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소망교회 카페 블로그 메일 SMS 문자보내기
검색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기 원합니다.
카테고리
전체보기 (268)
안내, 알림 (5)
가정, 부모, 부부 (5)
간증, 증인, 기적 (1)
감사, 불평, 원망 (4)
겸손, 온유, 교만 (4)
고난, 역경, 시험 (5)
교육, 훈련, 연습 (4)
교회, 공동체 (8)
구제, 나눔, 베품 (2)
근면, 노력, 성실 (2)
기도 (10)
기쁨, 희락, 웃음 (5)
길, 인도, 홍보 (4)
노인, 허무, 고독 (2)
마음, 정신, 생각 (7)
만남, 관계, 감정 (1)
말, 언어, 입 (4)
믿음, 신앙, 의심 (6)
보호, 반석, 요새 (6)
부활, 성탄, 절기 (1)
부흥, 성장 (1)
복, 축복, 면류관 (2)
봉사, 선행 (4)
비판, 판단, 누명 (2)
빛, 소금 (1)
사랑, 관심 (11)
사명, 은사, 직분 (2)
선택, 약속 (6)
성경, 말씀 (3)
성공, 승리 (5)
소망, 희망 (10)
순종, 뜻 (3)
시간, 기회 (6)
실천, 행함 (2)
십자가, 순교 (6)
영광, 경외, 사모 (2)
예술, 미, 문화 (1)
용서, 관용, 분노 (1)
유머, 농담 (1)
은혜, 구원 (4)
위로, 친절 (4)
이웃, 형제 (2)
인내, 기더림 (4)
자비, 긍휼, 대속 (1)
작은, 큰, 위대 (1)
절제, 사치, 분수 (3)
제자, 군사. 성도 (4)
전도, 복음 (8)
정직, 진실 (2)
지도자, 교사 (1)
지혜, 슬기 (3)
진리, 가치 (6)
평안, 불안, 공포 (2)
찬송, 음악 (12)
책임, 자세, 각오 (1)
천국, 지옥, 낙원 (6)
충성, 오작예수 (2)
친구, 벗, 우정 (2)
편건, 오해, 착각 (1)
하나님, 창조 (4)
학문, 지식, 책 (4)
화목, 좌평, 전쟁 (3)
행복 (4)
헌신, 열심, 미치게 (1)
협동, 하나, 동역 (3)
회개, 거듭남 (3)
지유로운 글 (22)
0
61
하나님 나라 확장과 성령 충만의 은사 댓글[0]
천국, 지옥, 낙원 (2014-05-05 오전 8:28:28) http://blog.somang.net/holylove/8138
하나님 나라 확장과 성령 충만의 은사
?

본문: 사도행전 1: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강원도 예수원에서 사역하셨던 대천덕 신부님은 성공회 신부님이신데 그분 할아버지인 R. A. 토레이 목사님의 글에는 성령 충만이 자주 강조됩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한다. ‘하나님! 성령 충만하게 도와주십시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 나는 너무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제가 성령 충만하다고 느끼지 못할 때 함부로 말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말하면 실언이 되기 쉽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제가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저의 결정은 잘못될 가능성이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R. A. 토레이 목사님은 이처럼 성령 충만을 사모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부패한 인간의 죄성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실패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을 사모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주관하시면 우리는 감정을 다스릴 수 있고 내 안에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습니다.
?
교회와 우리의 가장 큰 사명은 하나님 나라 확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꼭 죽어서만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 17)

주기도문을 보세요.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확장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 9, 10)

?
만약 교회와 내 안에 사랑이 없고,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없다면 이는 죽은 교회요 죽정이 교인입니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과연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합니까? 아니면 청년들이 세상에서 창업하듯이 목회자가 자신의 목회 사업을 위해 세워진 교회입니까?
모든 교회가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는 것이 아닙니다. 좁은 길이 있고, 넓은 길도 있습니다. 주여! 주여! 부른다고 다 구원 얻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내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3-5)

?
유명한 어거스틴의 책 가운데 ‘신의 도성’ 이라는 불후의 명작이 있습니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은 당시로 보면 절대로 멸망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도끼를 휘두르면서 벌거벗은 채로 쳐들어오는 야만인 오트족한테 로마는 함락됩니다. 아우성과 화염 속에서 거대한 로마성이 무너지는 순간에 어거스틴은 굉장한 고민을 합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이 나라가 무너지고, 저 야만인들이 점령하게 되는가? 그 때 모든 기독교인들이 고민을 합니다. 여기서 어거스틴은 유명한 역사관을 내어놓게 됩니다. ‘사람이 세운 이 세상 나라는 무너진다. 무너지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무너지는 로마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 가는 것을 그는 바라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칠흙같은 캄캄한 어두움이 있습니다. 이 어두움을 치른 후에야, 아침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관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우리는 때로 어린이들로부터 질문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디 있어요?'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저 하늘에 있단다."
"하나님 나라는 네 마음에 있단다."
이런 답을 하십니까? 그러나 그 어린 아이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을 때, 어떤 답은 거짓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
1.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곳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 사상은 하나님의 지배라는 뜻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 있는 통치를 말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손에 빠져 있는데, 하나님의 지배가 임하시는 때, 사탄과 그 아래 있는 모든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사랑과 의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에덴 동산이라 할지라도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할 때, 그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일 수 없습니다. 그가 타락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사탄의 말을 들을 때, 사탄이 대신 ‘이 세상 임금’으로 되었습니다(마 4:8-10, 요 14:30). 하나님 말씀이 다스리지 않은 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담을 에덴을 떠나야 합니다.
?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방주를 지었을 때, 그 말씀대로 지어진 방주는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그 방주를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까닭은 그 방주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방주는 심판이 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택정되고(삼상 16:1-13), 다윗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다윗과 그의 후손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후손에 의해 통치될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참 사람이며 또는 ‘임마누엘(하나님이 함께 계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입니다(행15:14-17).
?
다니엘과 세 친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그가 풀무불에 들어가도, 사자굴에 들어가도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습니다. 사자도 풀무불도 그들을 상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는 말씀으로 설교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의 임함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교회’의 주인이시며 머리가 되셨습니다. 살아계셔서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태로선, 임하지 않습니다(눅17:20, 21, 롬14:17).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 신자는, 현재, 지상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습니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 안에서 현재, 지상에 임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이 척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한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2. 하나님 나라는 제자들의 복음전파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눅9:1, 2)
?
여기서 부터 갈릴리 3차 전도 사역이 시작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감당할 수 있는 사명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제자들로 하여금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를 불러 모아서 세상에 파송하십니다. 그들은 당시에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2천년이 지난 오늘 돌이켜 볼 때, 그보다 값진 결단이 없습니다. 그들보다 존경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부르시고 보내신 그들의 생애에 하나님께 순종하여 나아간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열두 제자들은 세상에서 어부였습니다. 세리였습니다. 갈릴리 지역의 평범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들은 하나의 새로운 신분을 더 부여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 신분으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원인 것입니다. 로마 식민지 국가의 무엇이 아닙니다. 유대 갈릴리 지역의 어부나 세리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한 구성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특권입니다. 모세는 그 일원의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 26)

?
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가나안 땅에 내어 보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합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을 좇아갈 때, 그곳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채색 옷을 입고 사랑을 받는 아버지의 품으로부터 불러내어 애굽의 군대장관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고, 또 옥살이를 하게 하십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함으로 그가 가는 곳은 감옥이라 할지라도, 감옥이 변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 19- 20)

?
3.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곳에 이루어집니다.
요즈음에는 선교사를 파송할 때 보면, 일종의 형식이 있습니다. 신학교육과 목사 안수 등의 자질과 신분을 갖춥니다. 선교지의 정보를 모아 교육합니다. 선교비를 확보합니다. 선교사 파송식을 가집니다. 이런 신중한 절차를 따라서 선교사를 파송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좀 색다릅니다. 그냥 12명의 제자를 '불러 모아 내어 보냅니다.' '세상에 던져버렸다!'는 표현과 같습니다.'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벌 옷을 가지지 말며'(눅9:3, 막6:8)
?
우리가 파송함을 받은 그 당시의 제자라면,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두둑하게 선교비를 주신 것도 아니요, 비자카드라도 만들어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런 보장이 없이 세상에 보내시는 예수님의 제자 파송은 요즈음 선교 관점에서 보기에는 참 너무하신다는 생각이 스쳐가지 않습니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전도자로 파송되어 길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여행 장비들이 있습니다. 여행 경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숙식을 위한 기본적인 의류나 식량, 또 험로를 대비한 지팡이 따위가 그것입니다. 특히 오늘날같이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하고 교통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당시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러한 여행에 필요한 장비들을 일체 금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그처럼 보편적으로 여행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장비들을 금하셨을까요?
?
첫째,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지팡이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지팡이는 거친 들에서 여행자를 보호하기도 하고 높은 곳을 오르는 데 큰 힘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어쩌다 넘어졌을 경우 용이하게 일어설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러한 지팡이 소지를 금하셨습니다. 복음 전도자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가 의지해야 할 것은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다윗도 내게 부족함이 없노라고 노래하였습니다.
?
둘째,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 역시 여행자에게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입니다. '양식'이 없어 배를 곯습니다. '돈' 또한 생활 필수품입니다. '주머니'란 요즈음 여행가방 정도입니다. 여기에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담습니다. '두 벌 옷' 정도는 여행하는데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필수품들을 의지하지 말라 명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보기에 일차적인 필수품이지만, 하나님 나라 측면에서 보면, 2차적인 문제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이지요. 이 모든 필수품이 되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양식'이 주린 영혼을 채우지 못합니다. '돈'으로 그 나라를 살 수 없습니다. '주머니'에 영혼의 양식을 담을 수 없습니다. '두 벌 옷'도 벌거벗은 영혼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는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채워 주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몇 번이고 망설입니다. 이름도 주시고, 이적도 주시지만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합니다. 대 선지자 예레미야의 경우도 이런 망서림이 있습니다.
‘내가 너를 복 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렘1:5-7)
?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파송은 하나님나라의 일원으로 제자들을 세상에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 이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그리고 책임지십니다. 이것이 귀합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는 헤롯의 태도로 보아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능력과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힘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권세는 세상 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으로 그 능력을 시행할 권리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는 열 두 제자들의 사역은 예수님 행하시던 사역의 연장이었습니다.
?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고 하나님 나라 확장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감사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 일꾼으로 부름 받아 그 일을 감당할 힘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실 때, 어두움의 권세가 떨게 됩니다.
예수님의 명성은 팔레스틴 전역에 퍼져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중에서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도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분봉왕 헤롯은 매우 당황했습니다. 그가 당황한 것은 일차적으로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분봉왕 헤롯은 대 헤롯의 아들로서 세례 요한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왕권의 새로운 시작이 그를 본능적으로 위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분봉왕 헤롯은 어두운 권세자의 표상적 인물입니다. 그는 에돔인으로서 당시 유대 사회의 권력을 관장하고 있던 사두개 교도였으므로 죽은 자의 부활 같은 것은 전혀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통치 관할 구역인 갈릴리에서 예수의 명성이 높아가고 그를 추종하는 백성들이 많아지자 예수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갈릴리 지방에서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으며, 그의 제자들도 놀라운 일을 행하자 그 소문은 즉시 헤롯에게로 전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어두움의 권세도 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

?
워나메이커는 미국 제23대 대통령 벤자민 해리슨 정부의 내각요원으로서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며 큰 발전과 공헌을 한 사람입니다. 또한 워나메이커는 미국의 백화점을 초기에 본격적으로 운영했던 백화점 왕으로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크리스천으로서 아주 훌륭한 생활과 헌신을 한 사람입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워나메이커 체신장관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워나메이커씨, 당신은 그 큰 사업에 바쁠 뿐만 아니라 체신장관의 업무를 수행하고 또 다른 일들이 많을 터인데 어떻게 4천명의 주일학교 학생들을 다루는 주일학교 교장직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워나메이커는 정색을 하고 답변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을! 주일학교가 나의 정작 본 사업입니다. 그 외의 다른 일들은 그저 일들입니다. 나는 이미 45년 전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의 말씀을 확실히 깨닫고 믿게 되었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나의 변화나 사회개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고전12장3절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곡해하여 자기가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있으니, 자기는 성령 받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는 입으로만 예수님을 주인으로 말하고 있지 실제로는 자기 인생의 주인은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 또는 돈, 가족 등이 내 삶의 주인(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하나님 나라와는 거리가 멉니다. 내(자아)가 죽어야 내 안에서 하나님이 왕노릇하실 수 있습니다.(마16:24, 눅14:26)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8:34, 35)
?
성령 없이는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내 안에 구주로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받으려면 먼저 돌감람나무가 죽어야 합니다.(롬11:17- 24)

본문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그런데 성령의 은사를 받고 거기에 머무르고 안주하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 23- 25)

?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받았어도 복음전파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면 도리어 화가 있습니다. 마25장 14- 30절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를 아시지 않습니까? 1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에 묻어 두었다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했습니다.
저는 방언과 예언과 환상과 치유의 역사 등을 볼 수 있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가 있다고 해서 가본 적이 있습니다. 성도가 20여명 정도되는 교회인데 성도의 대다수가 방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계시를 듣는 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이러한 성령의 능력을 맛보는 데 그치고 교회 안에 의와 평강과 희락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는 힘쓰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들도 전도에 힘쓰고 있으나 그 전도는 교인수 확장을 위해 하는 것이지 진정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비단 이 교회뿐만 아니라 많은 기존의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조차 모르고 전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역자(인간) 중심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 확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한1서5:12)

?
하나님 나라의 왕과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주인이 되거나 인간이거나 물질이나 우상이라면 하나님 나라와는 거리가 멉니다. 이런 교회로 전도한다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까?
내게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주신 목적과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능력을 통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왕으로 모신 곳으로 불신자를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확장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순절 성령의 은사를 받고 제일 처음 한 것이 의와 평강과 희락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 42- 47)
?
그리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복음전파에 힘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내 것을 희생하며 동행하고 따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누가복음 8장 2-3절을 보면,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는 ‘여인들이 자신들의 소유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겼다.’는 말을 강조합니다.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으로 치유받고 주님을 따른 여인들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들이 주의 능력으로 치유되어 자신의 소유로 주님을 섬기며, 주의 나라 확장에 기여했습니다.
?
하나님 나라 확장은 그냥 가만히 있는 데 이루어지 않습니다. 기도만 한다고 이루어지지 않고, 기도한 만큼 내가 희생하고 손해 볼 때 이루어집니다. 열정만 있어도 안 됩니다. 내 것을 드리는 헌신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주의 나라가 확장되는 역사를 보면, 많은 신앙인들이 물질과 명예를 버리고, 가족과 생명까지 버리며 헌신하였습니다. 내 것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제자들 중 일부, 또는 여인 중 몇 명의 헌신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은 헌신된 개개인이 하나가 되어 사역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8장에 등장하는 인물을 보면, 모두 복수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열 두 제자, 어떤 여자들, 다른 여러 여자! 예수님을 제외한 한 단어도 단수형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 이들의 삶은 참으로 열악하고 쉽지 않았습니다. 많은 여인들이 귀신이 들려서 고생하였고, 각종 질병으로 앓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사도들을 보아도, 어떤 이는 세리출신이고, 어떤 이는 어부 출신이었고, 어떤 이는 열심당원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그들의 삶이 주님께 온전히 헌신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헌신된 개개인이 하나가 될 때, 결국 주의 나라가 힘 있게 확장되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주신 것은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쓰라고 주셨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받았어도 내가 준비된 그릇 만큼만 받은 것이지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과 은사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내가 받은 은사만을 고집하고 다른 이들의 받은 은사를 무시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능력을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 나라 확장하는데 사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갈릴리 공동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공동체가 되고, 우리 모두가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영육간에 복주시고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 받는 성도되게 하옵소서. 갈릴리 공동체를 통하여 병든 자가 치료받게 하시고 낙심가운데 있는 자가 기쁨과 소망을 갖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이 포스트를...
달려갈 목표 하나님 나라 댓글[0]
천국, 지옥, 낙원 (2014-04-12 오전 8:25:06) http://blog.somang.net/holylove/8118
달려갈 목표 하나님 나라
?
 
본문: 빌3: 12- 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
미국 뉴 저지주의 상원 의원인 모르우씨가 뉴욕시를 떠나는 기차를 탔을 때 그는 기차표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차표를 제시하기를 기다리던 역무원이 「모로우씨,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상원의원이신데 설마 표를 안 사셨겠어요. 그러나 후에 표를 찾으시면 우편으로 보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모로우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의 어려움은 그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제가 가는 행선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기차표를 지금 꼭 찾아야만 합니다.」 미상원의원 모로우씨는 정확한 행선지를 모른 채 기차에 탔던 것입니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삶의 분명한 목표가 없이, 인생을 아무런 계획성도 없이 살아가기 때문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시세에 따라 이리저리 요동하면서 살다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
우리의 인생은 쉬임없이 지금도 가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는 종착역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자는 운전을 열심히 하되 목적지 없이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운전자가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자입니까? 열심히 달리고 또 기름을 새로 채워 달리지만 목적지를 모르는 채로 달리는 운전자,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운전자가 되기를 결코 바라시지 않습니다.
?
어떤 대학에서는 지능지수, 학력, 환경 등의 조건이 비슷한 젊은 사람을 25년 동안 조사하였습니다. 조사내용은 ‘목표가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조사대상자 가운데 3%는 분명하고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10%는 분명하지만 단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60%는 목표가 모호했으며 27%는 목표가 없었습니다. 25년 뒤, 이 조사대상자들의 상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분명하고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있던 3%는 거의 모두 사회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성공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자수성가한 사업가나 업계의 지도자, 사회의 저명인사가 된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분명하지만 단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10%는 대부분 사회의 상류층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각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의사, 변호사, 기술자, 고위경영자 등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목표가 모호했던 60%는 거의 모두 사회의 중류층이나 하류층의 삶을 살았습니다. 나머지 목표가 없었던 27%는 대부분 사회의 최하위에 속한 삶을 살았습니다.
목표는 집중력과 추진력을 가져다 주고, 불필요한 시간낭비를 막습니다. 그리고 목표는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커다란 역할을 합니다. 어떤 목표를 선택하느냐, 얼마나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인생도 달라집니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하면서 꾸준히 노력하십시오.
“그러므로 나는 목표 없이 달리듯이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허공을 치듯이 권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고전9:26)
 
?
그런데 목표를 가지되 움직이지 않는 목표, 흔들리지 않는 목표를 가져야합니다. 어떤 소년이 서울에서 공부하다가 방학이 되어 농촌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땀을 흘리며 밭을 가시는 것을 보고 그것을 도와드릴 생각이 나서 소년은 소를 몰고 밭을 갈았습니다. 서투른 쟁기질로 한참 갈다 보니 아버지가 간 밭의 고랑은 똑바르나 자기가 간 고랑은 구부러졌습니다. 아버지는 이것을 보고 "처음 보습질을 할 때는 앞에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야 똑바로 갈 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소년은 그 말씀을 마땅히 여겨서 둑에 풀을 뜯고 있는 황소에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역시 고랑은 똑바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황소가 자꾸 움직이니까 너의 고랑도 구부러지는 것이니 움직이지 않은 것에 목표를 두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앞에 우뚝 솟은 포플라 나무에 목표를 두고 밭을 갈았더니 비로소 똑바로 갈 수가 있었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야고보서4:14-16)
?
교회지도자의 꿈과 목표가 화려한 교회건물이나, 많은 교인수, 풍요한 교회재정, 세상 사람이 추구하는 행복 등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과 열정을 두고 있다면 이는 소경된 인도자요, 거짓 선지자요, 삯꾼 목자입니다. 정치지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치 목표가 국민소득 몇 만 불 시대를 이루겠다는 목표보다는 우리나라를 정의로운 나라, 모든 국민이 평안하고, 기쁨이 넘치는 나라가 되도록 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
옛날에 어느 시골노인이 서울 사는 딸네 집을 찾아왔습니다. 몇 년 사이에 어찌나 변했는지 이 집이 저 집 같고, 저 집이 이 집 같아서 노인은 당황해 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친절한 젊은이가 노인에게 도와드릴 것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노인은 딸네 집을 찾아왔는데 도무지 어느 집인지 모르겠다고 사정 이야기를 했습니다. 젊은이는 주소도 모른다는 노인의 말에 난처해져서 그럼 혹시 딸네 집에 다른 집과 달랐던 무슨 특징이 없었던가를 물었습니다. 노인은 한참 생각하더니 무릎을 탁 치며 「이제 됐다.」 싶은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있었지, 있었고말고. 내가 그때 기억해 두기를 잘했지. 우리 딸네 집 담장 위에 누런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네.」 노인은 보이는 것이 영원하리라는 생각으로 표적을 삼았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비 본질의 것들에 현혹되어 삶의 목표를 그것에 둘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천국, 사랑, 믿음, 소망 그러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지만 크리스천 삶의 목표들입니다. 우리가 잘못 된 삶의 목표, 헛된 꿈들은 결국 삶을 절망으로 이끕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과 무관한 것일 때 다 헛되고 무익한 것입니다.
?
인간은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고 무엇인가를 위해서 죽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충성하고 헌신할 수 있는 대상이나 목표를 갖지 못하면 허무주의자가 되고 생의 행복감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생명과 정열을 다 바칠 수 있는 인생의 목표나 신념을 가질 때 우리는 생의 충실감과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인간 심령 속에 부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목표나 방향이 없이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이 귀중한 생명이 인생의 목표로서의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만날 때 그것은 더욱 빛나고 힘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의 목표와 푯대는 무엇입니까?
?
미국의 로저 밥슨 기자가 아르헨티나의 한 정치지도자를 만났습니다. 국민들로부터 가장 추앙받는 그 지도자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밥슨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유럽의 백인들이 먼저 정착한 곳은 북미가 아니라 남미였습니다. 지하 자원과 물도 북미에 비해 부족하지 않습니다. 기후도 좋습니다. 그럼에도 왜 북미가 남미보다 잘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밥슨 기자는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지도자가 웃으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남미는 스페인사람들이 황금을 구하러 찾아온 땅이다. 그러나 북미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을 위해 찾아온 땅이다. 여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인생과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한 인간의 삶도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그 부르심의 목표인 소망도 하나였습니다.”(엡4:4)
 
?
러시아의 단편소설 『외투』의 이야기입니다.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노인에게 “당신의 평생 소원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매번 “아주 고급 외투를 갖는 것이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노인은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평생 열심히 일하며 저축을 했고, 드디어 그는 꿈에 그리던 그 외투를 샀습니다. 그날은 성공한 날이자 목적을 이룬 날이었기에 큰 기대감과 흥분된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외투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만 강도를 만나서 비싼 고급 외투를 강탈당했습니다. 그 노인은 절망했습니다. 단순히 고급 외투를 강탈당한 것이 아니라 성공과 함께 행복을 강탈당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날 이후 그 노인은 좌절의 늪에 빠졌고 너무 속상한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유가 결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데도 우리는 계속 속고 삽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소유한 것보다도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
1923년 시카고의 에지와트 비치 호텔에 당시 미국 최대 부호였던 9명이 자리를 같이했을 때 미국의 대표적인 신문들이 '20세기의 신화'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때는 황금 만능 시기였습니다. 그들은 돈만 번 것이 아니라 큰 회사의 사장들이었기 때문에 교육도 많이 받았고 명성도 있는 성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 표준으로 볼 때 스타이고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25년 후인 1948년에 그들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하나는 미치고 셋은 파산해서 빛에 쫓겨 도피 생활을 하다 죽었으며 둘은 출옥해서 자살 직전에 있었고 셋은 자살했습니다. 한 사람도 행복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인생의 궁극 목표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애의 기로 어디에선가 주님의 내게로 오라는 음성을 거부하고 다른 것을 목표로 상아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유명한 사람들이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비참한 최후를 마쳤거나 허무주의로 살고 있습니다.
동양 최대의 성자이고 인도인의 태양이었던 간디도 죽기 전에 자신은 괴로운 사람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부지런히 뛰어 보았지만 그것은 궁극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사람은 창녀가 되었든지 세리가 되었든지 구두닦이가 되었든지 간에 자기의 길을 또박또박 걸어갈 줄 압니다. 푯대가 있고 초점이 있고 목표가 있습니다. 우리는 목표가 있는, 인생의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5)
 
?
18세기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는 25세에 예수를 믿고, 인생관이 바뀌었습니다. 출세의 길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는 대영제국의 노예제도를 폐지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정치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30세에 영국하원의원에 당선되었고, 그 후로 오직 노예제도 폐지 운동에만 전념하였습니다. 그가 48세 되던 해, 영국의회는 노예무역폐지를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노예폐지의 비전을 세운 지 35년 만인 62세가 되던 해에 노예제도가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그는 64세에 정계에서 은퇴하였고, 그의 나이가 72세 되던 해에 대영제국 전역에서 노예해방법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예해방법이 통과된 지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오로지 노예제 폐지라는 한 가지 사명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온전히 희생하였습니다. 그는 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회고하였습니다. 나를 일평생 재촉하신 이는 주님이셨다고...
?
링컨은 어렸을 때 “노예해방”을 인생의 목표로 정하고, 이를 위해 정치계에 투신하여 여러 차례의 실패를 딛고 마침내 꿈을 이루었습니다. 간디는 어렸을 때 “인도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일생을 어려운 인도 국민을 위해 살았습니다. 제 인생의 목표는 “많은 사람을 옳은 길, 의로운 길로 인도하는 것”(단12:3)이었습니다. 앞으로의 남은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고,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기쁨과 희망과 복음(진리) 전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후일 내가 하나님 앞으로 간 후에 후손들이 나를 가리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헌신한 사람’으로 평가해주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과 복음 전파를 위해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순교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 7, 8)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
여러분은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가시렵니까? 여러분이 소망하고 있는 것은 이루어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의 본질과 핵심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아무리 교회 다니며 헌신했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만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릴 때 참된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내 자신이 인생의 주(主)가 되어 살려고 하면, 우리에게는 근심과 걱정, 두려움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가 되시고, 왕이 되셔서 우리를 통치할 때 우리의 모든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고, 사랑이 넘치는 나라입니다.(롬14:17)
 이 땅 곳곳에 하나님이 주인되어 다스리시고,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게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건설과 확장입니다
 
갈릴리공동체의 목표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복음전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열방의 모든 민족과 세계의 모든 나라가 주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할 때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하나님 나라가 건설될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시기 바랍니다.(마6:33)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눅17:21) 그리고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마6:9- 10)
아무쪼록 성도여러분 모두가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하나님 나라 건설과 확장의 목표에 헌신과 열정을 다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 기도: 사랑의 주님, 나의 달려갈 목표와 길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달려갈 길이 향방 없는 자처럼 내 달음질과 수고가 헛되지 않게 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성과 판단이 흐려져 어리석게 살지 않도록 지켜주옵소서. 날마다 내가 주님을 바라보며 적극적인 마음으로 살도록 해주소서. 목표를 향해 서두르지 말고 거기서 돌아서지도 말고 희미한 과거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슬퍼하지도 말고 숨겨진 미래를 두려워하거나 물러서지도 않고 내 몸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기쁨에 찬 마음으로 주님을 푯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해주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이 포스트를...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댓글[0]
천국, 지옥, 낙원 (2013-09-03 오후 5:05:43) http://blog.somang.net/holylove/7954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본문: 사도행전 1: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교회와 우리의 가장 큰 사명은 하나님 나라 확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꼭 죽어서만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 9, 10)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 17)

 
먼저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첫째.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이외에 다른 우상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돈, 권세, 사람(자식, 지도자) 등을 우상으로 섬기는 자는 갈 수 없고, 오직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사람만이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마10:37, 막10:15, 마6:33)

 
둘째, 하나님 나라는 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불의와 죄악이 없는 나라입니다. 악인과 죄인은 들어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6:9, 10)
하나님 나라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의로운 자만 들어가는 곳입니다(막1:15, 롬4:6-8).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돈과 장수, 성공한 자가 행복하고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가 복이 있습니다.(마5:6, 10)

 
셋째, 하나님 나라는 평강의 나라입니다.
미국의 어느 돈 많은 부자가 잭슨이라는 흑인 아주머니를 가정부로 두고 있었습니다. 이 부자는 돈 문제도 있었지만 가정 문제도 복잡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다투고 근심하여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이루고 술을 마셔야 하는 형편이었는데, 잭슨이라는 아주머니는 언제나 평안하고 찬송하며 명랑했습니다. 주인이 물어봤습니다.
“나는 이렇게 돈이 많아도 걱정이 많은데 아주머니는 남의 집에 살면서 늘 기쁘니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주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당신처럼 돈이 없으니 잃어버릴 염려 없고, 집이 없으니 불이 날까 걱정 없고, 명예가 없으니 누가 나에게 욕할까 하는 걱정이 없고, 이미 병들어 죽을 몸이니 건강 때문에 걱정할 것 없고, 이제 다시 아프면 불편한 몸 벗어버리고 하나님께로 가니 아무 걱정도 없고, 아무 소원도 없습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만 가득하게 됩니다. 주님의 평안을 누리십시오.(시29:11)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넷째, 하나님 나라는 희락의 나리입니다.
미국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던 사람이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통경찰에게 교회를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경찰은 멀리 보이는 한 교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있을 텐데, 왜 저렇게 먼 데 있는 교회를 가르쳐 주십니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경찰은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이 근처에 있는 교회들보다도 저쪽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훨씬 기쁘고 즐겁게 보였습니다. 나는 불신자이지만 그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이고 참된 교회인 것 같아서 소개한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도 은혜받은 얼굴과 은혜받지 못한 얼굴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평안하고 기쁜 환경에서 나오는 감사보다 고통과 환난 가운데서 나오는 감사가 더욱 값진 감사입니다. 설령 우리의 삶에 많은 힘겨운 문제가 있을지라도 은혜받은 백성에게는 영혼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며 우리 영혼을 즐겁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영혼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을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야겠습니다.(시40:16, 빌4:4, 살전5:16)
 
다섯째, 하나님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과 지옥에서 식사하는 풍경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음식이나 환경이 전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천국과 지옥에서 먹는 음식은 모두 같았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긴 젓가락을 쓰는 것도 같았습니다. 밥 먹는 시간이 되자 드디어 천국과 지옥의 차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지옥에서는 밥을 먹으려고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각자 자기 입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긴 젓가락 때문에 먹을 수가 없어 서로 짜증을 내며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그 긴 젓가락으로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사람을 다정하게 먹여 주면서 식사하는 것이었습니다. 보기에도 너무도 평화롭고 즐거운 식사시간이었습니다.(눅14:15)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은 사랑이 있는 곳에 함께 하십니다. 사랑이 없는 곳이 곧 지옥입니다.

 
만약 교회와 내 안에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없다면 이는 죽은 교회요 죽정이 교인입니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과연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합니까? 아니면 청년들이 세상에서 창업하듯이 목회자가 자신의 목회 사업을 위해 세워진 교회입니까? 모든 교회가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는 것이 아닙니다. 좁은 길이 있고, 넓은 길도 있습니다. 주여! 주여! 부른다고 다 구원 얻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내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3-5)

 
유명한 어거스틴의 책 가운데 ‘신의 도성’ 이라는 불후의 명작이 있습니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은 당시로 보면 절대로 멸망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도끼를 휘두르면서 벌거벗은 채로 쳐들어오는 야만인 오트족한테 로마는 함락됩니다. 아우성과 화염 속에서 거대한 로마성이 무너지는 순간에 어거스틴은 굉장한 고민을 합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이 나라가 무너지고, 저 야만인들이 점령하게 되는가? 그 때 모든 기독교인들이 고민을 합니다. 여기서 어거스틴은 유명한 역사관을 내어놓게 됩니다. ‘사람이 세운 이 세상 나라는 무너진다. 무너지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무너지는 로마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 가는 것을 그는 바라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칠흙같은 캄캄한 어두움이 있습니다. 이 어두움을 치른 후에야, 아침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관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우리는 때로 어린이들로부터 질문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디 있어요?'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저 하늘에 있단다."
"하나님 나라는 네 마음에 있단다."
이런 답을 하십니까? 그러나 그 어린 아이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을 때, 어떤 답은 거짓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1.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곳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 사상은 하나님의 지배라는 뜻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 있는 통치를 말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손에 빠져 있는데, 하나님의 지배가 임하시는 때, 사탄과 그 아래 있는 모든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사랑과 의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에덴 동산이라 할지라도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할 때, 그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일 수 없습니다. 그가 타락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사탄의 말을 들을 때, 사탄이 대신 ‘이 세상 임금’으로 되었습니다(마 4:8-10, 요 14:30). 하나님 말씀이 다스리지 않은 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담을 에덴을 떠나야 합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방주를 지었을 때, 그 말씀대로 지어진 방주는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그 방주를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까닭은 그 방주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방주는 심판이 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택정되고(삼상 16:1-13), 다윗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다윗과 그의 후손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후손에 의해 통치될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참 사람이며 또는 ‘임마누엘(하나님이 함께 계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입니다(행15:14-17).
다니엘과 세 친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그가 풀무불에 들어가도, 사자굴에 들어가도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습니다. 사자도 풀무불도 그들을 상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는 말씀으로 설교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의 임함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교회’의 주인이시며 머리가 되셨습니다. 살아계셔서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태로선, 임하지 않습니다(눅17:20, 21, 롬14:17).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 신자는, 현재, 지상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습니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 안에서 현재, 지상에 임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이 척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한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 나라는 제자들의 복음전파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눅9:1, 2)
 
여기서 부터 갈릴리 3차 전도 사역이 시작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감당할 수 있는 사명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제자들로 하여금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를 불러 모아서 세상에 파송하십니다. 그들은 당시에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2천년이 지난 오늘 돌이켜 볼 때, 그보다 값진 결단이 없습니다. 그들보다 존경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부르시고 보내신 그들의 생애에 하나님께 순종하여 나아간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열두 제자들은 세상에서 어부였습니다. 세리였습니다. 갈릴리 지역의 평범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들은 하나의 새로운 신분을 더 부여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 신분으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원인 것입니다. 로마 식민지 국가의 무엇이 아닙니다. 유대 갈릴리 지역의 어부나 세리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한 구성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특권입니다. 모세는 그 일원의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 26) 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가나안 땅에 내어 보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합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을 좇아갈 때, 그곳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채색 옷을 입고 사랑을 받는 아버지의 품으로부터 불러내어 애굽의 군대장관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고, 또 옥살이를 하게 하십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함으로 그가 가는 곳은 감옥이라 할지라도, 감옥이 변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 19- 20)

 
3.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곳에 이루어집니다.
요즈음에는 선교사를 파송할 때 보면, 일종의 형식이 있습니다. 신학교육과 목사 안수 등의 자질과 신분을 갖춥니다. 선교지의 정보를 모아 교육합니다. 선교비를 확보합니다. 선교사 파송식을 가집니다. 이런 신중한 절차를 따라서 선교사를 파송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좀 색다릅니다. 그냥 12명의 제자를 '불러모아 내어 보냅니다.' '세상에 던져버렸다!'는 표현과 같습니다.'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벌 옷을 가지지 말며'(눅9:3, 막6:8)
 
우리가 파송함을 받은 그 당시의 제자라면,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두둑하게 선교비를 주신 것도 아니요, 비자카드라도 만들어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런 보장이 없이 세상에 보내시는 예수님의 제자 파송은 요즈음 선교 관점에서 보기에는 참 너무하신다는 생각이 스쳐가지 않습니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전도자로 파송되어 길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여행 장비들이 있습니다. 여행 경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숙식을 위한 기본적인 의류나 식량, 또 험로를 대비한 지팡이 따위가 그것입니다. 특히 오늘날같이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하고 교통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당시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러한 여행에 필요한 장비들을 일체 금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그처럼 보편적으로 여행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장비들을 금하셨을까요?
 
첫째,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지팡이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지팡이는 거친 들에서 여행자를 보호하기도 하고 높은 곳을 오르는 데 큰 힘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어쩌다 넘어졌을 경우 용이하게 일어설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러한 지팡이 소지를 금하셨습니다. 복음 전도자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가 의지해야 할 것은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다윗도 내게 부족함이 없노라고 노래하였습니다.
 
둘째,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 역시 여행자에게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입니다. '양식'이 없어 배를 곯습니다. '돈' 또한 생활 필수품입니다. '주머니'란 요즈음 여행가방 정도입니다. 여기에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담습니다. '두 벌 옷' 정도는 여행하는데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필수품들을 의지하지 말라 명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보기에 일차적인 필수품이지만, 하나님 나라 측면에서 보면, 2차적인 문제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이지요. 이 모든 필수품이 되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양식'이 주린 영혼을 채우지 못합니다. '돈'으로 그 나라를 살 수 없습니다. '주머니'에 영혼의 양식을 담을 수 없습니다. '두 벌 옷'도 벌거벗은 영혼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는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채워 주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몇 번이고 망설입니다. 이름도 주시고, 이적도 주시지만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합니다. 대 선지자 예레미야의 경우도 이런 망서림이 있습니다.
‘내가 너를 복 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렘1:5- 7)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파송은 하나님나라의 일원으로 제자들을 세상에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 이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그리고 책임지십니다. 이것이 귀합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는 헤롯의 태도로 보아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능력과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힘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권세는 세상 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으로 그 능력을 시행할 권리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는 열 두 제자들의 사역은 예수님 행하시던 사역의 연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고 하나님 나라 확장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감사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 일꾼으로 부름 받아 그 일을 감당할 힘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실 때, 어두움의 권세가 떨게 됩니다.
 
예수님의 명성은 팔레스틴 전역에 퍼져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중에서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도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분봉왕 헤롯은 매우 당황했습니다. 그가 당황한 것은 일차적으로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분봉왕 헤롯은 대 헤롯의 아들로서 세례 요한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왕권의 새로운 시작이 그를 본능적으로 위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분봉왕 헤롯은 어두운 권세자의 표상적 인물입니다. 그는 에돔인으로서 당시 유대 사회의 권력을 관장하고 있던 사두개 교도였으므로 죽은자의 부활 같은 것은 전혀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통치 관할 구역인 갈릴리에서 예수의 명성이 높아가고 그를 추종하는 백성들이 많아지자 예수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갈릴리 지방에서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으며, 그의 제자들도 놀라운 일을 행하자 그 소문은 즉시 헤롯에게로 전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어두움의 권세도 떨고 있습니다.
 
워나메이커는 미국 제23대 대통령 벤자민 해리슨 정부의 내각요원으로서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며 큰 발전과 공헌을 한 사람입니다. 또한 워나메이커는 미국의 백화점을 초기에 본격적으로 운영했던 백화점 왕으로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크리스천으로서 아주 훌륭한 생활과 헌신을 한 사람입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워나메이커 체신장관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워나메이커씨, 당신은 그 큰 사업에 바쁠 뿐만 아니라 체신장관의 업무를 수행하고 또 다른 일들이 많을 터인데 어떻게 4천명의 주일학교 학생들을 다루는 주일학교 교장직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워나메이커는 정색을 하고 답변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을! 주일학교가 나의 정작 본 사업입니다. 그 외의 다른 일들은 그저 일들입니다. 나는 이미 45년 전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의 말씀을 확실히 깨닫고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본문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그런데 성령의 은사를 받고 거기에 머무르고 안주하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 23- 25)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받았어도 복음전파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면 도리어 화가 있습니다. 마25장 14- 30절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를 아시지 않습니까? 1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에 묻어 두었다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했습니다.
 
저는 방언과 예언과 환상과 치유의 역사 등을 볼 수 있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가 있다고 해서 가본 적이 있습니다. 성도가 20여명 정도되는 교회인데 성도의 대다수가 방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계시를 듣는 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이러한 성령의 능력을 맛보는 데 그치고 교회 안에 의와 평강과 희락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는 힘쓰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들도 전도에 힘쓰고 있으나 그 전도는 교인수 확장을 위해 하는 것이지 진정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비단 이 교회뿐만 아니라 많은 기존의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조차 모르고 전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역자(인간) 중심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 확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과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주인이 되거나 인간이거나 물질이나 우상이라면 하나님 나라와는 거리가 멉니다. 이런 교회로 전도한다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까? 내게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주신 목적과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능력을 통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왕으로 모신 곳으로 불신자를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확장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순절 성령의 은사를 받고 제일 처음 한 것이 의와 평강과 희락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 42- 47)
 
그리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복음전파에 힘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내 것을 희생하며 동행하고 따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누가복음 8장 2-3절을 보면,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는 ‘여인들이 자신들의 소유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겼다.’는 말을 강조합니다.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으로 치유받고 주님을 따른 여인들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들이 주의 능력으로 치유되어 자신의 소유로 주님을 섬기며, 주의 나라 확장에 기여했습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은 그냥 가만히 있는 데 이루어지 않습니다. 기도만 한다고 이루어지지 않고, 기도한 만큼 내가 희생하고 손해 볼 때 이루어집니다. 열정만 있어도 안 됩니다. 내 것을 드리는 헌신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주의 나라가 확장되는 역사를 보면, 많은 신앙인들이 물질과 명예를 버리고, 가족과 생명까지 버리며 헌신하였습니다. 내 것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제자들 중 일부, 또는 여인 중 몇 명의 헌신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은 헌신된 개개인이 하나가 되어 사역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8장에 등장하는 인물을 보면, 모두 복수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열 두 제자, 어떤 여자들, 다른 여러 여자! 예수님을 제외한 한 단어도 단수형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 이들의 삶은 참으로 열악하고 쉽지 않았습니다. 많은 여인들이 귀신이 들려서 고생하였고, 각종 질병으로 앓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사도들을 보아도, 어떤 이는 세리출신이고, 어떤 이는 어부 출신이었고, 어떤 이는 열심당원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그들의 삶이 주님께 온전히 헌신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헌신된 개개인이 하나가 될 때, 결국 주의 나라가 힘 있게 확장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주신 것은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쓰라고 주셨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내가 받은 은사와 능력을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하나님 나라 확장하는데 사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갈릴리 공동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공동체가 되고, 우리 모두가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영육간에 복주시고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 받는 성도되게 하옵소서. 갈릴리 공동체를 통하여 병든 자가 치료받게 하시고 낙심가운데 있는 자가 기쁨과 소망을 갖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이 포스트를...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댓글[0]
천국, 지옥, 낙원 (2013-09-03 오후 5:05:42) http://blog.somang.net/holylove/7953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본문: 사도행전 1: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교회와 우리의 가장 큰 사명은 하나님 나라 확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꼭 죽어서만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 9, 10)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 17)

 
먼저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첫째.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이외에 다른 우상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돈, 권세, 사람(자식, 지도자) 등을 우상으로 섬기는 자는 갈 수 없고, 오직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사람만이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마10:37, 막10:15, 마6:33)

 
둘째, 하나님 나라는 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불의와 죄악이 없는 나라입니다. 악인과 죄인은 들어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6:9, 10)
하나님 나라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의로운 자만 들어가는 곳입니다(막1:15, 롬4:6-8).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돈과 장수, 성공한 자가 행복하고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가 복이 있습니다.(마5:6, 10)

 
셋째, 하나님 나라는 평강의 나라입니다.
미국의 어느 돈 많은 부자가 잭슨이라는 흑인 아주머니를 가정부로 두고 있었습니다. 이 부자는 돈 문제도 있었지만 가정 문제도 복잡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다투고 근심하여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이루고 술을 마셔야 하는 형편이었는데, 잭슨이라는 아주머니는 언제나 평안하고 찬송하며 명랑했습니다. 주인이 물어봤습니다.
“나는 이렇게 돈이 많아도 걱정이 많은데 아주머니는 남의 집에 살면서 늘 기쁘니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주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당신처럼 돈이 없으니 잃어버릴 염려 없고, 집이 없으니 불이 날까 걱정 없고, 명예가 없으니 누가 나에게 욕할까 하는 걱정이 없고, 이미 병들어 죽을 몸이니 건강 때문에 걱정할 것 없고, 이제 다시 아프면 불편한 몸 벗어버리고 하나님께로 가니 아무 걱정도 없고, 아무 소원도 없습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만 가득하게 됩니다. 주님의 평안을 누리십시오.(시29:11)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넷째, 하나님 나라는 희락의 나리입니다.
미국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던 사람이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통경찰에게 교회를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경찰은 멀리 보이는 한 교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있을 텐데, 왜 저렇게 먼 데 있는 교회를 가르쳐 주십니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경찰은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이 근처에 있는 교회들보다도 저쪽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훨씬 기쁘고 즐겁게 보였습니다. 나는 불신자이지만 그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이고 참된 교회인 것 같아서 소개한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도 은혜받은 얼굴과 은혜받지 못한 얼굴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평안하고 기쁜 환경에서 나오는 감사보다 고통과 환난 가운데서 나오는 감사가 더욱 값진 감사입니다. 설령 우리의 삶에 많은 힘겨운 문제가 있을지라도 은혜받은 백성에게는 영혼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며 우리 영혼을 즐겁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영혼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을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야겠습니다.(시40:16, 빌4:4, 살전5:16)
 
다섯째, 하나님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과 지옥에서 식사하는 풍경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음식이나 환경이 전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천국과 지옥에서 먹는 음식은 모두 같았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긴 젓가락을 쓰는 것도 같았습니다. 밥 먹는 시간이 되자 드디어 천국과 지옥의 차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지옥에서는 밥을 먹으려고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각자 자기 입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긴 젓가락 때문에 먹을 수가 없어 서로 짜증을 내며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그 긴 젓가락으로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사람을 다정하게 먹여 주면서 식사하는 것이었습니다. 보기에도 너무도 평화롭고 즐거운 식사시간이었습니다.(눅14:15)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은 사랑이 있는 곳에 함께 하십니다. 사랑이 없는 곳이 곧 지옥입니다.

 
만약 교회와 내 안에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없다면 이는 죽은 교회요 죽정이 교인입니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과연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합니까? 아니면 청년들이 세상에서 창업하듯이 목회자가 자신의 목회 사업을 위해 세워진 교회입니까? 모든 교회가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는 것이 아닙니다. 좁은 길이 있고, 넓은 길도 있습니다. 주여! 주여! 부른다고 다 구원 얻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내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3-5)

 
유명한 어거스틴의 책 가운데 ‘신의 도성’ 이라는 불후의 명작이 있습니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은 당시로 보면 절대로 멸망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도끼를 휘두르면서 벌거벗은 채로 쳐들어오는 야만인 오트족한테 로마는 함락됩니다. 아우성과 화염 속에서 거대한 로마성이 무너지는 순간에 어거스틴은 굉장한 고민을 합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이 나라가 무너지고, 저 야만인들이 점령하게 되는가? 그 때 모든 기독교인들이 고민을 합니다. 여기서 어거스틴은 유명한 역사관을 내어놓게 됩니다. ‘사람이 세운 이 세상 나라는 무너진다. 무너지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무너지는 로마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 가는 것을 그는 바라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칠흙같은 캄캄한 어두움이 있습니다. 이 어두움을 치른 후에야, 아침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관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우리는 때로 어린이들로부터 질문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디 있어요?'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저 하늘에 있단다."
"하나님 나라는 네 마음에 있단다."
이런 답을 하십니까? 그러나 그 어린 아이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을 때, 어떤 답은 거짓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1.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곳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 사상은 하나님의 지배라는 뜻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 있는 통치를 말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손에 빠져 있는데, 하나님의 지배가 임하시는 때, 사탄과 그 아래 있는 모든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사랑과 의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에덴 동산이라 할지라도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할 때, 그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일 수 없습니다. 그가 타락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사탄의 말을 들을 때, 사탄이 대신 ‘이 세상 임금’으로 되었습니다(마 4:8-10, 요 14:30). 하나님 말씀이 다스리지 않은 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담을 에덴을 떠나야 합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방주를 지었을 때, 그 말씀대로 지어진 방주는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그 방주를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까닭은 그 방주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방주는 심판이 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택정되고(삼상 16:1-13), 다윗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다윗과 그의 후손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후손에 의해 통치될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참 사람이며 또는 ‘임마누엘(하나님이 함께 계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입니다(행15:14-17).
다니엘과 세 친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그가 풀무불에 들어가도, 사자굴에 들어가도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습니다. 사자도 풀무불도 그들을 상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는 말씀으로 설교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의 임함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교회’의 주인이시며 머리가 되셨습니다. 살아계셔서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태로선, 임하지 않습니다(눅17:20, 21, 롬14:17).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 신자는, 현재, 지상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습니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 안에서 현재, 지상에 임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이 척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한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 나라는 제자들의 복음전파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눅9:1, 2)
 
여기서 부터 갈릴리 3차 전도 사역이 시작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감당할 수 있는 사명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제자들로 하여금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를 불러 모아서 세상에 파송하십니다. 그들은 당시에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2천년이 지난 오늘 돌이켜 볼 때, 그보다 값진 결단이 없습니다. 그들보다 존경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부르시고 보내신 그들의 생애에 하나님께 순종하여 나아간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열두 제자들은 세상에서 어부였습니다. 세리였습니다. 갈릴리 지역의 평범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들은 하나의 새로운 신분을 더 부여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 신분으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원인 것입니다. 로마 식민지 국가의 무엇이 아닙니다. 유대 갈릴리 지역의 어부나 세리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한 구성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특권입니다. 모세는 그 일원의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 26) 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가나안 땅에 내어 보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합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을 좇아갈 때, 그곳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채색 옷을 입고 사랑을 받는 아버지의 품으로부터 불러내어 애굽의 군대장관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고, 또 옥살이를 하게 하십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함으로 그가 가는 곳은 감옥이라 할지라도, 감옥이 변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 19- 20)

 
3.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곳에 이루어집니다.
요즈음에는 선교사를 파송할 때 보면, 일종의 형식이 있습니다. 신학교육과 목사 안수 등의 자질과 신분을 갖춥니다. 선교지의 정보를 모아 교육합니다. 선교비를 확보합니다. 선교사 파송식을 가집니다. 이런 신중한 절차를 따라서 선교사를 파송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좀 색다릅니다. 그냥 12명의 제자를 '불러모아 내어 보냅니다.' '세상에 던져버렸다!'는 표현과 같습니다.'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벌 옷을 가지지 말며'(눅9:3, 막6:8)
 
우리가 파송함을 받은 그 당시의 제자라면,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두둑하게 선교비를 주신 것도 아니요, 비자카드라도 만들어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런 보장이 없이 세상에 보내시는 예수님의 제자 파송은 요즈음 선교 관점에서 보기에는 참 너무하신다는 생각이 스쳐가지 않습니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전도자로 파송되어 길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여행 장비들이 있습니다. 여행 경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숙식을 위한 기본적인 의류나 식량, 또 험로를 대비한 지팡이 따위가 그것입니다. 특히 오늘날같이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하고 교통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당시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러한 여행에 필요한 장비들을 일체 금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그처럼 보편적으로 여행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장비들을 금하셨을까요?
 
첫째,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지팡이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지팡이는 거친 들에서 여행자를 보호하기도 하고 높은 곳을 오르는 데 큰 힘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어쩌다 넘어졌을 경우 용이하게 일어설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러한 지팡이 소지를 금하셨습니다. 복음 전도자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가 의지해야 할 것은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다윗도 내게 부족함이 없노라고 노래하였습니다.
 
둘째,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 역시 여행자에게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입니다. '양식'이 없어 배를 곯습니다. '돈' 또한 생활 필수품입니다. '주머니'란 요즈음 여행가방 정도입니다. 여기에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담습니다. '두 벌 옷' 정도는 여행하는데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필수품들을 의지하지 말라 명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보기에 일차적인 필수품이지만, 하나님 나라 측면에서 보면, 2차적인 문제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이지요. 이 모든 필수품이 되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양식'이 주린 영혼을 채우지 못합니다. '돈'으로 그 나라를 살 수 없습니다. '주머니'에 영혼의 양식을 담을 수 없습니다. '두 벌 옷'도 벌거벗은 영혼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는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채워 주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몇 번이고 망설입니다. 이름도 주시고, 이적도 주시지만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합니다. 대 선지자 예레미야의 경우도 이런 망서림이 있습니다.
‘내가 너를 복 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렘1:5- 7)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파송은 하나님나라의 일원으로 제자들을 세상에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 이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그리고 책임지십니다. 이것이 귀합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는 헤롯의 태도로 보아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능력과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힘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권세는 세상 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으로 그 능력을 시행할 권리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는 열 두 제자들의 사역은 예수님 행하시던 사역의 연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고 하나님 나라 확장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감사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 일꾼으로 부름 받아 그 일을 감당할 힘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실 때, 어두움의 권세가 떨게 됩니다.
 
예수님의 명성은 팔레스틴 전역에 퍼져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중에서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도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분봉왕 헤롯은 매우 당황했습니다. 그가 당황한 것은 일차적으로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분봉왕 헤롯은 대 헤롯의 아들로서 세례 요한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왕권의 새로운 시작이 그를 본능적으로 위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분봉왕 헤롯은 어두운 권세자의 표상적 인물입니다. 그는 에돔인으로서 당시 유대 사회의 권력을 관장하고 있던 사두개 교도였으므로 죽은자의 부활 같은 것은 전혀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통치 관할 구역인 갈릴리에서 예수의 명성이 높아가고 그를 추종하는 백성들이 많아지자 예수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갈릴리 지방에서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으며, 그의 제자들도 놀라운 일을 행하자 그 소문은 즉시 헤롯에게로 전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어두움의 권세도 떨고 있습니다.
 
워나메이커는 미국 제23대 대통령 벤자민 해리슨 정부의 내각요원으로서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며 큰 발전과 공헌을 한 사람입니다. 또한 워나메이커는 미국의 백화점을 초기에 본격적으로 운영했던 백화점 왕으로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크리스천으로서 아주 훌륭한 생활과 헌신을 한 사람입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워나메이커 체신장관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워나메이커씨, 당신은 그 큰 사업에 바쁠 뿐만 아니라 체신장관의 업무를 수행하고 또 다른 일들이 많을 터인데 어떻게 4천명의 주일학교 학생들을 다루는 주일학교 교장직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워나메이커는 정색을 하고 답변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을! 주일학교가 나의 정작 본 사업입니다. 그 외의 다른 일들은 그저 일들입니다. 나는 이미 45년 전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의 말씀을 확실히 깨닫고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본문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그런데 성령의 은사를 받고 거기에 머무르고 안주하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 23- 25)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받았어도 복음전파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면 도리어 화가 있습니다. 마25장 14- 30절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를 아시지 않습니까? 1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에 묻어 두었다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했습니다.
 
저는 방언과 예언과 환상과 치유의 역사 등을 볼 수 있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가 있다고 해서 가본 적이 있습니다. 성도가 20여명 정도되는 교회인데 성도의 대다수가 방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계시를 듣는 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이러한 성령의 능력을 맛보는 데 그치고 교회 안에 의와 평강과 희락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는 힘쓰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들도 전도에 힘쓰고 있으나 그 전도는 교인수 확장을 위해 하는 것이지 진정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비단 이 교회뿐만 아니라 많은 기존의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조차 모르고 전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역자(인간) 중심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 확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과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주인이 되거나 인간이거나 물질이나 우상이라면 하나님 나라와는 거리가 멉니다. 이런 교회로 전도한다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까? 내게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주신 목적과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능력을 통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왕으로 모신 곳으로 불신자를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확장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순절 성령의 은사를 받고 제일 처음 한 것이 의와 평강과 희락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 42- 47)
 
그리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복음전파에 힘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내 것을 희생하며 동행하고 따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누가복음 8장 2-3절을 보면,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는 ‘여인들이 자신들의 소유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겼다.’는 말을 강조합니다.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으로 치유받고 주님을 따른 여인들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들이 주의 능력으로 치유되어 자신의 소유로 주님을 섬기며, 주의 나라 확장에 기여했습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은 그냥 가만히 있는 데 이루어지 않습니다. 기도만 한다고 이루어지지 않고, 기도한 만큼 내가 희생하고 손해 볼 때 이루어집니다. 열정만 있어도 안 됩니다. 내 것을 드리는 헌신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주의 나라가 확장되는 역사를 보면, 많은 신앙인들이 물질과 명예를 버리고, 가족과 생명까지 버리며 헌신하였습니다. 내 것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제자들 중 일부, 또는 여인 중 몇 명의 헌신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은 헌신된 개개인이 하나가 되어 사역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8장에 등장하는 인물을 보면, 모두 복수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열 두 제자, 어떤 여자들, 다른 여러 여자! 예수님을 제외한 한 단어도 단수형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 이들의 삶은 참으로 열악하고 쉽지 않았습니다. 많은 여인들이 귀신이 들려서 고생하였고, 각종 질병으로 앓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사도들을 보아도, 어떤 이는 세리출신이고, 어떤 이는 어부 출신이었고, 어떤 이는 열심당원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그들의 삶이 주님께 온전히 헌신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헌신된 개개인이 하나가 될 때, 결국 주의 나라가 힘 있게 확장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주신 것은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쓰라고 주셨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내가 받은 은사와 능력을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하나님 나라 확장하는데 사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갈릴리 공동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공동체가 되고, 우리 모두가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영육간에 복주시고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 받는 성도되게 하옵소서. 갈릴리 공동체를 통하여 병든 자가 치료받게 하시고 낙심가운데 있는 자가 기쁨과 소망을 갖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이 포스트를...
지옥은 있습니다. 댓글[0]
천국, 지옥, 낙원 (2012-05-19 오전 9:07:12) http://blog.somang.net/holylove/7360
지옥은 있습니다.
 
본문: 요한계시록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2012년 5월 18일 오후 방송된 SBS TV 궁금한 이야기 Y에서는 최진실 지옥의 소리에 대해 방송했습니다. 방송내용은 이러합니다
 제작진에게 故 최진실의 지인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2주 전에 영상파일을 받았다"며 "몇 초 안되지만 섬뜩합니다. 정말 최진실 같았다"고 말하며 음성 파일을 들려줬습니다. 그 음성은 최진실 지옥의 소리로 불리는 파일로 "나 좀 꺼내주세요. 자살하지 마세요"라는 절규가 담긴 끔찍한 소리가 담겨있습니다. 제작진은 이 파일의 출처를 찾아냈고 만든 이는 한 교회의 목사였습니다. 그 단체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몇몇 사람들이 지옥의 문을 열 수 있는데 내가 지옥문을 통해 최진실을 봤다"며 "거기에서 최진실이 당하고 있는 끔찍한 벌을 녹음했다"고 말했습니다. 목사는 "김수환 추기경도 보고 김정일, 김대중 대통령도 지옥에 있다"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놨습니다. (중략) 나름대로 故 최진실이 지옥에서 전한 메시지가 담긴 음성 파일에 대해 실체를 파헤쳤다고 합니다.


  저는 그 목사가 이야기하는 음성 파일 등의 진실여부는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지옥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지옥은 있습니다. 지옥은 하나님도 없고 사랑도 기쁨도 없는 밤낮 괴로움을 받는 곳입니다. 지옥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들어갑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범하는 죄 중 가장 크고 두려운 죄가 불신앙의 죄입니다. 회개하고 예수 믿으십시오. 그리고 지옥은 어떤 사람이 갑니까?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자살은 살인과 같은 행동입니다. 결코 자살하면 안됩니다. 죄의 결과는 실로 무섭습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게 됨을 면하라’(히3:1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희랍신화에 보면 지옥에서 고생하는 인물 중에 탄타로스와 시지프스가 제일 유명합니다. 부르기아의 왕이었던 탄타로스는 무릎까지 잠기는 물속에서 있는데 바로 코 끝에는 먹음직스런 열매가 달린 나무가지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탄타로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허리를 굽히면 물은 금새 땅 밑으로 빨려 들어가고 과실을 따먹고자 손을 뻗치면 나무 가지는 바람에 날려서 높이 올라가고 맙니다. 그래서 탄타로스는 과실과 물을 눈앞에 보면서도 영원히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려야만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의 왕으로서 알베르 까뮤의 소설에서 부조리의 영웅으로 찬양 받은 시지프스는 가파른 비탈길에서 커다란 바위를 밀어 올리는데 힘을 다하여 꼭대기까지 밀고 올라가면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져 버립니다. 즉 그는 영원한 노역에 종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지옥의 무한한 고통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지옥에 관해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9: 43- 47)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2:4)
(생략)


 그러면 교회만 다니면 다 천국에 갑니까? 아닙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 22)
 믿는다고 말하면서 행함이 없고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이런 사람은 천국과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2, 어린 아이와 같아야 합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3. 예복과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마22:11- 13)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마25:10)


4. 회개해야 합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3)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엡5:5)
 사람들은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지옥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지옥에 가면 절대 안됩니다. 지옥에 가지 아니하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주십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34:18)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7)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9-11)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행8:22)


 저는 이 말씀을 전하면서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지옥이 있고, 많은 불신자들이 지옥에 간다고 알고 믿으면서도 그들을 구하려고 복음 전파에 힘쓰지 아니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 기도와 전도하기를 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5: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2-5)
 
* 기도: 참회의 눈물을 아름답게 보시는 주님, 우리에게 진실로 회개하는 마음을 주셔서 우리의 죄를 애통해 하고 비천함을 고백하게 하소서. 영육 간에 병든 것이 없게 지켜 주시고 회개할 것이 있을 때 미루는 잘못을 범하지 않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주님의 사랑의 매를 감사합니다. 사랑의 매를 맞으면서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게 도와주옵소서. 항상 나의 마음이 영적으로 민감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과 임재를 깨닫게 하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진실한 신자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이 포스트를...
지옥 댓글[0]
천국, 지옥, 낙원 (2012-03-01 오후 1:22:42) http://blog.somang.net/holylove/7250

 방공호와 지옥

 

황해도 봉산에 김기봉이라는 여집사가 있었는데 6.25때 인민군들에게 잡혀 예수를 믿겠다고 해서 방공호에 갇혔다. 그런데 방공호 안에는 물이 있어서 무릎에까지 차고 높이는 그의 키보다 낮아서 일어설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하루종일 허리도 못 편 채 하루를 보냈다. 저녁때가 되자 방공호에서 나오라고 하더니 기분이 어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 집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세상에 방공호의 하루 생활도 이렇게 고통스러운 데 지옥생활이야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느꼈소. 그러니 앞으로는 예수를 더 잘 믿고 천국에 가야겠소." 신앙을 포기하라고 방공호에 보냈는데 오히려 더 좋아진 믿음으로 방공호를 나왔던 것이다.

 

▣ 지옥의 고통

 

희랍신화에 보면 지옥에서 고생하는 인물 중에 탄타로스와 시지프스가 제일 유명하다. 부르기아의 왕이었던 탄타로스는 무릎까지 잠기는 물속에서 있는데 바로 코 끝에는 먹음직스런 열매가 달린 나무가지가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탄타로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허리를 굽히면 물은 금새 땅 밑으로 빨려 들어가고 과실을 따먹고자 손을 뻗치면 나무 가지는 바람에 날려서 높이 올라가고 만다. 그래서 탄타로스는 과실과 물을 눈앞에 보면서도 영원히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려야만했다. 그리고 고린도의 왕으로서 알베르 까뮤의 소설에서 부조리의 영웅으로 찬양 받은 시지프스는 가파른 비탈길에서 커다란 바위를 밀어 올리는데 힘을 다하여 꼭대기까지 밀고 올라가면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져 버린다. 즉 그는 영원한 노역에 종사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지옥의 무한한 고통을 잘 말해 주고 있다.

 

▣ 나에게 말할 필요 없다

 

영국 무신론 클럽의 거두인 프란시스 뉴포트경(Sir Francis Newport)은 임종시에 주위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그 분이 계시고, 화난 그 분 앞에 서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으니까. 지옥이 없다고도 하지 말라. 벌써 네 영혼이 그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으니까. 가엾은 사람들아. 나에게 희망이 남아있다고 말하는 것을 그만두어라! 왜냐하면 나는 영원히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 지옥

 

현대인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단어 중에 하나가 바로 지옥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옥에 대해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고 예수님께서도 적어도 18번 이상 지옥에 대해 언급하셨으며, 어떤 경우에는 상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지옥을 거부하고 지옥이라는 말 자체까지 싫어하는 이유는 지옥의 존재를 마음속에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천국보다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이 더욱 강하게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지옥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더욱 집요하게 지옥의 실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무나 끔찍한 곳이기에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시면서 까지 지옥문 입구를 막고 서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세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오늘만이 중요하지 내일이 무슨 소용이냐는 식으로 삽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부인하고 잊으려해도 죽음이 다가오듯이 죽음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현대인들이 유치하다고 말하는 지옥의 실상을 성경을 통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지옥은 첫째, 마귀와 저주받은 자가 함께 거하는 영원한 불 속(마25:41)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사느냐에 따라 천국처럼 살 수도 있고 지옥처럼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옥은 마귀, 저주받은 사람, 보기 싫은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있어야 한다니, 이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둘째, 지옥은 끝없는 고통을 당하는 곳입니다.(계19:20) 감기로 며칠만 앓아도 지겨운데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하니 얼마나 지긋지긋하겠습니까? 또한 지옥은 산 채로 가는 곳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분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셋째, 끔찍한 형벌이 있는 곳입니다.(마15:29-30) 그래서 예수님은 눈이나 팔이 범죄하거든 그것을 떼어내고라도 천국에 가는 편이 지옥 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해 죽으신 구세주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시간 당신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옥은 너무 고통스러운 곳이니 제발 들어가지 말아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 성공적인 지옥행 생각해보면, 요즘 특히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죽어서 성공적으로 지옥에 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서울의 8,000여개 교회를 성공적으로 피해 다닐 때에야 비로소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남산에 올라가서 붉은 십자가를 보고도 "나는 안봤어, 나는 안봤어"라는 말을 80년 동안 성공적으로 해야 됩니다. 또 한국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인구의 1/4이나 되어서, 어디를 가더라도 예수 믿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만나서 전도를 받아도 "나는 안들었어, 나는 안들었어" 그래야만 이러한 이야기가 가능해 집니다. 라디오를 틀더라도 어쩌다가 한번씩 잡혀지는 기독교방송과 극동방송을 무시해야만 합니다. 길을 가다가도 누군가가 손에 무엇을 집어 주면 "이딴 것 안봐"라고 해야 됩니다. 또 전도집회에 초청받더라도 "안가, 절대로 못가. 죽여봐라, 내가 가나"라고 해야만이 비로소 무사히 지옥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울에 살면서 70-80세가 되기까지 예수를 못믿고 죽는다는 것은 굉장한 순발력을 갖추었다는 것이 됩니다.

 

▣ 예수 없는 곳이 지옥

 

두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환경에서 학교를 다닌 두 여자는 결혼 조건이 서로 달랐습니다. 한 여자는 생활 능력이 있고 학벌이 좋고 가정이 좋은 건강하고 성실한 남성을 원했습니다. 결혼 조건 가운데 신앙이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신앙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예수를 잘 믿던 사람인데 결혼 조건으로는 신앙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또 찬 여자는 신앙이 없는 사람과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7,8년이 지난 후에 저는 결혼해서 살고 있는 두 여자의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한 사람은 아닌게 아니라 사장 아들과 결혼해서 호화 주택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자가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문을 들어서니 정원은 황폐할 대로 황폐했습니다. 현관에 들어가 보니 신발들이 흙투성이가 된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아름답던 얼굴은 어디로 가고 기름기가 낀 뚱뚱한 여자로 변해 버렸습니다. 옛날의 이미지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방안에 들어갔더니 환경 정리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아주 지저분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화장대뿐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외국의 상표가 붙은 화장품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책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옵니다. 응접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책은 고작해야 3류 주간지뿐이었습니다. 그녀가 하는 이야기도 전부 죽겠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좋아서 결혼했던 남편은 신앙도 없고 도덕도 없는 무식하 고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서 미치든지 자살을 하든지 이혼을 하든지 해야겠다고 했습니다. 그것 이 바로 지옥입니다. 얼마 후에 저는 신앙이 없는 남자와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던 여자의 집을 가 보았는데 그녀는 전세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대문에서 나왔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그녀는 성모 마리아와 같았습니다. 살도 찌지 않고 너무나 밝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청초하고 아름다왔습니다. 현관에 들어가 보니 신발도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환경 정리도 잘되어 있었습니다. 정원에는 청포도를 심어 놓았습니다. 한 잔밖에 안 되는 마루에 성화 액자도 붙어 있었습니다. 화장대 위에 는 화장품이 몇 개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성경을 비롯해 여러 가지 책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감사가 넘쳤습니다. 정말 축복해 주고 싶은 가정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 민족의 미래의 운명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은 경제적으로는 우리보다 부유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지옥입니다. 예수가 없는 나라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롬14:17∼20)

 

▣ 지옥이 있는 곳

 

한 설교자에게 어떤 사람이 다가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도대체 지옥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자 그 설교자는 그 사람에게 아주 적절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지옥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 없이 계속 걸어가다가 당신의 인생 맨 끝에 도달하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였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없는 그 결과는 심판 받는 것뿐입니다.

/이동원 목사

 

▣ 성철스님의 마지막 고백

 

인간의 공로 사상 중에서 최고로 잘 정립된 사상이 불교입니다. 일전에 온 매스컴이 떠들썩하게 보도한 성철 스님이 있습니다. 그분의 일대기를 보면 한 마디로 대단한 고행을 한 사람입니다. 결혼 직후 처자식을 버리고 집을 떠나서 그 이후로 부모가 찾아와도 수행에 방해된다고 만나지를 않았습니다. 기거하는 곳에 철조망을 쳐놓고 십 년 동안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십육 년 동안 솔잎가루와 쌀가루만 먹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게 가능한 얘긴지 모르겠는데 팔 년 동안 장좌불와, 눕자 않고 앉아서 잤다고 합니다. 이런 식의 수양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행을 쌓고도 심령과 양심에 평안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성철 스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열반송이라는 게 있습니다. 제가 평이한 말로 풀어서 한 번 소개해보겠습니다. "나는 한평생 무수한 사람을 속였으니 그 죄업이 하늘에 가득 차 수미산보다 더하다. 산채로 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니 한 덩이 불덩이 푸른 산에 걸렸있다." 요약하면 한평생 동안에 무지무지하게 많은 사람을 속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업이 하늘에 가득 차 수미산보다 더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산채로 지옥에 떨어지 겠다는 것입니다...

 

▣ 일과 지옥

 

본문: 살전4:11 * 찬송:358장

 "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어떤 사람이 죽은 지 며칠 후 눈을 떠보니 그곳은 천국이었습니다. 한없이 넓고 푹신한 곳이었지요. 그는 당연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하여 평안한 자리에서 며칠 푹 쉬었습니다. 그곳이 그는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출근 하라고 아침 일찍 깨우는 아내도 없었고, 상사의 잔소리도 물론 없었습니다. 머리를 싸매고 매달려야 할 일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인이 한시라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대기하고 있다가 시중을 들어주었습니다. 밥을 먹는 것도 손끝하나 까딱할 필요도 없이 그 하인이 먹여 주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목욕을 할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안한 생활도 며칠 지나지 않아 싫증나게 되었습니다. 도무지 자신이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일이 없으니 지겹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인에게 말했습니다. 「내 손으로 무엇이든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그러나 하인은 그의 그러한 청을 한 마디로 거절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당신이 원하는 것은 모두 해결되지만 단 하나, 당신이 직접 하는 것만은 금지되어 있습니다.」그 말에 그는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그렇다면 차라리 지옥이 낫겠네. 이렇게 심심해서 대체 어떻게 살란 말인가?」하인이 그 소리를 듣고 다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지금껏 여기가 천국인 줄 아셨나요? 여기가 바로 지옥입니다.」 일을 하지 않고 편안히 쉰다는 것, 그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쉬는 것도 일을 하는 가운데 쉬어야지 의미가 있는 것이지 마냥 쉰다고만 해서 그게 좋기만 하겠습니까?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하지 못하는 것, 딴게 지옥이 아니라, 그게 바로 지옥입니다. 바꿔 말하면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바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인 셈이지요(전 9:10)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잠21:25) * 기도: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하시고, 충성스럽게 힘을 다하여 수행하는 저희 가족들이 되게 하옵소서.

/한태완(가정 예배 중에서)

 

▣ 지옥은 죄의 열매 거두는 곳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지옥은 분리의 장소입니다. 지옥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축복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된 곳을 의미합니다. 지옥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사랑하는 자들로부터 영원히 분리된 곳입니다. 지옥은 고통의 장소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고통을 받지만 지옥에서 받는 고통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옥은 그 어떤 곳보다 가장 깊은 고통의 장소입니다. 어떤 분은 아마도 『지옥에는 문자 그대로 불이 있는 곳입니까』라고 질문할 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가장 적당한 용어로 말씀하시기를 「불붙은 지옥」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지옥은 영원한 고통의 장소입니다. 지옥의 고통은 영원하고 끝이없는 고통입니다. 지옥에는 소망이라곤 전혀 없습니다. 고통, 고통, 고통이 계속되지만 그것을 피할 소망이란 전혀 없는 곳입니다. 영원히 계속되는 고통이 있는 곳입니다. 영원이란 길이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백두산만한 화강암 돌산이 있는데 독수리 한마리가 백년에 한 번씩 그 날개 끝으로 살짝 건드리고 가곤 하는데 그 돌산이 다 달아 없어지려면 몇 억만 년이나 걸릴까요. 그러나 그 돌산이 다 달아 없어져도 영원에 비하면 시작밖에 안됩니다. 지옥은 죄의 열매를 거두는 곳입니다.『그들이 슬피울며 이를 가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죄악된 생활을 한 것에 대해서 열매를 거두면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아버지한테 이를 갈며 부르짖기를 『아버지, 아버지가 나를 여기 오게했어! 교회갈 시간이 없다고 했잖아. 예수님을 제쳐놓고 평생 살았잖아. 나는 아버지를 따라서 죄를 지으며 살다가 결국 아버지 때문에 이 지옥으로 왔어』하며 원망할 것입니다. 어떤 딸은 어머니를 향해 이를 갈며 부르짖기를 『엄마가 나를 여기 오게했어! 엄마는 모든 시간을 세상만 위해 써 버렸어.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전혀 시간을 안 드렸잖아. 나는 엄마의 뒤를 따르다가 엄마 때문에 이곳 까지 왔어!』하며 원망할 것입니다. 지옥은 기억나는 장소입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지옥가는 사람이 있다면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생각날 것입니다.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는 말을 들었던 것도 생각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때는 늦은 때입니다. 영원히 기억하며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그럼 누가 지옥에 갑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리스도를 거절한 사람들이 지옥에 갑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를 짖밟는 죄가 제일 큰 죄입니다. 혹시 『나는 술도 안마셨고 저주 하지도 않았고 간음죄도 안지었어』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기를 거절했다면 바로 지옥갈 죄인입니다.『나는 세상에서 너무 바쁘게 사느라고 예수 믿을 시간이 없었습니다』라고 핑계댈지 모르지만 죽음의 시간은 올 것이고 구원의 유일한 길을 거절했기 때문에 지옥에서 깨어날 것입니다.

/김홍도 목사

 

▣ 목사님 혀, 성도 귀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갔다. 안내하는 천사를 따라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한 곳에 이르니 ‘혀’가 수북이 쌓여 있더란다. 깜짝 놀라 천사에게 물었다. “아니, 천국에 웬 입들인가요?” “이것들은 모두 목사님들의 혀입니다” 두근거리는 가슴, 의아한 마음을 안고 다른 한 곳에 이르니 이번에는 ‘귀’만 수북이 쌓여있었다. 재차 너무 놀라 묻지도 못하는 그에게 천사가 한 말이다. “이것들은 모두 성도들의 귀입니다. 목사님들은 좋은 말만 했기에 혀만, 성도들은 좋은 말만 들었기에 귀만 천국에 온 것입니다” 다음날 그 사람은 천사의 안내로 지옥 구경을 갔더랍니다. 천사가 보여 주는 곳을 보니 피가 줄줄 흐르는 사람의 혀가 오징어를 철사에 꿰어 말리듯 주렁주렁 수없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너무너무 끔찍하여 고개를 돌리는 그에게 천사가 한 말입니다. “가지각색으로 죄를 진 혀들입니다. 설명이 필요없겠지요? 다른 곳으로 가실까요?” “아-아니요!” /김우영 목사 ▣ 지옥여행 천국에 있던 어떤 사나이가 어느 날 지옥이 궁금해서 지옥여행을 떠났다. 가서 보니 듣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웬 지옥에서 저렇게 호의호식하며 신나게 즐기고 놀고 있을 수가 있는가. 그래서 그 사나이는 당장 지옥에 이민을 신청했다. 그리고 기대를 갖고 지옥에 이민을 갔다. 그런데 가서 보니 전번에 본 것과는 또 딴판이었다. 그래서 그 사나이는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왜 전번에 여행왔을 때와 이렇게 다른가” 안내자가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그때는 관광코스였다” 우리나라가 싫다고 이 땅을 떠났던 우리 이웃들이 많다. 다른 나라는 모두 이 땅보다 좋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만세를 목청껏 외치고 있다. 내 것이 최고다. 왜냐 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 자궁 속 대화

 

엄마의 자궁 안에 있는 쌍둥이가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동생: "나는 저 밖에도 새로운 삶이 있다고 생각해"오빠: "말도 안돼! 절대 그렇지 않아. 우리에게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것은 탯줄 뿐이야. 탯줄을 끊고 어떻게 살 수 있어? 여기가 전부라니까. 우리는 우리를 먹여주고 살려주는 탯줄만 잘 붙들고 있으면 여기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니까"동생: "캄캄함 곳보다 더 좋은 곳이 분명히 있을거야. 마음껏 움직일 수 있고 환한 빛을 볼 수 있는 곳 말이야. 잘 들어봐 저 밖에서 들리는 웃음소리를... 나는 분명히 엄마가 있다고 생각해."오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엄마를 한번도 본적이 없어. 보지 않은 것을 어떻게 믿어? 딴 생각 말고 여기에 만족하라구."동생: "아니야,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저 밖에 새로운 삶이 있어. 아름답고 행복한 곳,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곳...난 저곳으로 곧 나갈꺼야"결국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동생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질려 버린 오빠는 동생의 말을 무시하고 그냥 입을 꾹 다물어 버리고 맙니다.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

 

▣ 천당과 지옥

 

어떤 사람이 아버지에게 닭을 잡아 극진히 대접하였다. 이 닭을 어디서 구했느냐고 아버지가 묻자, 아들은 아버지,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시고 어서 많이 잡수시기나 하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또 한 사람은 밀가루를 빻는 방아꾼이었는데, 왕이 나라 안에 있는 방아꾼을 소집한다는 포고령을 내려, 아버지에게 자기 대신 방앗간을 돌보게 하고 왕이 있는 궁성으로 갔다. 여러분들은 이들 두 아들 가운데 누가 천국으로 가고 누가 지옥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두 번째 사람은 왕이 강제로 소집한 사람들을 혹사하고 매질하고 좋은 음식도 주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아버지 대신 자기가 갔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죽어서 천국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닭을 잡아 드린 사나이는 아버지가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지옥에 갔다. 부모에게 정성을 다해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일을 하게 하는 편이 낫다. ▣ 천국과 지옥 이 세상에서 천국과 가장 흡사한 것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자녀가 주님과 서로를 위해서 평화와 사랑 가운데 함께 살고 있는 가정입니다. 이 세상에서 지옥과 가장 흡사한 것은 부모들이 싸우고 말다툼하며 자녀들을 악과 악한 세력에 내버려 두는, 그리고 죄와 부정으로 손상된 경건치 못한 가정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고 완전한 사회구성 단위를 가정으로 만든 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가정이 있기에 나라와 문명 그리고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가정들, 즉 먼저 우리나라의 모든 부모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는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퇴보해 갈 것입니다.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매일 성화되는 삶을 보여주는 그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생동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천국입니까, 아니면 지옥입니까. 한번 점검해보십시오.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천국과 지옥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임종시에 "나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버림을 받았구나. 의사 선생, 내 생명을 6개월 연장시켜 주면 내 재산의 절반을 주겠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죤 뉴우튼은 노예 상인이었으나 후에 예수 믿고 82세까지 살다가 숨을 거두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는 지금 하나님 나라로 간다. 그러나 아마 내가 하나님 나라로 가면 세 번 놀랄 것이다. 처음엔 전혀 하나님 나라에 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고 두 번째는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 가면 만나리라고 기대했던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고, 세 번째는 노예상인인 죤 뉴으튼 내가 그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듣고 깊이 묵상하며 삶의 지혜로 삼자.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며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11:9)

 

▣ 돈과 지옥

 

“어떻게 하면 우리가 돈 때문에 지옥에 빠져 들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람은 돈을 벌만큼 다 벌어서, 할 수 있는 만큼 다 저축해 놓고, 나누어 줄 수 있는 만큼 다 나누어 주면 된다. 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더 많이 성장할 것이고, 하늘에 더 많은 보화를 쌓아놓게 될 것이다. 선한 일을 하되,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하되, 최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때까지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이것이 요한 웨슬레의 물질관이다. 가슴을 때리는 귀한 말씀이다. 움켜쥔 돈은 돈이 아니다. 돈은 남을 위하여 베풀 때 빛이 난다. 웨슬레는 88세에 소천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 스스로 택한 지옥

 

누군가를 미워하고, 미워하다 못해 증오하고, 그를 죽여버리고 싶다못해, 그냥 저절로, 내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그 사람이 고통스러운 병에 걸려 천천히 죽어가기를 바랐던, 그러면 나는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그를 앞에 두고 두 눈 똑바로 뜨고 빙긋이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리라, 이를 악물던 그런 황폐한 날들이 내게도 있었다. 증오가 사랑보다 강렬한 것을 알게 되고, 미움 앞에서 사랑은 얼마나 무력하게 사위어가는지 알게 되었던 그런 날들이 내게도 있었다. 그를 파괴하고 싶은 욕망이 결국 나 자신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의 다름 아니었다는 것도 모르던 그런 날들이…. 다시 신앙을 찾았을 때 나는 기도했다. “다시 돌아왔지만 그 사람을 용서하라는 말일랑은 하지 마세요. 설사 그것 때문에 지옥에 간다 해도, 물론 지옥에 가는 건 무섭지만, 그래도 지금 나는 그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 말만은 내게 하지 마세요. 하나님… 다른 건 다 돼도 그것만은 안 됩니다.” 당장 그를 용서하라는 계시를 받은 것도 아닌데 나는 성당에 앉아 안돼요, 안돼요 하며 엉엉 울었다. 사실 지옥은 누가 우리를 억지로 보내버리는 그런 곳이 아니었나 보다. 곁에 두고 그를 증오하던 마음이, 사랑이 미움 앞에서 무력하게 사라지던 걸 속수무책 바라보아야 했던 그 시절이, 내 스스로 걸어 들어간 지옥이었을 뿐.

/공지영 <수도원 기행>에서

 

▣ 엄숙한 하나님의 심판

 

 ‘로댕’하면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조각상이 얼른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덕수궁에서 열렸던 그의 작품전에 가서 문제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단테의 「신곡」 중에 지옥편을 소재로 해서 지옥문 위에 만들어진 조각품이 바로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 작품을 보며 제목을 누가 붙였는지는 모르지만 지옥문 위에 붙여진 글귀로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지옥문 앞에까지 갔다면 이미 끝난 것입니다. 지옥문에서 무슨 생각을 할 시간이 있으며 무슨 생각이 필요하겠습니까? 때가 너무 늦습니다. 그 작품을 감상하면서 약간의 모순을 느꼈지만 그것대로 우리에게 상당한 의미를 부여해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나,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 다가올 최후의 심판에 대해 마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우리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깊이 머리를 숙이고 손으로 턱을 고이고 조용히 겸손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 그런 곳이 있단 말인가?’, ‘내가 비록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니지만 그곳에 가지 않는다는 확신이 나에게 있는 것일까?’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요, 또한 엄숙한 과제입니다.- 「문밖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

/ 옥한흠

 

▣ 자기 중심은 지옥의 근원

 

자기 중심이라는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현상이지만 이것은 지옥의 수 많은 재앙을 가져오는 근본 원인입니다. 자기 중심에서 자기 입장이 일어나며 체면이 일어나며 비교의식이 일어납니다. 자기 입장에서 서운함, 상처, 억울함, 고집 등이 일어나며 체면에서 외식, 위선, 분노, 등이 일어나며 비교의식에서 판단, 열등감, 교만 등 많은 악들이 일어납니다.

항상 자기를 의식하는 이들은 무거운 쇠사슬을 온 몸에 묶여 끌려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람과 환경만을 의식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기 중심의 삶은 우리의 영혼을 질식하게 하고 마귀로부터 채찍질을 당하는 삶과 같은 것입니다.

자기를 내려놓는 것은 해방입니다. 자유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를 따르는 것은 주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아버지의 마음이 임하고 주의 사랑의 마음, 긍휼의 마음이 임하며 무한한 지혜와 능력과 권세와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는 것은 이처럼 지옥의 재앙을 끝내고 천국의 영광을 끌어당기는 것이므로 마귀는 어찌해서든지 이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도록 속이고 역사합니다. 자기 중심이 되어야만 마귀는 그에게 두려움을 주고 상처를 주고 분노를 주고 낙담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찌하든 사람의 자존심을 세우고 높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버리십시오. 입장을 내려놓으십시오. 자기 애정을 내려놓으십시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사랑하게 하십시오. 애정도, 혈연도, 입장도. 체면도.. 아무 것도 손에 붙들지 말고 오직 주의 손에 올려 놓으십시오. 그것이 해방이며 천국이며 승리이며 자유의 길입니다. 소년이 가지고 있던 오병이어가 주님의 손에 올려지자 놀라운 도구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붙들고 있는 자아, 자존심, 입장과 체면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릴 때 우리는 아름답고 놀라운 천국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곧 승리의 삶이며 천국의 삶입니다. 할렐루야..

ⓒ 정원 목사

 

천국과 지옥의 전화번호

 

최근에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천국에도 전화가 있고 지옥에도 전화가 있어서 좌석 예약이 가능하다고 한다. 천국의 전화번호는 66-3927이고, 지옥의 전화번호는 11-1111이란다. 그 이유는 구약성경의 권수 39와 신약성경의 권수인 27을 합한 66이 천국의 국번이 되고 39와 27이 그 고유번호이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지옥의 전화번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최고라는 일류의식 등 자기만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합쳐서 11-1111이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천국의 전화번호보다는 지옥의 전화번호가 훨씬 외우기가 쉽고, 따라서 지옥의 좌석 예약자들이 천국의 좌석 예약자들보다 더 많다는 정보는 이해가 간다.

천국 좌석을 예약하려면 성경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지옥 좌석을 예약하려면 자기가 최고라는 주장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 당연히 천국 좌석 예약은 어렵고 지옥 좌석 예약은 쉬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 편집부 제공

 

▧ 묵상

* 나는 풍족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즐거움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징계를 받고야 돌아서는 우매함을 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성취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어떤 도전을 받고 있습니까?

▧ 기도: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정확하게 그대로 실현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생명의 삶

 

지옥으로 보낸 이유

 

어느 수도원에 유명한 수도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수도자는 단식도 자주 하고, 기도 역시 빠뜨리지 않고 꼬박꼬박 했으며, 자신의 수입 중 일부를 하나님께 드렸으며, 성도들이 찾아오면 좋은 이야기를 해주곤 했습니다. 그 수도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난한 과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했고, 살림도 꾸려 가야 했지만 배운 것이 없어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도둑질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수도자는 과부를 불러다 호되게 꾸중했습니다. 과부는 수도사의 꾸중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과부는 시간이 흐르자 먹고 살기 위해 또 다시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수도자는 과부가 죄를 지을 때마다 돌을 하나씩 쌓았는데, 마침내 그 둘은 커다란 돌무더기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수도자는 다시 과부를 불러 질책했습니다.

"이 죄악된 여자야! 이 돌무더기를 보았느냐? 이것은 네가 죄를 지을 때마다 내가 던져 놓은 돌들이다. 천벌을 받아도 시원찮을 죄인아! 아직도 하나님이 두렵지 않단 말이냐?"

과부는 수도자의 질책에 죄를 뉘우치며, 하나님께 이토록 비참한 자신을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드렸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은 수도자와 과부의 영혼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그런데 수도자는 지옥으로, 과부는 천당으로 보내졌습니다. 수도자가 이 어이없는 일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자 천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명예를 위해 살았고, 자만심과 교만에 가득 차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기는커녕 아픈 상처만 주었습니다. 또한 이웃의 환경이 좋아지도록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옥으로 보내진 것입니다.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 / 기독신문사 출판기획부 엮음

 

세상 모든 수고 끝나 (찬송가 236장, <통> 223장)

 

1. 세상 모든 수고 끝나 우리 장막 벗고서 모든 근심 걱정 사라진 뒤에 주를 뵙고 성도함께 면류관을 쓰리라 새 예루살렘에서

2. 가는 길이 외로와도 주 날 붙드시리니 시험 환난 근심 걱정 없으며 주를 믿고 따라가면 주의 뜻을 알리라 새 예루살렘에서

3. 내가 세상 작별하고 눈물 흔적 거둔 뒤 주의 찬란하신 영광 비칠때 나를 구속하신 주를 기쁨으로 뵈오리 새 예루살렘에서

4. 아름다운 그곳에서 구속 받은 성도와 사랑하는 주를 만나 뵈올 때 주의 영광 노래하며 영원토록 살리라 새 예루살렘에서

 

[후렴] 성도들이 함께 올때 기뻐 노래하리라 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호산나를 높이 불러 왕의 왕을 맞으리 새 예루살렘에서

 

저 요단강 건너편에 (찬송가 243장, <통> 224장)

 

1. 저 요단강 건너편에 화려하게 뵈는 집 주 날위해 예비하신

집일세 그 강가에 생명나무 꽃이 만발하였네 주의 낯을 그곳에서 뵈오리

2. 주가 내게 부탁하신 모든 역사 마친 후 예비하신 그곳에서 쉬겠네 성도들이 주의 영광 할렐루야 부를 때 나의 음성 그 노래에 합하리

3. 일찍 떠나 그곳에 간 사랑하는 친구들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로다 세상길을 다간 후에 나도 거기 올라가 그 집에서 저희들과 살겠네

4. 이 세상에 머물 동안 주의 일을 힘쓰며 주의 구원함과 은총

전하고 나의 생명 마치는 날 저본향에 올라가 주의 얼굴 그곳에서 뵈오리

 

[후렴] 주의 얼굴 뵈오리 주의 얼굴 뵈오리 슬픔 하나도 없고 금빛 찬란한데서 구속하신 주의 얼굴 뵈오리

 

▣ 지옥에 관한 성경 말씀

 

0 <신명기 32 : 22> 내 진노 중에 불이 붙어서 가장 낮은 지옥까지 사를 것이며 땅 을 그 소산과 더불어 소멸할 것이며 산들의 기초에도 불을 놓으리라.

0 <사무엘하 22 : 6> 지옥의 슬픔이 나를 에워쌌으며 사망의 올무가 내 앞에 있었도다.

0 <욥기 11 : 8> 그것은 하늘만큼 높으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지옥보다 깊으니 네가 어찌 알 수 있겠느냐?

0 <욥기 26 : 6> 지옥도 그 분 앞에는 벗겨지고 멸망도 가리움이 없느니라.

0 <시편 9 : 17> 악인은 지옥으로 돌려질 것이요,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민족들도 그러하리라.

0 <시편 16 : 10>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버려두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하신이로 썩어짐을 보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0 <시편 18 : 5> 지옥의 고통이 나를 에워싸고 사망의 덫이 나를 막았나이다.

0 <시편 55 : 15> 사망으로 그들을 덮치게 하고, 그들을 급히 지옥으로 내려가게 할지라. 이는 사악함이 그들의 처소에, 또 그들 가운데 있음이라.

0 <시편 86 : 13> 이는 나를 향하신 주의 자비가 크시며, 주께서 내 혼을 가장 낮 은 지옥으로부터 구하셨음이니이다.

0 <시편 116 : 3> 사망의 슬픔이 나를 에워싸고 지옥의 고통이 내게 미쳤으니, 내가 고난과 슬픔을 만났도다.

0 <시편 139 : 8> 내가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주께서는 거기 계시며, 내가 지옥에 잠자리를 마련한다 하여도, 보소서, 주께서는 거기 계시나이다.

0 <잠언 5 : 5> 그녀의 발은 죽음으로 내려가고, 그녀의 걸음은 지옥으로 접어드는도다.

0 <잠언 7 : 27> 그녀의 집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며 죽음의 방들로 내려가는 길이니라.

0 <잠언 9 : 18 >그러나 그는 죽은 자가 거기 있고, 그녀의 객들이 지옥의 깊은 곳들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0 <잠언 15 : 11> 지옥과 멸망이 주 앞에 있거늘, 하물며 사람의 자손들의 마음들이야 더욱 그렇지 않겠느냐?

0 <잠언 15 : 24> 생명의 길은 현명한 자 위에 있으니, 그는 아래 있는 지옥으로부터 벗어나리라.

0 <잠언 23 : 14> 너는 그를 매질해야 하리니, 그리하면 그의 혼을 지옥으로부터 구해 내리라. 0 <잠언 27 : 20> 지옥과 멸망은 결코 가득 차지 않으며, 사람의 눈도 결코 만족함 이 없느니라. 0 <이사야 5 : 14>지옥은 스스로를 확장하였고 한없이 입을 벌렸으니, 그들의 영광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허영과, 기뻐하는 자가 그 곳으로 내려가리라.

0 <이사야 14 : 9>아래로부터 지옥이 너로 인하여 움직여서 네가 올 때 너를 맞이하려 하는도다. 그것이 너로 인하여 죽은 자들을 움직이니, 곧 땅의 모든 지도자들이라. 또 그것이 민족들의 모든 왕들을 그들의 보좌에서 일어서게 하였도다.

0 <이사야 14 : 15> 그러나 너는 지옥까지 끌어내려질 것이요, 구렁의 사면에까지 끌어내려지리라.

0 <이사야 28 : 15>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사망과 더불어 언약을 맺었고 우리가 지옥과 더불어 합의하였도다. 넘치는 재앙이 지나갈지라도 우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이는 우리가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 우리가 우리 자신 을 숨겼음이라. 하였도다.

0 <이사야 28 : 18> 사망과 더불어 맺은 너희의 언약이 무효화되며 지옥과 한 너희의 합의가 서지 못하리니, 넘치는 재앙이 지나가면 너희가 그것에 짓밟힘을 당하리라.

0 <이사야 57 : 9> 네가 향기름을 가지고 왕에게로 갔으며 네 향수를 늘리고 또 네 사자들을 멀리 보내서 스스로를 지옥에까지 낮추었도다.

0 <에스겔 31 : 16>내가 그를 구렁으로 내려가는 자들과 더불어 지옥에 던질 때 그의 떨어지는 소리에 민족들이 진동하게 하였으니, 에덴의 모든 나무, 즉 물을 흡수한 레바논의 아름답고 가장 좋은 것들이 땅의 아래 부분에서 위로받게 되리라.

0 <에스겔 31 : 17> 그들은 또한 그와 함께 지옥에 내려갈 때 칼로 살해된 자들에게 갔으며, 그들은 그의 팔이었고 이방 가운데서 그의 그늘 아래 거하던 자들이니라.

0 <에스겔 32 : 21> 막강한 자들 사이에서 강한 자가 그를 돕는 자들과 더불어 지옥 한가운데서 그에게 말할 것이니, 그들은 내려와서 칼로 살해된 채로 할례 받지 않고 누워 있도다.

0 <에스겔 32 : 27> 그들은 할례 받지 않은 자들 가운데서 엎드러진 용사들, 즉 그들의 전쟁 무기를 가지고 지옥에 내려간 자들과는 함께 눕지 아니할 것이니, 그들은 칼을 자기들의 머리 밑에 두었으나 그들이 산 자들의 땅에서는 용사들의 두려움일지라도 그들의 죄악은 그들의 뼈 위에 있으리라.

0 <아모스 9 : 2> 그들이 지옥으로 파고 들어간다 할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그들을 끌어낼 것이요, 그들이 하늘까지 올라간다 할지라도 내가 거기서 그들을 끌어낼 것이라.

0 <요나 2 : 2> 말하기를 내가 나의 고통으로 인하여 주께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나를 들으셨나이다. 내가 지옥의 뱃속으로부터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0 <하박국 2 : 5> 그는 교만한 자이며 또한 술로 인하여 참으로 범죄하였기에 집에 가만있지 못하고, 그는 자기 욕심을 지옥처럼 넓히며 죽음처럼 되고 만족할 줄 모르며 모든 민족들을 자기에게로 모으고 모든 백성들을 모으나니

0 <마태복음 5 : 2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까닭 없이 자기 형제에게 노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며, 형제에게 라카라 하는 자는 누구나 공회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요, 또 어리석은 자라 하는 자는 누구나 지옥불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

0 <마태복음 5 : 29> 또 만일 너의 오른쪽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던져 버리라. 네 지체 가운데 하나가 손상되는 것이 네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0 <마태복음 5 : 30> 또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잘라 던져 버리라. 네 지체 가운데 하나가 손상되는 것이 네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0 <마태복음 10 : 28>또 너희는 몸은 죽일 수 있으나 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차라리 혼과 몸을 모두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는 그 분을 두려워하라.

0 <마태복음 11 : 23>카퍼나움아, 하늘까지 높아진 너는 지옥까지 낮아지리라. 너에게 행하였던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읍이 오늘까지 남아 있었으리라.

0 <마태복음 16 : 18>나도 너에게 말하노니, 너는 베드로라. 그리고 이 반석 위에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0 <마태복음 18 : 9> 또 네 눈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뽑아 던져 버리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한 눈을 가지고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0 <마태복음 23 : 15>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한 사람의 개종자를 얻으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얻고 나면 그를 너희보다 두 배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기 때문이라.

0 <마태복음 23 : 33>너희 뱀들아, 독사들의 세대야, 어떻게 너희가 지옥의 저주에서 피할 수 있겠느냐?

0 <마가복음 9 : 43> 네 손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잘라 버리라. 두 손을 가지고 결코 꺼지지 않는 불속인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0 <마가복음 9 : 45> 네 발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잘라 버리라. 두 발을 가지고 결코 꺼지지 않는 불 속인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0 <마가복음 9 : 47> 네 눈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뽑아 버리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0 <누가복음 10 : 15>너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높아졌으나 지옥까지 끌어내려지리라.

0 <누가복음 12 : 5> 그러나 너희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하는지 내가 보여 주리라. 죽인 후에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를 가진 그 분을 두려워하라. 정녕,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분을 두려워하라.

0 <누가복음 16 : 23>부자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에 눈을 들어 저 멀리 아브라함을 보았더니 나사로가 그의 품에 있는지라.

0 <사도행전 2 : 27>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며, 또 주의 거룩하신 분이 부패되는 것을 보지 않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라.

0 <사도행전 2 : 31> 그가 미리 앞을 내다봄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말하되 주의 혼이 지옥에 내버려지지 않았으며, 또 주의 육신도 부패되는 것을 보지 못하였도다. 하였느니라.

0 <야고보서 3 : 6> 혀는 불이요, 죄악의 세상이라. 그러므로 혀는 우리 지체들 가운데 있으면서 온 몸을 더럽히며 또 일생을 불태워 버리나니 곧 지옥의 불에서 태우느니라.

0 <베드로후서 2 : 4>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천사들조차 아끼지 않으시고 지옥에 던져서 흑암의 사슬에 내어주어 심판 때까지 가두어 두셨으며

0 <요한계시록 1 : 18>나는 살아 있는 자며, 죽은 자였으나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졌노라.

0 <요한계시록 6 : 8> 이에 내가 보니, 보라, 창백한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요 지옥이 그 뒤를 따르니, 그들에게 칼과 굶주림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 땅의 사분의 일을 죽일 권세가 주어졌더라.

0 <요한계시록 20 : 14> 사망과 지옥도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지옥에 관한 금언

 

0 지옥은 배은망덕으로 가득 차 있다.(토마스 풀러)

0 살아서는 법정을 조심하고 죽어서는 지옥을 조심하라(중국격언)

0 만약 덕을 위한 천국이 있을진대 범죄자가 갈 지옥이 있음이 틀림없다.(니콜라스 카우상)

0 마음이 바로 그곳이다. 마음 자체가 지옥의 천국을 만들거나 천국의 지옥을 만들 수 있다.(죤 밀턴)

0 지옥은 훌륭한 변명과 핑계와 소원으로 가득한 곳이다.(죠지 허버트)

* 주의: 본 자료를 무단 수집, 제작 배포 출판하면 저작권법에 저촉(위배)됩니다.

이 포스트를...

처음페이지  이전페이지  1  다음페이지  마지막페이지

최근방문자
즐겨찾기
즐겨찾기가 없습니다.
최근댓글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