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전도하자
본문: 빌2: 5- 11, * 찬송가 455장, <통> 507장, * 찬송가 505장, <통>268장)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달리심이라”
예수님은 이 세상에 전도하러 오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38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우리는 전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전도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 16, 17) 하였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서 불 속에 던지웁니다.(마7:19) 심판 날에 알곡과 죽정이를 구분합니다. 죽정이란 무엇입니까?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2)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3)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생명을 다 바쳐 복음전하기를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 14- 30절에 보면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이윤을 남겼는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돈을 감추어 두었다가 주인이 이르되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하시고 그 한 달란트도 빼앗기고 어두운 데로 내 쫓깁니다. 전도하지 아니하는 자는 한 달란트 받은 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재능과 물질을 내 이익과 욕심, 성공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이웃과 복음전파를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파수꾼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파수꾼의 사명은 적이 침범하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험한 상태를 보고도 나팔을 불어 알리지 않고 깨우치지 않으면 그 피값을 받게 됩니다. 에스겔서 33장 5- 8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그가 경고를 받았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받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예수 안 믿으면 멸망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웃의 불신을 못본채 하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심판 때에 이웃의 불신자가 지옥으로 끌려가기 전에 ‘저 사람이 한 번도 나에게 전도한 적이 없었다’고 하면서 아담과 하와처럼 핑계대고 탓할 때 심판주가 그 피값을 치루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잠24:11) 예를 들면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내가 가지고 있는 밧줄만 던져도 살릴 수 있는데도 구경만 하는 사람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전도하지 않는 것은 영적 살인이요 하나님의 명령과 부탁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무엇보다 전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골4:3), 하나님이 기쁘게 응답하십니다.
전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길거리 문서 전도(4영리 등), 병원의 환자나 교도소 재소자를 찾아가 전도, 이웃과 친구에게 전도, 트윗터, 불로그, 카페, 홈피 등을 통한 인터넷 전도, 구제 (나눔)활동과 착한 행실과 봉사로 전도, 영화, 책을 제작하여 전도, 신앙서적을 선물하는 방법의 전도 등이 있습니다. 저는 20여년 전에 복음전하기 위해 전도지를 제작하여 집집마다 우체함 속에 넣기도 하고 전철 선반위에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역무실까지 끌려기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는데 특별한 전도전략이나 전도 요령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복음전하겠다는 열정과 뜨거운 가슴이 필요합니다. 사도바울이나 베드로처럼 마음과 목숨을 다해 사람낚는 어부가 되겠다는 정신이 중요합니다. 이런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주셔서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무엇인가를 톨스토이는 말했습니다.
첫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순간)은? 바로 지금
둘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내 옆에 있는 사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셋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하기,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러나 저는 전도라고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에 묻겠습니다.
1. 전도는 000 이다 000에 들어갈(넣을) 말은? 예: 사랑, 헌신, 기쁨, 희생, 사명, 봉사
한국 초기 선교사들은 우리나라에 와서 병원, 학교, 고아원을 건립하고 봉사함으로 전도
2. 00 교회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전도만이 교회와 내가 살길이다.
3. 전도와 자원봉사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나를 필요로 한다. 전과는 달라진 나를 발견한다. 자기 발전을 이룬다.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사랑과 희생적인 마음이 필요하다.
전도의 성패는 마음가짐이 좌우합니다.
사람의 언행은 그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옵니다. 즉 그 사람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에게서 나오는 말과 행실도 악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마음과 정신자세를 갖춘다는 것은 실로 중요합니다. 마음은 나의 주인이요, 근본이고 정신은 인생의 방향타요, 운명의 운전수요, 생활의 지배자입니다. 인생은 마음을 갈고 닦는 도장이요, 정신을 다듬는 수련장입니다. 칼이 의사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생명을 건지는 수술도가 되지만 도둑놈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흉기로 전락합니다. 칼이 선의 도구가 되느냐 악의 도구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칼 자체가 아니고 칼을 쓰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 음란, 거짓. 탐심, 미움, 분노 등의 악한 생각이 내 마음을 차지하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는 것과 읽고 듣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바리세인과 서기관 중 몇이 예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먹는 것을 보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는 것을 힐문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못하나 사람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시며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한다.(막7:1-23)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회개하여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을 깨끗이 하여 그냥 비워둘 수는 없습니다. 마음속에 올바른 마음, 좋은 생각으로 채워져야 새사람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 가 입니다. 수양이나 교육은 그 사람의 마음에 다소의 영향을 주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워져야 올바른 크리스천이 되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아야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존경하고 그분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정도만을 알아서는 안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신랑되신 예수님의 중매쟁이가 되려면 신랑이 어떤 사람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신부에게 자신있게 소개할 수 있듯이 예수님이 어떤 성품을 가졌는가를 알고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첫째, 사랑의 마음입니다.(요13:1)
주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16) 셩경 몇 구절만 찾아보겠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4:10),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며(마12:20),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엡5:1-2),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6- 8)
이렇듯 하나님이 우리에게 향하신 사랑은 아무런 조건 없이 값없이 주신 것이기에 그 사랑의 위대함은 이 세상 그 어떤 언어로도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주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계산적으로 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이일을 하면 복을 받고 하늘에 상급이 있기 때문에 하고 있지는 않는지...
고귀하신 주님의 사랑을 진정 깨달은 자라면 주를 위해 아까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우리도 주를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는 삶이 아닐까요!
찬송가 323장 가사처럼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 소돔같은 거리에도 사랑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를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성경의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알아야 주님의 사랑을 자랑하고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에게 십자가의 사랑을 자랑합시다. 세상에서 사랑의 빛을 비춥시다. 그리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임을 알고 예수를 믿게 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5)
둘째, 겸손한 마음입니다.(잠18:12, 롬12:16)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참으로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마구간에서 나시고, 사람(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겸손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겸양의 덕을 지니고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이삭을 통해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무릇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스스로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4:11)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자기를 돌아보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빌2:1-4)
사도바울이 회개한 후에 나는 사도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고전15:9) 그리고 후에 나는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엡3:8) 그 후에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딤전1:15) 믿음이 성숙할수록 더욱 더 겸손해져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겸손의 기독교입니다. 어거스틴의 제자가 하루는 어거스틴에게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그리스도인이 가장 힘써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어거스틴은 주저하지 않고 “겸손이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는 다시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두 번째도 겸손이니라.”, “그럼, 세 번째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세 번째도 겸손이니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들이 모이면 거기가 천국입니다. 가정은 가정천국이 되고, 교회는 교회천국이 됩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직장에서도 서로가 낮은 자세로 상대를 높이면 천국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를 높이는 사람들만 모이면 거기가 지옥입니다. 가정이나 직장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교회구성원들이 대접을 받으려고만 하고 자기를 높이기만 하면 교회도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인정받으려고 하고 얼마나 대접 받으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교인들이 시험에 드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가 섭섭함입니다. 섭섭함이란 감정은 대접받지 못했다 인정받지 못했다는 마음을 가질 때 생기는 것입니다.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을 처리하지 않으면 마음을 비우지 못한 것이고 마음이 미우지 못하면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높임은 없습니다. 따라합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버려야 하나님이 높여주신다. 대접받고 싶은 마음을 버려야 하나님이 높여주신다. 높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나님이 높여주신다”
만약 우리가 겸손함과 섬기는 마음이 없이 ‘예수 천당, 불신지옥’ 등의 고자세나 정복자(과거 서양열국이 침범한 후 선교사들이 전파)의 태도로 복음을 전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고 심지어는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이 생깁니다,
셋째, 순종의 마음입니다.(롬5:19, 고전9:27)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님은 결론을 내리십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눅22:42) 그리고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복종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아골 골짜기라도 가야하고,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하시면 목숨까지도 드려야 합니다. 이런 순종의 마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사람들을 초청하게 합니다. 종들은 임금에게 순종하여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데로 모두 데려옵니다.(마22: 10) 우리도 말씀대로 순종하여 천국혼인잔치에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님이 혼인잔치에 참석했을 때 포도주가 떨어지자 마리아의 요청으로 하인들이 순종하여 항아리에 물을 부었습니다. 순종하므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순종하여 전도합시다.
넷째, 온유한 마음입니다.(마5:5)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엡4:2) 온유한 마음이란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입니다. 온유하지 못하고 돌밭같이 굳은 마음에는 씨가 자라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마13:5, 20) 예수님뿐만 아니라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12:3)
사람의 성공 요인에서 지능이나 기술 훈련보다는 대인관계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직무수행의 실패보다는 대인관계의 실패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만큼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합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려면 ‘온유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면 됩니다. 온유한 자는 말 그대로 부드러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황폐한 관계를 회복시켜 주고 관계를 풍성하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단점이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일입니다. 조금만 서로 섬기는 마음으로 다가가면 잘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37:11)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온유함이 강함을 이깁니다. 강한 치아보다 부드러운 혀가 더 오래갑니다. 우리는 늘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전도시 주의 사항입니다. 전도할 때 과격한 말이나 너무 큰 소리로 하면 안됩니다. 말한 마디로 천냥 빛을 갚는 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말의 씨가 있습니다. 전도할 때 부드럽고 따뜻한 말로서 전도해야 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15:1)
다섯째,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마5:7)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145:8,9)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측은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마14: 14) 예수님은 우리가 죽어 마땅한 죄인이지만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긍휼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불쌍히 여길 줄 모르는 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중세 천주교 세력이 강해지다보니 반대파들과 거역하는 자를 마구 잡아 화형시켰고, 영국의 청교도 혁명은 너무 엄격하게 하다보니 자비가 없어 나중에 왕정복고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타종교인(불교, 천주교 등)과 이단 사이비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적대시 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하고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불신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3:12- 14)
여섯째, 용서하는 마음입니다.(막11:25, 눅6:37)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눅23:34) 스데반도 자기를 향해 돌던지는 자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행7:60) 주님께서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용서하셨습니다. 이 큰 죄를 용서 받은 우리가 우리에게 작은 허물이 있는 자들을 용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마6:14-15, 마18:21-22, 눅11:4, 눅17-3-4, 골3:12-14) 요셉은 자기를 애굽의 종으로 팔은 형들을 용서하였습니다. 손양원 목사가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자기 양자로 삼음으로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의 주기도문을 잊지 맙시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18:21,22) 탕자가 회개하고 아버지 집에 돌아왔을 때 형은 탕자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처럼 동생을 용서해 주고 잃어버린 자를 찾은 기쁨을 함께 누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먼저 믿은 성도는 새신자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어린 새 싹이 잘 자라도록 사랑과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이웃의 잘못과 허물을 용서하고 전도해서 양육해야 합니다.
“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일곱째, 오래 참고 인내하는 마음입니다.(약5:7- 11, 히10:36)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하시고 동산으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대제사장의 하속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검과 몽치를 들고 왔습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 볼에 키스하면서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유다야 네가 내 볼에 키스하므로 나를 파느냐 빨리 행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달려들어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할 때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의 잡히심에 분노해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 쳐서 떨어뜨렸습니다. 그래 예수님께서 귀를 만져 낫게 하시고 “칼을 집에 꽂으라 칼을 든 자는 칼로 망한다”라고 교훈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까지 참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까지 참으라’는 말은 ‘그들의 행동을 그냥 내버려두어 하게 하라’ 그런 뜻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너희들이 손대면 안된다. 하도록 내버려 두어라.’라는 말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1-3).
예수님을 ‘참으신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참고 사셨습니다. 참고 죽으셨습니다. 그는 참으심으로 일생을 일관되게 나아갔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느껴지는 감동은 예수님의 인내입니다.
‘너희들이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라는 말은 ‘너희들이 세상 살기 힘들어 낙심될 때 주님 바라보라.’ 다시 말하면 ‘가난할 때 주님을 바라보면 참을 수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주님 바라보면 참을 수 있다. 원수를 만났을 때 예수님을 바라보면 참음으로 이길 수 있다. 실패하고, 낙심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주님을 바라보면 능히 참을 수 있다.’라는 말입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전도대상자를 위해 기도하고 찾아가야 합니다.(진도개 전도)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고전13:4) 오래 참음으로 전도와 성령의 열매를 맺읍시다.(갈5:22, 23)
여덟째, 거룩하고 의로운 마음입니다.(레11:45, 시29:2, 살전4:7, 딤후2: 21, 22)
주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6)
거룩한 마음은 경건하고 깨끗하며 의로운 마음입니다. 거룩한 삶은 마땅히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거룩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현대는 모든 것이 인스턴트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하나의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곧바로 거룩의 경지에 이르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거룩은 순간순간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보다 주님을 세상에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거룩은 사람들로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또 신자들에게는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한편, 성도들이 거룩하지 않으면 범죄하는 신자처럼 주님의 이름에 불명예와 부끄러움을 가져다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지불한 값, 그리고 우리에게 부여하신 은혜가 거룩한 삶을 위한 우리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거룩은 발전되어가는 것이지 하루 아침에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성령님은 한 단계씩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그 조건들 중에 몇몇은 고백과 상환, 항복, 성경공부, 기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 주를 섬기는 것, 그리고 몸과 마음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거룩은 우리의 성생활과 언어생활, 기질 그리고 의복과 연관이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거룩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는 말씀에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히12:14) 우리는 예수님처럼 거룩하고 경건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들은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다함께 찬송가 455장, <통> 507장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을 부르겠습니다.
1.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2. 주 모습 내 눈에 안보이며 그 음성 내 귀에 안들려도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3. 가는 길 거칠고 험하여도 내 맘에 불평이 없어짐은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4.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오실 그 날엔 뭇성도 변화하여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후렴>
주님의 마음 본 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오늘도 주님 전에 나와 예배하고 기도하게 하시고 주님의 참 사랑으로 구원받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주님이 되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 기도드리는 이 시간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사랑과 온유와 겸손과 거룩하신 주님의 마음을 닮게 하옵소서. 먼저 우리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사 충만함을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할 때가 많사오니 우리의 믿음을 반석 위에 세워주시어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축복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게 하시고 언제 어디에서나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의 삶이 주님의 말씀에 근거한 삶이 되게 하시고 모든 일 들 속에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시어서 새롭게 변하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주셔서 복음전파에 매진하세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빛의 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