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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크리스천 댓글[0]
제자, 군사. 성도 (2013-07-22 오전 11:13:53) http://blog.somang.net/holylove/7903
진짜 크리스천
 

본문: 누가복음 14: 26- 27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1000만이 넘는 기독교인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각 종 비리사건이 있을 때 마다 항상 기독교인이 연루되어 왔습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옷 로비 사건이 그러하였고 얼마 전에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던 타이거풀스 비리사건 등에서 그러하였습니다.
왜 일까요? 바닷물은 3%의 소금으로 인하여 썩지 않고 유지되는데 우리사회의 25%가 기독교인인데 이 사회는 왜 보다 건강하여 지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4명중 1명이 기독교인이지만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짜 크리스천은 어떠해야 합니까?

 
1. 진짜 크리스천은 하나님을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여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22:37, 38)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합니다.(딤후3:1- 5)
그런데 진짜 크리스천의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우선하고 사랑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재물이 소중하지만 하나님과 재물은 함께 섬길 수가 없습니다.(눅16:13) 자기 사업이나 물질보다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가족과 가정이 소중하지만 하나님보다 먼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딤후2:4, 마10:37).

 
2. 하나님 말씀을 많이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3장 20절에 보면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에서 알 수 있듯이 성경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모습을, 마음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부딪칩니다. 그럴 때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말씀에 합당한 것인지를 알려면 성경 말씀을 모르고서는 결코 하나님의 비전과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왜 대순진리회나 각종 이단들이 산속에서 모든 재산을 버리고 찬송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뭔가 임하긴 임했나보다 생각이 드는데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바로 알았다면 그렇게 이단에 미혹될 수 없습니다. 말씀을 모르기에 이교도들이 되고 이단에 빠지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고 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 12- 17)

 
3. 진짜 크리스천은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국이 낳은 청교도 신앙가 존 번연 목사님이 국왕의 명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혔던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옥사장이 번연 목사님께 윗사람 모르게 옥문을 열어주면서 집에 가셔서 사모님과 식구들을 잠깐 뵙고 오시라고 하였습니다. 얼마쯤 가다가 목사님이 되돌아오기에 왜 오셨냐고 묻는 옥사장에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호의는 고마우나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니라서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에 이 나라 국왕이 직접 감옥을 시찰하면서 존 번연 목사님을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이때 옥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하셨기에 목사님도 살고 나도 살았습니다. 이제 제가 언제 목사님께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을테니까 목사님의 마음에 비쳐오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습니다.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 결코 내 고집이나 방법대로 생활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생활하십시오. 양심에 비쳐오는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심에 비쳐오는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 행동하십시오.
성령 받은 첫째 증거는 마음에 기쁨이 가득하다는 것이요, 두 번째 증거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삶이 변화되고, 그리스도를 증거 하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 16- 18)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진짜 크리스천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 나라 확장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4. 진짜 크리스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20세기 인도의 성자라고 불리는 선다싱은 1889년 인도의 전통적인 시크교도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회심한 후 많은 일화를 남겼습니다. 그 중에 하나입니다. 하루는 많은 성도들과 함께 바다 백사장을 찾았습니다. 선다싱은 바다 속에 있는 돌 하나를 집어 들어 성도들에게 보이면서 물었습니다.
「이 돌의 한가운데가 물에 젖어 있을까요? 말라있을까요?」 그러자 많은 성도들이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물속에 있었으니 틀림없이 한가운데도 젖어있을 것이라고 했고, 일부 성도들은 돌 속은 말라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어떤 성도들은 젖어 있는지 말라있는 지는 돌멩이 나름일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선다싱은 돌을 쪼개었습니다. 그런데 돌의 한가운데는 말라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물속에 있었어도 그 속은 말라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농촌에 오래 살았어도 농부가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수십 년을 다녔어도 성도가 아닌 교인들이 있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그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즉 겸손과 온유와 순종의 마음을 품고 있고, 그 얼굴에는 늘 밝은 표정이 있고, 그 모든 행실에는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모습이 나타나야 참된 성도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성경책 들고 수십 년 교회에 다니면서도 성도가 아닌 교인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오늘 이 시간 나는 참 그리스도인인가 무늬만 그리스도인인가 자신을 돌아봅시다.(요한 2서 1: 8)

 
5. 진짜 크리스천은 선(善)하게 바르게 살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6:18)
 
미국 피츠버그에서 만난 성도님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유학 후 미국에서 직장을 얻어 30년 동안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그분은, 지난 세월 동안 상사나 주위 사람으로부터 탈법 혹은 부당 행위를 지시받거나 요구당한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몇 해 전 그는 한국 관계 기관으로부터 경부고속전철 공사와 관련된 자문을 부탁받고 귀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몇 달 지나지 않아 계약 기간이 만료되기도 전에 스스로 계약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부당한 청탁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가 교회 장로임을 아는 크리스천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이, 크리스천에게,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봐 달라고 부당 청탁을 한 것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이 땅에 사는 크리스천들의 보편적인 모습입니다.
 
2002년 10월, KBS 텔레비전의 ‘현장 출동’에서 세관 수사원들의 삶을 다룬 적이 있었습니다. 밀수꾼을 잡기 위해 정보가 입수되는 대로 전국을 추격의 무대로 삼아 밤낮을 가리지 않는 그들의 수고는 눈물겹기까지 했습니다. 젊은 세관원이 압수된 시계를 철판 위에 올려놓고 쇠망치로 일일이 깨부수었습니다. 그때 취재하던 PD가 아깝지 않느냐고 묻자, 그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아까워 보이죠? 그러나 이게 아까우면 이 자리를 지킬 수 없어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겨야 할 수 있죠.” 그렇습니다. 세상의 것이 아까우면 진짜 크리스천의 자리를 지킬 수 없습니다. 진짜 크리스천이란 교회 안팎에서 주님의 말씀을 좇아 사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자입니다.
무엇보다 진짜 크리스천은 이웃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5)

 
옥한흠 목사님의 글 중에 있는 내용입니다. 유명한 전도자인 휫필드가 한 번은 어떤 사람으로부터 「목사님 저쪽에 서 있는 저 남자 분은 크리스천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휫필드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그의 부인 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 않았거든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동문서답처럼 들리지만, 그의 말에는 깊은 진리가 숨어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에 다니며 입으로 주여 주여 한다고 다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그가 진정한 크리스천인가를 알려면 가정에서 그의 인격이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지를 그의 아내로부터 들어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많은 교회 사람들이 교회를 신뢰하지 않거나 예수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크리스천이면서도 이타주의로 살지 않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정이나 직장에서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잘 살펴야 하는 이유입니다. 나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볼 때 나는 나의 아내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을까요?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한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입장에서의 배려였던 것을 생각해 볼 때 실제로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그런 신앙인의 모습이 되길 원합니다.

 
6. 진짜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행실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명장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과 같은 이름을 가진 병사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의 귀에 이 병사에 대한 나쁜 소문이 들렸습니다. 이 병사의 행동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고 웃긴 꼴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병사가 잘못할 때마다 다른 병사들은 “알렉산더, 자네는 졸장부 같네”라며 나무랐습니다. 그의 행동이 알렉산더라는 이름에 먹칠을 했던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러한 사실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어느 날 이 병사의 막사로 찾아갔습니다. 그때에도 아니나 다를까 이 병사는 술에 취해 바닥에 뻗어 있지 않았겠습니까? 대왕이 오셨다는 소리에 그 병사는 놀란 토끼처럼 벌떡 일어나 경례를 했습니다. 그런 졸개 병사에게 알렉산더 대왕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병사 이름이 알렉산더인가? 나와 이름이 똑같군. 병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 네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네 인생을 바꾸어라.”
우리에게도 병사와 같은 모습이 있습니다. 즉, 이름은 그리스도인이지만 행동은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자칭 그리스도인은 아니신지요?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에베소서 4:1)

 
자신이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면서도 말과 행함이 다르고, 이기적이고, 양심을 속이고 거짓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은 말에 있지 않고 행함에 있습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1:22)

 
그대가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어떠한 가운데서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만일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치 않고 동류해서 살아가면 타락하고 부패해 가는 세상을 더 빨리 썩게 하는 효소 역할을 할 것이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기다리는 소돔과 고모라의 땅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그대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면! 선한 일을 함으로 만족하지 말고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은혜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기뻐하길 바랍니다.
그대가 진정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면! 아무 일 없이 하루하루 평안히 살아가기를 소망하지 말고 주님 때문에 힘들고 분주함을 소망하길 바랍니다.
그대가 진정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면! 보다 많은 수입을 인해 기뻐하기보다 주님을 위해 보다 많이 소비함을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그대가 진정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면! 이 세상 보화을 바라보며 기뻐하지 말고 하늘 보화를 바라보며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그대가 진정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면! 취함을 인해 기뻐하지 말고 더 나누어 줌을 인해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그대가 진정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면! 영광을 많이 받음으로 인해 기뻐하기보다 복음을 위해 핍박을 받음으로 인해 기뻐하길 바랍니다.
그대가 진정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면! 평안하고 안일한 하루였음을 인해 기뻐하지 말고 그분의 나라를 위해 고달프고 힘든 하루였음을 인해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대가 진정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면! 귀한 은사와 능력을 통해 큰일을 행함으로 기뻐하기보다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됨을 인해 기뻐하길 바랍니다.
그대가 진정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면! 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것을 즐기고 사랑함으로 기뻐하지 말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사랑하고 소유함을 인해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그대가 진정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면! 소돔과 고모라 같이 타락하고 부패한 화려한 향락 문화를 즐기고 누림으로 기뻐하지 말고 주님과 함께 아골 골짝 빈들에 있음을 인해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그대가 진정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기뻐하지 말고 주님의 제자됨을 인해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그대가 진정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면! 많을 사람들 앞에 선을 행함으로 기뻐하지 말고 은밀한 가운데서 보시는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길 바랍니다..
그대가 진정 신실한 크리스천이라면!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예배로 인해 기뻐하지 말고 산제물로 하나님께 바처 짐을 인해 기뻐하길 바랍니다.
그대가 진정 신실한 크리스천이라면! 배부르고 화려한 곳에 있음 인해 기뻐하지 말고 주님과 함께 굶주리고 헐벗은 자와 함께 있음을 인해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그대가 진정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외적인 미모를 아름답게 꾸미고 가꿈을 인해 기뻐하지 말고 속사람을 온유함과 믿음의 정절과 아름답게 꾸미기를 인해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누가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어 생명을 버리는 자를 가르쳐 독실한 크리스천이라 말하는 가!
그대가 진정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면!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주관 할 수 있음에 기뻐하지 말고 내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똑똑히 인식함을 기뻐하기 바랍니다.!
그대가 진정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면! 남이 듣지 못한 귀한 말씀을 들었음을 인해 기뻐하지 말고 그 귀한 말씀을 내게 주심을 감사하며 순종함을 인해 기뻐하길 바랍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나 믿는 사람답게 잘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형제들끼리 더욱 이해하고 사랑하고, 가정에서는 가족들끼리 서로 위해주고, 어디에 가든지 사랑과 평화를 전하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 주님과 복음만이 유일한 인생의 대안임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항상 세상 속에서 진정한 크리스천답게 주님의 빛을 비추며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말씀을 정리하면,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려면 첫째로 하나님을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둘째로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음을 통하여 진리의 말씀들이 나를 향한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셋째로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넷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하며, 다섯째로 선하고 바르게 살고, 여섯째로, 하나님 이름 높이고 행실로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이 여섯 가지가 이루어질 때 진짜 크리스천이 되는 것입니다 .

 
* 기도: 저희를 주님의 제자로 삼아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주님의 제자답게 항상 감사함으로 성숙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겸손과 용서함과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옵소서. 저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관심과 온전하신 뜻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복음을 바로 이해하고 복음에 붙들려 살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와 역사로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리스도를 전하고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 곁에서 괴로움과 슬픔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하는 주님의 귀한 도구로 쓰여지는 삶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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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생활원칙과 덕목 댓글[0]
제자, 군사. 성도 (2012-07-21 오전 10:35:42) http://blog.somang.net/holylove/7416

성도의 생활원칙과 덕목

 

본문: 베드로전서5: 5-11, 로마서 12: 9- 21

 

우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엡2:10).그렇기 때문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내 삶이 밝을 수도, 어두울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빛처럼 밝게 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기 때문에 밝은 표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언사가 밝아야 하고 행동이 밝아야 하고 사람과의 거래가 밝아야 합니다. 그런 생활을 하려면 먼저 마음이 밝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빛 되신 주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어둠을 쫓아내야 됩니다. 어둠은 빛이 들어오면 쫓겨나갑니다. 빛 되신 주님께서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 비로소 어둠은 사라집니다. 우리의 밝은 표정은 빛 되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다는 표시입니다. 빛은 감출 수 없고 숨길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므로 어디를 가든지 그 빛을 비춰야 합니다. 전도도 밝은 표정으로 옳은 행실로 하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1:15)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5: 8, 9)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이와 같이 성도는 빛의 자녀들처럼 거룩함과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대부분 스포츠를 보게 되면 거기에는 나름대로 정해진 규칙이 있습니다. 훌륭한 선수일수록 규칙을 잘 지킵니다. 그러면서 최선을 다해 자기의 기량을 살려 나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의 생활을 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정해 준 생활원칙과 덕목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겸손하라

윌리엄 캐리는 위대한 선교사이며 우수한 언어학자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인도의 34가지 방언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가 선교사로 인도에 왔을 때 어떤 이들은 혐오와 경멸의 눈으로 그를 보았습니다. 어느 만찬회 석상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한 사람이 캐리를 망신시키려고 여러 사람이 듣도록 큰 소리로 “캐리씨, 당신은 옛날에 구두짓는 사람이었다면서요?”라고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캐리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구두짓는 사람이 아니라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자신은 구두를 만들 줄도 모르는 수선공에 불과했다고 겸손히 대답한 것입니다. 선교의 사역 후 마침내 그가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곁에 있는 사람이 “당신의 장례식 설교에 성경 어느 본문을 택하는 것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 같은 죄 많은 인간에게 무어라 말해 준다는 것부터 과분하게 생각되지만 꼭 말해준다고 하면 ‘오! 하나님, 주의 인자하심을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주의 많으신 자비를 좇아 내 죄를 도말하소서’라는 구절을 읽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겸손을 잃지 않고 훌륭히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5, 6)

순복하는 것이 겸손의 첫 걸음입니다. 내가 "겸손하다" 하면서도 순복할 줄 모르면 겸손의 첫 단계에 아직까지도 이르지 못한 사람입니다. 겸손이 없는 사랑, 겸손이 없는 감사, 겸손이 없는 충성, 바꿔 말하면 교회 안에서 충성 봉사한 후에 교만하고 도도한 사람들, 그건 충성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기에 겸손이 첫째라는 것입니다. 모든 덕의 어머니가 겸손입니다. 겸손의 첫 발걸음은 바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수로 여기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교만입니다. 제일 미워하시는 것이 교만입니다. 마귀가 바로 교만한 자의 표본입니다.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자가 교만한 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입니다.

 

2.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중국 내지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는 믿음으로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협력자와 선교비가 필요했지만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의 정신적 부담은 밤잠을 설치게 했고 마침내는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심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경 요한복음 15장을 읽어 내려가다가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하는 이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태양빛이 비취는 것처럼 그의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님은 포도나무이시고 나는 그 가지인데 내가 걱정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주님께서 수분과 양분을 공급해 주는 나무이므로 가지인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데 가지인 내가 수분과 양분을 공급하려고 애쓰고 있다니 어리석었구나. 주님! 이 시간부터는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맡기겠사오니 책임져 주시옵소서." 이렇게 꿇어 엎드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어리석음을 시인하고 회개하며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겼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평안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는 그 후부터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성공적인 중국 선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 7)

여기 권고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신다 하는 뜻입니다. 근심 걱정은 신앙의 쓰레기입니다. 많이 버릴수록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근심 걱정 다 주님께 맡겨버린 사람은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 문제 해결 못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길 "너희는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3. 마귀를 대적하라

1929년 11월 3일 전남 광주에서 광주학생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학생들의 독립운동은 평북 압록강 근처인 영변까지 이르렀으니 가히 전국이 다 학생 운동에 참가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변의 숭덕 여학교 학생이 태극기를 들고 시위를 하였습니다. 이 시위를 진압하던 이 아무개 형사는 여학생 하나에게 몽둥이와 총대를 휘두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시집이나 가서 아이나 낳지 네가 뭘 안다고 독립 운동이냐? 가소롭다" 그 학생은 일본에 충성하는 우리나라 형사를 노려 보더니 이렇게 쏘아 주었습니다. "나도 시집을 가고 싶지만, 너 같은 자식을 낳을까봐 두려워서 안 가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그 형사는 얼굴을 싸매고 나가 버렸다고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마귀와의 싸움도 이와 같지 않은지 생각하게 됩니다.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반드시 피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나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5: 8-9)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마귀와는 타협하지 말라, 마귀와는 절대 교제하지 말라, 거침없이 대적하라는 말입니다. 대적하는데 근신하여 대적하라는 것입니다. 근신이란 말은 본래 "신중히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조심하지 아니하면 마귀에게 전부 꼬리를 잡힙니다.

믿음을 굳게 하여 대적하라 했습니다.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면 믿음 앞에는 마귀도 항복하고 쫓겨가는 줄로 믿습니다. 믿음을 굳게 하여 대적합시다.

‘하나님이 하시니 대적하라’(벧전5: 10)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를 대적하여 이길 재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보다는 약한 마귀지만 우리보다는 강한 것이 마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면 마귀를 처리하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생활의 원칙을 세 가지 정해 주었습니다. 겸손하라, 염려를 맡기라, 마귀를 대적하라 이것들을 철저히 지키면서 신앙의 챔피언이 되십시오.

 

이번에는 성도의 생활덕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롬12: 9)는 진정한 사랑은 진실해야 사랑이지 거짓말을 하면 사랑이 아닙니다. 가끔 사랑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위선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숨기는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합니다. 거짓이 있는 곳에는 사랑이 아닌 것이 드러나게 되고 거짓이 없어야 행복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에 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사랑은 진실하고 깨끗한 마음을 드러냈을 때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하며, 거짓말이 없을 때 서로 믿게 되고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됩니다.

거짓 행하는 자가 내 집 안에 거하지 못하며 거짓말 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시101: 7)

 

2,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가끔 악 자체인 결과는 미워하지만 악을 즐기는 습성이 있습니다. 악의 변두리를 돌면서 악의 유혹을 즐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 받을 때 ‘사탄아 물러가라’고 단호하게 하신 것처럼 악의 유혹에 대해서 단호히 ‘사탄아 물러가라’ 해야 합니다. 죄인은 사랑하지만 죄는 미워해야 되며, 죄까지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우유부단하지 말고 단호히 악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3. 형제를 사랑하고 서로 우애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여기서 형제는 모든 믿는 자들로서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 받아 피로 나눈 형제이기에 형제애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며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해야 합니다.(롬12: 10) 우리는 남을 존경하면 내가 비하되고 못난 사람으로 여기는 편견이 있지만 남을 높여야 자신도 높아지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존경하면 겸손해지고 존경이 없으면 교만해 집니다. 상대방을 높이려면 상대방의 좋은 점인 장점만 보게 되고 장점만 보이면 존경하게 되고, 단점만 보이면 미워하게 되며 교만이 생기게 됩니다. 즉 존경하는 마음은 상대방을 높이게 되고 나 자신도 높이게 됩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딤전5: 17)

 

4.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어 주를 섬겨야 합니다. 부지런하면 시간을 아끼게 되고 몸도 많이 움직이게 됩니다. 모든 일을 마지못해 억지로 하지 말고 만사에 적극적이고 계속적으로 해야 하며, 무엇을 하든지 간에 열심히 그리고 주를 섬길 때로 열심히 섬기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게으르면 병이 생기게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잠12: 24)

 

5. 소망 중에 즐거워해야 합니다. 현재 생활이나 모든 것이 어렵고 부족하다 할지라도 장래를 생각하며, 즐거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미래에 있는 약속을 바라보면서 소망이 있을 뿐 아니라 과거는 십자가로 인하여 다 용서받았기에 이제는 하나님의 은사로 미래의 약속하신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오늘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무릇 주를 찾는 자는 다 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시40:16)

 

6.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대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전통은 손님 대접하는 것이 예절이고 즐거운 일로 간주하였습니다. 여유가 있어서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고 부족하고 누추해도 대접하는 것이 보편적이며 즐거운 일로 아름다운 일로 생각하여 왔습니다. 아브라함도 조카 롯도 손 대접하기를 즐거워하였고 그 결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믿음의 조상이 되고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서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9, 10)

 

7. 핍박하고 박해하는 자를 축복해야 합니다.(롬12:14)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해야 합니다.(롬12:19- 20)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잠25:21-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마5:39)

바울은 자기를 핍박하고 박해하는 자에 대한 축복의 모범을 보였습니다.(고전4:12, 13)

 

8.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 합니다.

참된 이웃 사랑은 그 이웃의 슬픔과 기쁨에 대해 인격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통해 증거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

 

9.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스스로 지혜있는 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마땅히 헛된 교만심과 야망을 억제해야 하고 오히려 겸손을 추구하며 가난하고 낮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돕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함을 말씀합니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1:2)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3:7)

 

10,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3:9)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살전5:15)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 16)

 

11. 할 수만 있거든 모든 사람들과 화목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롬14:1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12.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악에 대해 악으로 맞선다면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악을 선으로 갚는 것, 이것만이 그 악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어떤 헌신입니까? 바로 몸의 헌신입니다. 생활의 일부나 재물의 일부가 아니라 삶을 전폭적으로 주님께 바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생활 속에서 자신을 성결히 해야 하며 몸으로 충성,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청결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인격에 거룩한 변화를 가져와야 하며, 자신의 믿음의 분량대로 최선을 다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 기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신 주님,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마음속으로만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도록 도와주소서. 주께서 말씀하시고 실천하신 사랑의 본을 따르게 하소서. 주의 본을 따르는 길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인내를 허락하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하는 자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이웃에게 행함과 진실함의 참사랑을 실천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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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라오라 댓글[0]
제자, 군사. 성도 (2012-05-26 오전 8:08:26) http://blog.somang.net/holylove/7363

나를 따라오라

 

본문: 마4: 19- 22

 

‘메테오라’는 그리스 산악지대의 험한 바위산 꼭대기에 있는 수도원 사회입니다. ‘공중에 떠있는 수도원’이라는 뜻이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과거에 수도사들이 숨어 지내면서 필사한 성경사본들이 그곳에 전시되어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순교자들이 어떻게 순교를 당했는지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들도 전시되어있습니다. 톱에 잘리거나 피부를 벗겨내는 고통으로 순교당한 처참한 장면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옛날 주님을 따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따랐고 주님을 위해 순교의 자리까지도 갔습니다.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뿌려졌는지 모릅니다. 세례 요한도 복음을 전파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이 되어주신 예수님도 복음이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고기잡는 어부들을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막1: 17).”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복음을 위한 고난의 길을 걸었고, 순교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무심코 영광과 축복, 승리와 기적의 길을 원합니다. 복음을 위한 고난과 순교의 길은 회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성공과 축복을 구합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권능을 보기를 원합니다. 귀신을 잠잠케 하고, 소경된 눈을 뜨게 하며,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요구하면서 주님의 뒤를 따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를 따라오라”는 주님의 부르심은 영광을 위한 부름이 아니라 복음을 위한 부름이었습니다. 복음에는 보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하는 우리들에게도 피가 요구됩니다. 주님을 위하여 복음이 이 땅 위에 선포되기를 위해 우리의 피가 요구됩니다. 우리의 피와 땀과 눈물과 헌신 위에, 복음은 더욱 널리 전파될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주님의 부르심에 지금 곧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과연 본문에 나오는 이 제자들처럼 곧 그물을 버려두고...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를 결단을 하실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부르신 자들은 순박한 어부들과 세리였습니다.(마9:9) 그러나 이들이 마지막 이 한 가지 결단이 없었다면 그들은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곧바로 옛 생활을 청산하는 결단인 것입니다.

여기서 ‘곧’ 이란 말은 응답이 즉각적이고 신속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부들의 생존수단인 그물을 즉각적으로 버렸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이 절대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제자가 되었다는 증거가 무엇일까요? 제자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할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확신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확실하다는 겁니다. 확실하게 믿을 수 있다면 좋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확신이 줄어든다는 느낌이 들 겁니다. 그래서 다시 뜨거운 믿음을, 그런 확신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매달립니다. 믿음이 떨어지는 상황과 올라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갈등을 느낍니다. 교회생활의 경력은 많아도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에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못합니다. 단순히 교회 조직의 한 지체라는 사실에만 매달려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런 현상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벌어집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를 두셨습니다. 인류의 다른 스승들도 제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제자가 되는 과정이 특이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제자가 스승을 찾아와서 제자로 삼아달라고 요구하고 스승이 허락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열 두 제자는 예수님이 직접 부르셨습니다. 물론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을 직접 찾아온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들은 예수님에게 실망해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이 주도적으로 부른 이들만 제자가 되었습니다. 열 두 제자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따라나선 이들입니다. 오늘 본문과 마가복음1장에는 네 명의 제자를 부르신 사건이 나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가 그물질을 하는 것 예수님이 보시고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어서 같은 어부 형제인 야고보와 요한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아버지, 품꾼, 배를 다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다고 합니다.(막 1:16-20)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제자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들 앞에서 우리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리 예수님의 영적 카리스마가 탁월하다고 해도 부름을 받자마자 곧 따라나섰다는 건 좀 과장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제자들이 언제 자신들의 결심을 실행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결국 예수님의 제자로 나섰다는 사실, 즉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곧 그물과 배와 아버지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결단을 단행했다는 사실입니다.

시몬 형제와 야고보 형제들의 행동을 보십시오. 시몬 형제는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고, 야고보 형제는 아버지 세베대, 품꾼, 배를 ‘버려두고’ 나섰습니다. 야고보 형제 집안은 시몬 형제 집안에 비해서 살림살이가 넉넉했던 것 같습니다. 버려둔 게 더 많습니다. 어쨌든지 최초로 예수님의 제자로 나선 이들은 그 이전에 자신들의 호구지책이었던 모든 것, 그리고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이런 결단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이들은 평생 고기만 잡아먹고 살았습니다. 그것이 삶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은 날은 기분이 좋았고, 못 잡은 날은 나빴습니다. 고기잡이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들의 삶만 포기하는 게 아닙니다. 이들 때문에 가족들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가족들의 생계조차 크게 어려움을 당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이들은 그것을 버려두었습니다. 기존의 삶을 포기한 것입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의 첫 걸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버림’입니다.

 

도대체 버린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복음서에는 이 말씀 이외에도 버리라는 말이 흔하게 나옵니다. 그중 하나만 보겠습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 20)

 

지난 기독교 역사에서 세상의 모든 소유를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옛 것을 버리고 새출발한 이들은 많습니다. 모든 걸 버리고 제자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걸 원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목회자가 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농사도 짓지 않고, 소도 키우지 않고, 공장도 다 문을 닫고, 결혼도 없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인류 역사는 곧 끝장납니다. 자신의 형편에 따라서 목회할 사람은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세상살이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버림의 영성은 목회자들에게만 해당되지 일반 성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한다면 당연히 버림의 영성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엡4:22)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골3:9)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12:1)

주님의 길을 동행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육신적인 일들을 버려야 합니다. 즉 새출발하기 위해서 이전 것을 뒤로 포기하고 잊어야 합니다. 옛 사람을 버리고 주를 따라야 합니다.

 

마가복음 1장 14절 이하에는 구체적으로 제자를 부르는 사건 앞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님은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셨다고 합니다. 전하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이 말씀에서 키워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필요한 일은 두 가지입니다. 회개와 믿음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회개가 바로 앞에서 말씀드린 버림입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님 사역의 핵심을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 언급한 뒤에 그걸 구체적으로 제자들의 부르심에서 확인한 것입니다. 회개가 곧 버림이며, 버림이 곧 회개입니다. 회개가 무엇인지를 알면 버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회개는 헬라어 메타노이아입니다. 이 단어는 돌아선다는, 또는 방향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회개를 자기가 잘못한 행동을 뉘우치는 것쯤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회개가 희석화될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 남의 과수원에 가서 복숭아나 사과를 몰래 따먹은 것을 회개한다고 합니다. 어린이들을 집회에서 자기의 잘못을 공책에 적어 불에 태우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합니다. 청소년들과 심지어는 어른들의 부흥집회에서도 그런 방식으로 회개를 유도합니다. 수년 전에 한국에서 가장 큰 교회의 담임 목사를 중심으로 몇몇 분들은 자기의 잘못을 회개한다는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는 겁니다. 자신의 부도덕성, 파렴치한 행위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단순히 반성입니다. 이런 반성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다른 데서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겁니다. 회개는 교양 차원의 반성이 아니라 영혼 차원의 돌아섬입니다. 삶의 무늬가 아니라 삶의 실체가 돌아서는 겁니다. 나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삶에서 하나님 나라로 삶의 중심을 옮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통치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롬14:17) 하나님은 생명의 힘으로 통치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통치로 삶의 중심을 옮기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런 말이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지금 하나님보다는 자기를 삶의 중심에 놓고 살아가는데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확대하는 것에만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만 예민합니다. 물론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여유 있게 살아가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나라는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돈과 하나님을 겸해서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면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돈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신앙생활도 돈이 없으면 안 된다고 말입니다. 돈이 여러분의 영혼을 만족시켜주는지 잠시 생각해보십시오. 10분 동안 숨을 쉬지 않으면 10억 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합시다. 그걸 선택할 사람이 있을까요? 개척 교회였을 때 오히려 영적으로 만족했는데, 큰 교회가 되어서 마음들이 갈가리 찢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즉 하나님의 생명 통치가 결정적으로 드러난 사건은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생명으로 불러내시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자리가 옮겨졌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돌아선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향해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회개입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통치의 빛으로 영혼의 관심을 돌리는 것이 회개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사람의 내면에 있는 진리를 발견하라고 하지 않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삶의 방향을 바꾼다는 것, 그를 따른다는 것, 그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생명통치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에게 현재의 실존만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미래까지 완전히 맡긴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구원의 길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통해서만 부활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만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면 여러분은 이제 세상의 그 어떤 대상에게도 자신의 영혼을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맡길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한 분에게만 순종함으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역설적이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예수님을 향한 의존성이 깊어질수록 이 세상에서 우리의 자유는 더 확대됩니다. 그걸 아는 사람은 “나를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이것이 여러분과 제가 선택한 ‘제자의 길’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갸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요 13:36)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오라" 는 주님의 말은 생소한 것이 아닙니다. 3년 전에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 말을 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마4:19) 이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쉽게 따라 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매력이 그를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을 때에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말에는 자신의 자아를 죽여야 하는 내적 순교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적순교를 하며 자신을 포기할 때에라야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영적 돌파는 자신을 철저히 죽이며 주님을 따르겠다는 결단을 할 때 일어났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합니다.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목사가 가지고 있는 고집, 편견, 우상, 욕심을 버려야 진리를 발견하고 올바로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김남준 목사는 자기 부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깨어짐이란 신자 안에 있는 부패한 자기 사랑이 파괴되는 것을 의미 하는데, 이는 죄에 대한 사랑과 거기에 기반을 둔 자기 의에 대한 신뢰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거듭난다는 것은 세상이 옷 입혀준 옛사람의 모든 가치와 기준, 습관과 형식에서 벗어나 본래 창조된 목적에 따라 하나님의 의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반드시 자기부인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나 부정이 아닌 세상의 가치관이나 욕심으로 물든 거짓된 자아를 부인하고오직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의의 길을 갈 것을 결단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쫓아가는 길, 이것이 진리의 길이요, 하나님께로 가는 영원한 생명길입니다.

 

또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8:35)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14: 26)

우리가 주안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고, 맡은 본분을 다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목숨을 버릴 마음의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우리 모두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하고 삶의 방향을 바꾸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으신 주님,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고백하오니 주님의 보혈로 사하여 주시고, 주님 믿는 성도로서 맡은 본분을 다하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갈 수 있는 귀한 믿음과 성령충만함을 주시옵소서. 온 교회가 회개하고 부흥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시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는 일꾼되게 하옵소서. 선한 목자되는 주님! 나를 따라오라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따라 영혼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게 하소서. 우리에게 영육간에 강건하게 하시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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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권위 댓글[0]
제자, 군사. 성도 (2012-03-13 오후 5:56:53) http://blog.somang.net/holylove/7288

그리스도인의 권위

 

그리스도인들은 D-day와 V-day 즉 이미(already)와 아직(not-yet) 사이라는 영적 현실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현실을 다음과 같이 예화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점점 세력이 팽창하던 악한 왕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가 그 왕국 본부에 거대한 폭탄이 떨어졌습니다(d-day). 그 본부는 산산조각이 났고 그 왕국의 잔당들은 산으로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잔당들은 게릴라를 조직하여 산속에 살면서 배가 고프거나 물자가 떨어지면 평화롭게 사는 도시에 내려와 선량한 시민들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파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한 왕국의 왕자가 다시 나타나 이 잔당들을 완전히 소탕하여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깊은 옥에 감금시켜 버렸습니다(v-day)."

사탄은 산 속에 숨어 사는 게릴라와 같이 기회만 있으면 도시와 같은 복잡한 인간의 마음에 침략하여 쑥밭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부끄러움이 없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엡 6:10,11)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만이 하나님의 거룩한 빛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신분을 올바로 정비함으로써 사탄의 권세를 대적할 수 있는 권위를 소유하게 됩니다.

예배와 삶 /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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