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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님만이 댓글[0]
하나님, 창조 (2012-11-03 오후 7:20:26) http://blog.somang.net/holylove/7592
오직 예수님만이
 
본문: 요14: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탈리아의 한 화가가 도자기에 「최후의 만찬」을 그렸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셨던 최후의 만찬을 그려서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도하고자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온갖 정성을 들여 예수님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정말 영감 있는 주님의 모습, 빛나는 주님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그림에 그려진 도자기를 본 친구는 그녀가 그린 예수님의 모습은 본 척도 않고 도자기의 아름다움만을 칭찬했습니다. 그 화가는 친구의 말을 듣고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려고 그림을 그렸는데, 그 그림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얼굴은 가리워지고 도자기만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친구가 떠난 뒤, 그림을 붓으로 다 지워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도자기만 아름답게 보여, 주객이 전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예수님 외에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것, 예수님 외에 찬란하게 빛나 보이는 것, 예수 외에 앞장서 나타나 보이는 모든 것을 지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삶에 처음 되시고 먼저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따르고 전해야 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중심의 뜨거운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돌이키는 단호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1.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이십니다
세상에 살면서 길을 잃은 경험을 한 두 번쯤은 누구나 겪었을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연합군들이 중동 사막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사막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뜨거운 태양 아래서 타는 목마름으로 신기루를 보았습니다. 사막에서 신기루를 보아 물이 없는데도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리고 출렁이는 호수가 보입니다. 군인들은 그것이 진짜 물인줄 알고 첨벙첨벙 들어가서 물을 마셨는데 실상, 물을 마신 것이 아니라 뜨거운 모래를 잔뜩 먹고 기도가 막혀 죽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을 찾아온 후속부대가 보니 모두 입 안 가득 모래를 물고 죽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길을 잃는다는 것은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길을 잃어버린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버림을 받고 에덴의 낙원에서 쫓겨 사람들의 영이 죽고 그들은 방향을 잃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인생길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 사람들은 길을 잃어버린 존재가 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서 무덤으로 들어갈 때까지 정체불명입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고 그저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다가 그냥 죽습니다. 인생의 길을 안내한다는 사람들은 많지만 실상은 그들 자신도 길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모든 성인들과 교주들 역시 올바른 길을 찾는 사람에 불과할 뿐입니다. 길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공자는 ??아침에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자와 같은 위대한 성인도 평생 도를 찾는 자일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자기가 길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우리나라 신흥종교는 500여 개이며 이에 속해 있는 신도들은 200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단 교주들은 거의 모두가 공통적으로 자신을 신격화하고 우상화합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20여 명이나 되고 재림주라 주장하는 사람도 50여 명 있습니다. 이 외에도 자신을 보혜사 성령, 엘리야, 다윗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구원으로 가는 길의 안내자 혹은 길 자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사람들 자체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 불쌍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길이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만이 길이다??라는 것을 증명하라고 말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신 것을 우리는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올라갈 목적지인 천국에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천국으로 돌아갈 길을 알고 계십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천국에 올라간 경험을 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신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길로 돌아갈 수 있으십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오셨기 때문에 그 길로 돌아가는 길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강림하심이 우리가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어두움에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빛을 주셨습니다. 죄인에게는 용서의 빛을, 마귀에게 잡힌 자에게는 해방의 빛을, 병든 자에게는 치료의 빛을 주셨습니다. 절망자에게는 소망의 빛으로 죽은 자에게는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빛에는 어둠이 없습니다. 아무리 어두워도 빛이 비추이면 어두움은 곧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예수님 자체가 바로 길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만이 길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이 죽고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나 우리는 길을 잃었습니다. 이 죄를 누가 청산해 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청산해 주시지 않고는 우리 영이 살아날 수 없습니다. 죽은 영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수양을 쌓고 도덕과 고행을 해도 죽은 사람이 살아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슨 도를 전하고 수양과 도덕의 길을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우리의 모든 죄의 빚을 청산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우리 영혼이 살아나고 그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예수님만이 길이 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그리스도만이 진리와 생명의 길이신 것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13~15절에서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만이 돌아갈 길을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우리 죄를 청산하시고 부활하셔서 당신이 계신 곳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그 증거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인해 우리를 하늘에서 인도하여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용서받고 의인이 되는 길이 되십니다. 거룩하고 성령 충만을 받는 길, 병에서 고침 받고 건강을 얻게 되는 길, 우리가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받는 길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장차 부활하여 천국 영생으로 들어가는 길 역시 예수님입니다. 공자는 아침에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했고, 석가는 길을 찾기 위해 집을 나와 10년간을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길을 가르치신 적이 없습니다. 길을 찾으신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바로 길이요 빛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용서와 의를 얻는 길을 찾으며 거룩함과 성령 충만의 길을 찾고, 치료와 건강의 길, 축복과 형통의 길을 찾으며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길을 찾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모두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만이 절대 진리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전해야 되는 것은 예수님만이 절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비슷한 상대적 진리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절대 진리로 그와 비교하여 동등하게 취할 수 있는 상대적인 진리는 없습니다. 상대적 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은 마귀의 거짓말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입니다. 마귀는 자기가 진리라고 말하지만 거짓 투성입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속여 선악과를 따먹도록 하여 하나님을 배반토록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처럼 된다고 거짓을 말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러한 마귀의 거짓말을 믿었다가 그 영이 죽고 하나님께 버림받아 에덴의 낙원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길 되시고 진리 되시는 주님을 속이지는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40주야를 금식하고 나왔을 때 마귀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들어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가 길이요 진리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떠한 마귀의 꾀임에도 유혹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러한 마귀를 말씀으로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온 세상은 마귀에게 속아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한 마귀가 온 세상을 점령하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해 모든 것은 물질 밖에 없다는 유물론을 주장합니다. 또한 인간은 원시 생물체인 아메바에서 진화됐다는 진화론,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며 역사의 주인 역시 인간이라는 인본주의와 물질만이 삶의 목적이라는 물질만능주의,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는 쾌락주의 등의 잘못된 사상으로 인간을 미혹합니다.
18세기 계몽주의 이후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자유를 선포하고 이성과 과학을 무한 발전시켜서 인간의 힘으로 지상에 천국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계몽주의 이후로 인간의 이성과 과학이 발전시킨 것은 인류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살상무기 밖에 없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온 세계가 초토화되고 겨우 이에서 회복되자마자 다시 2차 세계대전으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이후, 전세계는 냉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고 죽었으며 오늘날은 전 세계를 수십 번이라도 폭파시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대량 살상무기를 개발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소위 인간이 말하는, 인간이 자랑하는 이성과 과학의 결과입니다.
대구에서 있었던 일인데 한 엄청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재산이 너무 많아 밤마다 새벽이 가깝도록 수판을 놓고 다닥 거리는 소리를 내어 건너 방에서 자는 며느리의 잠을 설치게 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쓸 줄은 모르고 모으는 데만 온 신경을 쏟아 부었습니다. 굉장한 거부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재산이 축이 날까 겁나서 자녀와의 사이에도 좋지 못한 얘기들이 오고 가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으고 또 모았습니다. 그러는 중에 그의 인생도 늙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멀리 미국으로 가버렸습니다. 이 늙은 아버지는 그 아내를 잃게 되었습니다. 젊은 여인을 다시 아내로 맞이하였으나 쌀독의 열쇠까지 자기가 쥐고 때마다 쌀을 자신이 퍼내 주었습니다. 그가 죽자 그 동안 그 많던 재산이 이리 저리 쏟아지며 줄어들더니 세상을 떠난 그의 시신마저 둘만한 장소가 없어서 그가 다니던 교회 일 층 한방에다 관을 두고 있었습니다.
마치 솔로몬의 전도서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물질 만능주의와 쾌락주의가 가져온 것은 파멸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예수님만이 참되십니다. 마귀는 현재 달콤한 것을 가지고 우리를 유혹하지만 후에 다가올 쓰디쓴 고통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이가 만물을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 우주를 만들고 그 모든 내용을 일일이 아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진실을 알고 진리이십니다.
사도행전 14장 15절에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는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이사야 44장 6절에는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경험한 사람은 공산주의가 얼마나 인정도 없고 무서운가를 잘 압니다. 그들을 동족이란 이름으로 같은 민족을 처참하게 죽인 살인집단일 뿐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한 세대는 이를 잘 압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을 하지 못한 요즘의 젊은이들은 쉽게 그들과 우리를 동족이라는 말로 무조건 얼싸안으려 합니다. 공산주의에게는 동족이란 없습니다. 그들에게 동족이란 것은 하나의 가면에 불과합니다. 공산주의는 오직 혁명적 통일만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도 거기에 속으면 안되는데 공산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는 이러한 공산주의의 실체를 알지 못합니다. 진리는 경험해야 알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진리입니까? 예수님은 알파요 오메가로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우주를 지을 때부터 시작해서 우주를 완성하고,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우주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으므로 우리가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 죽음의 문제도 확실히 알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1장 18절에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기 때문에 그는 죽음도 알고 삶도 아십니다. 진리는 두 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님과 버금가는 다른 진리는 없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철학과 윤리, 도덕, 사상 등은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그러나 진리가 진리인 것은 영원불변하기 때문입니다. 천상천하에 변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남아있는 진리는 예수님 오직 한 분이십니다.
오늘날은 종교도 많고 진리도 많고 가르침도 많습니다. 그러나 모두 죽음 저 건너편에 갔다온 사람은 없습니다. 상상할 뿐입니다. 마호메트는 60세에 한 여인의 무릎에 머리를 묻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크라테스는 70세에 사약을 먹고 죽었습니다. 석가모니는 8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플라톤도 80세까지 살다가 죽었습니다. 세계 성인이요 종교의 창시자였던 이들이었지만 결국 죽음 앞에서는 모두 무릎을 꿇고 죽고 난 다음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3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음 저 건너편에서 돌아왔습니다. 죄악의 빚을 잔뜩 짊어지고 무덤으로 들어간 사람은 그 빚을 갚아야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성인군자나 종교의 창시자들은 모두 죽음에 들어가고 난 다음에 다시는 나오지 못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죄를 갚지 못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그 죄의 값을 갚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감옥으로 들어갔으나 사흘만에 모두 청산하고 너끈히 살아 돌아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이 진리되십니다.
 
3. 예수님만이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인간은 원래 죽지 않게 지어졌습니다. 오늘날 인간이 죽는 것은 하나님 앞에 버림받고 죄를 지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생하시는 분이십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처음 지음 받았을 때는 죽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우리 인생은 원래 죽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몸이 되었으므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고통과 괴로움, 슬픔을 가지고 죽음에 대해 반발합니다. 죽음을 원치 않습니다. 죽음을 싫어합니다.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명하신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그 죄값으로 이제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도 죽고 육도 죽는 것은 죄값으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죄값으로 죽었기 때문에 우리보다 먼저 죽은 마귀가 이 세상 임금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서 먼저 영적으로 죽은 존재입니다. 사망의 장자입니다. 그 마귀가 이제 우리가 죄 짓고 죽으니까 우리를 점령하고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에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사망의 세력을 잡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죄를 청산하고 사망을 멸해 버리면 마귀는 무장해제됩니다. 그 때문에 마귀가 제일 무서워 하는 것이 십자가요, 제일 두려워 하는 것이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마귀는 무장해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어찌하든지 절대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인데 죄 없는 예수님은 죽을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생명의 대왕입니다. 그 증거로 회당장의 딸이 죽었을 때 예수님은 「달리다굼」 한마디로 살리셨습니다. 나인성의 과부 아들이 죽어 관을 메고 가는데 관뚜껑을 열고 ??청년아 일어나라??하시자 그가 일어났습니다.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들어간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날 때 ??나사로야 나오너라??는 말씀으로 나사로가 살아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대왕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을 필요가 없으신 분이신데 우리를 위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죄인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때문에 죄인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습니다. 「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이처럼 부르짖으셨습니다. 처참한 죄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고 보혈로 우리 죄를 청산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죽어서 죄를 다 갚으셨으므로 사흘만에 사망을 철폐하고 부활하셨습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8절에는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죄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구세주 예수님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은 유일한 생명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25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에도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예수님만이 나의 삶의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한 토인이 사소한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추장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추장은 화가 치밀어 죄인을 사형시킬 것을 명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선교사는 비싼 보화를 싸 가지고 가서 추장에게 주면서 죄인의 생명을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추장은 보기보다 완고하고 냉담했습니다. "저런 물건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상아나 금, 은, 노예 따위는 부럽지 않소. 그런 것들은 저쪽 부락에 가면 얼마든지 빼앗아올 수 있소. 더구나 백인의 물건은 갖지 않겠소. 내가 오직 필요로 하는 것은 피요. 다른 것은 소용없소." 추장은 다시 부하에게 죄인을 죽일 것을 명했습니다. 화살이 시위에서 떠나려는 순간 선교사의 가슴에는 연민의 정이 가득하여 자신도 모르게 죄인 앞을 가로막고는 자기가 화살에 맞았습니다. 순간 선교사는 쓰러졌다가 이내 몸을 일으켜 화살을 뽑아 땅에 던졌습니다. 선교사의 몸에서는 피가 솟구쳤습니다. 그는 이러한 몸으로 추장에게 다가갔습니다. "자, 당신이 구하고 있는 피요. 받으시오. 그리고 그를 살려 주시오." 선교사의 행동에 감동한 추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좋소. 당신은 당신의 피를 가지고 그를 샀소. 그는 당신의 것이오." 그 때에 죄인은 선교사의 발밑에 엎드려 감격에 떨면서 부르짖었습니다. "주인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은 피로 저를 사셨습니다. 아무쪼록 오늘부터 어디를 가시든지 제가 모실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 후 선교사가 가는 곳마다 그 토인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에도 결코 싫은 기색을 하지 않았습니다.(피로 산 죄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꽤 큰 부자로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이제 고령의 할머니가 되어서야 예수님을 믿게 된 분이 있습니다. 이 할머니가 예수님 믿고 중생한 후 어느 날 손녀의 손목을 잡고 장거리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불쌍한 사람이 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밉니다. 그에게 얼마를 주고 가다 보니 또 누군가가 도움을 청합니다. 물론 이 할머니는 그에게도 동정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구세군의 자선남비에도 얼마를 집어넣고 ... 이런 식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동정을 베풀었습니다. 그러자 손녀가 말합니다. "할머니, 오늘 참 손해 많이 보시네요 ?" 할머니는 그 어린 손녀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이렇게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내가 예수님 믿은 후에 급한 성격도 버렸고, 남 흉보던 말도 버렸단다. 세상 쾌락도, 욕심도, 이기심도, 질투도, 남을 비판하는 마음도 다 버렸단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오직 예수님뿐이란다"
우리도 예수님 믿고 다 잃어버렸다고 고백합시다. 오직 예수님뿐이라고 고백합시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 라고 한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합시다.
사도 바울은 철저하게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주의 종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는 오직 주님만 위해서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포기했습니다. 자신을 위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결혼할 수 있지만 결혼하지 않았고, 재산도 모을 수 있지만 모으지 않았고, 부귀영화를 포기했습니다. 사도로서 교회에서 대접받고 영광을 얻을 수 있지만 전부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사람들이 사도 바울처럼 살라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그렇게 살 수 있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사랑의 문제입니다. 믿음의 사람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원해서, 기쁨으로,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고 충성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주님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원해서 기쁨으로 헌신하고 봉사하고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감동을 받으십니다. 헌금을 해도 인색한 마음으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면 주님께서 감동을 받으십니다. 그뿐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 주님이 한없이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게 되었을 때 이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두려울 것이 없고, 죽음도 두렵지 않아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복음이 힘 있게 전파되어 오늘날 이 땅에 수십억의 기독교인이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우리들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고 섬기는 자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길입니다. 무능한 사람을 유능한 사람으로, 우둔한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쓸모없는 사람을 꼭 필요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시는 능력의 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섬기는 자들로 하여금 행복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받들어 섬기는 사람들을 풍요로운 곳으로 인도하시는 길이십니다. 이토록 존귀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 들이시기 바랍니다.
 
* 기도: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사랑되신 주님, 귀한 주님의 이름을 찬양드립니다.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주님만이 나의 생명이요 전부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내게는 주 예수님보다 더 귀한 것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나는, 가장 행복한 자요, 부요한 자인 것을 또한 믿습니다. 그러나 가끔 세상의 정욕과 교만으로 주님을 잊어버리고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보지 않은 것을 용서해 주옵소서.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을 위하여 늘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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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님만이 댓글[0]
하나님, 창조 (2012-11-03 오후 7:20:25) http://blog.somang.net/holylove/7591
오직 예수님만이
 
본문: 요14: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탈리아의 한 화가가 도자기에 「최후의 만찬」을 그렸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셨던 최후의 만찬을 그려서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도하고자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온갖 정성을 들여 예수님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정말 영감 있는 주님의 모습, 빛나는 주님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그림에 그려진 도자기를 본 친구는 그녀가 그린 예수님의 모습은 본 척도 않고 도자기의 아름다움만을 칭찬했습니다. 그 화가는 친구의 말을 듣고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려고 그림을 그렸는데, 그 그림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얼굴은 가리워지고 도자기만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친구가 떠난 뒤, 그림을 붓으로 다 지워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도자기만 아름답게 보여, 주객이 전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예수님 외에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것, 예수님 외에 찬란하게 빛나 보이는 것, 예수 외에 앞장서 나타나 보이는 모든 것을 지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삶에 처음 되시고 먼저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따르고 전해야 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중심의 뜨거운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돌이키는 단호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1.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이십니다
세상에 살면서 길을 잃은 경험을 한 두 번쯤은 누구나 겪었을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연합군들이 중동 사막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사막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뜨거운 태양 아래서 타는 목마름으로 신기루를 보았습니다. 사막에서 신기루를 보아 물이 없는데도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리고 출렁이는 호수가 보입니다. 군인들은 그것이 진짜 물인줄 알고 첨벙첨벙 들어가서 물을 마셨는데 실상, 물을 마신 것이 아니라 뜨거운 모래를 잔뜩 먹고 기도가 막혀 죽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을 찾아온 후속부대가 보니 모두 입 안 가득 모래를 물고 죽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길을 잃는다는 것은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길을 잃어버린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버림을 받고 에덴의 낙원에서 쫓겨 사람들의 영이 죽고 그들은 방향을 잃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인생길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 사람들은 길을 잃어버린 존재가 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서 무덤으로 들어갈 때까지 정체불명입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고 그저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다가 그냥 죽습니다. 인생의 길을 안내한다는 사람들은 많지만 실상은 그들 자신도 길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모든 성인들과 교주들 역시 올바른 길을 찾는 사람에 불과할 뿐입니다. 길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공자는 ??아침에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자와 같은 위대한 성인도 평생 도를 찾는 자일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자기가 길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우리나라 신흥종교는 500여 개이며 이에 속해 있는 신도들은 200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단 교주들은 거의 모두가 공통적으로 자신을 신격화하고 우상화합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20여 명이나 되고 재림주라 주장하는 사람도 50여 명 있습니다. 이 외에도 자신을 보혜사 성령, 엘리야, 다윗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구원으로 가는 길의 안내자 혹은 길 자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사람들 자체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 불쌍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길이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만이 길이다??라는 것을 증명하라고 말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신 것을 우리는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올라갈 목적지인 천국에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천국으로 돌아갈 길을 알고 계십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천국에 올라간 경험을 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신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길로 돌아갈 수 있으십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오셨기 때문에 그 길로 돌아가는 길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강림하심이 우리가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어두움에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빛을 주셨습니다. 죄인에게는 용서의 빛을, 마귀에게 잡힌 자에게는 해방의 빛을, 병든 자에게는 치료의 빛을 주셨습니다. 절망자에게는 소망의 빛으로 죽은 자에게는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빛에는 어둠이 없습니다. 아무리 어두워도 빛이 비추이면 어두움은 곧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예수님 자체가 바로 길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만이 길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이 죽고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나 우리는 길을 잃었습니다. 이 죄를 누가 청산해 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청산해 주시지 않고는 우리 영이 살아날 수 없습니다. 죽은 영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수양을 쌓고 도덕과 고행을 해도 죽은 사람이 살아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슨 도를 전하고 수양과 도덕의 길을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우리의 모든 죄의 빚을 청산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우리 영혼이 살아나고 그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예수님만이 길이 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그리스도만이 진리와 생명의 길이신 것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13~15절에서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만이 돌아갈 길을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우리 죄를 청산하시고 부활하셔서 당신이 계신 곳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그 증거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인해 우리를 하늘에서 인도하여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용서받고 의인이 되는 길이 되십니다. 거룩하고 성령 충만을 받는 길, 병에서 고침 받고 건강을 얻게 되는 길, 우리가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받는 길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장차 부활하여 천국 영생으로 들어가는 길 역시 예수님입니다. 공자는 아침에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했고, 석가는 길을 찾기 위해 집을 나와 10년간을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길을 가르치신 적이 없습니다. 길을 찾으신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바로 길이요 빛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용서와 의를 얻는 길을 찾으며 거룩함과 성령 충만의 길을 찾고, 치료와 건강의 길, 축복과 형통의 길을 찾으며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길을 찾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모두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만이 절대 진리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전해야 되는 것은 예수님만이 절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비슷한 상대적 진리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절대 진리로 그와 비교하여 동등하게 취할 수 있는 상대적인 진리는 없습니다. 상대적 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은 마귀의 거짓말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입니다. 마귀는 자기가 진리라고 말하지만 거짓 투성입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속여 선악과를 따먹도록 하여 하나님을 배반토록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처럼 된다고 거짓을 말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러한 마귀의 거짓말을 믿었다가 그 영이 죽고 하나님께 버림받아 에덴의 낙원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길 되시고 진리 되시는 주님을 속이지는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40주야를 금식하고 나왔을 때 마귀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들어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가 길이요 진리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떠한 마귀의 꾀임에도 유혹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러한 마귀를 말씀으로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온 세상은 마귀에게 속아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한 마귀가 온 세상을 점령하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해 모든 것은 물질 밖에 없다는 유물론을 주장합니다. 또한 인간은 원시 생물체인 아메바에서 진화됐다는 진화론,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며 역사의 주인 역시 인간이라는 인본주의와 물질만이 삶의 목적이라는 물질만능주의,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는 쾌락주의 등의 잘못된 사상으로 인간을 미혹합니다.
18세기 계몽주의 이후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자유를 선포하고 이성과 과학을 무한 발전시켜서 인간의 힘으로 지상에 천국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계몽주의 이후로 인간의 이성과 과학이 발전시킨 것은 인류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살상무기 밖에 없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온 세계가 초토화되고 겨우 이에서 회복되자마자 다시 2차 세계대전으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이후, 전세계는 냉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고 죽었으며 오늘날은 전 세계를 수십 번이라도 폭파시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대량 살상무기를 개발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소위 인간이 말하는, 인간이 자랑하는 이성과 과학의 결과입니다.
대구에서 있었던 일인데 한 엄청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재산이 너무 많아 밤마다 새벽이 가깝도록 수판을 놓고 다닥 거리는 소리를 내어 건너 방에서 자는 며느리의 잠을 설치게 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쓸 줄은 모르고 모으는 데만 온 신경을 쏟아 부었습니다. 굉장한 거부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재산이 축이 날까 겁나서 자녀와의 사이에도 좋지 못한 얘기들이 오고 가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으고 또 모았습니다. 그러는 중에 그의 인생도 늙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멀리 미국으로 가버렸습니다. 이 늙은 아버지는 그 아내를 잃게 되었습니다. 젊은 여인을 다시 아내로 맞이하였으나 쌀독의 열쇠까지 자기가 쥐고 때마다 쌀을 자신이 퍼내 주었습니다. 그가 죽자 그 동안 그 많던 재산이 이리 저리 쏟아지며 줄어들더니 세상을 떠난 그의 시신마저 둘만한 장소가 없어서 그가 다니던 교회 일 층 한방에다 관을 두고 있었습니다.
마치 솔로몬의 전도서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물질 만능주의와 쾌락주의가 가져온 것은 파멸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예수님만이 참되십니다. 마귀는 현재 달콤한 것을 가지고 우리를 유혹하지만 후에 다가올 쓰디쓴 고통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이가 만물을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 우주를 만들고 그 모든 내용을 일일이 아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진실을 알고 진리이십니다.
사도행전 14장 15절에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는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이사야 44장 6절에는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경험한 사람은 공산주의가 얼마나 인정도 없고 무서운가를 잘 압니다. 그들을 동족이란 이름으로 같은 민족을 처참하게 죽인 살인집단일 뿐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한 세대는 이를 잘 압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을 하지 못한 요즘의 젊은이들은 쉽게 그들과 우리를 동족이라는 말로 무조건 얼싸안으려 합니다. 공산주의에게는 동족이란 없습니다. 그들에게 동족이란 것은 하나의 가면에 불과합니다. 공산주의는 오직 혁명적 통일만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도 거기에 속으면 안되는데 공산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는 이러한 공산주의의 실체를 알지 못합니다. 진리는 경험해야 알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진리입니까? 예수님은 알파요 오메가로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우주를 지을 때부터 시작해서 우주를 완성하고,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우주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으므로 우리가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 죽음의 문제도 확실히 알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1장 18절에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기 때문에 그는 죽음도 알고 삶도 아십니다. 진리는 두 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님과 버금가는 다른 진리는 없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철학과 윤리, 도덕, 사상 등은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그러나 진리가 진리인 것은 영원불변하기 때문입니다. 천상천하에 변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남아있는 진리는 예수님 오직 한 분이십니다.
오늘날은 종교도 많고 진리도 많고 가르침도 많습니다. 그러나 모두 죽음 저 건너편에 갔다온 사람은 없습니다. 상상할 뿐입니다. 마호메트는 60세에 한 여인의 무릎에 머리를 묻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크라테스는 70세에 사약을 먹고 죽었습니다. 석가모니는 8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플라톤도 80세까지 살다가 죽었습니다. 세계 성인이요 종교의 창시자였던 이들이었지만 결국 죽음 앞에서는 모두 무릎을 꿇고 죽고 난 다음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3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음 저 건너편에서 돌아왔습니다. 죄악의 빚을 잔뜩 짊어지고 무덤으로 들어간 사람은 그 빚을 갚아야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성인군자나 종교의 창시자들은 모두 죽음에 들어가고 난 다음에 다시는 나오지 못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죄를 갚지 못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그 죄의 값을 갚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감옥으로 들어갔으나 사흘만에 모두 청산하고 너끈히 살아 돌아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이 진리되십니다.
 
3. 예수님만이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인간은 원래 죽지 않게 지어졌습니다. 오늘날 인간이 죽는 것은 하나님 앞에 버림받고 죄를 지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생하시는 분이십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처음 지음 받았을 때는 죽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우리 인생은 원래 죽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몸이 되었으므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고통과 괴로움, 슬픔을 가지고 죽음에 대해 반발합니다. 죽음을 원치 않습니다. 죽음을 싫어합니다.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명하신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그 죄값으로 이제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도 죽고 육도 죽는 것은 죄값으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죄값으로 죽었기 때문에 우리보다 먼저 죽은 마귀가 이 세상 임금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서 먼저 영적으로 죽은 존재입니다. 사망의 장자입니다. 그 마귀가 이제 우리가 죄 짓고 죽으니까 우리를 점령하고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에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사망의 세력을 잡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죄를 청산하고 사망을 멸해 버리면 마귀는 무장해제됩니다. 그 때문에 마귀가 제일 무서워 하는 것이 십자가요, 제일 두려워 하는 것이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마귀는 무장해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어찌하든지 절대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인데 죄 없는 예수님은 죽을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생명의 대왕입니다. 그 증거로 회당장의 딸이 죽었을 때 예수님은 「달리다굼」 한마디로 살리셨습니다. 나인성의 과부 아들이 죽어 관을 메고 가는데 관뚜껑을 열고 ??청년아 일어나라??하시자 그가 일어났습니다.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들어간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날 때 ??나사로야 나오너라??는 말씀으로 나사로가 살아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대왕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을 필요가 없으신 분이신데 우리를 위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죄인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때문에 죄인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습니다. 「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이처럼 부르짖으셨습니다. 처참한 죄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고 보혈로 우리 죄를 청산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죽어서 죄를 다 갚으셨으므로 사흘만에 사망을 철폐하고 부활하셨습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8절에는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죄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구세주 예수님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은 유일한 생명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25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에도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예수님만이 나의 삶의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한 토인이 사소한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추장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추장은 화가 치밀어 죄인을 사형시킬 것을 명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선교사는 비싼 보화를 싸 가지고 가서 추장에게 주면서 죄인의 생명을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추장은 보기보다 완고하고 냉담했습니다. "저런 물건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상아나 금, 은, 노예 따위는 부럽지 않소. 그런 것들은 저쪽 부락에 가면 얼마든지 빼앗아올 수 있소. 더구나 백인의 물건은 갖지 않겠소. 내가 오직 필요로 하는 것은 피요. 다른 것은 소용없소." 추장은 다시 부하에게 죄인을 죽일 것을 명했습니다. 화살이 시위에서 떠나려는 순간 선교사의 가슴에는 연민의 정이 가득하여 자신도 모르게 죄인 앞을 가로막고는 자기가 화살에 맞았습니다. 순간 선교사는 쓰러졌다가 이내 몸을 일으켜 화살을 뽑아 땅에 던졌습니다. 선교사의 몸에서는 피가 솟구쳤습니다. 그는 이러한 몸으로 추장에게 다가갔습니다. "자, 당신이 구하고 있는 피요. 받으시오. 그리고 그를 살려 주시오." 선교사의 행동에 감동한 추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좋소. 당신은 당신의 피를 가지고 그를 샀소. 그는 당신의 것이오." 그 때에 죄인은 선교사의 발밑에 엎드려 감격에 떨면서 부르짖었습니다. "주인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은 피로 저를 사셨습니다. 아무쪼록 오늘부터 어디를 가시든지 제가 모실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 후 선교사가 가는 곳마다 그 토인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에도 결코 싫은 기색을 하지 않았습니다.(피로 산 죄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꽤 큰 부자로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이제 고령의 할머니가 되어서야 예수님을 믿게 된 분이 있습니다. 이 할머니가 예수님 믿고 중생한 후 어느 날 손녀의 손목을 잡고 장거리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불쌍한 사람이 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밉니다. 그에게 얼마를 주고 가다 보니 또 누군가가 도움을 청합니다. 물론 이 할머니는 그에게도 동정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구세군의 자선남비에도 얼마를 집어넣고 ... 이런 식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동정을 베풀었습니다. 그러자 손녀가 말합니다. "할머니, 오늘 참 손해 많이 보시네요 ?" 할머니는 그 어린 손녀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이렇게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내가 예수님 믿은 후에 급한 성격도 버렸고, 남 흉보던 말도 버렸단다. 세상 쾌락도, 욕심도, 이기심도, 질투도, 남을 비판하는 마음도 다 버렸단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오직 예수님뿐이란다"
우리도 예수님 믿고 다 잃어버렸다고 고백합시다. 오직 예수님뿐이라고 고백합시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 라고 한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합시다.
사도 바울은 철저하게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주의 종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는 오직 주님만 위해서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포기했습니다. 자신을 위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결혼할 수 있지만 결혼하지 않았고, 재산도 모을 수 있지만 모으지 않았고, 부귀영화를 포기했습니다. 사도로서 교회에서 대접받고 영광을 얻을 수 있지만 전부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사람들이 사도 바울처럼 살라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그렇게 살 수 있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사랑의 문제입니다. 믿음의 사람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원해서, 기쁨으로,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고 충성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주님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원해서 기쁨으로 헌신하고 봉사하고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감동을 받으십니다. 헌금을 해도 인색한 마음으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면 주님께서 감동을 받으십니다. 그뿐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 주님이 한없이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게 되었을 때 이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두려울 것이 없고, 죽음도 두렵지 않아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복음이 힘 있게 전파되어 오늘날 이 땅에 수십억의 기독교인이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우리들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고 섬기는 자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길입니다. 무능한 사람을 유능한 사람으로, 우둔한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쓸모없는 사람을 꼭 필요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시는 능력의 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섬기는 자들로 하여금 행복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받들어 섬기는 사람들을 풍요로운 곳으로 인도하시는 길이십니다. 이토록 존귀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 들이시기 바랍니다.
 
* 기도: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사랑되신 주님, 귀한 주님의 이름을 찬양드립니다.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주님만이 나의 생명이요 전부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내게는 주 예수님보다 더 귀한 것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나는, 가장 행복한 자요, 부요한 자인 것을 또한 믿습니다. 그러나 가끔 세상의 정욕과 교만으로 주님을 잊어버리고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보지 않은 것을 용서해 주옵소서.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을 위하여 늘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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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계시는 하나님 댓글[0]
하나님, 창조 (2012-03-01 오후 5:02:23) http://blog.somang.net/holylove/7254

지금 여기 계시는 하나님

 

끊임없이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며 살아가고자 했던 프랭크 루박은 말한다.

"15분이나 30분에 한 번씩 내 행동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깨어 있는 모든 순간 끊임없이 "아버지, 제가 무슨 말을 하기 원하세요? 지금 이 순간 무슨 일을 하길 원하세요?"라고 묻는다. 이처럼 오랫동안 하나님의 임재 연습을 한 사람은 하나님이 더 가까이 계심을 느낀다. 등 뒤에서 밀어 주시고 앞에서 당겨 주시는 하나님의 힘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우리의 감각이 그분을 감지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신다.

어느 해 12월31일 밤,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가 집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정확히 자정이 되자, 산악인들이 파이크 산 정상에서 새해를 기념하여 불꽃놀이 행사를 벌였다. 크고 화려한 불꽃은 하늘 위로 피어오르며 눈으로 덮인 거대한 파이크 산의 모습을 비춰 주었다. 그러자 파이크 산이 시야를 가득 채우며 그 산 이외의 모든 것은 장난감처럼 보였다. 산은 계속 거기에 있었는데, 다만 그 산을 볼 수 있는 눈이 우리에게 없었던 것이다. 야곱도 "참으로 이곳은 여호와께서 계신 곳인데 내가 몰랐구나"(창 28:16)라고 말했다. 당신이 아직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미 눈앞에 펼쳐져 있는 그 분의 은혜를 미처 못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 내안에 하나님이 없다 / 필립 얀시

 

* 금언: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사는 삶보다 더 달콤하고 기쁜 삶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로렌스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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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창조 (2012-02-27 오후 8:20:25) http://blog.somang.net/holylove/7236
하나님의 사랑

 

어느 가난한 부부가 여섯 자녀를 어렵게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우 절친한 부자 친구가 한 아이를 자기에게 양자로 주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습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이 모두 잠자리에 들어간 다음에 아내와 그 문제를 의논하였습니다. 어떤 아이를 양자로 보낼까? 그들은 첫째 아이인 아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맏아들을 남 주기에는 너무나 귀하고 아까웠습니다. 둘째 아이는 딸이었습니다. 이번에 역시 첫 딸이라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셋째 아이도 딸인데 너무나 몸이 약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넷째 아이는 장모님과 너무 닮아서 보낼 수 없다고 부인이 거절했습니다. 다섯째 아이는 아버님과 너무 닮아서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애기 밖에 없었습니다. 그 순간 부인은 그만 울음을 터트리며 "우리 애기, 귀여운 것 남 줄 수 없어요"하며 통곡하고 말았습니다. 여섯 자녀가 있었지만 그 하나라도 기꺼이 내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단 하나의 독생자밖에 없었으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내어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겠느뇨"(롬8:32)

 

▣ 하나님의 사랑

 

본문: 롬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 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어떤 사람이 자기의 목숨이 위험한 것을 무릎 쓰고 물에 빠진 아이를 건져 구해주었습니다. 소년은 그 사람에게 "선생님, 나를 구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소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천만에! 다만 한 가지만 언제나 기억하고 살기를 바란다. 너는 어떤 사람이자기의 목숨을 모험해 가면서도 구해낼 만한 가치 있는 사람인 것을 잊지 말고 살아 다오. "그렇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독생자를 희생하시면서 까지 구해 주실만한 귀중한 사람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면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 하나님의 사랑

 

어느 어머니가 자녀를 키우면서 쓴 글이 있다. 아픈 아기를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잔잔하게 녹아 있는 글이다.

“엄마가 되고 나니 왜 그렇게 눈물이 많아지는지, 이제야 조금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아이가 자주 아픕니다. 이틀째 계속 열이 나고 기침을 하면서 토하고, 콧물도 계속 흘러나와서 코 밑이 헐었습니다. 그런 아기를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파서 끙끙거리는 아기를 돌보느라 밤새 잠을 설치고, 아침이면 피로를 느낄 겨를도 없이 우리 아기 숨 잘 쉬도록 코가 뚫리는 방법을 찾아봅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마음도 이렇겠지?’라고 생각해 봅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더 많이 알아 가는 나 자신을 보면서 주님께 감사하는 오늘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가장 많이 닮은 마음은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 땅 위에서 가장 큰 사랑을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우리 어머니들의 사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사랑보다 훨씬 더 크고 위대한 사랑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어머니가 자기가 낳은 자식을 혹여 잊을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결코 이 백성을 잊지 않으실 것이다.

「영혼의 혁명을 일으키시는 성령」/ 김지철

 

▣ 하나님의 사랑

 

보릿고개로 허덕이던 1960년대 초 어느 날. 한 목사가 점심을 먹으려는데 걸인이 교회로 들어왔다. 목사는 함께 밥을 먹자며 그를 밥상 앞에 앉혔다. 목사가 식사 기도를 하려는데, 거지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기도는 무슨 기도냐." 성질 급한 목사는 홧김에 거지를 쫓아냈다. 그날 밤, 목사는 기도를 하던 중에 또렷한 음성을 들었다. "그 거지가 얼마나 나를 욕하고 저주하는지 내가 너보다 잘 안단다. 나는 그 소리를 50년 넘게 들었다. 그래도 나는 매일 먹을 것을 주었다. 그런데 너는 어찌 밥 한끼 주지 않고 그를 내쫓느냐. 내가 그를 위해 십자가를 졌고, 지금도 그를 사랑하는 줄 모르느냐."

목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셨건만, 나는 그저 내가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며 살았구나. 하나님이 품으시는 사랑의 폭과 깊이는 끝이 없다.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인은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시하는 데는 여러 방도와 형태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바치는 일입니다. 이러한 헌신은 내면적으로는 마음의 자세를 통해 전달되고, 외형적으로는 재물`·시간·은사의 헌납이라는 가시적 행위를 통해 표현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헌신의 표시로서 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헌금을 통해 하나님을 인정하고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재물을 비롯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 고로 이러한 헌납 행위는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런 행위는 그분은 기쁘시게 합니다. 또한 헌금은 하나님의 너그러우심을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고 향유하도록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받아 누리는 재물을 헌납함으로써 이 점을 인정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됩니다. 비록 우리의 헌금이 하나님의 주 되심과 너그러우심을 인정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헌금으로부터 인간 식의 유익을 얻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헌금을 통해 요구하시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 곧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헌금을 바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제물로 받으시는 것입니다.

-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 송인규

 

▣ 하나님의 사랑

 

무엇이든지 내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은 옳으니 언제나 나에 대한 깊은 배려를 잃지 않으시도다 하늘의 명의가 내게 주시는 잔에는 한 방울의 독소도 없고 효험있는 약이 들어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이 참되기 때문이다. 이 변함없는 진리 위에 집을 세우니 내 마음에는 소망이 가득하도다. 무엇이든지 내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은 옳으니 그는 나의 빛, 나의 생명이로다

그는 내게 선을 행하시기만 하시니 나는 전적으로 그를 신뢰하노라 이는 어느 날 우리가 우리의 보호자가 얼마나 신실하신 분이신가를 마치 태양을 보듯이 분명하게 알게 될 줄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스왈드 샌더스-

 

▣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

 

전주 화산동에는 군산 영명고등학교 학생들이 성금을 모아 세운 데이비스 선교사의 기념비가 있습니다. 본명은 린니 데이비스 해리슨 (Harrison Linnie Davis)인데 한국에 파송 되어 최초로 순교한 여 선교사입니다. 1896년 군산에서 아이들과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던 그녀는 결혼 후에는 전주 서문 밖에 약방을 개설하고 환자들을 치료하며 선교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파송한 미선교부의 지원으로 병원을 지은 후 본격적으로 의료선교를 하게 되었는데 그 곳이 바로 전주 예수병원입니다.

데이비스 선교사는 누구보다 전도의 열정이 강했습니다. 가가호호 방문하며 전도를 하였는데 한 해에 1,885명을 전도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전도하는 일에 목숨을 바쳤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을 사랑하던 그녀는 예수병원에 입원한 어린이들을 돌보다가 열병에 전염되어 41세의 나이로 순교를 하였습니다. 그녀의 기념비에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생명을 바쳐 선교한 여장부. 데이비스 선교사가 헌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머니로부터 배운 십자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십자가 사랑에 감격하였기에 전도를 하였으며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선교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또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도 십자가의 사랑을 믿고 그 사랑이 마음에 채워질 때 비로소 영혼구원에 앞장서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나님께서는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는데 우리에게 무엇을 더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로 확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영원한 천국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는 십자가의 복음 때문입니다.

ⓒ조동천 목사 미국생활 설교 예화집<우리동네 가나안 이야기> 중에서

 

▣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

 

감옥에 갇힌 수감자들이 경험하는 흔한 일 가운데 하나는 감옥에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배우자로부터 이혼 서류를 받는 일입니다. 오랜 기간을 감옥에서 보내는 동안 바깥에서 변치 않고 기다려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죄수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조차 곧 잊어버립니다. 때로는 교회에서도, 처음에는 알코올이나 마약 등에 속박된 사람을 환영하지만 그들이 빨리 ‘적응’하지 못할 때 그들을 경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자유로워질 때까지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분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깊고도 끝없는 우리의 필요에 질리지 않는 유일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죄와 반역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면서도 무엇이 우리의 행동을 조종하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반역은 죄악이었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긍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속박된 자의 인생을 더 험난하게 몰아가셔서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더욱 갈망하게 하시면서도, 그와 갈라서지는 않으십니다. 사랑의 징계를 통해 하나님은 계속 나와 싸워 나가셨으며, 내가 내 감옥에서 나올 때까지 인내를 갖고 기다리십니다. 그분은 간청하시며, 또한 기다리십니다. 자유를 향해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 방법이야말로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그 어떤 축복보다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강력한 증거입니다.

- 「빼앗길 수 없는 축복, 자유」/ 베스 모어

 

▣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독일의 아우슈비치 수용소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던 곳입니다. 그 참혹한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은 눈물을 뿌리면서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왜 이런 일을 허용하고 계십니까?”

그들의 피맺힌 절규는 연합군이 독일을 물리쳐 수용소를 탈환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 연합군이 탈환한 수용소를 점검하러 들어갔습니다. 점검하던 연합군 병사 중 한 명이 한쪽 벽 후미진 곳에 글씨가 쓰여져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인 것 같은 그 글에는 놀라운 내용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던 한 유대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고 있다니? 그 연합군 병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밑에 또 하나의 문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로마서 8:35)

/이동원 목사

 

▣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미국의 목사인 칼 터틀은 결손 가정 출신이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학대당하는 몹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크리스천이 된 후, 어느 날 하나님이 그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가 듣고 싶어졌다. 그는 방해를 받지 않고 하루 종일 기도할 수 있는 교외로 나가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나 15분이 지났을 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몹시 실망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내에게 두 달 된 아기인 재커리를 보러 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방에 들어가 아기를 안아올렸다. 아기를 안고 있으려니 이 어린 아들을 향한 무한한 사랑이 가슴에서부터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울음을 터트리며 아이에게 말했다. ‘재커리,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내 마음을 다해 너를 사랑한다. 살아가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언제나 보호해줄게. 나는 언제나 너의 아버지가 되고, 너의 친구가 되고, 너를 보살필거다. 네가 무슨 잘못을 하더라도, 네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네가 나나 하나님을 외면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갑자기 칼은 자신이 하나님의 팔 안에 있고, 하나님께서 ‘칼, 너는 내 아들이며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네가 어디를 가더라도, 항상 너를 사랑하고, 필요한 것을 주고, 인도하겠다’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확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의 특권이다.

인생의 의문점들? / 니키 검블

 

▣ 예수의 사랑

 

어떤 목사님이 ‘예수의 사랑’이라는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한 청년이 찾아와 취직을 부탁했다. 목사님은 설교 준비중이어서 청년을 푸대접하여 보냈다. 얼마 후 그 청년이 죽었다. 목사님은 청년의 죽음 앞에서 “그 때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가슴을 치며 회개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주일에 목사님은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고 성도들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은혜를 받았다.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설교 제목은 교회의 표어가 되었고 성도들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할까’라고 인사를 했다.

그 후 그 교회 성도들은 교회 가정 사회에서 이기심이 발동하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가장 확실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갖게 되었다.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할까?”

/김우영 목사(만나교회)

 

▣ 그리스도의 사랑

 

성경: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 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영국의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 대륙의 전도 책임자로 있을 때 그는 가끔 전도를 희망하는 후보자를 면접하였습니다. 한번은 봉사하기로 결심한 한 사람을 만나 "왜 당신은 해외 선교사로 가기를 원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선교사 후보자는 대답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가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또 다른 한 명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리스도 밖에서 타락하고 있기 때문에 선교사로 나가기를 원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때 허드슨 테일러는 말하기를 "그 모든 동기들은 좋지만 시험과 시련 그리고 고생, 심지어 죽음의 순간을 당할 때, 그것은 당신을 구하지 못합니다. 단지 한 가지 동기가 당신을 어려운 시험과 시련에서 견디게 해 줄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선교사가 한번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진실로 좋아해서 하십니까?" 그의 대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닙니다. 나와 처는 먼지와 이 고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초라한, 냄새가 나는 이런 오두막집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가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진정한 봉사를 하게 할 것입니다. 오늘도 이와 같은 주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 조건 없는 사랑

 

본문: 요일4: 10- 11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동물원은 누구에게나 기쁨과 즐거움을 줍니다. 그런데 동물보호라는 추세 때문에 동물들을 사들여 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황금원숭이, 이구아나 등 희귀동물 40여종 153마리를 기증받게 되었습니다. 기증자는 스리랑카 라자팍세 대통령입니다. 이런 기적 같은 쾌거는 지구촌 사랑나눔 김해성 목사, 한 사람의 공로로 된 것입니다.

김 목사는 1996년 스리랑카 노동자들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몰려오는 스리랑카 노동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2003년에는 한 노동자의 작은아버지 곧 야당 국회의원을 초청해 주었습니다. 김 목사는 그와 친분을 쌓고 2004년 쓰나미 재난 때에 한 달간 현지에서 진료봉사를 했고 한기총 도움을 받아 430만 달러 의료품과 생필품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그간 야당 의원은 국무총리, 또 지금의 라자팍세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라자팍세 대통령은 김 목사와 한국 국민에게 고마운 마음에서 그 희귀한 동물들을 기증한 것입니다. 이것이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푼 결과이자 기적인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 4- 7)

 

하나님의 사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귀한 참 사랑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1. 연약할 때 사랑입니다. 2. 경건치 않을 때 사랑입니다. 3. 죄인 되었을 때 사랑입니다. 4. 원수 되었을 때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할 아무런 조건이 없을 때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6- 8)

하나님은 우리 머리털까지 세시는 하나님이십니다.(마10: 30) 여러분의 부모가 여러분의 머리털 숫자를 세어보고 아십니까?

이렇듯 하나님이 우리에게 향하신 사랑은 아무런 조건 없이 값없이 주신 것이기에 그 사랑의 위대함은 이 세상 그 어떤 언어로도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주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계산적으로 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이일을 하면 복을 받고 하늘에 상급이 있기 때문에 하고 있지는 않는지...

고귀하신 주님의 사랑을 진정 깨달은 자라면 주를 위해 아까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우리도 주를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는 삶이 아닐까요!

 

* 기도: 오 사랑의 주님, 주님이 주신 사랑의 선물을 어느 누구에게든지 기꺼이 나누어 주게 하옵소서. 사랑의 모범을 보이신 예수님처럼 그렇게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조건 없는 크신 사랑을 마음속에 풍성히 채워주소서. 나의 이웃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0 0 0 목사

 

▣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이 세상에서 가장 급한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이 세상에서 하던 일 즉시 멈추고 지금 당장 해야될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단 한가지만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서 나와 깊은 사랑을 나누자"마음 문을 열고 조용히 주님을 느끼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과 친밀하고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일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최용우

 

▣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너를 향한 사랑은 너의 행동이나 성취한 일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너를 불렀고 선택했다. 너는 과거에 잘못된 일이 주는 불편한 느낌 때문에 더 가까이 오는 것을 두려워했었지. 그러나 나는 네가 가까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너를 좋아하니까…. 내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너를 사랑한다는 나의 신성에 대해, 또한 내가 정말로 너를 사랑하는가에 대해 너는 의심하기도 했다. 너는 네가 좋아하지 않는 네 속의 많은 부분들과 네가 알고 있는 것들이 너를 향한 나의 뜻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런 것들 때문에 네가 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단정해버리는 것이다! 나는 네가 지은 죄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나를 가슴 아프게 했을 때 네가 불편을 느끼는 이유이다. 나는 착한 모습의 너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야. 순종할 때만 사랑하는 것도 아니야. 단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뿐이다. 더불어 나는 네 삶을 일구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네 속에 있는 네가 좋아하지 않는 모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변화가 시작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지은 죄로부터 벗어나 나의 용서를 이끌어내는 너의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아! 나는 너를 좋아한다. 진심으로 좋아한다.

하나님의 마음 / 콜린 어퀴하트

 

▣ 하나님의 친밀한 사랑

 

기독교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던 한 소년이 어느 날 우연히 이런 말을 들었다. “당신이 하나님을 위해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서 나와야 한다.” 이 말은 소년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골똘히 생각에 빠진 소년은 근처 강가로 갔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강물에 돌을 던졌다. ‘퐁당퐁당.’ 또 돌을 던지려는데 마음속에서 이런 음성이 들려왔다. “나도 같이 하면 안 되겠니?” 소년은 혹시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곧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그 음성은 반복해 들려왔다. 소년은 결국 돌 던지기를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

하나님, 저랑 같이 물수제비를 뜨면서 놀자고 하셨나요? 왜 저랑 이런 하찮은 놀이를 하고 싶으신 거죠? 하나님은 이 세상의 큰 문제에 신경을 쓰셔야 하잖아요.” 그러자 또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

네가 지금 물수제비를 뜨고 있지 않니? 난 그냥 너와 함께하며 친해지고 싶을 뿐이야.”

바로 그날, 열다섯 살 소년이던 나는 예수님이 정말로 나를 깊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수님은 내가 쉬고 있을 때나 혼자 물수제비를 뜨고 있을 때도 나를 사랑하신다. 예수님은 아무 조건이나 제한 없이 나를 사랑하신다.

「아름다운 능력의 길, 예수」/ 댄 바우만·마크 클라센

 

▣ 하나님의 사랑으로

 

미국 시카고의 한 교회학교에 불량기 가득한 소년이 들어섰다. 허름한 복장과 적의에 가득찬 표정…. 소년은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로 인해 심신의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거지처럼 남루한 복장의 소년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교회학교 교사인 파라 선생은 소년을 꼬옥 껴안으며 깊은 사랑을 보여주었다. 파라 선생은 소년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극진히 대해주었다. 그때부터 얼음처럼 꽁꽁 얼어붙었던 소년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그리고 적의에 찬 얼굴에 잔잔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이 소년의 이름은 드와이트 무디(Dwight Moody). 세계적인 부흥사로서 수십만 명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한 종의 이름이다. 교회학교 교사의 진실한 사랑이 불량소년을 부흥사로 만들었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사랑은 고장난 인생을 정상의 인생으로 바꾸어놓는다. 사랑은 비극적 인생을 희망적 인생으로 변화시킨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고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임한창

 

▣ 하나님의 사랑과 광채

 

많은 사람들은 불행이 자신을 무감각하게 하며 성미가 비뚤어지고 모질고 회의적이 되게 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그러나 불행이 반드시 우리에게 상처를 주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불행을 견딘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새로운 인생관, 곧 평화와 소망의 관점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우리가 겪는 불행을, 우리를 도우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더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교훈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광채가 우리의 삶에 가득할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의존하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하늘 아버지로 신뢰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러면 어떠한 불행도 여러분을 파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그 가장 암담한 순간에도 여전히 ‘아버지가 나와 함께 하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 직전의 흑암의 때, 여러분의 육체와 마음이 쇠약해진 순간에도 여러분은 ‘영원한 반석’ 되시는 하나님을 평안 가운데 의지할 수 있습니다.

- 「희망」/ 빌리 그래함

 

▣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은 세계를 일주한 사람이 모든 나라에서 체험한 것들을 5분 만에 설명한다는 것과 같다.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기에 19세기 찰스 스펄전이나 4세기 황금의 입이라 불리는 요한 크리소스톰과 같은 설교의 대가들이 나서서 온갖 문학적 수사를 동원하더라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14세기 영국 놀위치의 줄리안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너무나 사랑하신다. 그 사랑은 모든 피조물의 이해력을 초월할 정도로 특별하다. 창조주가 우리를 얼마나 많이 그리고 감미롭고 부드럽게 사랑하시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피조물

은 없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매우 크기에 스랍들, 그룹들, 천사장, 정사와 권세, 우주의 모든 존재가 나선다고 해도 깨달을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배운 사람에게 세상이 어떻게 하겠는가? 대양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하나님 사랑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사람에게 세상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에게 마귀가, 죄가 어떻게 하겠는가? 오, 하나님의 사랑! 우리가 그 엄청난 사랑을 얼마나 알겠는가? 그 사랑을 안다고 해도 그것에 근거해 얼마나 행동하겠는가?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GOD 갓·하나님」/ A. W. 토저

 

▣ 호세아를 통해 본 하나님의 사랑

 

호세아란 이름의 뜻은 ‘구원’ 또는 ‘여호와여 구원하소서’라는 의미이다. 호세아는 12 소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잇사갈의 21대 손이며 브에리의 아들이다. 구약 호세아서는 그의 저서이다. 호세아는 주전 750년경 북왕국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때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선지자였다. 그가 살던 시대는 물질적으로 풍요하여 백성들이 사치하고 향락을 즐기던 시대라서 종교, 윤리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하였었다. 백성들은 괴상한 석조전을 지어 놓고 여름에는 더위를 피하고 겨울에는 추위를 피했다.(암3:15) 다메섹 비단 방석을 깔아 놓고 상아 침상에 몸을 비벼대며, 식탁에서는 살진 어린 양과 어린 송아지의 진미를 먹었다. 그리고 거문고를 타며 헛된 노래를 부르고 대접으로 술을 마시고 거문고에 맞추어 야비한 노래를 부르며, 곳곳마다 제단 옆에 전당잡은 옷을 펴고 그 위에 누워 행음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하였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고멜을 아내로 맞이했다. 고멜은 이스라엘에서도 유명한 방탕한 여자였다. 그녀는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와 상종하여 자녀를 낳았다. 그래도 호세아는 고멜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고멜은 자녀를 버리고 정부를 따라 도망가 살다가 불행하게도 정부의 버림을 받았다. 이제는 창부가 되었다. 호세아는 고멜이 버리고 간 자녀를 양육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멜을 찾아 전과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녀를 찾았다. 그는 전 재산을 털어서 그녀가 팔린 창부의 대금을 지불하고 데리고 왔다. 호세아는 참으로 사랑의 실천자였다. 그는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한 자였다.(요일3:18)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으며 가정의 비극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이해하였다. 즉 고멜이 자신의 정부를 좇아간 것 같이 이스라엘 백성도 바알과 다른 가나안 신들을 숭배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사신 우상과 짝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셔서 자기 백성을 버리시지 않고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마침내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게 하신 것이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선포하고 음란한 이스라엘의 무절제한 죄를 지적하였다. 사랑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간절히 호소하였고 돌아오는 자의 축복을 선포했다.(호14:1-9) 호세아는 사랑의 선지자였다. 그는 자기 아내 고멜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절실히 깨달았다. 즉 가정을 버리고 간부와 놀아나는 아내 고멜을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이는 심정을 깨닫게 되었고 이 사실을 온 백성에게 선포했다. 그는 인간적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불쌍히 여길 수 없는 사람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여 주신다고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간곡히 호소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말할 수 없이 크나 큰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사랑하여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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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

 

「예수를 전염시키는 사람들」에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도전받았던 내용이 나옵니다. 목사님은 헬스클럽에서 머리가 벗겨지고 키가 작은, 정말 볼품없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인도에서 이민을 왔고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많은 면에서 두 사람은 대조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여러 날 인사하며 지나다가 목사님이 성경을 선물했을 때, 그는 코란을 선물할 정도로 종교적으로도 맞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너무나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보았을 때, 목사님의 내면에서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성령님의 음성은 "네가 가서 그 사람을 품어 주어라!"라는 것이었고, 자아는 "저 사람은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이 계속해서 그 사람을 안아 주라고 말씀하셨고, 목사님이 그 말씀에 순종하자 그 사람은 목사님의 어깨 위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내와 자식으로 인한 아픔 가운데 주님을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목사님이 뜨겁게 가슴으로 안아 주기에는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를 하나님은 구원하길 원하셨습니다. 합리적인 이성의 판단은 절대 그 사람을 안아 주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그런 사람도 품어 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기를 원하시는 사랑입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속에 용납되지 않는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에서는 제외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이 땅의 소망입니다」/ 김병삼

 

하나님의 크신 사랑 (찬송가 15장, <통> 55장)

 

1. 하나님의 크신 사랑 하늘에서 내리사

우리 맘에 항상 계셔 온전하게 하소서

우리 주는 자비하사 사랑 무한 하시니

두려워서 떠는 자를 구원하여 주소서

2. 걱정 근심 많은 자를 성령 감화하시며

복과 은혜 사랑 받아 평안하게 하소서

첨과 끝이 되신 주님 항상 인도하셔서

마귀 유혹 받는 것을 속히 끊게 하소서

3. 전능하신 아버지여 주의 능력 주시고

우리 맘에 임하셔서 떠나가지 마소서

주께 영광 항상 돌려 천사처럼 섬기며

주의 사랑 영영토록 찬송하게 하소서

4. 우리들이 거듭나서 흠이 없게 하시고

주의 크신 구원받아 온전하게 하소서

영광에서 영광으로 천국까지 이르러

크신 사랑 감격하여 경배하게 하소서 아멘

 

▣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 찬송가 304장(통404장)

 

1.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2. 괴로운 시절 지나가고 땅위의 영화 쇠할 때 주 믿지 않던 영혼들은 큰 소리 외쳐 울어도 주 믿는 성도들에게 큰 사랑 베푸사 우리의 죄 사했으니 그 은혜 잊을까

3.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후렴]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 하나님 사랑에 관한 성경 말씀

 

0 (신명기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0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0 (아가8:7)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0 (마태복음 10: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0 (마태복음 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0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0 (요한복음13:1) 유월전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0 (로마서 1: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0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0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0 (로마서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0 (로마서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0 (에베소서 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0 (에베소서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0 (데살로니가전서 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0 (디도서 3: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0 (요한1서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0 (요한1서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0 (요한1서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0 (요한1서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0 (요한1서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0 (요한1서 5: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 사랑에 관한 금언

 

0 사람이 건강을 잃고 명예를 잃는다는 것은 커다란 손실이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자비심을 잃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큰 손실이다. 어떠한 사상도 금전도, 음악도, 예술도 자비심이 없으면 남을 감화하지 못한다.(서양 격언)

0 미움은 항상 부족함에서 비롯된다.

0 인간의 운명은 대부분 그 사람이 주위에서 받는 사랑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인간의 가치는 얼마만큼 남에게서 사랑을 받느냐보다는 얼마만큼 그 가 그의 주위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있었느냐에 달려 있다.(에픽테투스)

0 사람은 사랑할 때 누구나 시인이 된다.

0 사랑하는 곳에 고생은 없다. 만일 고생이 있다고 한다면 그 고생이야말로 즐거움이다.

0 사랑은 인생의 소금이다.

0 사람이 건강을 잃고 명예를 잃는다는 것은 커다란 손실이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자비심을 잃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큰 손실이다. 어떠한 사상도 금전도, 음악도, 예술도 자비심이 없으면 남을 감화하지 못한다.(서양 격언)

0 불이 빛의 모체가 되는 것처럼 사랑은 항상 평화의 모체가 된다.(칼라일)

0 사랑의 비극이란 없다. 오히려 사랑이 없는 곳에 비극이 있다.(테스카)

0 불신자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믿음이요, 성도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사랑이다.(한태완 목사)

0 사랑은 제자를 낳는다. 사랑없는 이벤트성 전도는 종교인을 낳을 뿐이다.(브라이언 멕라렌)

0 하나님 사랑은 생명나무의 뿌리요, 이웃 사랑은 생명나무의 열매다.(월리엄 템플)

0 우리는 사랑의 빛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 땅에 보냄 받았다.(윌리엄 블레이크)

0 사랑은 그 안에 고귀함을 지니고 있다. 곧 남의 좋은 점을 인정하고 그를 소중히 여기고 높이 평가한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느끼게 한다. 사랑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지닌 폭력을 완화해 주고 불쾌한 것들을 멀리 함으로써 불행과 고통을 덜어준다. 이러한 자세는 이웃에게 참다운 삶을 살게 하고 고통스런 환경을 무난히 극복하게 하며, 그의 내적 상처와 피해를 생각하면서 그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에 사랑의 근원적인 특징이 드러난다.(마틴 루터)

0 아가페는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원리다. 이것은 정복이고, 승리며, 성취다.(윌리엄 바클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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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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