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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행동이 일치되게 살자 댓글[0]
실천, 행함 (2012-08-20 오전 8:38:36) http://blog.somang.net/holylove/7441

말과 행동이 일치되게 살자

 

본문: 요한일서: 3: 17- 18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대문호 톨스토이의 글을 읽은 한 시골 청년이 너무나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농민과 노동자를 위해 쓴 사회 개량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청년은 그를 만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멀리서부터 그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드디어 톨스토이의 집 대문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몇 만 평은 됨직한 넓은 정원과 화려한 주택이었습니다. 청년은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찌 농민과 노동자의 벗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말로만 사회 개조를 부르짖는 사회 사상가가 아닌가.’ 그는 톨스토이를 만나자 격앙된 어조로 솔직하게 그를 비판했습니다. 이 양심적인 비판 앞에 톨스토이의 얼굴은 붉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토록 유창하던 그의 말문이 꽉 막혔음은 물론입니다.

지도자의 모범은 언제나 절실합니다. 지도자일수록 솔선수범하여 절제하고 청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국민으로부터 더 이상 지지를 얻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절제와 청렴에 그 행위의 기틀을 다져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일수록 절제하고 청렴해야 합니다. 프로테스탄트 정신은 바로 여기에 그 바탕이 있습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일수록, 그리스도인일수록 할 일은 많습니다. 말과 행동에서 모범을 보이는 일이요, 모든 행동에 절제를 보이는 일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된다면 톨스토이처럼 얼굴이 빨개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1:22)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단지 입술로만’ 이란 글을 소개합니다.

 

너희는 나를 주인이라 부르면서도 나의 말에 순종치 않았고,

너희는 나를 빛이라 부르면서도 나를 찾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길이라 부르면서도 그대로 걷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생명이라 부르면서도 나를 소망하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지혜라 부르면서도 나를 따르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애인이라 부르면서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부하다고 하면서도 내게 요구하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영원하다고 하면서도 나를 구하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자비롭다고 하면서도 나를 신뢰하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고귀하다고 하면서도 내게 예배하지 않았다.

 

마가복음3장 14~15절을 보면,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택하신 후 바로 그들을 훈련시키셨는데 그것은 ‘자기와 함께 있는’ 훈련이었습니다. 최대의 훈련은 삶에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따로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제자 훈련을 하셨습니다. 참된 제자 훈련은 자기 생활을 공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원론적 신앙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거룩하고 의롭게 살고, 세상에 나가서는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다 공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말과 행동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순종과 희생과 헌신의 삶을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같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4:9)

 

며칠 전 어느 집사님댁에 심방을 갔다가 집사님이 손에 쥐어주는 사과 하나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오니 막내아들이 사과를 보곤 달라고 해 주었습니다. 아들이 사과를 하도 먹음직스럽게 먹길래 한 입만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과를 누가 준거니?’ 라면서 아무리 구슬려도 주지 않았습니다. 괘씸한 생각과 함께 욕심 많은 자식에게 뭔가 교육을 해야 할 것 같아 과일가게에 가서 먹음직한 사과를 사 들고 와서 아이가 보는 앞에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제 손에 들고 있던 사과를 내팽개치고는 내 손의 사과를 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떼를 쓰는 아이에게 욕심을 부리면 안된다는 걸 정성껏 설명했습니다. 그 일을 겪고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다고 할 때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순순히 내줄 수 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 순간 아들의 모습이 바로 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는 좋지만 그리스도교 신자는 싫다’

인도의 위대한 지도자 간디(1869- 1948)가 교회에서 쫓겨나면서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온갖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면서 어려운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간디는 유연히 성경을 읽고 참으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그의 일생을 바치겠다는 결심을 하고 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에 지나지 않는 미개한 나라였고, 인종차별이 심한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결심은 빛을 볼 수 없었습니다. 교회를 찾아다니며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여러 차례 청했지만 어느 교회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간디의 이 날카로운 비판은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도 유효한 말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말과 행동이 일치 않아서 주님과 교회에 해(害)를 끼칩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외식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스펄전 목사는 위선적 신앙을 빗대어 ‘비 없는 구름과 같고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이 바짝 말라버린 개울과도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 ‘그것은 마치 연극배우가 왕의 복장으로 분장하여 무대 위를 늠름히 거닐다가 연극이 끝난 후에는 평복으로 갈아입고 가난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하여 설교하였습니다. 위선자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선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뿐더러 명예를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존경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외양은 마치 미려한 양장본으로 되어 있으나 내용은 형편없는 책들처럼, 내적인 면을 소홀히 하고 외적인 면에 더욱 관심을 쏟는 사람입니다. ‘하루살이는 걸러서 먹고 낙타는 삼킨다’는 중동의 속담처럼, 위선자의 특성은 큰일을 등한히 하고 사소한 일에 구애된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 위선자의 특징은, 남에 대해서는 신랄할 만큼 비판적이고 자신에 대해서는 지나치리 만큼 관대하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금욕적 생활과 경건한 외모로 신앙의 빛 좋은 허울을 쓰고 있어도 결코 속일 수 없는 것이 자신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마음속에서 발아하는 위선의 싹을 애초부터 뽑아버리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위선적인 신앙이야말로 복음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거짓된 삶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7:21)

 

한 시인이 사랑의 노래를 지었는데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노래를 많이 베껴서 친구들과 아는 사람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가 한 번밖에 보지 못했던 산너머에 사는 젊은 여자에게도 보냈습니다. 이틀이 지나서 그 여자가 사람을 통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믿어 주세요, 저는 당신이 제게 써 보내 주신 사랑의 노래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지금 곧 제 부모님을 뵈러 와 주세요. 그러면 저희는 약혼식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러자 시인은 이렇게 답장을 했습니다.

‘아가씨, 그것은 시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고, 모든 사람에게 불려지는 사랑의 노래일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그에게 편지를 다시 써서 보내왔습니다.

‘말로만 하는 위선자! 거짓말쟁이! 당신 때문에 나는 오늘부터 죽는 날까지 모든 시인을 저주할 거예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6∼27)

 

몇 년 전 한 기독교계 잡지에서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비 기독교인들의 눈에 비친 기독교인의 모습은 ‘교회에선 어떤지 몰라도 이기적인 경우가 많았다’라는 응답에 31.4%의 비율이 나왔고, ‘생활에 성실하기는 하나 인격적으로는 문제가 있었다’라는 질문에 응한 사람의 비율은 22.9%였습니다. 그리고 ‘비 기독교인들보다 위선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보였다’라는 질문에 18.6 %의 응답률을 나타냈으며 ‘모범적인 생활태도와 인격이 느껴져 사귀고 싶었다’고 응답한 사람은 17.1%에 불과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말과 행동의 일치가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들도 말과 행동의 일치 즉 사랑의 실천으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신 주님,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마음속으로만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도록 도와주소서.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게 하시고 주께서 말씀하시고 실천하신 사랑의 본을 따르게 하소서. 주의 본을 따르는 길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인내를 허락하소서. 세상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몸으로 실천함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하는 자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이웃에게 행함과 진실함의 참사랑을 실천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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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의 믿음 댓글[0]
실천, 행함 (2012-03-26 오전 6:50:02) http://blog.somang.net/holylove/7307
실천의 믿음
 
본문 : 시 15: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모태신앙으로 시작해 믿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평생을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하면서도 주일은 꼭 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날 자신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는 “다음 주에는 나를 취재하러 오지 말고 꼭 각자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십시오.”라고 권유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현직에 있을 때부터 퇴임 이후까지 특히나 인권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이것은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그의 신앙관에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카터는 현직 시절에도 중동의 평화와 세계의 인권을 위해 많은 일을 했지만, 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해외에서 터진 각종 테러들로 인해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평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퇴임 이후에도 세계를 돌아다니며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어디든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아무 조건 없이 찾아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습니다. 그 모범적인 모습과 헌신에 미국인들은 다시 열렬한 지지를 보냈고, 세계도 그 공로를 인정해 2002년도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도 아니며 ‘오직 세계를 섬기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카터 전 대통령을 대통령이 아닌 ‘행동하는 신앙인’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의심과 비방을 불식시킬 수 있는 것은 실천하는 믿음뿐입니다. 말씀을 실천함으로 진리를 세상에 알리십시오.
* 기도: 주님!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 묵상: 성경이 진리임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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