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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전파와 확장 댓글[0]
전도, 복음 (2013-10-11 오후 4:48:54) http://blog.somang.net/holylove/7979
,하나님 나라 전파와 확장
 

본문: 누가복음 17장 20~ 21절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교회와 우리의 가장 큰 사명은 하나님 나라 확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꼭 죽어서만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 9, 10)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 17)

 
만약 교회와 내 안에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없다면 이는 죽은 교회요 죽정이 교인입니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과연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합니까? 아니면 청년들이 세상에서 창업하듯이 목회자가 자신의 목회 사업을 위해 세워진 교회입니까? 모든 교회가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는 것이 아닙니다. 좁은 길이 있고, 넓은 길도 있습니다. 주여! 주여! 부른다고 다 구원 얻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내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해야 합니다.

 
1. 하나님 나라의 주권과 통치자는 예수님입니다.
나라의 구성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토는 우리가 죽은 후에 가는 본향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성도들의 마음에 이르기까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 위해 우리는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복음 전파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자라납니다.(마13: 24- 30, 막4: 31, 32) 하나님 나라의 국민은 주님의 거룩한 피로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또 하나님 나라의 주권은 왕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있습니다.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겔37:27)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렘30:22)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만유의 아버지시며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며(엡4:6), 만유를 통치하십니다(시103:19).
하나님 나라에는 불의가 없고, 정의로운 나라이며 근심, 걱정, 두려움, 불안이 없는 평강의 나라이며, 기쁨과 즐거운 찬송만이 있는 희락의 나라입니다.
즉 천국에는 불의가 없고 악마가 없습니다. 천국에는 어둠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고, 육에 사는 사람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므로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눅8:10, 마13: 3- 53)

 
옛날 전도지에 보면 사람의 몸이 있고 그 몸 안에 뱀. 돼지, 이리, 늑대, 쥐 등이 그려져 있는데,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자 모든 짐승들이 도망가고 그 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실 때 죄악이 물러가고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즉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교만, 음란, 거짓, 탐심, 우상 숭배, 분노, 게으름 등을 내어 쫓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 즉, 예수님의 성품인 겸손과 온유와 순종의 마음을 품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는 곳은 어디 곳이나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며, 성전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우리 마음속에 최고의 지위를 차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상에서 멀리하라 하심은 우상숭배만을 금하신 것이 아니라 일보 나아가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경배하고 그만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고, 만약 다른 신을 두고 섬기면 이는 두 주인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자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정죄함을 받습니다.(겔14:3-8)
 
사람들이 하나님 보다 더 섬기는 그 ‘다른 무엇’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우상들」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섹스라는 우상, 술이라는 우상, 스타라는 우상, 게임이라는 우상, 돈이라는 우상, 오락과 스포츠, T.V 게임중독, 마약이라는 우상, 과학 기술이라는 우상 등에 빠른 속도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을 신격화하고 개인숭배하는 우상입니다.
 
신앙공동체(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 아니고 교황이나 총회장이나 담임목사이거나 장로 등 인간인 경우 하나님 나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상숭배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엡5:5, 고전6:9) 하나님 나라는 오직 하나님만을 주인(왕)으로 모신 사람이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거짓 신과 헛된 일을 버리고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왕의 왕을 사랑하고 섬깁시다.

 
2. 하나님 나라는 의(義)의 나라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6:33)

 
우리는 성 프란시스를 잘 압니다. 그 사람이 유명하게 된 것은 “평화의 기도”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유명한 것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실제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부터 모든 소유를 버리고 평생을 수도하며 산 사람입니다. 그는 짐승들과 대화를 할 정도로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의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참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입은 사람으로서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주님을 닮은 사람을 살려고 노력을 남들 보다 많이 한 자로 여겨집니다.
“의로운 사람의 길에는 생명이 있지만, 미련한 사람의 길은 죽음으로 이끈다”(잠12: 28)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5:6)

 
하나님은 불의와 죄악을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죄인이 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음행하는 자, 더러운 자, 흉악한 자, 우상숭배자, 살인자는 갈 수 없습니다. (갈5: 19- 21, 엡5:5, 계21:8)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6: 9- 10)

 
우리도 과거에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는 죄인이었으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가 믿음으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습니다.(롬3: 23, 24, 28, 롬5:1, 롬8:30, 갈2:16) 오늘도 주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의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시23:3)

 
3. 하나님의 나라는 평강의 나라입니다.
영국의 종교 개혁자 리들리는 메리여왕 1세의 즉위와 함께 화체론적 성찬을 부정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런던탑에 투옥되었다가 뒤에 옥스퍼드에서 레티미와 함께 화형(火刑)되었는데, 그 전날 밤의 일입니다. 그의 동생은 찾아와서 그 밤동안 위로하며 같이 지내자고 했습니다. 그때 리들리는 그것을 거절하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 밤 평안히 자고 내일 순교하겠다."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왜 그는 그렇게 평안하게 죽을 수 있을까? 그것은 주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빌3:7-8) 예수 믿는 사람은 환난이나 죽음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습니다.(요16:33, 행12:7)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어머니 손을 잡고 꽃밭에 놀러갔던 어린이가 꽃을 보자 어머니 손을 뿌리치고는 꽃밭에 들어가서는 이 꽃 저 꽃을 꺾으면서 기뻐했습니다. 한참 후에 주변을 보니 어머니가 안보였습니다. 아이는 앙! 앙! 울면서 손에 가지고 있던 꽃을 땅에 다 던져 버리고 엄마를 찾았습니다. 인생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는 세상에 그 무엇이든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인생의 참된 평안은 하나님 얼굴(민6:26) 주님의 품안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4:9)

 
세상 사람들은 돈, 명예, 지위, 건강 등을 잃을까봐 늘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쫓기는 삶을 살지만 성도는 하나님을 쫓음으로 주님이 나를 항상 보호하시고 지키심을 믿고 의지하기에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임합니다.(신31:8, 시3:6-8, 사41:10) 특히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사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을 믿기에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멜기세댁은 예수님의 예표로서 그는 의외 왕이요, 살렘 왕이요 평강의 왕입니다(히7:2) 진정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자에게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나라가 임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4. 하나님 나라는 기쁨(희락)의 나라입니다.
미국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던 사람이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통경찰에게 교회를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경찰은 멀리 보이는 한 교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있을 텐데, 왜 저렇게 먼 데 있는 교회를 가르쳐 주십니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경찰은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이 근처에 있는 교회들보다도 저쪽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훨씬 기쁘고 즐겁게 보였습니다. 나는 불신자이지만 그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이고 참된 교회인 것 같아서 소개한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도 은혜받은 얼굴과 은혜받지 못한 얼굴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평안하고 기쁜 환경에서 나오는 감사보다 고통과 환난 가운데서 나오는 감사가 더욱 값진 감사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 18)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설령 우리의 삶에 많은 힘겨운 문제가 있을지라도 은혜받은 백성에게는 영혼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며 우리 영혼을 즐겁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영혼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을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야겠습니다.
 
기독교를 가리켜 소위 ‘희락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소원이 성취되었을 때뿐만 아니라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도 기뻐할 수 있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라는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 이 말은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해야 하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주 안에 있을 때’ ‘성령 안에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님께 사로잡혀 있을 때에 비로소 환경을 초월해서 ‘오직 주님’을 바라보게 되고 ‘천국’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아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운명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그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늘 기뻐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갈5:22)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살전3:9)



 
5. 하나님 나라 건설과 확장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성도는 하나님 나라와 의를 확장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도하기에 앞서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먼저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성품과 천성이 성령으로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먼저 변화되지 않고 남에게 전도하는 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둘 다 구덩이에 빠집니다.(마15:14) 지금 한국의 많은 교회가 세속화되었습니다. 교회 안에 사랑이 없고, 의와 평강과 기쁨을 찾기 어렵습니다. 말과 행함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합니다. 외식하는 지도자들이 성행합니다. 교회와 목회자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으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왜곡된 기독교 교리나, 세속적인 교회에서 교회확장을 위한 전도는 이단종교를 전파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23:15)

 
좁은 길, 의로운 길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전파는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훼방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3:10)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1-5)

 
전도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선한 모습을 통하여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전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전도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요? 여러분의 이웃에게 성경말씀을 매일 문자로 보내주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나 행한 것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으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야 합니다. 주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천성문만 바라고 나가야 합니다. 내 주의 찬란한 성에 찬송하며 올라갑시다. 그래서 새 예루살렘 복된 집에서 주를 뵙고 주님 주시는 면류관 쓰고서 영원히 주를 높여 찬송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영원히 영광 받으실 만복의 근원되신 주님, 아름다운 본향 천국을 바라보며 찬송을 부릅니다. 주 예수님 다스리시는 저 거룩한 곳은 이 땅의 가난과 슬픔, 어두움이 없는 곳이요 주님께서 나의 눈물을 씻어주시는 곳입니다. 그 영화롭고 아름다운 천국에서 주와 같이 영원히 살겠습니다. 내 마음이 주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게 하여주시고, 내가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마음의 주인이 되셔서 나를 다스리소서. 나의 몸과 마음 모두 드리오니 주여 받아주셔서 세상 살아갈 동안 하나님 나라와 의를 확장하는데 쓰임 받는 도구되게 하소서. 나는 주님 사랑하며 주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가겠습니다.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 가겠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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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전파에 힘쓰라 댓글[0]
전도, 복음 (2012-07-07 오전 7:12:50) http://blog.somang.net/holylove/7408

복음전파에 힘쓰라

 

본문: 마태복음 28: 18-20

 

남태평양의 뉴 헤브리스 제도는 전혀 문화 혜택이 주어지지 아니한 미개한 지역임을 확인한 페튼 목사는 그곳을 선교하기로 결심하고 주변의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인과 자녀들을 데리고 1958년 영국을 떠났습니다. 페튼 선교사 가족은 탄나 섬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면서 언어와 풍속을 익히며 그들에게 접근했으나 기후가 다르고 움막에서 미개한 생활을 해야 하는 어려움과 태풍이 불어 집이 무너지고 가뭄이 오거나 병든 사람이 생기면 원주민들은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의 침입 때문이라며 무장을 하고 달려와 죽이려고 위협하므로 도무지 복음이 전해질 가망은 보이지 않아 실망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그때 그때를 잘 견디어 가다가 사랑하는 아내가 기후 병으로 죽고 설상가상으로 아들도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존 페른 선교사는 “이곳에서 가족을 잃어버린 불행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데려가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계속 일하기로 결심하고 더욱 복음 전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존 페튼 선교사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으로 계속 노력하자 그토록 완악하고 강퍅하던 주민들이 선교사의 사랑과 헌신적인 봉사에 감복하여 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들의 영혼과 육신의 생활들이 밝아져 복음의 역사는 전개되었습니다.

 

외국으로 선교하러 가시는 분들을 보면 그 헌신이 대단합니다. 얼마 전 해외선교위원회에서 선교 보고하는 내용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느 선교사님은 네팔에서 선교하시다가 두 자녀를 잃고도 그곳에서 계속 사역하려고 했는데, 사모님이 두 자녀가 아른거려 그곳에서 선교를 못하시고 방글라데시로 사역지를 옮겼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한 분은 표창 받는 시간이 있었는데 선교사님은 선교지에서 세상을 떠나시고 대신 사모님이 시아버지와 같이 나오셔서 상패를 받는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복음전파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닙니다. 본문을 보면 더욱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강해 설교가인 존 맥아더는 만일 어떠한 그리스도인이 마태복음 전체 부분을 이해했어도 이 마지막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는 마태복음의 전체 과정을 놓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는 전도는 반드시 해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는 부활하신 주님의 강권적인 명령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고 장사 지낸 뒤 3일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가라” “세례를 주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강권적으로 명령하셨습니다. 선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라는 말씀은 ‘가라’는 것입니다. 모든 족속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지난 80년대 선교열정이 전국 교회로 확산되면서 우리 한국교회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종족들을 주께 인도하고 교회도 세우는 등 큰 사역을 해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전체로 볼 때 4만여 교회 중 80% 이상이 세계선교에 무관심하거나 그것을 도외시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우리는 가는 선교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세례는 우리 주님께서 친히 받으셨고 또한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나아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바로 아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전도와 선교는 가는 선교 못지 않게 보내는 선교가 매우 중요합니다. 전쟁을 할 때 최전선에서 싸우는 군인도 중요하지만 후방에서 엄호사격을 하는 포병부대와 물자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중요한 것처럼 선교 역시 보내는 선교가 중요합니다. 선교사가 아무리 선교에 사명이 있어도 생활비와 활동비를 지원 받지 않고는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특히 배후의 기도는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현장의 선교사나 후방의 후원교회 교인들, 선교행정을 담당하는 이들 모두가 선교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전도(선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기에 무질서하게 물질을 보내는 것보다는 각 교단 또는 선교단과 협력하는 것이 보다 좋은 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선교는 타문화권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충분한 교육과 정확한 정보에 의한 훈련이 이뤄져야 합니다. 현지인을 교육 훈련시켜 사역하게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선교는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전도(선교)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큰 권능 가지신 주님께서는 이 일에 힘쓸 때 세상 끝날 때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5)

전도(선교)의 중요성을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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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이민 가서 낮에는 일하고, 쉬는 날이면 전도에 열심을 내던 한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이 집사님이 한 번은 주택가를 돌아다니다가 한 웅장한 저택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그 집 벨을 누르고 싶은 견디지 못할 충동을 받았습니다.

물론 외국 사람의 명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인종 차별이 심한 미국에서 황인종이 벨을 눌렀다가 ‘거절’한다면 얼마나 자존심 상할 것입니까? 그런데도 누르고 싶은 것입니다. 벨을 세 번째 누를 때까지 아무 소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되돌아가다가 웬지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또 들어서, 다시 네 번째로 벨을 눌렀습니다. 그랬더니 안에서 늙은 영감님이 고개를 내밉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예수 믿으십시오.” 집사님은 단지 그 말만 하고 전도지를 주고 돌아섰습니다. 그 전도지 속에는 집사님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튿날 전화가 왔습니다. 바로 그 영감님이 만나자는 전화였습니다. 집사님이 그 집을 방문했을 때, 성령님의 뜻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집사님이 벨을 누르는 그 순간, 그 노인은 이 세상이 싫어져서 자살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대들보에 끈을 매고 목을 걸려는데 벨이 울렸고 또 울렸습니다. 세 번까지 울렸습니다. 소리가 그쳐서 다시 목을 걸려고 하는데 네 번째 벨이 울리더랍니다. 그리고 받은 전도지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전도는 이처럼 위대합니다. 죽을 생명도 살리는 것입니다.

 성경에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잠24:11)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교회가 훌륭한 교회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자신의 사명을 회피하는 것은 무서운 죄악입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교회의 큰 사명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바이올린이 스타라디바리 바이올린입니다. 그 값이 수억대를 호가하는 명기입니다. 그런데 이 악기는 만들어진 지 147년 만에 최초로 연주되었습니다. 그 악기가 너무 귀한 진품이라 악기 수집가가 자기 집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악기를 통해서 음악이 연주되었더라면 훌륭한 연주가가 탄생되고 놀라운 음악의 세계가 확장되었을텐데, 그것이 창고에 그토록 오래 묻혀 있었다니 얼마나 어리석고 낭비하는 일이었습니까? 보배 중의 보배인 복음을 가슴에 묻어두어서는 안됩니다. 전하고 증거해서 생명을 구원하고 인간을 거듭나게 하고 천국을 확장해야 합니다. 지구상에서 1년 동안 사망자가 4천만 명이고 하루 동안의 사망자가 11만 명인데 그중 2/3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간접 살인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제일 우선적인 일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도록 힘써 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셨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어떤 여인이 한 번은 불이 난 자기 집에서 그녀의 그림들과 가장 애지중지하는 가구들을 바쁘게 끌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수고했으나 사랑하는 어린 자녀의 생명을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갑자기 그녀의 머리에 자기 자녀 중 하나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 아이를 불타는 집 속에 두고 나온 것입니다.

그 어머니가 황급히 다시 방안으로 돌진해 들어갔을 때 이미 그 방은 불이 활활타고 있었고 아이는 죽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여인은 비통한 나머지 양손을 비틀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탄식하며 통곡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자기가 꺼낸 모든 가구들을 저주하는 것 같았으며 차라리 그것을 꺼내지 못했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하잘것없는 것들을 구하려다가 사랑하는 자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호기심있는 지식부스러기와 묘한 금언 그리고 심오한 교리 등을 불 가운데서 끄집어낸다 해도 만일 사람의 영혼을 패망시킨다면 그것들은 우리의 양심을 고소할 뿐입니다.

귀한 영혼들이 사랑의 복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가 난제를 끄집어내서 수십 가지의 토론을 하면서 매주일을 무의미하게 허비하는 것보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그런 문제는 그대로 두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힘쓰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우리는 헛된 철학, 교리논쟁, 이론에서 떠나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를 가르치고 전도하기를 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행5:42) 언제인가는 모든 이론을 파하고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심판하실 날이 이릅니다.(고후10:5, 딤후2:23, 딤전6:4) 온세계가 지금 복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친구가 예수 믿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126:5) 추수하는 기쁨에 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기뻐하며 살고 있습니까? 적어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일하는 기쁨에 살아야 합니다. 전도하는 기쁨에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전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전도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야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고전9:16, 17)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보고 가까이 갔는데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음을 보시고 말씀하자 무화과나무가 마릅니다.(마21:19)

우리는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전도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서 불 속에 던지웁니다.(마7:19) 심판 날에 알곡과 죽정이를 구분합니다. 죽정이가 무엇입니까?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2)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생명을 다 바쳐 복음전파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 전도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며 살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땅 끝까지 복음이 선포되기를 명령하신 주님. 이 세상에서 복음 전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명령임을 압니다. 제가 오늘 서 있는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복음의 증인으로 살게 하소서. 병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 죄인인 저희에겐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지 못한 채 어둠의 영 가운데 억눌려 있는 자들에게 복음의 빛을 전하게 하소서. 하나님은 가장 아끼시는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셨건만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인 복음전파에 소홀히 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서운하게 했습니다. 복음전파에 헌신할 수 있는 강한 믿음을 주옵소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헌신한 믿음의 선배들처럼 예수와 복음을 위해 온전히 헌신을 결심하며 살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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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전도하자 댓글[0]
전도, 복음 (2012-06-24 오후 9:02:19) http://blog.somang.net/holylove/7398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전도하자

 

본문: 빌2: 5- 11, * 찬송가 455장, <통> 507장, * 찬송가 505장, <통>268장)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달리심이라”

 

예수님은 이 세상에 전도하러 오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38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우리는 전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전도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 16, 17) 하였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서 불 속에 던지웁니다.(마7:19) 심판 날에 알곡과 죽정이를 구분합니다. 죽정이란 무엇입니까?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2)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3)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생명을 다 바쳐 복음전하기를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 14- 30절에 보면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이윤을 남겼는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돈을 감추어 두었다가 주인이 이르되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하시고 그 한 달란트도 빼앗기고 어두운 데로 내 쫓깁니다. 전도하지 아니하는 자는 한 달란트 받은 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재능과 물질을 내 이익과 욕심, 성공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이웃과 복음전파를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파수꾼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파수꾼의 사명은 적이 침범하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험한 상태를 보고도 나팔을 불어 알리지 않고 깨우치지 않으면 그 피값을 받게 됩니다. 에스겔서 33장 5- 8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그가 경고를 받았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받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예수 안 믿으면 멸망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웃의 불신을 못본채 하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심판 때에 이웃의 불신자가 지옥으로 끌려가기 전에 ‘저 사람이 한 번도 나에게 전도한 적이 없었다’고 하면서 아담과 하와처럼 핑계대고 탓할 때 심판주가 그 피값을 치루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잠24:11) 예를 들면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내가 가지고 있는 밧줄만 던져도 살릴 수 있는데도 구경만 하는 사람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전도하지 않는 것은 영적 살인이요 하나님의 명령과 부탁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무엇보다 전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골4:3), 하나님이 기쁘게 응답하십니다.

전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길거리 문서 전도(4영리 등), 병원의 환자나 교도소 재소자를 찾아가 전도, 이웃과 친구에게 전도, 트윗터, 불로그, 카페, 홈피 등을 통한 인터넷 전도, 구제 (나눔)활동과 착한 행실과 봉사로 전도, 영화, 책을 제작하여 전도, 신앙서적을 선물하는 방법의 전도 등이 있습니다. 저는 20여년 전에 복음전하기 위해 전도지를 제작하여 집집마다 우체함 속에 넣기도 하고 전철 선반위에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역무실까지 끌려기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는데 특별한 전도전략이나 전도 요령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복음전하겠다는 열정과 뜨거운 가슴이 필요합니다. 사도바울이나 베드로처럼 마음과 목숨을 다해 사람낚는 어부가 되겠다는 정신이 중요합니다. 이런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주셔서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무엇인가를 톨스토이는 말했습니다.

첫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순간)은? 바로 지금

둘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내 옆에 있는 사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셋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하기,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러나 저는 전도라고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에 묻겠습니다.

 

1. 전도는 000 이다 000에 들어갈(넣을) 말은? 예: 사랑, 헌신, 기쁨, 희생, 사명, 봉사

 

한국 초기 선교사들은 우리나라에 와서 병원, 학교, 고아원을 건립하고 봉사함으로 전도

 

2. 00 교회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전도만이 교회와 내가 살길이다.

 

3. 전도와 자원봉사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나를 필요로 한다. 전과는 달라진 나를 발견한다. 자기 발전을 이룬다.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사랑과 희생적인 마음이 필요하다.

 

전도의 성패는 마음가짐이 좌우합니다.

 

사람의 언행은 그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옵니다. 즉 그 사람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에게서 나오는 말과 행실도 악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마음과 정신자세를 갖춘다는 것은 실로 중요합니다. 마음은 나의 주인이요, 근본이고 정신은 인생의 방향타요, 운명의 운전수요, 생활의 지배자입니다. 인생은 마음을 갈고 닦는 도장이요, 정신을 다듬는 수련장입니다. 칼이 의사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생명을 건지는 수술도가 되지만 도둑놈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흉기로 전락합니다. 칼이 선의 도구가 되느냐 악의 도구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칼 자체가 아니고 칼을 쓰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 음란, 거짓. 탐심, 미움, 분노 등의 악한 생각이 내 마음을 차지하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는 것과 읽고 듣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바리세인과 서기관 중 몇이 예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먹는 것을 보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는 것을 힐문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못하나 사람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시며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한다.(막7:1-23)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회개하여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을 깨끗이 하여 그냥 비워둘 수는 없습니다. 마음속에 올바른 마음, 좋은 생각으로 채워져야 새사람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 가 입니다. 수양이나 교육은 그 사람의 마음에 다소의 영향을 주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워져야 올바른 크리스천이 되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아야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존경하고 그분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정도만을 알아서는 안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신랑되신 예수님의 중매쟁이가 되려면 신랑이 어떤 사람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신부에게 자신있게 소개할 수 있듯이 예수님이 어떤 성품을 가졌는가를 알고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첫째, 사랑의 마음입니다.(요13:1)

주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16) 셩경 몇 구절만 찾아보겠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4:10),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며(마12:20),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엡5:1-2),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6- 8)

 

이렇듯 하나님이 우리에게 향하신 사랑은 아무런 조건 없이 값없이 주신 것이기에 그 사랑의 위대함은 이 세상 그 어떤 언어로도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주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계산적으로 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이일을 하면 복을 받고 하늘에 상급이 있기 때문에 하고 있지는 않는지...

고귀하신 주님의 사랑을 진정 깨달은 자라면 주를 위해 아까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우리도 주를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는 삶이 아닐까요!

찬송가 323장 가사처럼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 소돔같은 거리에도 사랑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를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성경의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알아야 주님의 사랑을 자랑하고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에게 십자가의 사랑을 자랑합시다. 세상에서 사랑의 빛을 비춥시다. 그리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임을 알고 예수를 믿게 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5)

 

둘째, 겸손한 마음입니다.(잠18:12, 롬12:16)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참으로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마구간에서 나시고, 사람(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겸손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겸양의 덕을 지니고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이삭을 통해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무릇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스스로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4:11)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자기를 돌아보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빌2:1-4)

사도바울이 회개한 후에 나는 사도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고전15:9) 그리고 후에 나는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엡3:8) 그 후에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딤전1:15) 믿음이 성숙할수록 더욱 더 겸손해져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겸손의 기독교입니다. 어거스틴의 제자가 하루는 어거스틴에게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그리스도인이 가장 힘써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어거스틴은 주저하지 않고 “겸손이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는 다시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두 번째도 겸손이니라.”, “그럼, 세 번째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세 번째도 겸손이니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들이 모이면 거기가 천국입니다. 가정은 가정천국이 되고, 교회는 교회천국이 됩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직장에서도 서로가 낮은 자세로 상대를 높이면 천국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를 높이는 사람들만 모이면 거기가 지옥입니다. 가정이나 직장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교회구성원들이 대접을 받으려고만 하고 자기를 높이기만 하면 교회도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인정받으려고 하고 얼마나 대접 받으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교인들이 시험에 드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가 섭섭함입니다. 섭섭함이란 감정은 대접받지 못했다 인정받지 못했다는 마음을 가질 때 생기는 것입니다.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을 처리하지 않으면 마음을 비우지 못한 것이고 마음이 미우지 못하면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높임은 없습니다. 따라합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버려야 하나님이 높여주신다. 대접받고 싶은 마음을 버려야 하나님이 높여주신다. 높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나님이 높여주신다”

만약 우리가 겸손함과 섬기는 마음이 없이 ‘예수 천당, 불신지옥’ 등의 고자세나 정복자(과거 서양열국이 침범한 후 선교사들이 전파)의 태도로 복음을 전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고 심지어는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이 생깁니다,

 

셋째, 순종의 마음입니다.(롬5:19, 고전9:27)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님은 결론을 내리십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눅22:42) 그리고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복종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아골 골짜기라도 가야하고,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하시면 목숨까지도 드려야 합니다. 이런 순종의 마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사람들을 초청하게 합니다. 종들은 임금에게 순종하여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데로 모두 데려옵니다.(마22: 10) 우리도 말씀대로 순종하여 천국혼인잔치에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님이 혼인잔치에 참석했을 때 포도주가 떨어지자 마리아의 요청으로 하인들이 순종하여 항아리에 물을 부었습니다. 순종하므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순종하여 전도합시다.

 

넷째, 온유한 마음입니다.(마5:5)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엡4:2) 온유한 마음이란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입니다. 온유하지 못하고 돌밭같이 굳은 마음에는 씨가 자라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마13:5, 20) 예수님뿐만 아니라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12:3)

사람의 성공 요인에서 지능이나 기술 훈련보다는 대인관계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직무수행의 실패보다는 대인관계의 실패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만큼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합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려면 ‘온유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면 됩니다. 온유한 자는 말 그대로 부드러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황폐한 관계를 회복시켜 주고 관계를 풍성하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단점이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일입니다. 조금만 서로 섬기는 마음으로 다가가면 잘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37:11)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온유함이 강함을 이깁니다. 강한 치아보다 부드러운 혀가 더 오래갑니다. 우리는 늘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전도시 주의 사항입니다. 전도할 때 과격한 말이나 너무 큰 소리로 하면 안됩니다. 말한 마디로 천냥 빛을 갚는 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말의 씨가 있습니다. 전도할 때 부드럽고 따뜻한 말로서 전도해야 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15:1)

 

다섯째,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마5:7)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145:8,9)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측은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마14: 14) 예수님은 우리가 죽어 마땅한 죄인이지만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긍휼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불쌍히 여길 줄 모르는 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중세 천주교 세력이 강해지다보니 반대파들과 거역하는 자를 마구 잡아 화형시켰고, 영국의 청교도 혁명은 너무 엄격하게 하다보니 자비가 없어 나중에 왕정복고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타종교인(불교, 천주교 등)과 이단 사이비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적대시 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하고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불신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3:12- 14)

 

여섯째, 용서하는 마음입니다.(막11:25, 눅6:37)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눅23:34) 스데반도 자기를 향해 돌던지는 자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행7:60) 주님께서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용서하셨습니다. 이 큰 죄를 용서 받은 우리가 우리에게 작은 허물이 있는 자들을 용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마6:14-15, 마18:21-22, 눅11:4, 눅17-3-4, 골3:12-14) 요셉은 자기를 애굽의 종으로 팔은 형들을 용서하였습니다. 손양원 목사가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자기 양자로 삼음으로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의 주기도문을 잊지 맙시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18:21,22) 탕자가 회개하고 아버지 집에 돌아왔을 때 형은 탕자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처럼 동생을 용서해 주고 잃어버린 자를 찾은 기쁨을 함께 누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먼저 믿은 성도는 새신자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어린 새 싹이 잘 자라도록 사랑과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이웃의 잘못과 허물을 용서하고 전도해서 양육해야 합니다.

“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일곱째, 오래 참고 인내하는 마음입니다.(약5:7- 11, 히10:36)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하시고 동산으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대제사장의 하속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검과 몽치를 들고 왔습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 볼에 키스하면서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유다야 네가 내 볼에 키스하므로 나를 파느냐 빨리 행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달려들어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할 때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의 잡히심에 분노해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 쳐서 떨어뜨렸습니다. 그래 예수님께서 귀를 만져 낫게 하시고 “칼을 집에 꽂으라 칼을 든 자는 칼로 망한다”라고 교훈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까지 참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까지 참으라’는 말은 ‘그들의 행동을 그냥 내버려두어 하게 하라’ 그런 뜻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너희들이 손대면 안된다. 하도록 내버려 두어라.’라는 말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1-3).

예수님을 ‘참으신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참고 사셨습니다. 참고 죽으셨습니다. 그는 참으심으로 일생을 일관되게 나아갔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느껴지는 감동은 예수님의 인내입니다.

‘너희들이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라는 말은 ‘너희들이 세상 살기 힘들어 낙심될 때 주님 바라보라.’ 다시 말하면 ‘가난할 때 주님을 바라보면 참을 수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주님 바라보면 참을 수 있다. 원수를 만났을 때 예수님을 바라보면 참음으로 이길 수 있다. 실패하고, 낙심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주님을 바라보면 능히 참을 수 있다.’라는 말입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전도대상자를 위해 기도하고 찾아가야 합니다.(진도개 전도)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고전13:4) 오래 참음으로 전도와 성령의 열매를 맺읍시다.(갈5:22, 23)

 

여덟째, 거룩하고 의로운 마음입니다.(레11:45, 시29:2, 살전4:7, 딤후2: 21, 22)

주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6)

거룩한 마음은 경건하고 깨끗하며 의로운 마음입니다. 거룩한 삶은 마땅히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거룩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현대는 모든 것이 인스턴트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하나의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곧바로 거룩의 경지에 이르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거룩은 순간순간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보다 주님을 세상에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거룩은 사람들로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또 신자들에게는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한편, 성도들이 거룩하지 않으면 범죄하는 신자처럼 주님의 이름에 불명예와 부끄러움을 가져다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지불한 값, 그리고 우리에게 부여하신 은혜가 거룩한 삶을 위한 우리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거룩은 발전되어가는 것이지 하루 아침에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성령님은 한 단계씩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그 조건들 중에 몇몇은 고백과 상환, 항복, 성경공부, 기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 주를 섬기는 것, 그리고 몸과 마음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거룩은 우리의 성생활과 언어생활, 기질 그리고 의복과 연관이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거룩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는 말씀에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히12:14) 우리는 예수님처럼 거룩하고 경건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들은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다함께 찬송가 455장, <통> 507장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을 부르겠습니다.

1.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2. 주 모습 내 눈에 안보이며 그 음성 내 귀에 안들려도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3. 가는 길 거칠고 험하여도 내 맘에 불평이 없어짐은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4.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오실 그 날엔 뭇성도 변화하여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후렴>

주님의 마음 본 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오늘도 주님 전에 나와 예배하고 기도하게 하시고 주님의 참 사랑으로 구원받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주님이 되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 기도드리는 이 시간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사랑과 온유와 겸손과 거룩하신 주님의 마음을 닮게 하옵소서. 먼저 우리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사 충만함을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할 때가 많사오니 우리의 믿음을 반석 위에 세워주시어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축복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게 하시고 언제 어디에서나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의 삶이 주님의 말씀에 근거한 삶이 되게 하시고 모든 일 들 속에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시어서 새롭게 변하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주셔서 복음전파에 매진하세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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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구원받아 행복할까 댓글[0]
전도, 복음 (2012-03-02 오후 4:28:07) http://blog.somang.net/holylove/7261

나만 구원받아 행복할까

 

본문: 로마서 9: 1- 5

 

우리나라 속담에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로마서 9-11장을 읽으면 바울도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상식을 뛰어넘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울은 자기의 동족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마음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그는 것이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의 그러한 심정은 1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내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 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 고통은 단순한 아픔이 아니라 울분이 깃들어 있는 고통입니다. 4절과5절을 보면 바울의 울분이 어느 정도 느껴집니다. 이처럼 바울이 울분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한마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먼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득권(하나님의 선민으로 율법, 예배, 언약 그리고 그리스도를 주었다)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목이 곧아 하나님의 아들을 배척하고 마침내는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회개하기는 커녕 계속해서 교회를 핍박하고 복음을 훼방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자기 백성을 바라보면서 목숨이라도 내던져 그들을 구원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물론 바울의 고통 저변에는 자기 동족에 대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여기서 끊어진다 (아나테마)는 참 무시무시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 정복시 물건하나 남김없이 완전히 전멸하게 하였는데 아나테마는 바로 그런 뜻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이후 자기 동족에게 얼마나 무지무지한 박해와 핍박을 받았는지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구원 이상으로 동족의 구원에 대해 마음을 쓰는 바울의 고백은 우리를 감동시키고도 남습니다. 바울은 죄는 미워하였으나 영혼은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자기 동족을 바라 보았던 바울, 오늘 우리는 바울을 통해 큰 교훈과 도전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첫째,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가진 자는 반드시 그것을 모르는 형제를 위해 고통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8절을 읽으면서 확신에 찬 바울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큰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바울의 탄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9장에는 구원받지 못한 동족을 바라보는 바울의 비통한 탄식을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모순된 감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1절에서 감격에 이은 비통한 탄식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옳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감격은 체험하면 하는 만큼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슬픔이며 고통인가를 깨닫게 되기 때문에 구원받은 기쁨과 구원받지 못한 이웃에 대한 고통의 마음은 공존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구원 받은 것에 대해 감격해 하면서도 구원받지 못한 이웃에 대해 아무 마음도 가질 수 없다면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들은 복음, 우리가 얻은 구원, 우리가 체험한 기쁨은 너무 좋은 것이어서 이를 소유한 자는 자기 혼자 숨겨놓고 있을 수 없는 본질이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에게 구원의 기쁨과 확신을 성령께서 주시는 것처럼 구원받지 못한 이웃 형제들을 보면서 근심하고 애통하는 마음 역시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이라면 구원에 대한 감격과 기쁨이 있는 동시에 이웃에 대한 근심이 있어야만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만일 구원의 확신은 있는데 이웃의 영혼문제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면 그 구원의 확신은 성령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가까운 형제, 동족부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2절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은 개인이라기 보다는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말속에는 우리가 가장 가까운 사람에서부터 관심을 갖고 그 영혼문제를 걱정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이들은 가청 영역에 속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복음을 쉽게 들을 수 있는 기득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민족에 대해 여러 가지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교를 말할 때 예루살렘과 땅끝을 함께 말해야 하지만 예루살렘이 우선 수위에 있어서 먼저 다루어져야 합니다. 내 가정, 내 이웃, 내 직장에서 매일 매일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고통하는 양심이 있어야 하며 생명이라도 내어줄 수 있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마음만 알고 있어서는 안되고 그들과 만나고 접촉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가장 큰 단점은 “끼리끼리”라고 하는 틀 속에 안주하는 것입니다 이런 성향이 교회에 계속된다면 죽음 혹은 파멸을 초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좋은 교제를 유지하면서 마침내 예수 믿는 자들의 행복을 간증하여야 하겠습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영혼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소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과 주를 모르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옥한흠 목사(사랑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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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재복음화 댓글[0]
전도, 복음 (2012-02-28 오후 7:52:57) http://blog.somang.net/holylove/7241

유럽의 재복음화

 

본문 : 행 26: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어떤 통계에 보면 영국에선 매년 교회 220곳이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영국뿐만 아니라, 전 유럽의 평균 교회 출석률은 3%정도이며, 전통적인 복음주의자들은 1%도 되지 않습니다. 기독교뿐 아니라 전통적인 가톨릭국가들조차 5% 남짓한 출석률을 보이며 고전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무슬림과 불교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재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최종상 선교사는 지난 30년 동안 영국의 교회 1만 여 곳이 문을 닫았다고 말한 뒤 특히 지금의 때에 한국 교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영국 교회의 쇠퇴 이유 중의 하나가, 고령화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못했고, 주일학교와 학생, 청년부 같이 연령대에 맞는 적절한 부서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면에서 잘 발달되어 있는 한국 교회들이 관심을 가진다면 유럽의 재복음화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과거 유럽에서 들어온 복음의 흐름이 이제 다시 유럽으로 흘러 들어갈 때입니다. 복음은 세계 곳곳에 전파되어야 합니다. 세계 선교에 대해 교회적인 차원에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작은 관심이라도 가져야 합니다. 온 땅의 복음화를 위해 매일 기도하십시오.

* 기도: 주님! 유럽 곳곳에 주님의 복음이 다시 퍼져나가게 하소서!

* 묵상; 특정 선교지역을 정해놓고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나침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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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바람 댓글[0]
전도, 복음 (2012-02-18 오전 7:17:00) http://blog.somang.net/holylove/7196

복음의 바람

 

태안군의 작은 섬인 황도에서 ‘붕기풍어제’가 이틀간 열렸다. 어부들이 바다에서 풍랑이나 재앙을 만나지 않고 한 해 동안 많은 물고기들을 잡게 해달라고 비는 전통적인 무속의식이 담긴 굿이 바로 황도의 붕기풍어제다. 커다란 황소에게 열흘 동안 깨끗한 음식을 먹인 다음에 그것을 잡아서 제사음식을 만들고, 대나무 꼬치에 조그만 고기 덩어리들을 여러 개 꽂아서 불에 구워낸다. 그 고기를 그 풍어제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준다. 남자들이 1,000명분의 대나무 꼬치구이를 준비했고, 마을 아주머니들은 직접 나서서 500명분의 떡국을 끓여서 그곳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껏 대접을 했다.

그런데 그 굿을 하는 무속인은 서울에서 내려왔지만, 사실은 태안군에 사는 친어머니의 대를 이어서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된 여인이었다. 반면에 그 무당의 모친은 그 시간에 그 풍어제에 참석을 하지 않고, 집에서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전도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무당이었던 모친은 사랑하는 딸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만을 소원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과거 무당이었던 노인이 선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 황도에도 구원의 복음이 전파된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희생을 능히 감수하면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죽어가는 영혼들이 구원을 받는 놀라운 일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검은 기름에 덮여 시커멓게 죽어가던 태안의 바다가 환하게 살아났다. 많은 봉사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시간과 물질을 들여서 지속적으로 작업을 함으로 말미암아, 굴과 조개가 자라고 고기가 넉넉히 잡히는 아름다운 바다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 태안에도 어둠의 세력을 밀어내는 복음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꿈을 꾸어본다.

/김학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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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에 힘쓰라 댓글[0]
전도, 복음 (2012-02-15 오후 5:51:59) http://blog.somang.net/holylove/7183

선교에 힘쓰라

 

본문: 마태복음 28:18-20

 

남태평양의 뉴 헤브리스 제도는 전혀 문화 혜택이 주어지지 아니한 미개한 지역임을 확인한 페튼 목사는 그곳을 선교하기로 결심하고 주변의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인과 자녀들을 데리고 1958년 영국을 떠났습니다. 페튼 선교사 가족은 탄나 섬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면서 언어와 풍속을 익히며 그들에게 접근했으나 기후가 다르고 움막에서 미개한 생활을 해야 하는 어려움과 태풍이 불어 집이 무너지고 가뭄이 오거나 병든 사람이 생기면 원주민들은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의 침입 때문이라며 무장을 하고 달려와 죽이려고 위협하므로 도무지 복음이 전해질 가망은 보이지 않아 실망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그때 그때를 잘 견디어 가다가 사랑하는 아내가 기후 병으로 죽고 설상가상으로 아들도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존 페른 선교사는 “이곳에서 가족을 잃어버린 불행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데려가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계속 일하기로 결심하고 더욱 복음 전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존 페튼 선교사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으로 계속 노력하자 그토록 완악하고 강퍅하던 주민들이 선교사의 사랑과 헌신적인 봉사에 감복하여 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들의 영혼과 육신의 생활들이 밝아져 복음의 역사는 전개되었습니다. 외국으로 선교하러 가시는 분들을 보면 그 헌신이 대단합니다. 얼마 전 해외선교위원회에서 선교 보고하는 내용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느 선교사님은 네팔에서 선교하시다가 두 자녀를 잃고도 그곳에서 계속 사역하려고 했는데, 사모님이 두 자녀가 아른거려 그곳에서 선교를 못하시고 방글라데시로 사역지를 옮겼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한 분은 표창 받는 시간이 있었는데 선교사님은 선교지에서 세상을 떠나시고 대신 사모님이 시아버지와 같이 나오셔서 상패를 받는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선교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닙니다. 본문을 보면 더욱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강해 설교가인 존 맥아더는 만일 어떠한 그리스도인이 마태복음 전체 부분을 이해했어도 이 마지막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는 마태복음의 전체 과정을 놓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는 선교는 반드시 해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교는 부활하신 주님의 강권적인 명령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고 장사 지낸 뒤 3일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가라” “세례를 주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강권적으로 명령하셨습니다. 선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라는 말씀은 ‘가라’는 것입니다. 모든 족속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지난 80년대 선교열정이 전국 교회로 확산되면서 우리 한국교회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종족들을 주께 인도하고 교회도 세우는 등 큰 사역을 해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전체로 볼 때 4만여 교회 중 80% 이상이 세계선교에 무관심하거나 그것을 도외시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우리는 가는 선교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세례는 우리 주님께서 친히 받으셨고 또한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나아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바로 아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선교는 가는 선교 못지 않게 보내는 선교가 매우 중요합니다. 전쟁을 할 때 최전선에서 싸우는 군인도 중요하지만 후방에서 엄호사격을 하는 포병부대와 물자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중요한 것처럼 선교 역시 보내는 선교가 중요합니다. 선교사가 아무리 선교에 사명이 있어도 생활비와 활동비를 지원 받지 않고는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특히 배후의 기도는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현장의 선교사나 후방의 후원교회 교인들, 선교행정을 담당하는 이들 모두가 선교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선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기에 무질서하게 물질을 보내는 것보다는 각 교단 또는 선교단과 협력하는 것이 보다 좋은 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선교는 타문화권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충분한 교육과 정확한 정보에 의한 훈련이 이뤄져야 합니다. 현지인을 교육 훈련시켜 사역하게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선교는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선교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큰 권능 가지신 주님께서는 이 일에 힘쓸 때 세상 끝날 때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5)

/한 태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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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복음 (2012-02-15 오전 4:43:00) http://blog.somang.net/holylove/7172

전도
 
성경: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어떤 목사님이 비행기를 탔는데 옆 좌석에 앉은 젊은이가 구면이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시작하여 십자가의 죽음, 부활을 전하며 전도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전혀 무감각, 무반응이었다. 목사님은 무척 실망했다. 목사님은 집에 돌아오는 내내 청년의 태도가 마음에 걸리며 서운했다. 목사님은 다짐했다. “다음에 또 만나게 될 거다. 그 땐 꼭 전도하리라”목사님이 그 청년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전화가 왔다. “목사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저는 목사님 옆에 앉았던 청년의 아버지입니다. 아들의 바로 뒷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제게 전화를 하셨나요?” “목사님께서 아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기독교에 관심이 생겨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더 알기 원합니다”

/김우영 목사(만나교회)
 
* 기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음증거에 헌신하며 살게 하옵소서

 

* 묵상성경 말씀

0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9:35)

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0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5:42)

0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28:31)

0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 14, 15)

0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전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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