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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생각을 지키라 댓글[0]
마음, 정신, 생각 (2013-12-20 오전 8:34:53) http://blog.somang.net/holylove/8035
마음과 생각을 지키라
 
 
본문: 신명기 4:9∼10, 잠4:20- 23
 
 
의학용어 중에 플라시보(Placebo) 효과란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없는데 있을 것이라 마음에 기대함으로써 나타나는 실제 효과를 말합니다. 우리말로는 기대효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렌지 크기의 종양 때문에 입원했던 미국인 라이트씨는 말의 장액인 크레비오젠이 암에 효과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의사에게 그걸 사용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의사들은 별 기대 없이 사용했으나 암덩어리가 눈 녹듯 사라지는 놀라운 결과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는 말의 장액이 암에 소용없다는 기사를 읽었고 암은 재발했습니다. 의사는 이전보다 두 배나 강한 크레비오젠이라며 물을 주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시 건강해졌습니다.
이것은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따라 육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보다도 마음을 지키라고 했고, 마음의 즐거움이 얼굴을 빛나게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부자들은 돈을 지키기 위해 힘씁니다. 정치인들은 자기의 권세를 지키기 위해 애씁니다. 그리고 연애 중인 사람은 자기의 사랑을 지키려고 힘씁니다. 직장인은 자기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애씁니다. 부모는 자기의 자녀를 지키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쌓이면 행동으로 나타나고 행동이 쌓이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쌓이면 그 사람의 성품이 되어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칼이 의사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생명을 건지는 수술도가 되고 어머니의 손에 쥐어지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강도나 도둑놈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흉기로 전락합니다. 칼이 선의 도구가 되느냐 악의 도구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칼 자체가 아니고 칼을 쓰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합니다. 악한 마음을 가진 자가 권세와 돈을 쥐면 그것은 큰 죄악을 낳고 불행을 낳습니다. 수 억원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대다수가 결국 불행해 지는 이유를 아십니까? 그것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언행은 그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옵니다. 즉 그 사람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에게서 나오는 말과 행실도 악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마음과 정신자세를 갖춘다는 것은 실로 중요합니다. 즉 마음은 나의 주인이요, 근본이고 정신은 인생의 방향타요, 운명의 운전수요, 생활의 지배자입니다. 인생은 마음을 갈고 닦는 도장이요, 정신을 다듬는 수련장입니다. 마음은 우리 삶의 근본입니다.
수백 수천 평의 배가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배의 가장 조그만 부분인 키에 달려 있습니다. 키에 의해 인천에서 부산으로 갈 수도 있고 미국이나 일본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몸에 있어서 키와 같은 것은 생각입니다. 생각은 우리의 육체를 움직일 뿐 아니라 인생을 움직입니다.마음과 생각은 육체의 면역 체계화와 정서? 정신적 건강, 행복 그리고 성공에까지 영향을 줍니다. 베임스 앨런이란 사람은 “육체는 마음의 노예다”라고 말했습니다. 육체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마음가는 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생각은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생각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생각은 우리의 모든 행동과 감정의 기초가 됩니다. 마음과 생각은 인간을 동물과 다르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어떤 생각이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마음은 우리 육체의 건강과 질병에 영향을 줍니다. 생각은 우리의 현실을 결정합니다. 마음은 우리의 태도를 결정합니다.마음과 생각은 우리의 성공에 영향을 줍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를 내 주변의 상황이 엉망이기 때문에 내 생각이 어쩔 수 없이 엉망이 된다고 말합니다.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내 인생이 엉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 생각이 그런 것이 아니고 내 생각이 엉망이기 때문에 내 삶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나를 만들고 내 삶을 만듭니다. 오리알을 품으면 오리가 나옵니다.독수리 알을 품으면 독수리가 나옵니다.내가 어떤 생각을 품느냐가 나를 만들고 삶을 만듭니다. 아치발트 하트는 그의 책 ‘마음의 습관’에서 ‘당신 생각의 결과’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그렇습니다.지금의 나는 내가 어떻게 생각했느냐의 결과인 것입니다.그래서 우리에게 능동적이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이 필요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암이 우리의 육체를 파괴하듯 우리의 삶을 파괴합니다. 성경은 그래서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도 네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최근에 와서 크리스천 심리학이나 상담학의 발달로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종래에는 눈에 보이는 일들만 중요했지 눈에 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한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육체는 건강하고 공부도 잘 하는 사람이 마음에 병이 들어서 자살을 한다든지 아니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말하기를 21세기는 우울증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원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구정물통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는 지금까지 자기가 보고들은 모든 말이나 경험들이 다 들어 있어서 자극을 주기만 하면 온갖 반응들이 다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도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를 주로 믿기만 하면 마음속에 있는 모든 상처가 다 치료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마음에 병이 들어서 정신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또 마음을 지키지 못해서 시험에 빠지거나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도 많고 또 과거의 상처 때문에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것을 조용한 명상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누구나 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마치 구정물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모든 찌꺼기가 가라앉아서 맑은 물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작대기로 저으면 금방 또 흙탕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매번 그런 모양이 반복되다보면 효과가 떨어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는 두 구멍이 있습니다. 하나는 더러운 구정물을 내는 정욕의 구멍이고 다른 하나는 맑은 물을 내는 성령의 샘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적극적으로 더러운 물은 퍼내고 성령의 샘물은 열어서 마음은 언제나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본문은 '마음을 지킨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고백이 중요합니다. 잘못한 것은 입으로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문을 달아서 아무 생각이나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마음에 충만히 하시며 하나님의 능력 있는 삶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의 방입니다. 마음에 무엇을 담아 두느냐, 마음에 누가 함께 하고 있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들이 지내는 방에 밥상을 놓으면 식당이 됩니다. 책상을 갖다. 놓으면 공부방이 되지요 방석을 깔면 응접실이 되고, 이불을 깔면 침실이 됩니다. 요강을 갖다 놓으면 화장실도 되고 화투를 치려고 담요를 깔아 놓으면 금세 도박장이 되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도 그렇습니다. 누구와 함께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에 따라 많이 달라지지요 우리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분을 우리 마음의 방에 영접하면 평안가운데 삶이 새로워집니다. 변화된 삶 속에 확신이 생깁니다. 날마다 기쁨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음은 정원과 같아서 가꿀수록 아름답습니다. 돌볼수록 향기를 발합니다. 내면의 마음을 가꾸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고상한 사람입니다. 마음을 가꾼다는 것은 인격을 가꾼다는 것입니다. 성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품입니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실입니다. 성실에는 황혼기가 없습니다. 가장 위대한 성취는 무엇을 얻는 것보다 향기로운 사람이 되는 데 있습니다. 향기로운 사람이 되려면 마음의 정원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마음은 하나님의 활동 무대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옵니다. 마음에서 지혜와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인생을 승리한 사람들은 마음의 세계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가꾸고 다스릴 줄 알았습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생명의 근원이면서 또한 부패의 원천입니다. 마음에서부터 악한 생각, 추한 생각, 파괴적인 생각이 나옵니다. 결국 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옵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천국도 마음에서부터, 지옥도 마음에서 경험합니다. 사랑도 마음에서, 미움도 마음에서 나옵니다. 일찍이 이태리의 문인 빠삐니는 말하기를 "오늘날 세계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이며 인간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이다"라고 갈파하였읍니다. 마음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마음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무엇보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에 산상설교가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은 5장에서 사람의 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첫 번째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입니다. 예수님은 “옛 사람에게 말한 바…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표현을 통해 계속해서 마음의 상태와 태도를 강조하십니다. 직접 사람을 죽인 것만이 살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심한 분노를 마음에 품고 있는 것도 살인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지 말고 오른쪽 뺨을 치는 사람에게 왼쪽 뺨을 대주고 5리를 같이 가자는 사람과 10리를 동행하라고 하십니다.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태도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잠언에도 마음에 대한 강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주의하고 귀를 기울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으로 지키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해야 할 궁극적인 자리는 마음입니다. 신명기에서도 모세는 같은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면서 그 말씀과 은혜가 마음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베푸신 위대한 일들을 마음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계속해서 힘써 마음을 지키라고 합니다.
 
마음을 지켜야 하는 까닭은 악한 영이 우리 마음을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은 우리 마음이 주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지게 하려고 끊임없이 기회를 노립니다. 우는 사자처럼 위협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힘써’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주일을 성수하고 성도와 교류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 이같은 복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나폴레옹은 왕위에 올랐을 때 자신의 정적 중 한 명인 앙기엔 공작을 매우 눈엣가시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앙기엔 공작은 인품이 좋고 백성들을 잘 살펴 파리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나폴레옹은 그를 함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치솟는 공작의 인기에 위기를 느낀 나폴레옹은 결국 말도 안 되는 모함을 통해 공작을 사형시켰습니다. 당시 이 같은 행태를 목격한 파리 시민들은 큰 분노를 느꼈고 자칫하면 폭동이 일어날 기미까지 보였습니다.
나폴레옹은 시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서정시인’이라는 뜻의 오시앙이라는 발레 공연을 열라고 지시했습니다. 파리 시민들은 화려한 발레 공연에 정신이 팔려 며칠이 지나자 공작의 죽음에 대해서는 모두 잊은 채 발레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기 위해서는 작은 유혹과 하찮은 쾌락으로부터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아무리 달콤하게 느껴지는 쾌락과 즐거움일지라도 세상의 모든 것은 금세 사라질 안개와 같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신앙생활에 있어서 세상과 죄악, 그리고 우리를 더럽히고 병들게 하는 요소에 감염되는 것은 대부분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맞닿을 때 해로운 사상이나 생각, 태도가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자연히 그리스도인들도 그들의 영향을 받아 세상적인 것에 물들어 버리고 맙니다. 생각, 사상, 감정, 선택, 충동, 욕망,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과 만날 때 변화하는데, 대중 매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현대에는 '대중 의식'이 더욱 증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마음이 여린 젊은이들은 부모나 교사, TV, 라디오, 잡지, 신문, 친구들이 주는 미묘한 압력과 충격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대중 매체들은 우리의 의식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이것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 그리스도인이거나 아니면 반 그리스도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계속 접하면서도 오염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날의 이 시대는 폭력과 증오, 편견과 탐욕, 냉소주의가 팽배한 반면, 고상하고 순수하며 아름다운 것은 멸시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의 오염에 물들지 않을 실제적인 방법은 날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성령이 마음속에 임재하심을 깨닫고 성령의 능력을 우리 마음에 적용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책, T.V, 라디오, 그리고 특히 광고 등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침투하는 세상의 태도와 사고 방식과 철학 등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그것들에게 길을 내주고 동화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매일의 삶에서는 세상을 닮은 행동들을 자연스럽게 합니다. 마침내 세상 사람들과 정말 아무 차이도 없는 데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한 선교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는 5년마다 본국에 돌아왔습니다. 그에게 본국에 돌아올 때마다 어떻게 느꼈는지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슬픈 사실은 고국에 올 때마다 표준들이 더욱 낮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욱 더 슬픈 것은 교회까지도 점점 더 세상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성서적인 표준에서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점점 무신론적이고 물질주의적이 되어감에 따라,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교회 분위기는 점차 세상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닮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성령께서 그의 일을 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과 태도가 주님을 닮도록 하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그 수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성경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가득 채울 때 우리는 세상을 경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대로 생각하기 시작할 때, 세상의 위장된 겉모습을 벗겨내고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몸보다 마음을 중요시 합니다. 본문의 말씀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하였으며,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와 함께 악을 행치 말게 하시며 저희 진수를 먹지 말게 하소서"(시141:4),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 하였습니다. 우리는 몸보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며, 마음가짐에 따라 자기 운명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의 눈과 혀를 지켜야 하겠지마는 그보다 더욱 내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집이나 돈을 지키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어도 마음을 지키는 일은 나 이외의 어떤 사람에게도, 맡길 수 없는 일입니다.
 
행복과 불행, 평안과 불안도 외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내 마음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편안하고 안이한 마음으로만 살려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매일 수염을 깍아야 하듯 내 마음도 매일 다듬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 번 청소했다고 언제까지나 방안이 깨끗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도 한 번 반성하고 좋은 뜻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늘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먹은 뜻을 오늘 새롭게 하지 않으면 곧 우리를 떠나고 맙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무엇이고 들여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음을 지키라는 것은 의심, 두려움, 거짓, 교만, 음란 등과 같은 악한 감정이 내 속에 자리잡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일단 마음속에서 나갔다가도, 곧잘 다시 찾아오는 손님입니다. 이런 손님에게 마음의 좌석을 점령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과 온유와 관용과 화평과 겸손 같은 좋은 친구들이 먼저 마음속에 자리 잡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은 선과 악의 싸움터입니다. 이 싸움에서 선한 마음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즉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엡6:10-18)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3:5)
 
저는 이렇듯 마음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에 매일 기도하는 것이 내 마음에 교만과 음란과 거짓과 탐심을 물리쳐주시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온유와 자비와 절제와 양선과 충성과 오래 참음의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수시로 기도드립니다. 바리세인과 서기관 중 몇이 예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는 것을 힐문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못하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시며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한다.(막7:1-23)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회개하여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합니다.
 
옛날 교회 전도지를 보면 사람 가슴판에 뱀, 돼지, 여우, 개, 늑대 등이 그려져 있고 후에 말씀과 복음이 들어가자 이 동물들이 다 쫓겨나고 그대신 가슴에 예수님이 좌정하는 그림이 들어있는 전도지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개, 돼지, 뱀, 여우, 늑대 등을 내 쫓아야 합니다. 즉 우리 마음을 더럽히는 음욕, 탐심, 시기질투, 교만, 분노와 혈기, 미움, 거짓, 도적질, 간음, 살인 등을 깨끗이 회개하고 비워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을 깨끗이 하여 그냥 비워둘 수는 없습니다. 마태복음 12장 43- 45절과 누가복음 11장 24- 26절에 더러운 귀신이 나가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자 저보다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갔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릇이 그냥 빈 채로 있으면 무엇이든 담기게 됩니다. 잠언4: 23절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하였습니다. 마음을 지키려면 마음속에 올바른 마음, 좋은 생각으로 채워져야 새사람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 가입니다. 수양이나 교육은 그 사람의 마음에 다소의 영향을 주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그 사람의 마음을 살피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유가 그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으로 가득 채워져야 올바른 크리스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켜야 할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를 살펴봅시다.
 
 
1. 사랑하는 마음
저는 얼마전 지하철 사랑의 편지란에서 '300원의 행복'이란 글을 보았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신혼 초에 몹시 배가 고픈 데, 가진 돈은 300원뿐이어서 배를 채우기 위해 호빵을 사먹을 까, 아내에게 줄 쵸코렛을 살까 망설이다가 결국 쵸코렛을 사가지고 갔는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안 아내가 무척 행복해 하더라는 이야기 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요한일서 4장 7∼8절에서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구약의 핵심 구절은 십계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주님은 마태복음 22장 37∼40절에서 경천애인(敬天愛人)으로 요약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주님은 이 두 계명을 산상설교에서 황금률의 말씀으로 요약했습니다(마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2. 감사하는 마음
미국의 미시간 호수에서 배 한 척이 침몰된 일이 있었습니다.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배의 침몰과 함께 호수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북서부 대학의 한 학생이었던 수영 선수 한 사람이 사력을 다하여 23명을 구출해 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R.A. 토레이 박사가 로스엔젤레스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토레이 박사는 그의 설교 가운데서 오래 전 미시간 호수에서 있었던 배의 침몰사고에 대하여 얘기하면서 그때 젊은 대학생이었던 수영 선수의 용기와 인간애를 극구 칭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그때의 그 젊은이가 노인이 된 채 앉아서 그 설교를 듣고 있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토레이 박사는 그 장본인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때 사건을 통하여 가장 인상깊었던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 노인은 낮은 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단 한 사람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
"범사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0-21)
 
 
3. 애통하는 마음
하나님은 돈 많은 사람의 은전 헌금보다 과부의 엽전 한 닢을 바치는 마음을 더 크게 보십니다.
신유 은사를 가진 유명한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치유를 위해 기도하다가 그 사람의 암 덩어리가 흘러나오면 그것을 입으로 다 빨아내는 사랑과 헌신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분이 천국에 올라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천국에는 성도들을 위해 아름다운 집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권사님은 당연히 자기에게도 큰집이 준비되어 있으리라고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자신에게 준비된 집은 개집처럼 작은 것이었습니다. 실망에 빠져있는 권사님에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세상에서 영광을 다 받지 않았니?" 꿈에서 깨어난 권사님은 그 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가난한지를 깨닫게 되었으며, 그때부터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드렸습니다. 세상 권세와 부유함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복음이 미련해 보이고 예수님을 믿는 일이 하찮게 보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준비하신 은혜를 받지 못하고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십자가 앞에서 은혜를 구하는 가난한 자로 살아야 합니다.
"화 있을 찐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로다 화 있을 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눅6:25)
 
 
4.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
우리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합니다. 마음에 가득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우리가 가꾸어야 할 마음가운데 하나는 온유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한 마음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사람은 차갑고 딱딱한 마음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찾아갑니다. 따뜻함과 부드러움은 함께 가는 동반자입니다. 따뜻함은 부드러움을 줍니다. 부드러운 것은 따뜻합니다. 강한 것은 세고 딱딱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강한 것은 부드러운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살리는 것은 따뜻한 것입니다. 따뜻한 온도에 모든 것이 소생합니다. 봄바람은 따뜻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살립니다. 마음이란 너무 차가우면 냉정해지고, 너무 뜨거우면 분별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적절한 마음의 온도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따뜻한 마음입니다. 마음의 온도를 조절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에너지가 됩니다. 그 에너지 가운데 25%는 몸과 정신이 운동하는 데 쓰이고, 나머지 75%는 몸의 체온을 유지하는데 쓰인다고 합니다. 몸의 체온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것이 음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마음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매일 말씀을 읽으십시오. 읽은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마음의 온도를 조절하십시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십시오. 그리고 교만, 음란, 거짓, 탐욕(탐심), 시기(질투), 나태(게으름), 불평(불만), 원망, 조급함, 원수 맺음(미움) 등의 악한 생각을 내어쫓고 우리 마음 밭에 사랑, 희락, 화평, 온유, 오래 참음, 충성, 양선, 자비, 절제, 겸손, 감사의 씨앗을 심으십시오. 당신이 품은 마음에 따라 당신 주위의 사람과 환경도 변화될 것입니다. 당신 마음에 푸른 잎이 있으면 평화의 비둘기가 와서 깃들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에게 진정한 승리와 축복을 안겨주십니다. 그러면 진정 온유함이란 어떤 것입니까? 겸손한 마음입니다. 온유함에는 겸손함이 배어 있습니다. 온유를 사과라고 한다면 겸손은 그 사과의 달콤한 맛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겸손이란 자기를 낮추는 마음이요,자기 비움이요,자기부인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언제나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높이고 배려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온유한 마음은 하나님이 쓰실 만한 훈련된 신앙인격입니다. 온유한 자는 행복한 자입니다. 그는 하늘에서 뿐만 아니라 분명 땅에서도 승리합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29:23)
황우석 교수 문제도 결국은 교만으로 인해 발생한 것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2-3)
 
 
5. 청결한 마음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깨끗이 하기 위해 상인들을 내쫓으셨습니다.(요2:14-21)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피로서 사신 하나님의 성전이므로 우리의 몸이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가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도 먼저 집안 청소를 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거룩하신 분을 내 안에 거하게 하려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온갖 더러운 것을 청소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만 예수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거하지 않는 곳은 하나님의 성전이 아닙니다. 어떤 집에서 술을 팔면, 술집이 되고, 빵을 팔면 빵집이 되고, 예배를 드리면 예배당이 되는 것처럼, 내 마음에 음란한 마음이 가득하면 호색가가 되고, 남의 것을 탐내면 도적이 되고, 예수님을 모시면 성전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가 달린 교회만이 성전이 아니고 내 가정도 성전이고(초대교회는 가정집이 전부 교회였음), 내 몸도 성전입니다. 즉 진정으로 예수님을 모신 곳이 성전입니다. 어떤 곳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사랑과 겸손과 온유와 화평이 충만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계십니다.(요4:23) 죄를 회개하고 마음의 문을 열어야 주님이 내 마음에 오십니다. 우리의 몸과 가정과 교회가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음란과 우상 숭배와 분쟁과 시기와 도적질과 거짓과 탐심을 물리치고(골3:5-8, 막7:21-2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과 온유와 겸손과 청결한 마음이 임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울 때 놀라운 힘이 생깁니다.(시24:3-4) 우리 마음을 TV로 중계할지라도 부끄럽지 않을 청결한 마음을 갖으시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3-24)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
어떤 사람이 사막을 여행하다가 마실 물이 동이 났습니다. 물은 찾을 길이 없고 목은 점점 말라왔습니다.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자기가 타고 있는 낙타를 죽여 그 속에 있는 물을 마시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자살 행위와 같다는 것을 알았지만 타는 듯한 목마름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배고픔과 갈증은 이렇게 강렬합니다.
주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재물과 지식과 명예와 이성은 추구할지언정 가장 중요한 의를 위해서는 작은 희생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은 '의'입니다. 우리는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죄와 싸워 이겨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배부름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6)
 
 
7. 긍휼과 자비의 마음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기를 이웃집에 가서 낫을 빌려오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이웃집에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와서 말합니다. "낫을 빌려줄 수 없다고 합니다." 거절당하고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후에 바로 그 집에서 이 집에 낫을 빌리러 왔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낫을 빌려주어라." 아들은 항의를 했습니다. "며칠 전 우리가 빌려달라 했을 때는 저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는데요." 이 때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지혜를 베풀었습니다. "저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빌려줄 수 없다, 하면 이것은 복수다. 저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지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려준다, 라고 말하면서 그런 마음으로 빌려주면 이것은 증오다. 거절당했다고 하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그와는 상관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그저 낫이 필요하다니까 빌려준다 하는 마음으로 빌려주면 이것이 긍휼이다."
우리는 어떤 마음자세로 살아야 할까요? 범사에 복수하는 마음으로 살 것입니까? 아니면 남에게 용서하고 긍휼을 베풀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 10:24)
 
그리스도인은 긍휼을 베푸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가련함을 보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줄 의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굶주린 자들을 먹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우리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여 얼만큼의 희생과 봉사를 하였습니까? 만일 지금까지 그렇지 않았다면 깊이 반성하고 이제부터는 긍휼을 실천하도록 계획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8. 화평케 하는 마음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은 화평을 사랑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화평을 누리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 곧 화평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peace maker가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며 이 직책을 잘 감당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입니다.
 
 
9. 충성된 마음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했지만 기대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심합니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어떤 목사는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 동안 새로 나온 교인이라고는 로버트 모펫트라는 단 한 명의 소년뿐이었습니다. 교인들은 목사님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수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버트라는 소년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제가 열심히 공부해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겠어요." 이 말에 목사님은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그 후 로버트는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어 수많은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충성을 다하십시요. 그리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10. 인내하는 마음
서양우화에 보면 두 마리의 개구리가 뛰어다니다가 그만 우유통에 빠졌습니다. 여기서 두 마리의 개구리는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 마리는 미끄러운 벽과 우유 속에서 모든 것이 끝장났다고 판단하고 체념, 얼마 안 있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한 마리는 그냥 죽을 수 없다고 결심한 후 밤새도록 멈추지 않고 우유를 휘저었습니다. 그 결과 액체였던 우유가 차차 고체인 버터로 변했고, 개구리는 버터를 밟고 힘껏 뛰어 우유통 밖으로 나갔습니다.
과실이 잘 익으려면 눈보라 치는 엄동설한의 추위도 세찬 비바람도 견뎌내는 인내의 시간을 거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신앙 열매에는 인내가 요구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도 사랑과 희락, 화평 다음에 ‘오래 참음 ’(갈 5:22)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욥의 인내를 들었습니다. 욥처럼 어떤 곤경에서도 참고 기다립니시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4-25)
 
 
11.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
어느 독실한 기독교인이 설렁탕집을 인수받아 경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설렁탕 집을 열면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이 집을 찾는 손님들을 예수님 대접하는 것처럼 모시겠습니다” 그런데 주방장이 이전에 하던 대로 커피에 넣는 크림으로 하루 종일 팔 만큼의 설렁탕 국물을 미리 만들어 놓았습니다. 뼈다귀를 오래 우린 진국같이 보이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는 그 날 음식점 문을 닫고 문에 글을 써 붙였습니다. “오늘 하루 쉽니다” 그리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우리 집에 오시는 손님을 예수님처럼 모시기로 하였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크림 국물을 설렁탕 국물로 속여서 대접하겠습니까? 도저히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설렁탕 국물을 모두 쏟아버렸습니다. 그 후 그는 양심적이고 신앙적으로 음식점을 경영하였습니다. 이 소문이 주위에 퍼졌습니다. 이 음식점은 지금 대단히 번성하고 있습니다.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욥8:6)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대상29:17)
"마음 속의 진실을 기뻐하시는 주님, 제 마음 깊은 곳에 주님의 지혜를 가르쳐 주셨습니다"(시51:6)
 
12. 성령충만한 마음
우리 마음과 생각과 언행에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 23)
 
 
성도여러분 모두가 마음을 잘 관리하여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거룩하신 주님, 오늘 하루 주님 앞에서 저희의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변화되길 원합니다. 사랑이 없는 마음에 사랑이 풍성하기를, 소망이 없는 마음에 소망이 깃들기를, 믿음이 없는 마음에 믿음이 세워지기를 원합니다.또한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우리의 생각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바뀌길 원합니다.우리 마음에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충만하게 부어주옵소서. 마음 중심에 주님의 말씀이 좌정하옵소서. 주님께서 지금까지 동행하신 은혜에 대한 감격이 우리 마음에 늘 넘치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오늘 하루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각으로 변화되길 원합니다. 오늘도 저희 마음을 깨끗하게 지켜주셔서 악한 생각이 틈타지 못하게 하시고 늘 주님의 은혜와 성령으로 충만케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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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라 댓글[0]
마음, 정신, 생각 (2013-08-14 오후 9:31:48) http://blog.somang.net/holylove/7939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라
 

본문: 마11: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하루는 무디 선생님이 설교를 하다가 손에 컵을 들고 가르키며 말했습니다. ‘이 컵에서 공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사람들은 공기펌프로 빼야 한다느니 하며 여러 가지 방법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때 무디 선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 컵에서 공기를 빼면 진공상태가 되여 컵이 깨져 버립니다. 컵이 깨지지 않게 공기를 제거 하는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공기대신 다른 것을 채우면 됩니다.’ 하면서 주전자를 들고 컵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마음속에 모든 죄를 자복하고 회개를 하고 새사람이 되어 살려고 해도 그것이 결국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고 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음을 깨끗이 비우기는 하지만 그 안에 다른 어떤 것을 대신 채우지 않았기 때문에 깨져버리는 것입니다. 내안에 예수님의 마음으로 채워야 됩니다. 불교는 비움의 종교입니다. 단지 비움에서 끝나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다릅니다. 기독교는 채우기 위해서 비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컵을 비워야 합니다. 거기에 믿음을 채워야 합니다. 소망을 채워야 합니다. 사랑을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채워야 합니다. 기도로 채워야 합니다. 찬송으로 채워야 합니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 여기고 청결하고 화평하게 하는 마음으로 채워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온유, 절제, 자비, 양선, 충성, 오래 참음)로 채워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마음으로 채워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예수님 마음으로 채우지 않으면 더 악한 마음이 들어오게 됩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우리가 본받고 배워야 할 예수님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낮고 천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요13:4- 7),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요한 또한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하며 주님 앞에서 겸손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3:30) 하였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 온전히 낮아졌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 45)
 
사도바울은 육체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빌3:5,6) 그런 그가 예수님을 믿은 후 변화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믿음이 성숙할수록 더욱 겸손하여졌습니다. 처음에는 그는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전15:9)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그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엡3:8) 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지나자 그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 하였습니다. 즉 세월이 지나갈수록 더 겸손하여지고, 신앙연륜이 깊어질수록 낮아졌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많이 할수록 더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인데, 자기가 주인노릇을 하려는 목사와 장로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안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려고 목사와 장로간에 싸움을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 것은 마귀입니다. 교회의 주인을 진정으로 예수님으로 모시려면 교회 민주주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도 모두가 평등해야 합니다. 그래서 위임목사나 장로도 한 번 선출되었다고 70세까지 할 것이 아니라 재신임투표 제도로 바꾸는 것이 바림직합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5- 6)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잠17: 18- 19) 그리고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입니다.(잠15:33) 또한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잠22:4) 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 5- 8)
 
 
우리 다함께 찬송가 455장, <통> 507장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을 부르겠습니다.
 
 
1.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2. 주 모습 내 눈에 안보이며 그 음성 내 귀에 안들려도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3. 가는 길 거칠고 험하여도 내 맘에 불평이 없어짐은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4. 주예수 세상에 다시 오실 그 날엔 뭇성도 변화하여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후렴>
주님의 마음 본 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누가복음 4:38~ 44에 보면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를 마치신 예수께서는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으셨는데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갈릴리의 여러 마을을 거쳐 가버나움에 이르신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더러운 귀신들린 자를 고치십니다. 이어 심한 열병을 앓고 있던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십니다. 예수님의 권위있는 말씀의 능력과 치유의 능력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 해 질 무렵에는 예수님의 주위가 온갖 병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이미 예수께서 하루 종일의 수고로 인해 지친 때였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끝까지 모든 병자들을 기쁘게 맞으시며 일일이 그들의 몸 위에 손을 얹어 고쳐주셨습니다. 말씀으로도 그들을 고칠 수 있는 능력자이셨지만, 누구도 돌려보내지 않으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픈 부위를 만져가며 고쳐주셨습니다. 죄인이라 불리는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에겐 이처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파하고 신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을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이 긍휼의 마음은 마침내 십자가로까지 낮아지셔서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흘리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금잔고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상을 받았는가도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목적을 달성했는가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랑을 나누며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디선가 읽었던 글이 떠오릅니다. “오늘 나는 해가 지고 난 다음 내가 가게 될 아름다운 나라를 생각해본다. 내 옆을 지키시는 그분의 크신 은총을 받을 때 내 관에는 별이 하나라도 있을 것인가? 저녁에 해가 지고 났을 때 내 관에는 별이 하나라도 있을 것인가? 평온의 큰 저택에서 축복받고 잠 깨었을 때 내 관에는 별이 하나라도 있을 것인가?” 서로 불쌍히 여깁시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나의 진정한 가치는 신앙의 자리에서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겸손하여 섬기는 자가 되고 온유하고 거룩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 등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본받기 원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하고 낮아져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참 평안을 통해 우리의 삶이 복되게 하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겸손함을 제 마음에 가득 담기 원합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이 하나님께 있음을 신뢰하고, 오직 기도함으로 해결을 얻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웃을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긍휼의 마음을 주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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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라 댓글[0]
마음, 정신, 생각 (2013-08-14 오후 9:31:47) http://blog.somang.net/holylove/7938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라
 

본문: 마11: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하루는 무디 선생님이 설교를 하다가 손에 컵을 들고 가르키며 말했습니다. ‘이 컵에서 공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사람들은 공기펌프로 빼야 한다느니 하며 여러 가지 방법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때 무디 선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 컵에서 공기를 빼면 진공상태가 되여 컵이 깨져 버립니다. 컵이 깨지지 않게 공기를 제거 하는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공기대신 다른 것을 채우면 됩니다.’ 하면서 주전자를 들고 컵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마음속에 모든 죄를 자복하고 회개를 하고 새사람이 되어 살려고 해도 그것이 결국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고 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음을 깨끗이 비우기는 하지만 그 안에 다른 어떤 것을 대신 채우지 않았기 때문에 깨져버리는 것입니다. 내안에 예수님의 마음으로 채워야 됩니다. 불교는 비움의 종교입니다. 단지 비움에서 끝나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다릅니다. 기독교는 채우기 위해서 비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컵을 비워야 합니다. 거기에 믿음을 채워야 합니다. 소망을 채워야 합니다. 사랑을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채워야 합니다. 기도로 채워야 합니다. 찬송으로 채워야 합니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 여기고 청결하고 화평하게 하는 마음으로 채워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온유, 절제, 자비, 양선, 충성, 오래 참음)로 채워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마음으로 채워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예수님 마음으로 채우지 않으면 더 악한 마음이 들어오게 됩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우리가 본받고 배워야 할 예수님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낮고 천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요13:4- 7),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요한 또한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하며 주님 앞에서 겸손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3:30) 하였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 온전히 낮아졌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 45)
 
사도바울은 육체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빌3:5,6) 그런 그가 예수님을 믿은 후 변화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믿음이 성숙할수록 더욱 겸손하여졌습니다. 처음에는 그는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전15:9)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그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엡3:8) 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지나자 그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 하였습니다. 즉 세월이 지나갈수록 더 겸손하여지고, 신앙연륜이 깊어질수록 낮아졌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많이 할수록 더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인데, 자기가 주인노릇을 하려는 목사와 장로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안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려고 목사와 장로간에 싸움을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 것은 마귀입니다. 교회의 주인을 진정으로 예수님으로 모시려면 교회 민주주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도 모두가 평등해야 합니다. 그래서 위임목사나 장로도 한 번 선출되었다고 70세까지 할 것이 아니라 재신임투표 제도로 바꾸는 것이 바림직합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5- 6)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잠17: 18- 19) 그리고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입니다.(잠15:33) 또한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잠22:4) 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 5- 8)
 
 
우리 다함께 찬송가 455장, <통> 507장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을 부르겠습니다.
 
 
1.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2. 주 모습 내 눈에 안보이며 그 음성 내 귀에 안들려도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3. 가는 길 거칠고 험하여도 내 맘에 불평이 없어짐은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4. 주예수 세상에 다시 오실 그 날엔 뭇성도 변화하여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후렴>
주님의 마음 본 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누가복음 4:38~ 44에 보면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를 마치신 예수께서는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으셨는데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갈릴리의 여러 마을을 거쳐 가버나움에 이르신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더러운 귀신들린 자를 고치십니다. 이어 심한 열병을 앓고 있던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십니다. 예수님의 권위있는 말씀의 능력과 치유의 능력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 해 질 무렵에는 예수님의 주위가 온갖 병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이미 예수께서 하루 종일의 수고로 인해 지친 때였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끝까지 모든 병자들을 기쁘게 맞으시며 일일이 그들의 몸 위에 손을 얹어 고쳐주셨습니다. 말씀으로도 그들을 고칠 수 있는 능력자이셨지만, 누구도 돌려보내지 않으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픈 부위를 만져가며 고쳐주셨습니다. 죄인이라 불리는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에겐 이처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파하고 신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을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이 긍휼의 마음은 마침내 십자가로까지 낮아지셔서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흘리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금잔고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상을 받았는가도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목적을 달성했는가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랑을 나누며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디선가 읽었던 글이 떠오릅니다. “오늘 나는 해가 지고 난 다음 내가 가게 될 아름다운 나라를 생각해본다. 내 옆을 지키시는 그분의 크신 은총을 받을 때 내 관에는 별이 하나라도 있을 것인가? 저녁에 해가 지고 났을 때 내 관에는 별이 하나라도 있을 것인가? 평온의 큰 저택에서 축복받고 잠 깨었을 때 내 관에는 별이 하나라도 있을 것인가?” 서로 불쌍히 여깁시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나의 진정한 가치는 신앙의 자리에서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겸손하여 섬기는 자가 되고 온유하고 거룩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 등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본받기 원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하고 낮아져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참 평안을 통해 우리의 삶이 복되게 하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겸손함을 제 마음에 가득 담기 원합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이 하나님께 있음을 신뢰하고, 오직 기도함으로 해결을 얻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웃을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긍휼의 마음을 주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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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댓글[0]
마음, 정신, 생각 (2013-07-12 오후 6:30:25) http://blog.somang.net/holylove/7885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본문: 고전13: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차 두 대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고통받는 사람을 도와 주려고 달리는 앰블런스였고, 또 한 대는 최신식 모델의 세단이었으나, 차선을 마구 달리면서 다른 차를 추월하고 중앙선을 침범하여 위험스럽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남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을 사고를 저지르고 말 형세였습니다. 이들 두 대의 차량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에서 왔을까요? 엔진? 차체의 모양? 값의 차이? 아닙니다. 유일한 차이는 누가 운전석에 앉아 있느냐 였습니다. 하나는 사랑과 봉사의 목적을 가진 사람이었고 또 하는 술취한 운전사였습니다.
 
부정적이고 더럽고 악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과 긍정적이고 성령 충만하여 좋은 열매가 가득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과의 삶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가 삶의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을 하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우리는 1초 후의 일도 알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의 운전수는 창조주이시며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까? 아니면 유한하고 지치고 무거운 짐진 괴로운 나 자신입니까? 허물과 질병, 미움과 질투의 교차로를 달리면서 생의 목적지도 모른 채 황급하게 내달리기만 하려 하는 나 자신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영생의 지도인 성경을 펴놓고 인도하시는 사랑의 목자 예수님이신가요? 삶의 운전석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마음의 조정실의 열쇠를 전능하신 사랑의 왕 예수님께 드리고 그 보좌에 앉으시게 하십시오. 그가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왕좌인 심령에 거처를 가지실 뿐 아니라 그 보좌에 앉아 결정자가 되게 하십시오. 마음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습관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내 마음을 주님께서 운전하게 하십시다. 그리하면 영원한 생명의 길, 복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시편 37편 4- 6절에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그리고 잠언 23장 7절을 보면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니라'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 곧 그 사람의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면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보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가치있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려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 까요?
 
 
1. 육적인 생각을 영적인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옆을 보니 "POISON"(독약이라는 뜻)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갑자기 그는 배가 아프기 시작하여 병원으로 달려 갔습니다. 이제 곧 창자가 다 녹아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의사는 진단을 마치고, 또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껄껄 웃었다. "'POISON'은 영어로는 '독약'이지만 불어로는 '낚시금지'라는 말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나이아가라 폭포 옆에서 하도 많이 낚시질을 해서 프랑스 사람들 보라고 'POISON'이라고 적어 놓은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 그 사람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독약이 그를 아프게 했다가 치료가 그를 안아프게 한 것이 아니라, 그를 아프게 한 것도 안 아프게 하였던 것도 모두 그의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육신의 일만 생각합니다. 즉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높은 지위를 차지할까? 어떻게 하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 어떻게 하면 기도와 전도를 많이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성경에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잠24:9) 라고 하였고,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하였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왜 이렇게 시끄럽고 살기 어렵습니까? 흔히 환경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환경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악하고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고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17:9-10)
 
성도 여러분, T.V 너무 자주 보지 마십시오. 우리나라 T,V 제작진은 대부분 비기독교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T.V를 통해 세상의 악한 마음과 생각을 심어 줍니다. 이 시대에 가장 힘있는 권력자는 누구일까요? 사람이 아닌 텔레비전이라는 기계입니다. 텔레비전은 보여주는데 목적이 있고, 보여주지 못하면 시청률이 떨어져서 사람들의 외면을 받습니다. 정상적인 것을 보여줘서는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텔레비전은 언제나 비정상적인 것, 자극적인 것, 호기심을 끄는 것들을 찾아 보여주기에 급급합니다. 예를 들어 개가 사람을 물면 그것은 뉴스거리도 안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개를 물었다 하면 금방 호들갑스러운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듣게 되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적인 것 마냥 사람들의 뇌 속에 정보가 저장됩니다. T.V에서는 부동산 투기로 돈번 것을 성공과 축복으로,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이 전통문화요, 미풍양속으로, 진화론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말합니다. 이런 T.V를 보면 세상의 악한 생각이 자신도 알게 모르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오염시키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어느새 '바보상자'에 길들여지고 텔레비전이 하는 말은 진리이고 법이고 표준이고 기준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이는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요일2:16)

 
사탄은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악한 생각을 주어서 악한 일을 하게 하고 음란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음란한 생각을 주어 음란한 행동을 하게 합니다. 거짓된 사람에게는 거짓된 생각을, 불의한 사람에게는 불의한 생각을 자꾸 넣어줍니다. 교만한 사람에게 자랑하는 생각을 주어 잘난 체하게 합니다. 모든 문제는 부패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불의한 생각을 버리고 우리 마음에 성령 충만한 생각으로 가득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귀히 쓰십니다. 즉 교만, 거짓, 음란, 탐심, 나태한 생각을 버리고, 사랑, 희락, 화평, 온유, 절제, 양선, 충성, 자비, 오래참음, 긍휼, 청결, 의로운 마음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2.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어떤 곳에 아들 둘을 둔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은 우산 장사이고 작은아들은 짚신장사였습니다. 이 할머니는 두 아들의 장사 때문에 매일 매일을 근심과 걱정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날이 개여 햇볕이 쬐는 날이면 큰아들의 장사가 안될 것을 걱정해야 했고, 그러다가 비라도 쏟아지는 날이라면 작은아들의 장사를 걱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해가 떠도 걱정, 날이 흐려도 걱정이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한 동네 청년이 할머니를 위로하며 근심과 걱정에서 헤어날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할머니, 그렇게 나쁜 것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좀더 긍정적인 면을 생각하여, 만일 해가 뜨면 작은아들의 장사가 잘 될 것을 기뻐하고 비가 오면 큰아들의 장사가 잘 될 것을 기뻐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비가와도 걱정이 없고 해가 떠도 걱정이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똑같은 현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칫 잘못 생각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따라 가지게 되는 생각"입니다. 즉 현재의 상황만 보고 판단하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홍해 앞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고, 가나안을 정탐한 10명의 정탐꾼들이 그랬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보았을 때 도저히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대기업에서 아프리카 진출을 위한 시장조사를 위해 2명의 사원을 현지에 보냈습니다. 그것은 아프리카에 신발을 수출하기 위한 사전 조사였습니다. 그들은 모든 조사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와서 사장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한 사람도 신발을 신은 사람이 없습니다. 무한한 시장성을 갖고 있습니다."라는 긍정적인 보고와 "아프리카 사람들은 한 사람도 신발을 신고 다니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 켤레의 신발도 팔 수 없습니다."라는 부정적인 보고였습니다.
 
술이 반쯤 들어있는 컵을 보고 어떤 사람은 반 밖에 안 남았다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고 말합니다. 같은 사물이라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어디에 속합니까? 성도 여러분 모두가 예수 안경으로 세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 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느니라"(전10:2)
 
성도들은 현재의 상황만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든 삶과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현재의 환경이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하나님께서 살리고자 하시면 살리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우리의 잘못된 생각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불안을 가져오고 쓸데없는 근심 걱정에 빠지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4)고 말씀하셨고 성경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늘 좋으신 분이시며 평안과 소망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에 대해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만 찾으면 살 길이 열립니다. 진심으로 불의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하나님을 만날 것이며 우리를 널리 용서하고 축복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참으로 좋으신 아버지"이시며 "반드시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을 따라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욥이 그랬고 요셉과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그랬습니다. 결국 모든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는 "마음과 생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잘못된 생각은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기쁨을 잃어버리게 하며, 기운을 뺍니다. 용기를 없애며, 담력을 잃게 합니다. 또한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환란과 절망의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2)
 
 
3. 소극적인 생각을 적극적인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미국이 경제공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펜실베니아에 월터 하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직장을 얻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허사였습니다. 그는 뉴욕에만 3백93개의 체인점을 가진 약국에 3백93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약국에서 성실하게 일하겠습니다.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그러나 단 한통의 답장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월터 하비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입사 지원서를 들고 약국을 찾아갔습니다. 직원에게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저는 월터 하비입니다...." 담당직원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맞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찾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이곳에 선생님이 보낸 3백93 통의 편지를 모아놓았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처럼 적극적인 분을 찾고 있었습니다."
월터는 그날부터 약국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최고 관리직에 올랐습니다. 기회는 노력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기회의 문이 항상 열려있습니다. 성공과 승리와 행복의 비결은 적극적인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적극적인 정신의 소유자라야 세상에서 큰 업적을 이루고 사회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됩니다.
학교에서 보면 적극적인 학생은 앞자리에 앉고 공부도 잘합니다. 연애도 적극적인 사람이 결혼을 잘합니다. 교회에서도 적극적인 성도가 전도도 잘하고 신앙생활도 잘합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
 
 
미국의 소매상협회에서 세일즈맨의 거래실적과 집념의 상관관계를 연구, 공개했습니다. 물건을 판매할 때 세일즈맨 중 48%는 단 한번 권유하고 포기합니다. 두 번 권유하는 사람은 25%였습니다. 세 번 권유하는 세일즈맨은 15%였습니다. 세일즈맨 중 오직 12%만이 네 번 이상 권유한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네 번 이상 권유하는 12%의 세일즈맨이 전체 판매량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88%의 세일즈맨이 판매한 상품은 고작 20%에 불과했습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습니다. 상품을 판매하는데도 이런 무서운 집념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물며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야 오즉하랴. 어떤 사람은 서너 번 전도해 보고 낙담해 '안 믿으면 저만 손해지, 뭐'라고 자기를 합리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성도는 영혼을 구원하는 프로 세일즈맨이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프로는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오직 인내하며 최선을 다합니다.
 
영국의 정신병 학자인 하드필드가 밝힌 실험 결과는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그의 실험은 사람의 정신 암시가 육체의 힘에 얼마만한 영향을 주는 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3명의 남자에게 보통의 상태에서 힘껏 악력계를 쥐게 했을 때 그들의 평균 악력은 101파운드였는데 그들에게 '당신은 참으로 약하다.'고 암시를 준 후 다시 재어보았더니 겨우 29파운드로 보통 힘의 1/3 이하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당신은 강하다.'는 암시를 준 후 재어 보았더니 무려 142파운드에 달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 실험은 나는 강하다는 적극적인 정신 상태로 충만해지자 그들의 체력은 소극적이고 부정적이었던 상태 때보다 무려 500%나 그 힘이 증가했다는 것을 밝혀줍니다.
'난 약하다, 난 못한다.'는 마음으로 포기하려는 유혹만큼 우리를 쉽게 쓰러뜨리는 것도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난 강하다, 난 해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바꾸기만 한다면 포기해버릴 때보다 다섯 배는 나아질 것입니다.
 
 
4. 나 중심의 생각에서 하나님 중심의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큰 성전을 짓는데 세 사람이 석공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임금을 받으며, 똑같은 일을 합니다. 한 사람이 그들에게 묻습니다. "왜 그렇게 힘든 일을 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한 명은 "돈 벌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했고, 또 한 명은 집짓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머지 한 명은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 모두의 말이 틀리지는 않지만 누가 가장 즐겁고 가치있는 생각을 가지고 일하고 있을까요?
빌립보서 1:21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하였습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고전10:31)
마가복음 8장 35절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였습니다. 나를 위해 살지 말고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살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남(이웃)에게 사랑과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남에게 사랑을 베풀고 주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서는 항상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과 악의 갈림길은 나 좋은 것, 나 원하는 것만 생각하면 악으로 넘어가고, 하나님의 뜻과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면 선으로 넘어 갑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의 언행은 그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옵니다. 즉 그 사람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에게서 나오는 말과 행실도 악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마음과 정신자세를 갖춘다는 것은 실로 중요합니다. 즉 마음은 나의 주인이요, 근본이고 정신은 인생의 방향타요, 운명의 운전수요, 생활의 지배자입니다. 인생은 마음을 갈고 닦는 도장이요, 정신을 다듬는 수련장입니다. 칼이 의사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생명을 건지는 수술도가 되고 어머니의 손에 쥐어지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강도나 도둑놈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흉기로 전락합니다. 칼이 선의 도구가 되느냐 악의 도구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칼 자체가 아니고 칼을 쓰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바리세인과 서기관 중 몇이 예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는 것을 힐문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못하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시며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한다.(막7:1-23)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회개하여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합니다.
 
 
5. 어린 아이의 생각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처럼 이제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은 생각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달리심이라"(빌2: 5- 8)
 
 
옛날 교회 전도지를 보면 사람 가슴판에 뱀, 돼지, 여우, 개, 늑대 등이 그려져 있고 후에 말씀과 복음이 들어가자 이 동물들이 다 쫓겨나고 그대신 가슴에 예수님이 좌정하는 그림이 들어있는 전도지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개, 돼지, 뱀, 여우, 늑대 등을 내 쫓아야 합니다. 즉 우리 마음을 더럽히는 음욕, 탐심, 시기질투, 교만, 분노와 혈기, 미움, 거짓, 도적질, 간음, 살인 등을 깨끗이 회개하고 비워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을 깨끗이 하여 그냥 비워두면 안됩니다. 그냥 비워두면 더 악한 것들이 들어옵니다. 그릇이 그냥 빈 채로 있으면 무엇이든 담기게 됩니다.
마태복음 12장 43- 45절과 누가복음 11장 24- 26절에 더러운 귀신이 나가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자 저보다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갔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래서 잠언4: 23절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하였습니다. 마음을 지키려면 마음속에 올바른 마음, 좋은 생각으로 채워져야 새사람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 가? 입니다. 수양이나 교육은 그 사람의 마음에 다소의 영향을 주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득 채워져야 올바른 크리스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마태복음 11장 29절을 모두 찾으시고 읽어봅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찬송가 507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1.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2. 주 모습 내 눈에 안보이며 그 음성 내 귀에 안들려도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3. 가는 길 거칠고 험하여도 내 맘에 불평이 없어짐은 십자가 고난을 이겨내신 주님의 마음 본 받음이라
4.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오실 그 날엔 뭇성도 변화하여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후렴]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교만, 거짓, 음란, 탐욕, 의심 등을 쫓아 버리고 그 대신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 충만 즉 사랑, 희락, 화평, 온유, 절제, 양선, 충성, 자비, 오래 참음, 긍휼, 청결, 의로운 마음으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이 곧 성령의 마음이요, 성령의 열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마음속에 있습니다. 내 마음을 예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고, 성령안에 의와 평강과 희락과 사랑이 가득한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마음의 생각이 하나님 나라의 것으로 변화하면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그 사람의 마음을 살피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유가 그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예수님의 마음과 가까웠기 때문입니다.(행13:22, 삼상13:14)
마틴 루터는 "우리가 매일 거울을 보고 수염을 깎듯이 우리 마음을 다듬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성경을 자주 보고 마음을 깨끗이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을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의 방입니다. 마음에 무엇을 담아 두느냐, 마음에 누가 함께 하고 있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들이 지내는 방에 밥상을 놓으면 식당이 됩니다. 책상을 갖다. 놓으면 공부방이 되지요 방석을 깔면 응접실이 되고, 이불을 깔면 침실이 됩니다. 요강을 갖다 놓으면 화장실도 되고 화투를 치려고 담요를 깔아 놓으면 금세 도 박장이 되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도 그렇습니다. 누구와 함께 하는 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에 따라 많이 달라지지요 우리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분을 우리 마음의 방에 영접하면 평안가운데 삶이 새로워집니다. 변화된 삶 속에 확신이 생깁니다. 날마다 기쁨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심으로 기쁨이 넘치며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옆에 앉아 계신 성도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우리 적극적인 마음을 가집시다. 우리 긍정적인 마음을 가집시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읍시다."
 
좋은 것이 좋게 여겨지지 않고 감사 할 것이 감사함이 아니라 불평으로 짜증으로 지겨움과 싫음으로 내 생활 속에 나타난다면 그것은 상황 때문이라기 보다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내 마음이 문제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부모탓이고 상대 때문이지 내 마음의 잘못은 아니라고 철저하게 믿습니다. 내 마음에 평화와 즐거움이 사라지고 주변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고 감미로운 음악도 귀에 거슬릴 뿐이라면 사는 것이 재미가 없고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뭔가를 놓치고 있거나 잘못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다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하루 하루를 겨우겨우 지탱하고 있으려니 사는 것이 얼마나 따분하고 지겹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만난 문제를 깊이 생각하길 귀찮아하고 해결책을 찾아보고 개선책을 마련하기보다는 대충대충 지나가려는 게으름의 병이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루도 새로운 날이 없이 어제나 오늘이나 항상 똑같이 무감각과 무책임 속에서 살다보니 몸은 젊은데 마음은 이미 꿈을 잃고 늙어버린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져 가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좀더 잘해보자 좀더 달라져보자는 욕심을 가질 때 그 사람은 일이나 공부에 의욕이 생기게 되고 의욕을 가진 사람은 모든 일에 적극적입니다. 그 결과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고 자신을 통제할 수 있고 현실에 편안하게 머물러 있기보다는 앞을 향해 가는 힘을 스스로 갖게 됩니다.
생각이 중요합니다. 생각이 바뀌면 나의 미래는 바뀌게 되어 있고 몸도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고 만나는 모든 일들이 모든 사람들이 새롭고 다릅니다. 잘못된 생각, 비뚤어진 생각이 나를 엉망으로 만들고 싸구려 인생으로 전락시키고 손해도 보게 합니다. 지금 나의 모습에 나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기쁨이 없다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환경이나 내 주변의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서 한 부분이 고장을 일으켜 모든 것을 시들하고 재미없게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을 고치고 나의 생각을 고치면 사는 것이 달라지고 재미있습니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게 되고 견딜 수 없는 고통마저도 견디게 되는 힘이 생깁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사람을 바꾸는 지름길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시대를 바로 잡고 치료하여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고 순결해질 때,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셨던 원래의 그 마음, 새 마음으로 돌아갈 때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무너져 가는 교육도 학생들의 마음을 치료해 주고 회복시켜 줄 때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마음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축복과 보화는 마음에 있습니다. 구원받는 것도 마음을 통해서이고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도 마음입니다. 천국은 마음 안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주님을 본받아 살아가는 성도의 마음은 천국이 되고, 주님이 함께하는 성도의 생활은 항상 부유하고 행복하고 부족함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물질에서 찾고 마음 밖에서 찾지만 세상의 것을 다 가진다해도 행복과 만족이 내 마음 안에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마음을 돌보지 않아서 우리의 마음은 너무 황폐하고 병들고 더러워지고, 원망, 불평, 교만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쓸모 없이 되었습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로마가 멸망한 것은 사람이 비인격적이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세계를 점령하고 군사력도 세계에서 제일 막강했던 로마였지만 정신적으로 타락하고 인격이 무너지고, 감사와 평안이 없고 쾌락을 좋아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할 때 그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아무리 많이 발전해도 우리의 인격과 마음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잘못되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탈리아의 문인 파프니가는 "오늘날 세계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이며, 인간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다"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얼마나 잘 먹고 건강을 잘 챙기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아무리 잘 먹고 건강해도 병은 마음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건강해야 건강한 사람이 되고 마음이 복을 받아야 복있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마음은 두 마음을 함께 가질 수가 없습니다. 나쁜 마음과 함께 주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자유함을 얻어서 내 원수라도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를 위해서 축복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복된 마음이 되며, 이 마음이야말로 참으로 귀하고 부유한 재산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대적이 우리 마음을 넘어뜨리려 할지라도 내 마음을 끝까지 잘 지키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격언에도 "마음이 앞서면 발걸음도 가볍다"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가면 모든 것이 가게 되고 피곤하거나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안 가면 괴롭고 힘이 듭니다. 우리는 흔히 "잘 살면 마음도 좋아지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편히 살면 마음을 다스리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내 마음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주님이 주신 은혜를 내가 잘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제 내 마음의 관리를 잘 할 때 이 사회, 이 나라가 좋아질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내 마음을 찾고 내 마음을 잘 지킬 때 자신도 행복해지고 가정과 교회도 잘되고, 사회도 아름답게 됩니다. 이 나라가 잘 되는 길은 예수님 잘 믿고 예수님 본받아 사는 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 마음의 천국을 이루어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죄 때문에 심판 받고 지옥 갈 수밖에 없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저의 죄를 대신하여 심판을 받아 주신 것을 믿습니다. 이 시간 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합니다. 제 마음 속에 오셔서 지금부터 저의 삶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천국갈 때까지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나의 죄를 씻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구원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겸손과 온유와 순종의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예’만 하셨듯이 우리도 긍정적인 생각과 삶의 자세로 복된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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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댓글[0]
마음, 정신, 생각 (2012-06-16 오전 7:54:00) http://blog.somang.net/holylove/7386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본문: 빌2: 5- 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달리심이라”(빌2:5-11)


 

사람의 언행은 그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옵니다. 즉 그 사람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에게서 나오는 말과 행실도 악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마음과 정신자세를 갖춘다는 것은 실로 중요합니다. 마음은 나의 주인이요, 근본이고 정신은 인생의 방향타요, 운명의 운전수요, 생활의 지배자입니다. 인생은 마음을 갈고 닦는 도장이요, 정신을 다듬는 수련장입니다. 칼이 의사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생명을 건지는 수술도가 되지만 도둑놈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흉기로 전락합니다. 칼이 선의 도구가 되느냐 악의 도구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칼 자체가 아니고 칼을 쓰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 음란, 거짓. 탐심, 미움, 분노 등의 악한 생각이 내 마음을 차지하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는 것과 읽고 듣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바리세인과 서기관 중 몇이 예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먹는 것을 보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는 것을 힐문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못하나 사람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시며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한다.(막7:1-23)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회개하여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을 깨끗이 하여 그냥 비워둘 수는 없습니다. 마음속에 올바른 마음, 좋은 생각으로 채워져야 새사람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 가 입니다. 수양이나 교육은 그 사람의 마음에 다소의 영향을 주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워져야 올바른 크리스천이 되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첫째, 사랑의 마음입니다.(요13:1)

주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16)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4:10),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며(마12:20),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엡5:1-2),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6- 8)

 

이렇듯 하나님이 우리에게 향하신 사랑은 아무런 조건 없이 값없이 주신 것이기에 그 사랑의 위대함은 이 세상 그 어떤 언어로도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주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계산적으로 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이일을 하면 복을 받고 하늘에 상급이 있기 때문에 하고 있지는 않는지...

고귀하신 주님의 사랑을 진정 깨달은 자라면 주를 위해 아까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우리도 주를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는 삶이 아닐까요!

 

둘째, 겸손한 마음입니다.(잠18:12, 롬12:16)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참으로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마구간에서 나시고, 사람(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겸손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겸양의 덕을 지니고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이삭을 통해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무릇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스스로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4:11)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자기를 돌아보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빌2:1-4)

사도바울이 회개한 후에 나는 사도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고전15:9) 그리고 후에 나는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엡3:8) 그 후에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딤전1:15) 믿음이 성숙할수록 더욱 더 겸손해져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겸손의 기독교입니다. 어거스틴의 제자가 하루는 어거스틴에게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그리스도인이 가장 힘써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어거스틴은 주저하지 않고 “겸손이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는 다시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두 번째도 겸손이니라.”, “그럼, 세 번째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세 번째도 겸손이니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들이 모이면 거기가 천국입니다. 가정은 가정천국이 되고, 교회는 교회천국이 됩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직장에서도 서로가 낮은 자세로 상대를 높이면 천국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를 높이는 사람들만 모이면 거기가 지옥입니다. 가정이나 직장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교회구성원들이 대접을 받으려고만 하고 자기를 높이기만 하면 교회도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인정받으려고 하고 얼마나 대접 받으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교인들이 시험에 드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가 섭섭함입니다. 섭섭함이란 감정은 대접받지 못했다 인정받지 못했다는 마음을 가질 때 생기는 것입니다.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을 처리하지 않으면 마음을 비우지 못한 것이고 마음이 미우지 못하면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높임은 없습니다. 따라합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버려야 하나님이 높여주신다. 대접받고 싶은 마음을 버려야 하나님이 높여주신다. 높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나님이 높여주신다”

 

셋째, 순종의 마음입니다.(롬5:19, 고전9:27)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님은 결론을 내리십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눅22:42) 그리고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복종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아골 골짜기라도 가야하고,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하시면 목숨까지도 드려야 합니다. 이런 순종의 마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넷째, 온유한 마음입니다.(마5:5)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엡4:2) 온유한 마음이란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입니다. 온유하지 못하고 돌밭같이 굳은 마음에는 씨가 자라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마13:5, 20) 예수님뿐만 아니라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12:3)

사람의 성공 요인에서 지능이나 기술 훈련보다는 대인관계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직무수행의 실패보다는 대인관계의 실패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만큼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합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려면 ‘온유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면 됩니다. 온유한 자는 말 그대로 부드러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황폐한 관계를 회복시켜 주고 관계를 풍성하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단점이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일입니다. 조금만 서로 섬기는 마음으로 다가가면 잘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37:11)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온유함이 강함을 이깁니다. 강한 치아보다 부드러운 혀가 더 오래갑니다. 우리는 늘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다섯째,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마5:7)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145:8,9)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측은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마14: 14) 예수님은 우리가 죽어 마땅한 죄인이지만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긍휼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불쌍히 여길 줄 모르는 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중세 천주교 세력이 강해지다보니 반대파들과 거역하는 자를 마구 잡아 화형시켰고, 영국의 청교도 혁명은 너무 엄격하게 하다보니 자비가 없어 나중에 왕정복고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3:12- 14)

 


여섯째, 용서하는 마음입니다.(막11:25, 눅6:37)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눅23:34) 스데반도 자기를 향해 돌던지는 자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행7:60) 주님께서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용서하셨습니다. 이 큰 죄를 용서 받은 우리가 우리에게 작은 허물이 있는 자들을 용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마6:14-15, 마18:21-22, 눅11:4, 눅17-3-4, 골3:12-14) 요셉은 자기를 애굽의 종으로 팔은 형들을 용서하였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의 주기도문을 잊지 맙시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18:21,22)

“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일곱째, 거룩하고 의로운 마음입니다.(레11:45, 시29:2, 살전4:7, 딤후2: 21, 22)

주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6)

거룩한 마음은 경건하고 깨끗하며 의로운 마음입니다. 거룩한 삶은 마땅히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거룩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현대는 모든 것이 인스턴트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하나의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곧바로 거룩의 경지에 이르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거룩은 순간순간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보다 주님을 세상에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거룩은 사람들로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또 신자들에게는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한편, 성도들이 거룩하지 않으면 범죄하는 신자처럼 주님의 이름에 불명예와 부끄러움을 가져다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지불한 값, 그리고 우리에게 부여하신 은혜가 거룩한 삶을 위한 우리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거룩은 발전되어가는 것이지 하루 아침에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성령님은 한 단계씩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그 조건들 중에 몇몇은 고백과 상환, 항복, 성경공부, 기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 주를 섬기는 것, 그리고 몸과 마음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거룩은 우리의 성생활과 언어생활, 기질 그리고 의복과 연관이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거룩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는 말씀에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히12:14) 우리는 예수님처럼 거룩하고 경건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들은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다함께 찬송가 455장, <통> 507장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을 부르겠습니다.

1.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2. 주 모습 내 눈에 안보이며 그 음성 내 귀에 안들려도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3. 가는 길 거칠고 험하여도 내 맘에 불평이 없어짐은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4.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오실 그 날엔 뭇성도 변화하여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후렴>

주님의 마음 본 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오늘도 주님 전에 나와 기도하게 하시고 주님의 참 사랑으로 구원받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주님이 되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 기도드리는 이 시간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사랑과 온유와 겸손과 거룩하신 주님의 마음을 닮게 하옵소서. 먼저 우리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사 충만함을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할 때가 많사오니 우리의 믿음을 반석 위에 세워주시어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축복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게 하시고 언제 어디에서나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의 삶이 주님의 말씀에 근거한 삶이 되게 하시고 모든 일 들 속에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시어서 새롭게 변하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빛의 사자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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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상태에 따라 보인다 댓글[0]
마음, 정신, 생각 (2012-02-17 오후 6:21:23) http://blog.somang.net/holylove/7192

내 마음상태에 따라 보인다

 

성경: 마 7: 1- 5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한 여행자가 어떤 도시에 이르러 길가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 물어봅니다.

‘이 도시 사람들의 인심은 어떠합니까?’

그러자 노인이 되묻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들렸던 도시 사람들의 인심은 어땠소?

여행가가 말합니다.

‘너무 천박했어요. 믿을 친구가 하나도 없었답니다.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노인이 다시 말합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이 도시도 비슷할 겁니다.’

얼마 후에 다른 여행자가 이 도시에 와서 노인에게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노인은 여행자가 들렸던 다른 도시 사람들의 모습을 물어봅니다. 여행자가 말합니다.

‘아주 좋았습니다. 친절하고 성실하고 너그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인이 대답합니다.

‘아마 이 도시도 그럴 겁니다.’

내가 노란색 안경을 끼고 보면 세상은 모두 노란색으로 보이고 내가 파란 색안경으로 보면 세상은 온통 파란색으로 보인다. 색안경 색깔대로 사물이 보인다. 내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사물을 보면 긍정적으로 보이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보면 모두가 부정적으로 보인다. 믿음으로 보면 세상 모든 만물에서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하나님의 위대함을 느끼게 되지만 의심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저절로 진화되어 생긴 것으로 보인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내 마음에서 의심과 거짓과 탐욕과 음란을 거두워가시고 마음속에 주의 성령과 말씀으로 충만하게 하사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항상 찬송하고 감사하게하시고 긍정적인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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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의 골리앗 댓글[0]
마음, 정신, 생각 (2012-02-17 오전 8:38:45) http://blog.somang.net/holylove/7190

마음 속의 골리앗

 

미국인들이 최고의 인기 영화로 꼽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마가렛 미첼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미첼은 26세 때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해 7년 만에 완성했다. 그리고 3년 동안은 이 소설을 알아주는 출판사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맥미란출판사의 편집자는 억지로 이 원고를 받았다. 그러나 무명작가의 원고를 읽을 시간이 전혀 없었다. 그는 기차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가는 도중 미첼로부터 “꼭 원고를 읽어주십시오”라는 전보를 3통이나 받았다. 편집자는 그 정성에 못 이겨 원고를 폈는데 나중에는 기차가 뉴욕에 도착한 것도 잊고 원고에 열중하게 됐다. 결국 미쳴의 엄청난 집념은 결실을 맺었다. 사람들은 골리앗을 이기기엔 너무 크다(too big to win)고 생각했지만, 다윗은 담대하게 나아갔다. 그랬더니 의외로 골리앗은 다윗이 준비한 물맷돌 하나로 넘어지고 말았다. 골리앗은 다윗의 물맷돌이 빗나가기에는 너무 컸던 것이다(too big to miss). 어렵게 보이는 문제도 실제 부딪쳐 보면 의외로 쉬울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내 앞길에 있는 돌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만 디딤돌로 이용할 수도 있다.

/최승일 목사(서울 상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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