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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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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댓글[0]
학문, 지식, 책 (2014-07-06 오전 6:18:47) http://blog.somang.net/holylove/8159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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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호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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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의 그 진실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답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그 정성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답니다. 가끔씩 당신은 나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지만 따스한 그대의 눈빛은 안타까운 나의 마음을 믿음과 사랑으로 가득차게 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의 노여움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답니다. 돌아서는 사람의 그 마음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습니다. 가끔씩 당신은 나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지만 따스한 그대의 눈빛은 안타까운 나의 마음을 믿음과 사랑으로 가득차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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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 나 자신도 바로 알 수 있고, 자기 죄를 깨달아 회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진리를 알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가진 것이 있어야 남에게 주고, 베풀 수 있습니다. 내가 없으면서 이웃에게 전하고 나누어 줄 수 없고, 내가 모르면서 남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힘써 하나님을 배우고, 진리를 깨달아야 이웃에게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사명은 하나님 나라 확장과 진리를 가르치고 영의 양식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 열심히 배우기를 힘씁니다. 사도행전 20: 35절에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나누어 주려면 열심히 배우고 알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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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마지막 시대에 인터넷을 통해 폭발한 엄청난 정보의 양은 우리가 무엇이든지 다 아는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덩달아 하나님도 잘 아는 것 같은 착시현상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과 '하나님 그분 자신을 아는 것'은 다릅니다. "저 사람은 진짜로 하나님을 잘 아는 구나!"하는 몇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초 집중합니다. 그것이 가장 급하고 소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심과 진정성은 가장 먼저 기도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많아질수록 기도하고자 하는 열망은 더욱 커집니다. 고로 기도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거의 모른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2.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은 하나님은 개인과 세계 역사를 설계하신 분이시며, 그 마지막 계획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심을 알고, 그래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삽니다. 고로 세상 흐름에 너무 민감하여 왈가왈부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거의 모르는 사람입니다.
3.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한 담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일반 불보다 일곱배나 더 뜨거운 용광로불 속에 들어가면서도 담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고로 이 세상 풍조를 따라가며 갈대처럼 흔들리는 사람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4.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큰 만족을 얻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은 나를 아는 관계는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비밀함이 있으며, 그것은 내 얼굴에 하나님의 '평안'이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고로 이 세상을 원망하면서 찡그리며 삶을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는 것처럼 보여도 그 사람은 교회에 다니는 불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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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진정 아는 자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는 지식을 당신 머리와 가슴 모두에 가득 채우십시오.
가장 근본이 되고 꼭 알아야 할 하나님의 성품과 마음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을 아십니까? 그분이 어떤 분이시건, 그저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더 건강해지고 젊어지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오늘은 또 얼마나 부단히 노력했습니까? 사람들은 스스로 자랑으로 여기는 것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정성과 체력을 아낌없이 쏟아 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그분을 신뢰하며 사랑하며 경외하며 경배하고 있는가를 돌아봅시다.
알지 못하는 하나님은 제대로 믿을 수도, 섬길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겠지만, 어떻게 자녀가 자기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모를 수 있겠습니까? 설령 안다고 해도, 내가 믿고 싶은 하나님의 한 성품만을 붙잡고 왜곡된 신의 형상을 하나님으로 그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자녀는 하나님 말씀과 교제와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바르게 알려는 노력을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얻어야 할 모든 지식의 근본입니다. 오직 자기 하나님을 아는 백성만이 승리합니다.

성도가 무엇보다 배우고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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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성경 말씀을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 14, 15)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 1, 2)
듣지도 알지도 못한 이를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롬10: 14, 롬10: 17)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11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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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신17: 19)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잠2: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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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곧 온유하고 겸손을 배우고 본받아야 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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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히5:8)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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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우리는 의를 배우고(시26: 9, 10), 열조의 지혜를 배우고(욥8:8),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배워야 합니다.(신5:1, 시119: 71- 73)
배우기를 싫어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잠30: 3,4), 미련하여 지고(잠17:16, 잠10:10), 축복을 놓치고(창25:32- 34),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이단(거짓)에 속기 쉬우며(딤후4:4), 괴로운 인생행로를 걷게 되며(시119: 105),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딤후3:15)
나무 몇 그루만 보고 숲을 평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어설프게 성경을 아는 사람이 이단을 따르고 비본질적인 것을 본질인 것처럼 주장하며 우선순위를 뒤바뀌게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한 자는 망합니다. ‘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4:6)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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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 고민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인도를 받기 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삶의 근본적인 자세입니다. 조지 뮬러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6가지 단계를 소개합니다.
첫째,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에 관한 나의 의사가 있지 않도록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한다.
둘째, 결과에 대해서는 나의 감정이나 이상을 개입시키지 않도록 노력한다.
셋째, 성령께서 나를 인도하시고자 하는 방향을 깨달으려고 노력한다.
넷째, 주변 상황을 고려한다. 종종 상황과 말씀과 성령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뜻을 밝혀준다.
다섯째,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내게 보여주시기를 간구한다.
여섯째, 앞에 열거한 대로 하나님께로 향한 기도를 통하고, 성경 말씀과 묵상을 통한 뒤에 심사 숙고하여 다다르게 된 결론에 따라 행한다.
이때 내 마음에 평안이 따르면, 두세 번 더 기도한 다음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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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 트루엣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지식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며,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은 비록 역경이 있다 할지라도 영원한 행복과 풍요로움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매일 매순간의 삶 가운데 우리의 무릎을 꿇고 주님의 뜻을 구합시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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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53장(통 506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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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 더 알기 원함은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2. 성령이 스승 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거룩한 뜻을 깨달아 예수를 알게 하소서
3. 성령의 감화 받아서 하나님 말씀 배우니
그 말씀 한절 한절이 내맘에 교훈 되도다
4. 예수가 계신 보좌는 영광에 둘려 있도다
평화의 왕이 오시니 그 나라 왕성하도다
<후렴>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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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혜 선생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을 수학 시간에 ‘4억 3200만’을 넣어 문장 만들기를 하는데, 우리 반에서 덩치가 제일 큰 녀석과 젤 작은 녀석 둘이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우리 아빠가 ○○장사를 하셔서 4년 동안 모으신 돈이 4억 3200만원’ 이라고 한 녀석이 썼는데, 다른 녀석 생각에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따진 겁니다. 아빠의 능력을 과대 혹은 과소평가하는 것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어쨌든 제 눈엔 둘 다 어찌나 귀엽던지요. 하하.
첨엔 하나님을 참 몰랐던 것 같아요. 막연히 어려운 분으로 알았을 땐, 매일 그 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를 썼지요. 내가 노력하는 만큼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그러다 무얼 잘 못해내면 너무 힘이 들었지요. 나의 무엇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원하시는 그는 내 ‘아버지’이심을 확실히 알았을 때부터 자유함을 누리기 시작했어요. 그가 원하시는 짐이 아니라 그를 잘 몰랐기에 스스로에게 지운 것이었지요. 그가 원하시는 일보단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이 더 소중함을 깨달았어요. 오랜 동안, 내가 일하면 가끔씩 도와주시는 분으로 알기도 했었지요. 내 머리와 가슴만큼 꼭 그 만큼만 그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았어요. 내가 계획한 일에 그를 부르지 않고, 그의 계획하심에 나를 맡기며 내 안에 그가 주신 소원을 또한 친히 이루실 것을 믿고 맡겼을 때 천국은 나의 크기가 아닌 그를 아는 만큼으로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날 위해 준비하셨지요. 그리고 그 일을 통해 나와 함께 하실 원하신다는 걸 알았습니다. 함께 얘기하고, 의논하고, 기쁨을 나누고, 그에게 짐을 맡겨주길 원하시지요. 자식들이 크면서 가끔은 그 녀석들을 통해 위로 받는 것이 좋더군요. 하나님은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시고, 모든 능력이 그의 손에 있지만 그의 눈빛과 마음을 읽어 드릴 땐 고맙다 말씀해 주시는 소박한 내 아버지시지요. 그런 하나님을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그를 아는 만큼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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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 가를 종이에 써봅시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알고 배우기를 힘씁시다.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내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임합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그 분의 뜻을 알 수 있고, 그 뜻대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그 분이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기뻐하시는 줄 알고, 그분이 싫어하는 것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모두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가까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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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찬송가 가사가 생각납니다. 가사처럼 하나님의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합니다. 성령이 스승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거룩한 뜻을 깨달아 예수를 더욱 알게 하소서. 성령의 감화 받아서 하나님 말씀 배우니 그 말씀 한 절 한 절이 내 맘에 교훈이 됩니다. 내 평생의 소원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알아 이웃에게도 널리 전하고 예수님 마음 본받아 겸손하고 온유하고 죽기까지 순종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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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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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알기를 힘쓰라 댓글[0]
학문, 지식, 책 (2014-05-01 오전 8:48:04) http://blog.somang.net/holylove/8132
하나님 알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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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호세아 6:1- 6, 찬송: (453장 <구>506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3절)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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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알 필요가 없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마음을 편안히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지식에 의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인지... .
혹 차가 고장났다고 합시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고장난 차를 고칠 수만 있다고 한다면 그 고장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광대한 정보를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문을 통해서, 또는 컴퓨터를 통해서 우리들의 궁금한 것들을 다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를 바란다면 그 문제만은 우리 각자가 개인적으로 알아야 하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넘치는 정보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많은 정보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만이 지혜롭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은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야말로 삶이 추구해야 할 최상의 목표이며, 또한 삶의 시작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분을 알도록 노력합시다. 그분을 알지 못한다면 다른 모든 지식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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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한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9:24)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한1서 4: 6)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1: 9-12)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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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에딘버러 의과대학에 제임스 심슨 경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지금부터 150여 년 전에 마취제 클로로포름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까지는 수술을 할 때 마취를 하지 않고 그대로 생살을 찢고 했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하는 사람들의 공포심은 이루 말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심슨 경이 발견한 클로로포름 덕분에 그 뒤로 많은 사람들이 수술의 공포감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제자들이 찾아 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평생을 통해서 가장 위대한 발견을 했다고 한다면 무엇을 들겠습니까???. 그들은 그가 ??마취제 클로로포름을 발견한 것이 내 생애 최대의 발견이었다.??하고 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너무나 뜻밖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내 생애에 있어서 최고의 발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쌍한 죄인인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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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의 많은 지식을 다 알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넘쳐야 합니다. 왜 사람들이 믿지 못합니까?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이 절망합니까?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이 잘못 삽니까?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까?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이 헌신을 모릅니까?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고, 하나님의 길을 잘 모르고, 하나님의 약속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는 것 같아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에 대하여 많이 그리고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열심은 사나운 말과 같습니다. 빈 깡통이 가장 요란한 말을 냅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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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1장을 보면 입다가 믿음으로써 이방 나라를 물리치고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그런 승리를 하는 과정에서 그가 잘못된 서원을 함으로써 자기의 무남독녀를 번제의 제물로 불태워 죽이는 너무나 슬프고 불행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즉 입다는 큰 용사였고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그도 역시 부족함이 있고 연약함이 있는 인간으로서 하나님 백성답지 않은 크나큰 실수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입다는 만약 암몬 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승리하고 돌아오는 그 날에 자기 집 문을 열고 나와서 자기를 가장 먼저 환영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해 주시면 나의 가족 중에서 한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번제란 희생 짐승을 잡아 통째로 제단에서 불태워 신에게 드리는 제사로서, 구약 율법에 나오는 5대 제사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제사가 바로 이 번제의 제사입니다. 그러나 율법에서는 번제의 제사를 드리되 소나 양이나 염소와 같은 짐승으로 번제를 드리라고 했지, 사람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단 한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만, 그 사건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나 그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은 사람을 불태워서 바치는 그런 번제를 받으시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가르치신 의미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사람을 불에 태워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인신(人身) 제사라고 합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신 제사를 명백하게 금지하고 계십니다. 즉 신18:9-12에서 보면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일이 가나안 족속들과 그 주변 민족들 사이에서는 행해지고 있었는데, 그런 제사를 하나님은 가증한 행위라고 하시며, 바로 그런 가증한 일 때문에 가나안 족속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입다는 그런 인신 제사를 하나님 앞에서 서원을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입다가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 열심 가운데에는 지식을 따르지 않은 인간적인 열심도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자기 집 문에서 나오는 사람이란 입다와는 가족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식구는 사람을 말하는데 그런 사람 중에 하나를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겠다고 서원하는 것은 대단한 열심이며 대단한 헌신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게 되었을 때, 입다의 승리를 기뻐하며 환영하러 나온 첫 번째 인물이 바로 자기의 무남독녀 외딸이었을 때 입다는 얼마나 큰 슬픔과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그러나 입다는 그 서원을 이행합니다. 즉 자기가 서원한 대로 그 딸을 번제로 바치고 맙니다. 많은 주석가들이나 설교자들은 이처럼 입다가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인신 제사를 서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서원을 이행한 사실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만,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견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원한 것을 성실하게 지킬 것을 하나님은 요구하고 계십니다(시15:1-4절 참고). 그러나 그 서원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허락하시는 범위 내에서의 서원을 말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원치도 않으시며 오히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어떤 일을 서원해 놓고 그것을 이행하는 것을 우리는 신실한 것이라고 칭찬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마치 깡패들이나 조폭(組暴)들 사이에 맺어지는 의리와 충성을 아름답다고 동경하며 칭찬하는 일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릇된 서원을 끝까지 지키는 것은 믿음의 행위가 아니라 무지한 종교적 열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입다는 분명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받을 만한 훌륭한 면모들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이방인 방식의 인신 제사를 서원하고, 또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는 성실하게 이행한 것은 한마디로 무지한 열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입다에게 번제를 드리거나 서원의 제물을 바치라고 명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입다에게 그가 어떤 서원을 하거나 번제를 드리면 승리를 주시겠다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입다가 그런 서원을 합니다만, 그 앞 절에 보면 이미 입다에게는 여호와의 신이 임하셨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신이 임하신 것은 그 자체가 이제부터 하나님이 입다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입다는 그런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열심으로 무언가를 하나님께 더 드리면 하나님이 더욱더 자기와 함께 해주시리라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만, 그러나 그런 인간적인 열심은 그의 가정에 크나큰 불행과 슬픔을 가져오고 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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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다는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역경을 이기고 자기 민족을 구원해 낸 영웅입니다. 그리고 믿음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적인 암흑시대를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지식이 부족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로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두고서도 공연히 자기 딸을 잃는 슬픔 속에서 살다가 일생을 마치고 만 것입니다. 이런 입다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알아 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알아 가는 일에 힘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종교 생활을 할 수도 있고, 더러는 대단한 열심을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빗나간 열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지식 없는 믿음, 지식 없는 열심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날마다 말씀을 배우고 익힘으로써 온전한 지식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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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타락한 종교적인 본능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종교적인 본능은 인간이 무언가 귀중한 것을 신에게 바치면 신이 은총을 주시고 자비를 내려 주시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흔히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을 합니다만, 이것은 인간이 신에게 무언가를 먼저 드려서 신으로부터 은총을 얻고 복을 얻는다는 인간 종교 본능의 표현입니다. 심청이가 공양미 삼백 석을 바쳤더니 천지신명이 감동하여서 아버지 심봉사가 눈을 떴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 종교 논리입니다. 더 나아가면 유대교의 율법주의가 바로 이런 타락한 인간 종교 본능과 열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종교와 율법에 대한 열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열심이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그 열심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어리석고 불행한 민족이 되고 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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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똑바로 알아야 하나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알지도 못한 이를 사랑할 수 없고 듣지도 못한 이를 찬양하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시34: 1- 8)
믿지 아니하는 자는 부를 수 없고 듣지도 못한 이(예수님)를 믿을 수 없습니다. 또한 전파하는 자가 없이 들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롬10:1-17) 그리고 이단에 속지 않고, 영적 분별력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성경말씀을 부지런히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시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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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합니다. 그분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이 우주와 땅을 주관하시며 영원한 세계의 주인이 되시는 분입니다. 때로는 우리를 찢고 치기도 하시지만 언제나 우리를 싸매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 힘쓰십시오. 하나님을 아는 만큼 은혜가 오고 치유가 올 것입니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전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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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1. 나 자신을 모릅니다(피조물임을 깨닫지 못함)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100:3)
2. 자신의 죄를 모릅니다. 따라서 회개하지 못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7:7)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3)
3. 죄의 종노릇을 합니다.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갈4:8)
4. 하나님을 모르면 영의 양식을 공급받지 못하므로 영이 죽습니다. 영이 죽으면 짐승과 같이 됩니다. 짐승과 같은 자는 진리를 듣지 않습니다.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2:11)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잠12:1)
5.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는 반드시 죽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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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서 망하는 것도 아니고, 기회가 없어서 망하는 것도 아니고, 권세가 없어서 망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 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삯꾼 목자나 성령의 은사도 없이 성경을 어설프게 알고, 인도하는 지도자를 경계하십시오. 그런 사람들은 소경된 인도자입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집니다.(마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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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님을 똑바로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 까요?
1. 체험과 행함이 있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어떤 청년이 의과 대학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는 도중에 교통 사고를 목격했습니다. 많은 응급환자들이 발생했습니다. 사람들은 급히 의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응급 치료에 대한 지식은 많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치료를 하려고 하니 두려움도 생기고 손이 떨려서 잘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책으로 공부한 것만으로는 절대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차를 운전하기 위해 운전에 관한 책을 여러 권사서 모두 읽은 후 운전과 자동차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자동차가 질주하는 도로에서 운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신학적인 책을 많이 읽고 성경적인 지식을 많이 습득하는 것이 바로 훌륭한 신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지식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신앙에도 지식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많은 체험이 있어야 확고하고 온전한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체험이 없는 지식만의 신앙으로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살리거나 인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도 체험을 통해 습득될 때 살아있는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체험 중에서도 특히 신앙으로 인해 고통과 수모, 손해를 당할 때 예수님을 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실수나 인격적인 미성숙 때문이 아니라 믿음을 가장한 무계획성이나 용기를 가장한 무모함, 열정을 가장한 혈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할 때 진정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다??고 했고 바울은 우리에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자기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난을 겪으면서 배운 지식이야말로 진정으로 살아있는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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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은 자신이 신앙의 경지에 들어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스스로 자부하기도 했습니다. 어거스틴이 어느 날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천국에 갔습니다. 천국의 입구에서 천사가 ??너는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어거스틴이며 그리스도인입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다가와 어거스틴을 자세히 보더니 말했습니다.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야. 네 머리 속에는 키케로의 철학으로 가득 차 있어.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야??라고 호통을 치며 내려가라고 했습니다. 놀라서 눈을 떠보니 꿈이었습니다. 그 꿈은 어거스틴으로 하여금 객관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그는 그 꿈으로 인해 철저하게 회개하였으며 결국엔 성자가 되었습니다. 체험과 행함으로 얻은 것은 참으로 귀중한 지식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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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가까이 해야 합니다.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의 새끼 낳을 기한을 네가 알 수 있느냐"(욥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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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염소는 사람들이 잘 기어오르지 못하는 가파르고 위험한 곳을 잘 오를 수 있습니다. 필요하면 그들은 뒷발로 일어서기도 하며 좁고 작은 곳에서도 완전히 회전할 수 있는 재주 있는 등산가입니다. 일반적으로 싸움을 좋아하는 동물은 아니지만 염소는 뿔을 매우 잘 사용합니다. 그 뿔로 화난 회색곰과 싸우기도 하며 짐승과 싸워 이기기도 합니다. 이따금 염소는 외로운 생활을 합니다. 매우 춥고, 곤충과 동물이 거의 살지 않는 높은 곳에서 삽니다. 새끼 염소는 태어나기 전에 어미 배에서 5달을 지냅니다. 태어난 지 4시간 후면 새끼는 뛰고 달릴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날 때부터 털이 많이 나있으며 눈도 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염소가 냄새가 난다고 하여 싫어하지만, 염소는 아주 유용한 동물입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소의 젖보다는 염소젖을 더 많이 마시고 있습니다. 염소젖은 위에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좋습니다. 염소 가죽은 아주 좋은 피혁 제품을, 그 털은 좋은 섬유를 만드는데 사용됩니다. 이 귀중한 동물이 어떻게 유능한 등산가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 뒤꿈치는 지면을 고무와 같이 부드럽게 느끼도록 하는 뒷받침이 밑에 붙어 있으며 발굽은 바위를 움켜쥐는 강한 집계와 같은 역할을 하므로 염소는 견고하게 설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발" 을 가진 염소는 거의 수직으로 바위를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 염소를 연구해 보면 재미있는 점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느냐? 염소가 어떻게 태어나는 줄 아느냐?" 하고 욥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하셨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염소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역시 모든 것을 알지 못합니다. 현명한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가 예배와 성경말씀을 통하여 날마다 주님을 아는 지식을 더하므로 지혜로워지시고 열심을 품어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잠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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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활용해야 합니다.
지혜는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입니다. 지식을 활용하려면 먼저 지식을 축적해야 합니다. 지식이 깊어지면 지혜가 됩니다. 지식이 소중한 까닭은 영감을 주고 통찰력을 주고 지혜를 창출하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생명입니다. 기생 라합은 비록 기생이었지만 지식을 소유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녀가 소유한 지식을 잘 사용함으로써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라합은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하신 일을 알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정탐꾼을 감추어 주고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라합은 생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몸에서 보아스와 같은 훌륭한 인물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지식은 사용되기까지는 땅에 심지 않은 씨앗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씨앗과 같은 지식을 활용하는 순간 그 지식은 파워가 됩니다. 라합도 지식을 사용했기에 생명을 얻었습니다. 지혜는 지식의 소유가 아니라 그 지식을 실천함으로써 드러납니다. 지식은 과거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지식은 학습을 통해 습득할 수 있습니다. 지식은 놀라운 자원입니다. 우리는 많이 아는 사람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많이 아는 사람에게 가서 배웁니다. 특별히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많은 대가를 지불합니다. 우리는 아는 것만큼 볼 수 있고 아는 것만큼 느낄 수 있습니다. 많이 아는 것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칩니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영향력을 끼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식을 생명처럼 여깁니다. 좋은 지식을 선별할 줄 알고 활용할 줄 압니다. 지식을 축적하는 것은 노력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 지식 가운데 좋은 지식을 선별하고 활용하는 것은 지혜의 열매입니다. 좋은 지식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실체화하십시오.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가도 실체화된 지식을 빼앗아갈 수는 없습니다. 지식을 단순히 소유하지 말고 실체화하십시오. 소유양식이 아닌 실체양식으로 지식을 체득하십시오. 무엇보다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삶 속에 활용하는 지혜를 얻도록 하세요. 그때 당신의 삶은 성화되고 보배로운 지혜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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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삶은 '배우기를 거부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더 많이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는 것'입니다. 요새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알지 못하는 것'에서 생기지 않습니까?
어느 교회에서 신앙이 있고 봉사도 잘한다고 하는 한 집사님이 '새롭고 신기한 얘기를 해주는 영성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그 세미나를 1년 동안 다니니까 자기만 영성이 높은 것 같고 다른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영성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목사들도 거의 다 영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결국 기존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방황하는 영적인 보헤미안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더 많이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바른 것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책을 한 권만 읽지 말고 계속해서 많이 읽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무서운 사람은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폭넓게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욱 넘쳐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더 배워야 삽니다. 모르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3절에서 호세아는 호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3가지를 꼭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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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왜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칩니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신호입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하나님이 왜 우리를 찢습니까?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줏대 없는 호인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엄하게 벌하십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를 죽이려는 데 있지 않고 우리는 살리려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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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고,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신다"는 말은 신속하게 우리를 일으켜주신다는 히브리적인 표현입니다. 만신창이가 되어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는 사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삶이 힘들어도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가운데서도 사는 길이 있습니다. 넘어진 곳이 일어서는 곳입니다. 가장 절망적인 때가 가장 하나님이 은혜 주시는 때입니다. 요즘 경제가 많이 어렵다고 합니다. 살아가기가 옛날보다 많이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곁 같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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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움이 깊어 질식할 것 같았는데 여지없이 하나님은 샛별처럼 일정하게 다시 나타나셔서 우리에게 소망의 길을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늦을 수는 있지만 없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늦게 주어지는 은혜가 더욱 풍성한 은혜가 될 수 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한곁 같으십니다. 그처럼 한결같은 하나님, 한결같은 사랑을 생각하며 우리도 한결같은 모습, 한결같은 인격, 한결같은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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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어떤 분은 예배를 잘 드립니다. 그러나 너무 인색합니다. 그 사는 모습에는 자비와 인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드리는 예배가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될까요? 하나님은 인애가 없는 자를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4-5절).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인애를 보여주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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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주님은 우리가 성장하기를 원하고 계심을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됩니다. 부모는 자녀가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키가 자라고, 체중이 늘어나기를 위해서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하도록 해 줍니다. 그리고 자녀가 성장해 가면서 지혜가 자라고 세상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조언과 여건을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장성하면 출가시켜 그들 스스로가 살림을 꾸려 나가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곧 주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속히 성장하기 위해 말씀과 기도로 훈련시키시고, 원수 마귀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하시기 위해 각종 은사와 능력으로 덧입혀 주시고, 그리고 성장하였을 때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도록 만드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원하시는 분은 갈릴리공동체로 오세요
성경을 바로 가르치고 교제와 은혜를 충만하게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그분은 사랑이십니다. 믿음을 가지고 동행하면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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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지혜와 지식의 근원이 되신 주님!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더 알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저의 삶 속에서 저는 감추어지고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길 원합니다. 우리가 얄팍한 세상 지식을 자랑하지 않게 하시고, 겸손히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게 하소서. 기도가 변질되고 말씀이 약화될 때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던 것을 기억하게 하시고, 기쁨으로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하나님을 알기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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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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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알고 배우기를 힘쓰자 댓글[0]
학문, 지식, 책 (2012-05-11 오전 8:50:05) http://blog.somang.net/holylove/7349
하나님 알고 배우기를 힘쓰자
 
본문: 호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그 진실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답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그 정성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답니다. 가끔씩 당신은 나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지만 따스한 그대의 눈빛은 안타까운 나의 마음을 믿음과 사랑으로 가득차게 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의 노여움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답니다. 돌아서는 사람의 그 마음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습니다. 가끔씩 당신은 나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지만 따스한 그대의 눈빛은 안타까운 나의 마음을 믿음과 사랑으로 가득차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 나 자신도 바로 알 수 있고, 자기 죄를 깨달아 회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진리를 알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가진 것이 있어야 남에게 주고, 베풀 수 있습니다. 내가 없으면서 이웃에게 전하고 나누어 줄 수 없고, 내가 모르면서 남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힘써 하나님을 배우고, 진리를 깨달아야 이웃에게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사명은 하나님 나라 확장과 진리를 가르치고 영의 양식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 열심히 배우기를 힘씁니다. 사도행전 20: 35절에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나누어 주려면 열심히 배우고 알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17:3)
 성도가 무엇보다 배우고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성경 말씀을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 14, 15)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 1, 2)
 듣지도 알지도 못한 이를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롬10: 14, 롬10: 17)


 둘째,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신17: 19)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잠2: 1- 5)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곧 온유하고 겸손을 배우고 본받아야 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넷째,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히5:8)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이밖에 우리는 의를 배우고(시26: 9, 10), 열조의 지혜를 배우고(욥8:8),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배워야 합니다.(신5:1, 시119: 71- 73)
 배우기를 싫어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잠30: 3,4), 미련하여 지고(잠17:16, 잠10:10), 축복을 놓치고(창25:32- 34),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이단(거짓)에 속기 쉬우며(딤후4:4), 괴로운 인생행로를 걷게 되며(시119: 105),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딤후3:15)
 우리는 남에게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행20: 35)  그런데 내가 가진 것이 있어야 남에게 주고 베풀 수 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면서 남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행8:31)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는 망합니다. ‘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4:6)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알기를 힘씁시다.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내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임합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그 분의 뜻을 알 수 있고, 그 뜻대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그 분이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기뻐하시는 줄 알고, 그분이 싫어하는 것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모두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가까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찬송가 가사가 생각납니다. 가사처럼 하나님의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합니다. 성령이 스승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거룩한 뜻을 깨달아 예수를 더욱 알게 하소서. 성령의 감화 받아서 하나님 말씀 배우니 그 말씀 한 절 한 절이 내 맘에 교훈이 됩니다.  내 평생의 소원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알아 이웃에게도 널리 전하고 예수님 마음 본받아 겸손하고 온유하고 죽기까지 순종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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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는 지식 댓글[0]
학문, 지식, 책 (2012-02-15 오후 1:53:53) http://blog.somang.net/holylove/7180

하나님을 아는 지식

 

미국 시애틀에 세계적인 지도자가 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세상의 지식도 배웠지만,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하나님 섬기는 법을 배웠습니다. 선생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께 의지하며 기도하는 신앙을 배웠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가 세계 최대의 항공 회사인 보잉사를 설립한 윌리엄 에드워드 보잉입니다. 비행기는 엔진이 뒤에 달린 것과 엔진이 날개에 달린 것 두 종류가 있는데, 세계적으로 많이 쓰는 보잉 747은 엔진이 모두 날개에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얻은 지혜로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개발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유대인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자녀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예배드리는 자녀로 길러야 합니다. 땅의 지식은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 수단이 되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인간의 영원한 삶의 목적과 의미, 인간의 가치까지도 새롭게 합니다. 땅의 지식은 눈을 아래로 뜨게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눈을 위로 뜨게 합니다. 삶의 새로운 힘과 능력, 하늘의 지혜를 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말씀보다 귀한 것은 없네」/ 김삼환
 
* 묵상 성경말씀



0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6:3)

0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

0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세아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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