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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한 마음을 가지라 댓글[0]
겸손, 온유, 교만 (2014-04-15 오후 4:36:25) http://blog.somang.net/holylove/8121
온유한 마음을 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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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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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라는 말은 온화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격과 태도를 뜻합니다. 하지만 명확히 정의된 한글과 한자의 뜻과는 달리 세계적으로 온유라는 뜻은 매우 비슷하면서도 다양한 뜻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우선 영어만 해도 온유를 나타내는 단어가 ´gentleness, mildness, tenderness, docility, clemency, warmth´로 총 여섯 개나 되며 미묘한 뜻의 차이에 따라서 서로 다른 상황에서 사용됩니다.
아프리카의 모레 부족은 온유한 사람을 ´그늘진 마음의 소유자´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더운 아프리카의 태양빛을 피하게 해줄 그늘을 다른 사람에게 제공한다는 뜻입니다. 케냐의 원주민들은 온유를 ´천천히 행동하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은 욕심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반대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은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며...교만한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남태평양의 카바라 부족은 ´어린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온유한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나라마다 표현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종합해보면 온유는 겸손한 사람, 그리고 남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온유하다고 표현하셨습니다. 또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을 온유함으로 대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남을 생각하는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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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5장 22절, 23절에는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가 있는데 거기 여덟 번째 열매가 온유입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온유와 화평의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그를 가리켜 ‘부담 없는 사람’이라 부르는데, 수많은 성경인물 가운데 이삭처럼 부담 없고 마음에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삭의 온유한 성품을 말해 주는 대표적 사례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그 하나는, 그가 1년 강우량이 300㎜에도 못 미치는 가나안 남방(Negev)에 거주할 때, 자기가 판 우물을 세 번이나 블레셋 사람에게 양보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모습입니다(창26:12∼33).
또 하나는, 그가 열 살 때쯤, 땔감을 등에 지고 갈 정도(창22:6)의 나이에,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금지옥엽처럼 사랑하던 아버지(아브라함)가 자신을 모리아산까지 데리고 가서 희생제물로 삼아 결박하고 죽이려 할 때 전혀 저항하지 않고 어린 양처럼 자기 목숨을 아버지 손에 맡기는 모습입니다(창2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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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모세를 보세요. 그는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세상에 날 때부터 그 천성이 온유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루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하는 데를 나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감독이 이스라엘 사람을 이유 없이 학대하는 것을 볼 때 너무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인 감독을 쳐죽이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민중을 영도하여 애굽을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가는 도중 모세는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 산에 올라가서 40일간이나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지도자 모세가 여러 날 보이지 않게 되니까 아론에게 찾아가서 우리 지도자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자고 아론을 충동해서 그들이 애굽을 떠날 때 가지고 나온 금붙이를 모아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말하니 거기서 춤을 추고 먹고 마시며 야단이 났습니다. 이 광경을 본 모세는 너무 기가 막혀서 어깨에 둘러메고 내려오던 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을 땅바닥에 내던지지 않았습니까? 그것 보면 모세의 본성이 온유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성격은 아니었습니다. 불의한 것을 보면 마음에 불이 붙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세가 온유했다는 것은 그의 본성과는 전혀 반대였습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보면 모세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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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도 가만히 보면 날 때부터 그렇게 온유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고 내려오는데 예수님을 잡으려고 대제사장의 종들이 달려드는 것을 보고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분한 김에 옆에 찼던 칼을 뽑아 그 종의 귀를 쳐 서 떨어뜨렸습니다. 이런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베드로가 그처럼 온유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편지를 읽어보면 온유한 성품의 베드로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8절를 보십시오.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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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도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 회개하기 전에는 온유한 사람이 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자기 교만에 꽉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혈통을 자랑했습니다. 그의 가문을 뽐냈습니다. 그의 신앙심을 내놓았습니다. 그의 학벌을 자랑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모자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의 눈앞에는 보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의 성품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처치하는 일에 앞장을 섰고 거기에서 쾌감을 느꼈습니다. 이와 같은 성품의 소유자인 바울이 어떻게 그처럼 온유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우리도 성령의 열매인 온유함을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여성의 강함은 부드러움 속에서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부드럽고 순한 대답, 즉 유순한 대답이 분노를 쉬게 하고(잠15:1),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 즉 「온량한 혀는 생명나무가 된다」(잠15:4)고 지혜의 말씀인 잠언을 통해서도 온유와 부드러움에서 오는 강함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온유는 성도가 마땅히 지녀야 할 성품임을 잊지 맙시다.(딤후2:24-25, 딛3: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골3:12)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약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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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성공 요인에서 지능이나 기술 훈련보다는 대인관계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직무수행의 실패보다는 대인관계의 실패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만큼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합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려면 ‘온유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면 됩니다. 온유한 자는 말 그대로 부드러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황폐한 관계를 회복시켜 주고 관계를 풍성하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단점이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일입니다. 조금만 서로 섬기는 마음으로 다가가면 잘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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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함이 강함을 이깁니다. 옛날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태양과 바람이 지나가는 사나이의 오바를 벗기는 내기를 했습니다. 바람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내 입김으로 한번 큰바람을 내면 저 사나이의 오바를 당장에 벗길 수 있어」 그러나 아무리 큰바람을 불어 대도, 사나이는 단추를 확인하고 두 손으로 움추리며 오히려 옷이 벗겨질 까봐 안간힘을 쓰는 바람에 오바를 못 벗겼는데, 태양이 슬슬 웃으면서 뜨거운 열을 쏟으니 사나이는 그만 「이거 웬일이야! 어이구 더워...」 하면서 오바를 벗어 들었습니다. 강제의 힘보다 따뜻함이 이긴 것입니다. 거북이의 목을 강제로 빼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거북이의 체중이 불과 25-40 파운드 밖에는 안 되나 150-200파운드를 가진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로 빼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북이의 목을 빼내려면 따뜻한 화롯불 가까이에 놓아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거북이가 당장에 목을 뽑는다는 것입니다.
강한 치아보다 부드러운 혀가 더 오래갑니다. 노자는 죽으면서 큰 교훈을 남겼습니다. 그는 임종이 다가오자 제자들을 앉혀 놓고 입을 벌리고는 "내 입에 뭐가 보이는고?"하고 물었습니다. "예, 아무것도 안 보이고 물렁물렁한 혀만 보입니다."
"그렇지, 내 치아는 다 빠졌어. 젊은 시절에 내 치아는 아주 튼튼했지만, 사나워서 혀를 물어뜯고 아주 교만하게 굴더니 다 빠져버렸지. 물어뜯기고 상처를 입으면서도 참고 살아온 혀만 남은 것이야."
그러면서 단단한 것은 죽음이요, 온유한 것만이 생명이라고 설파했습니다.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 여사가 다니는 교회에서 한 동물원 원장을 초청, 강연회를 가졌습니다. 동물원 원장은 각 동물들의 특성과 수명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했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질문시간이 되었을 때 미우라 여사가 "동물이나 생물 중 어느 것이 빨리 죽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동물원 원장이 대답했습니다. "호전적이고 성질이 급한 놈, 덩치가 큰 놈들은 빨리 죽습니다. 그러나 온유한 동물들은 오래 삽니다. 또 곤충 가운데서도 투구벌레처럼 등딱지가 딱딱한 놈들이 빨리 죽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굳세고 강해야만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약육강식의 경쟁사회에서는 적자생존의 원리가 통용되기 때문에 강한 자만 살아 남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하여 자녀 교육에서도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식들을 강하게 만들까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입니다. 혹, 밖에서 다른 아이에게 맞고 들어오기라도 하면, 다음부터는 어떻게든 남에게 맞기보다는 때리며 살도록 전의를 북돋워 주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마음이 따뜻하여 남에게 잘 해주고 성격이 부드러워 남의 말을 잘 들어 주는 아이의 그 품성을 키워 주고 격려해 주기보다는, "너는 그렇게 나약해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고 그러니?" 하면서 오히려 꾸중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늘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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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온유한 성품을 지녀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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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주를 닮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욥15:11, 시18:35, 시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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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예수님께서 온유하셨기 때문입니다.(사53:7, 고후10:1, 벧전2:23)
우리는 가장 온전한 형태의 온유함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구유에 누이실 때부터 온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예수님의 온유하심은 십자가에서 온전히 나타났습니다. 원수들이 욕하고, 비웃고, 저주했지만 예수님은 묵묵히 참으셨습니다.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사53:7) 온유하게 모든 것을 참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온유가 죄와 죽음의 세력을 이겼으며, 결국 우리가 그 승리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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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이기 때문입니다.(살전2:7, 딤전3:3, 딛3:2, 약3:17)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딤후2: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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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는 온유한 자가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먼저 거듭난 성품을 요구하십니다. 변화된 예수의 성품을 소유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여기서 ‘온유’는 짐승을 길들여 주인 뜻대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으로 해석하면 죄로 타락한 인간의 마음을 성령의 능력으로 길들여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온유한 자가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5절의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은 인생의 험난한 싸움에서 궁극적으로 승자가 되어 평화를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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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대통령 당시의 국방장관 스탠턴은 유능했지만 고약한 성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대통령의 명령을 받고 “링컨, 그 사람 바보구먼”하며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이를 보고 받은 링컨은 태연하게 답변합니다. “스탠턴이 나를 바보라고 했다면 정말 바보일 거요. 그 사람 말은 대개 맞으니까.”나중에 스탠턴은 링컨의 죽음 앞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기 시대를 초월한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죽었으니 이 어인 불행인고!”
온유한 자만이 궁극적 승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온유야 말로 세상을 이기는 성도의 무기요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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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온유한 자에게 친구가 있고 좋은 인간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교육학에는 '하아로우의 실험'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심리학자인 하아로우 교수가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젖을 먹는 아기 원숭이들 앞에 엄마 원숭이 대신 두 개의 인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는 철사로 엄마 원숭이처럼 만들어 그 가슴에 우유병을 넣어두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부드럽고 두꺼운 천으로 만들어 그 가슴에 우유병을 넣어 두었습니다. 그러자 아기 원숭이들은 부드러운 천으로 만든 엄마 원숭이 인형의 우유만을 먹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동물들도 부드럽고 온유한 것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날카롭고 딱딱하고 매정한 사람보다 부드럽고 온유한 사람을 서로 찾습니다. 같은 재능, 같은 기술,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사회에서 원하는 사람은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부드럽고 온유한 사람에게 친구가 있고, 이웃이 있기 마련입니다. 온유한 마음이 있는 곳에 훈훈한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건전한 사회생활이 있습니다. 온유한 마음은 팔복 중 하나입니다. 온유함으로 사람을 대하게 되면 경직된 관계도 부드러워지고 서로에 대한 신뢰감도 깊어져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주신 사랑이 충만해지며 화평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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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신앙인들에게는 2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온유함입니다. 전문분야의 탁월한 실력자이지만 자랑하지 않고 겸손한 미소로 사람들을 대합니다. 또 하나는 의로움입니다. 스스로 의로움과 진실, 경건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외유내강(外柔內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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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온유해야 합니다만 더욱 온유로 무장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억울한 환경 속에서(시37:1), 나를 반대하는 사람에게(딤후2:24), 죄를 범한 자에게(갈6:1),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약1:21), 전도할 때(벧전 3:15), 공동체의 조화를 위해 온유해야 합니다(엡4:1∼3).
그러나 무엇보다 가족간에 온유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온유함으로 사랑하십시오. 아내는 남편에게 온유함으로 순복하십시오. 부모는 자녀들을 온유함으로 양육하십시오. 참된 온유를 위해서는 온유의 주이신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온유를 간구하십시오. 예수 십자가 때문에 참을 수 있고 긍휼히 여길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이것이 진정 인생 승리의 비결이요 예수 잘 믿는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성경 한 구절을 다함께 봉독하고 마치겠습니다.「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2-3)
성도 여러분 모두가 온유의 열매를 맺고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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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겸손하고 온유하신 주님!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주님의 뜻을 온전히 펴는 우리가 되게 하옵시고, 악이나 불의가 득세할 때 우리로 실망하거나 원망하지 않게 하옵소서. 온유한 자가 결국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을 즐기게 됨을 믿게 하옵소서. 마음속의 감정과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때때로 분을 내고 교만해지는 우리의 마음에 온유와 겸손의 마음을 주옵소서.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겸손이 모든 것을 품는다는 것을 알고 그 진리대로 살아갈 믿음을 허락하옵소서. 주님의 온유를 배우고 또 따라 살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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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http://cafe.naver.com/newgal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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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성경이 말하는 온유의 자세를 찾아 배우고 또 실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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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복 댓글[0]
겸손, 온유, 교만 (2012-03-13 오후 4:04:16) http://blog.somang.net/holylove/7287

겸손의 복

 

본문 : 잠 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사막에는 물이 전혀 없습니다. 드문드문 오아시스가 있긴 하지만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을뿐더러, 광활한 사막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양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막에도 많은 식물과 동물이 살고 있습니다. 사막은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데 이런 기온차로 인해 아침이면 바위와 식물, 지면에 이슬이 맺히는데 동물들은 바로 이 이슬을 통해 수분을 섭취하고 생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물들이 이슬을 먹기 위해서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겸손함’입니다. 동물들은 낮게 깔린 이슬을 먹기 위해 저마다 겸손해 집니다. 뱀은 몸을 돌려 최대한 굽힌 후 자신의 몸에 내려앉은 이슬을 핥습니다. 개구리는 고개를 숙여 떨어지는 이슬방울을 두 손으로 받아 마십니다. 손이 없는 곤충들은 개구리와 같은 방법으로 최대한 고개를 숙여 이슬을 땅에 떨어트린 뒤에 엎드려 마십니다. 동물들이 이런 자세를 취하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물을 마실 때 뿐입니다. 사람들은 겸손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자신을 낮춤으로 겸손의 복을 누리십시오.

* 기도: 주님! 겸손으로 교만의 죄를 피하게 하소서!

* 묵상: 겸손함으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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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함을 받았다고 교만할 수 없는 이유 댓글[0]
겸손, 온유, 교만 (2012-03-12 오후 12:28:27) http://blog.somang.net/holylove/7285

택함을 받았다고 교만할 수 없는 이유

 

본문: 롬11: 11- 24

 

11장의 주제는 1절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본문은 이 주제 하에 흥미있는 세 가지 사실을 다룹니다.

첫째, 이스라엘이 완악해져 예수를 배척한 덕분에 이방인이 믿게 된 것이니 만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믿지 않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이방인을 위해서 퍽 다행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실족한 상태일 뿐 완전히 넘어진 것은 아닙니다(11장 후반부의 넘어짐은 실족을 의미함). 잠깐 발을 잘못 디뎌서 비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이스라엘이 실족해서 예수를 거부했기 때문에 사도행전 10장 이하에 보면 바울이 설교할 때 이방인에게 설교를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된 동기가 됩니다. 여기서 잠깐 세대주의 학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다 실패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방선교는 그 실패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틀렸습니다. 예수님은 실패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운명하시면서 "다 이루었다"(요19:30)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방에의 복음증거는 아브라함 때부터 예정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배척은 이방에 좀 더 빨리 좀 더 쉽게 복음이 전파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이 이스라엘에게 먼저 전해지고 그들의 입을 통해 이방인에 전파 되었습니다.

유대교는 기독교의 뿌리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위치는 매우 독보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시33:12). 바울은 본문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위치가 독보적임을 세가지 비유를 통해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은 처음 익은 곡식으로 만든 떡가루라는 것입니다. 이 떡가루 때문에 모든 떡은 거룩한 것으로 인정되는 것입니다(민15:19,20).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바쳐진 나무묘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무의 가지나 꽃이나 열매는 거룩합니다. 그리고 또 이스라엘은 참 감람나무 가지라는 것입니다. 접붙여진 돌 감람나무는 참 감람나무 때문에 거룩합니다. 이처럼 이방인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거룩해진 만큼 이스라엘을 멸시하거나 교만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19,20).

우리는 뿌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에 있어서 홀로 선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책을 펼 때마다 나는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와 서상륜씨를 잊을 수 없습니다. 만주 북단에서 1875년 성경번역에 착수하여 7년 후 누가복음을 내놓았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빚을 크게 지고 있는 것입니다.「우리」지에 나왔던 간증을 나는 기억합니다. 정양은 4살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사고 소식을 듣는 순간 어머니는 그 동안 잊었던 하나님을 제일 먼저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후 정양의 가족은 예수님을 남편으로, 아버지로 모시고 살게 됩니다. 정양은 말합니다. "아버지의 목숨과 바꾼 나의 구원과 새 삶을 더 열심히 살면서 다른 이들에게 예수사랑 전하겠다.” 만일 우리가 그 뿌리를 잊어버릴 만큼 교만해져 있다면 잘리우는 가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21절).

 

둘째,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결국 예수 믿는 이방인을 보고 질투가 나서 회개하고 구원 받을 것입니다(14). 지난 2천년 동안 이스라엘의 질투는 심각한 것이어서 자기가 못 먹는 밥 남도 못 먹게 하자는 식으로 믿는 자를 핍박하고 믿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돌아오는 자들이 꾸준히 있어왔는데 그들의 마음바닥에는 자기들한테 먼저 찾아오신 예수님을 이방인이 가로챈 것을 보고 질투하는 감정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440만의 이스라엘 가운데 30개 정도의 교회가 있고 교회마다 100여명의 신자들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반면 86년도 자료에 의하면 팔레스타인 안에만 기독교로 개종한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만 12개가 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 대부분은 아직도 유월절은 지키면서 아니마민 이란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 가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우리는 구세주가 오시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조금더디 오신다.” 나치의 수용소에서 가스실로 끌려 가면서도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얼마나 불행한 민족입니까? 이제 시간이 흐를수록 이스라엘은 안달이 날 것이다 기다리는 메시아는 오지 않고 역사의 종말은 눈 앞에 다가오고…예수를 믿자고 달려드는 자들이 많이 생길 것 같습니다.

예수 믿는 자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질투할 만한 어떤 구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안이숙 사모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그 사모님이 평양 형무소에 들어가 있을 때에 평양 형무소 신문하던 일본 경찰서 형사계 사람들이 얼마나 감탄하고 반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안이숙 사모님에게 매료된 평남도청 연료주임 부인인 히가씨는 안사모님과 친해지기 위해 자청해서 형무소 간수로 취직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런 매력이 있다면 복음은 쉽게 전해질 것입니다.

 

셋째, 바울은 언젠가 이스라엘이 믿고 돌아오는 날 세계가 누리게 될 부요와 영광을 꿈꿉니다. 완악해서 잘못되었는데도 세상을 구원하는데 한 몫을 한 민족이라면 그들이 예수 믿고 돌아오는 날에 세상이 얼마나 큰 득을 보겠느냐는 것이다(12,15,24). 우리는 바울이 자기 동족에 대해 비관하지 않는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자기 동족으로 세계가 큰 복을 누릴 날이 오리라 꿈꾸는 안목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우리와 우리 후손을 통해 세계가 복 받을 그날을 꿈꾸어야 하겠습니다.


* 기도: 하나님, 주의 은혜의 날 동안 우리의 이웃을 주께로 인도하는 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옥한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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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수도사의 겸손 댓글[0]
겸손, 온유, 교만 (2012-02-15 오전 4:37:15) http://blog.somang.net/holylove/7171

 노 수도사의 겸손

 

성경: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18:12)

 

성 브라더 로렌즈 수도사는 싸움이 제일 많기로 소문난 수도원에 원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가 그 문제 많은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자 젊은 수도사들이 몰려 나왔습니다. 그들은 백발이 성성한 노 수도사가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어서 식당에 가서 접시를 닦으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처음 부인한 수도사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전통인 모양이었습니다. 그는 "네! 그러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는 곧장 식당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는 한달, 두달, 석달, 계속해서 접시를 닦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엄청난 멸시와 천대와 구박이 쏟아졌습니다. 석달이 지나서 감독이 순시차 수도원을 들렀습니다. 젊은 수도사들은 그 앞에서 쩔쩔맸습니다. 그런데 원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감독이 물었습니다."원장님은 어디 가셨는가?""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감독이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내가 로렌즈 수도사를 3개월 전에 임명했는데!" 감독의 말에 젊은 수도사들이 아연실색했습니다. 그들은 그 즉시 식당으로 달려가 노 수도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의 겸손으로 그 후부터 그곳은 모범적인 수도원이 되었습니다.

 

* 기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하고 나아져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살게 하옵소서.


 

* 묵상 성경 말씀

0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게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6:19)

0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시10:17)

0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시22:26)

0 여호와께서는 자기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시1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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