욕을 근절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다. 이처럼 복되게 가난한 자들은 더 이상 물질의 노예가 아니다. 그 방법은 싸움이 아니라 포기였다. 모든 소유욕에서 자유하게 되었으나 역설적으로 그들은 모든 것을 소유한다. 하늘나라가 바로 그들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복의 필요성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자복해야 할 내용은 이런 것이다. 그들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며, 세상적이며, 낮은 도덕적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영적으로 냉랭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숭모하라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감탄하고 그분을 두려워하고 숭모해야 한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그렇게 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구별하여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하는 일을 그다지 어렵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진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앞에서 경이감에 사로잡힌 채 무릎을 꿇을 수 없다면 우리는 교회에서 하듯이 의무적으로 경의를 표할 수는 있겠으나 마음에서 우러나와 그분을 예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교회 예배
교회에서 양육된 많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믿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현재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숭모를 지겨워한다면 죽음 이후에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불타는 신자가 되라
신자들을 불타는 떨기나무가 되라는 부름을 받는다. 그들은 우리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하나님의 불을 마음속에 간직한 사람, 하나님을 만나는 위대한 체험을 통해 정화된 사람들이 되라는 부름을 받는다.
9장 참된 예배의 부흥을 주시는 성령을 간구하라
인격체이신 하나님
그분은 인격체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분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본래 한 인격체는 다른 인격체들을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격체 서로간의 온전한 앎(인식)이란 단 한 번의 만남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상대방의 가능성을 전부 알려면 오랜 기간 동안 사랑의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우리가 그분을 알기 위해 보내는 시간을 결코 낭비로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늘 묵상하고 기도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오직 성령의 능력!
지금 이 시점에서 교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성령님의 능력이다. 더 많은 교육, 더 잘 짜여진 조직, 더 세련된 장비, 더 발전된 방법, 이런 것들로는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능력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성령님이 사람들에게 임하셔서 그들의 시선이 그들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아들에게로 바뀌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이 부흥이다. 부흥이 일어날 때 흔히 뒤따르는 현상은 예배의 열기가 고조된다는 것이다. 예배를 사모하는 복된 현상은 영적으로 새롭게 될 때 일어난다.
10장 나를 찬양하지 말고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송가 작가와 함께 드리는 예배
찬송가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영혼이 계시된 진리, 또는 성취된 사실을 보고 반응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하나님을 말씀하시고, 찬송가는 그분의 음성에 대한 음악적 반향이다. 찬송가 작가들은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분의 높으심과 크심과 거룩하심에 경이감을 느낄 증도 그분에 대해 감탄했기 때문에 그것을 찬송으로 표현했다. 이런 찬송가는 부르거나 그 가사를 음미하는 것은, 은사를 부여받은 위대한 신앙인이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예배에 동참하는 일이다.
찬송의 타락
복음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공적 집회에서 그들의 기쁨을 표현하는 데는 과거에는, 성경책과 찬송가책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이교적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수많은 소도구와 장치가 동원되고 있다.
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노래하는 찬송가를 부르지 않고,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하는 복음성가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우리의 찬양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고 누군가가 지적했다. 찬송가는 부르며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했던 우리는 오직 우리 자신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잘못된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교리는 찬송에 영향을 끼친다
찬송이 아름다운 이유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찬송을 부르는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을 발견했다는 것을 찬송 중에 깨닫는다. 이 어두운 시대에 우리의 선생들은 우리가 처음에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그 다음으로는 할 것이 없다고 가르쳤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에 나타나시기를 더 이상 갈망하지 않게 되었다. 그죠? 그렇죠? 제 아무리 정신을 똑바로 차려도 주님의 말씀의 임제가 없으면 (주님의 성령) .....얼마나 안타까워 어쩔줄 모르겠어요? 주님 사모합니다.주님 경배합니다.(롬11:25~36) (딤후 4:9~13) 오늘날의 전도자는 참 외로울것 같아요. 다원화하는 세대에....샬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