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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와 푯대를 뚜렷이 정하고 달려가세요 댓글[0]
소망, 희망 (2014-05-25 오전 9:57:50) http://blog.somang.net/holylove/8147
목표와 푯대를 뚜렷이 정하고 달려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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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빌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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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년이 서울에서 공부하다가 방학이 되어 농촌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땀을 흘리며 밭을 가시는 것을 보고 그것을 도와드릴 생각이 나서 소년은 소를 몰고 밭을 갈았습니다. 서투른 쟁기질로 한참 갈다 보니 아버지가 간 밭의 고랑은 똑바르나 자기가 간 고랑은 구부러졌습니다. 아버지는 이것을 보고 “처음 보습질을 할 때는 앞에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야 똑바로 갈 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소년은 그 말씀을 마땅히 여겨서 둑에 풀을 뜯고 있는 황소에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역시 고랑은 똑바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황소가 자꾸 움직이니까 너의 고랑도 구부러지는 것이니 움직이지 않은 것에 목표를 두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앞에 우뚝 솟은 포플라 나무에 목표를 두고 밭을 갈았더니 비로소 똑바로 갈 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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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고 무엇인가를 위해서 죽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충성하고 헌신할 수 있는 대상이나 목표를 갖지 못하면 허무주의자가 되고 생의 행복감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생명과 정열을 다 바칠 수 있는 목표나 신념을 가질 때 우리는 생의 충실감과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인간 심령 속에 부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목표나 방향이 없이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이 귀중한 생명이 삶의 목표로서의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만날 때 그것은 더욱 빛나고 힘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의 목표와 푯대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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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떼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개미떼들은 무엇인가를 얻고자 그토록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고 있었던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어린 나는 그 개미떼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왔다갔다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숱한 세월이 흐른 지금, 잠시 사무실 창가에 서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개미떼처럼 저 많은 사람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저렇게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는 것일까? 위에서 내려다보고 계실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일을 위해서 일까? 그렇지 않으면 썩어 없어질 헛된 것을 위해서 일까?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 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9: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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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재산을 쌓아둔 채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도 그 재산의 위력으로 주변 사람들을 휘두르다가 세상을 떠나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남기고 간 복잡한 문제들과 그로부터 파생된 갈등을 겪는 유가족을 대하면서 “과연 그 사람은 자신의 죽음 뒤에 이같은 복잡한 문제들과 갈등이 뒤따를 줄 알면서 죽어간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전혀 알지 못한 채 죽어간 것일까”하는 의문이 생기곤 합니다.
그 사람이 평생 동안 달음질하여 얻은 것, 그것은 결국 “썩을 면류관”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사람은 불쌍하고 무책임한 사람이요, 몰랐다면 불쌍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니, 어느 쪽이든 불쌍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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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 보이는 저 많은 사람들이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저렇게 분주하게 달음질하는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것 즉,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 의와 생명과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달음질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생활을 보면 칠십 년을 아무 목표도 없이 삽니다. 그런 사람의 생활은 마치 산 위의 풀과 같이 바람이 부는 대로 요동합니다. 지조를 찾을 수 없고 의리와 절개도 없게 됩니다. 이런 생활이 실패로 돌아갈 것은 명백한 것입니다. 또 목표를 정하기는 정하지만 잘못 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령 학생들은 지식을 탐구하며 열심히 공부하지만 지식이 방패는 될 수 있어도 일생의 목표는 될 수 없습니다. 일류대학입학, 결혼, 돈, 세상에서의 출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일시적이요 헛된 것이며,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가 썩을 면류관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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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중에 해바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해바라기는 해를 향해 자란다고 해서 해바라기입니다.

옛날 인도의 왕이 중죄를 지은 사형수에게 “기름이 가득 담긴 그릇을 주면서 이 그릇의 기름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온 성을 한 바퀴 돌고 오면 죄를 사면하리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죄수는 온 정신을 그릇에 집중하며 복잡한 성 밖 목표 지점을 돌아왔습니다.
왕은 죄수가 정말 다녀왔는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어디에서 무엇을 보았고 어디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물어보았습니다. 죄수가 모른다고 대답하자 왕은 그것도 모르면서 갔다 왔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냐고 다그쳐 물었습니다. 그때 죄수는 분명히 말하기를 “왕이여, 나의 생명이 이 그릇에 달려 있는데 어찌 한눈을 팔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직 그릇만 보고 다녀왔나이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때야 임금은 죄수의 성실함을 인정하여 죄를 사면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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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곳곳에서 다가오는 유혹의 손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를 믿는 우리들은 오직 주만 바라보며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푯대를 향하여 달음질합시다. 오직 성경이라는 그릇만 바라보며 살아갑시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주바라기가 됩시다.
자신이 목표한 일,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의 푯대인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초점을 맞추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유혹의 손짓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참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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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플로렌스 채드윅(Florence Chadwick, 19181995)이란 여성 장거리 수영모험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1950년에 당시 기록인 13시간 20분 만에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수영해 건넜고, 1951년에는 16시간 22분 만에 영국에서 프랑스로 수영해 건넘으로 영국 해협을 양방향으로 수영해 건넌 최초의 여성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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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7월 4일, 그녀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카탈리나 섬에서 롱비치까지 34킬로의 수영 도전을 시도했습니다. 출발 후 15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몸은 찬 바닷물로 거의 얼었습니다. 게다가 짙은 안개로 건너편 땅을 볼 수 없었고, 심지어는 안내선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어들은 주위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TV를 통해서 그녀를 격려했고, 배 위에서는 어머니와 트레이너가 목표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포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목표를 800미터 남겨두고 포기했습니다. 몇 시간 후, 그녀는 방송 리포터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땅만 보였어도 저는 이 일을 해낼 수 있었을 거예요.” 실패의 제일 원인은 피로나 추위가 아니라 목표를 볼 수 없게 한 안개였습니다.
2달 후, 그녀는 다시 같은 코스에 도전했습니다. 그때도 역시 짙은 안개로 해안선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마음속에서 “땅이 저 건너편에 있다”는 목표의식을 잃지 않았습니다. 결국 13시간 47분에 그곳을 건너 당시 남자 기록을 2시간이나 단축시켰습니다. 한 번의 실패를 통해 형성된 강한 목표의식이 성취의 동인이 된 것입니다. 성공은 실패의 옷을 거꾸로 입을 때 나타납니다. 성공은 운명보다 목표가 크게 보일 때 모습을 드러냅니다. 목표를 잃지 않고 자신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줄 때, 실패는 성공으로 변합니다. 뚜렷한 목표는 삶에 활력과 극복 능력을 가져다줍니다. 까닭 없이 힘들고, 쉽게 지치고, 몸과 마음이 처진 느낌이 들 때는 목표를 새롭게 할 때입니다. 현대인의 비극은 자신의 생애를 걸만한 목표와 푯대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 분야에 관심은 많고 정보도 많지만, 소중하고 뚜렷한 목표와 푯대가 없습니다. 목표와 푯대가 뚜렷하지 않으면 잘 낙심하게 되고, 잘 기다리지 못하게 됩니다. 목표가 희미하면 유능함도 소용이 없습니다. 진짜 유능함은 마음속에서 목표의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실패가 뚜렷해지고, 목표가 뚜렷하면 성공도 뚜렷해집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숨이 찰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닙니다. 요즘은 유치원생도 바쁘게 여러 학원을 뜁니다. 그런데 대개 뚜렷한 목표도 없이 그냥 열심히 뛰는 경우가 많습니다. 열심히 사는 것은 좋지만 목표 없이 뛰는 것은 낭떠러지를 향해 뛰는 것입니다. 땀과 성실은 인생의 목표가 뚜렷할 때만 가치를 발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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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적인 것 움직이는 것, 일시적인 것을 목표로 하여 시간과 정력을 다 소모하되 얻는 것이 별로 없는 후회스러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참되게 살려는 사람들은 움직이지 아니하는 것을 푯대로 정하고 인생의 모험을 실천하며 후회 없는 삶을 삽니다.
인생의 역사와 교회 역사에 이름을 남긴 명사들과 성인(현인)들은 흔들리지 않는 인생의 바른 푯대를 향해서 달라간 분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로 하고 좌나 우나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것을 잡으려고 일편단심으로 달려간다”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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푯대를 아직도 정하지 못하셨습니까? 정했다고 할지라도 흔들리는 것을 목표로 정하셨습니까? 이제 여기 영원히 흔들리지 않고 모든 인생의 참된 푯대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영접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과 인류사회에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어느 날 장사꾼들이 큰 바다를 항해하게 되었습니다. 바다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훌륭한 길잡이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 사람의 길잡이를 구해 바다로 나갔습니다. 바다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 심한 파도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사람을 죽여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야 이곳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습니다." 이에 장사꾼들은 회의를 열었습니다.
"나에겐 처자식이 있네. 내가 죽으면 우리 노부모는 누가 모시겠는가 ?"
장사꾼들은 각각 살기 위해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들은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닌가. 그러니 어떻게 우리중의 누구를 죽이겠는가. 차라리 저 길잡이를 죽여 제물로 쓰도록 함세"
그들은 곧 길잡이를 죽여 천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요행히도 파도는 멈추고 바다는 잔잔해 졌습니다. 그러나 길잡이를 죽인 그들은 얼마 안 가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방황과 굶주림으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길잡이 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영적 길잡이가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옳은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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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사랑의 주님, 날마다 내가 주님을 바라보며 적극적인 마음으로 살도록 해주옵소서. 목표를 향해 서두르지 말고 거기서 돌아서지도 말고 희미한 과거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슬퍼하지도 말고 숨겨진 미래를 두려워하거나 물러서지도 않고 내 몸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기쁨에 찬 마음으로 주님을 푯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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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http://cafe.naver.com/newgal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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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추가 자료편(소망, 소원) 댓글[0]
소망, 희망 (2012-05-10 오후 5:33:58) http://blog.somang.net/holylove/7348
주제별 추가 자료편(소망, 소원)
 
▣  소망의 그리스도인
 
본문 : 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의 신앙인들에게는 많은 어려움과 유혹이 있었습니다. 일부는 그 유혹에 넘어가 신사참배와 같은 잘못된 길과 타협하고 친일로까지 돌아선 실수를 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대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투쟁을 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당시 일본의 요구를 받아 들이지 않아 80여개의 교회가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계열의 학교 8곳이 폐교를 당했습니다. 3.1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신도는 3,373명이었고, 목사님은 54명 전도사님은 127명, 장로님은 63명이라고 합니다. 총독부에 사실로 기재된 것만 이 정도입니다. 그러나 조국 광복과 신앙에 대한 열망은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국의 광복과 하늘의 소망 하나로 3월 1일에 태극기 하나를 들고 거리로 나왔던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하늘의 소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대에도 주님의 길을 바르게 따르는 사람이 있었고 아무리 신앙이 번영하던 때에도 주님의 길에서 멀어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더욱 빛나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향한 소망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 기도: 주님! 흑암에 비추이는 주님의 빛을 바라보게 하소서!
* 묵상: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믿음의 자세를 가지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소망의 첫걸음
 
 미국의 국민화가 모지스 할머니(Grandma Moses)를 먼저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름이 모세라 제게는 친근감이 갑니다. 미국에서‘ 국민 화가 ’로 불리어지셨던‘ 모지스 할머니 ’(1860~1961)는 놀랍게도 76세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101세로 세상과 이별하기 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모지스 할머니는 평범한 시골 주부였습니다. 그녀는 신실한 신앙심으로 작은 농장을 꾸려가며 10명의 자녀를 출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중 5명을 불러 가셨습니다. 5명을 잃고 난 후, 그녀는 아픈 마음을 달래고자 자수를 하게 되는 데 푹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72세 때 관절염 때문에 바느질을 못하게 되어 자수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영감을 주사 붓을 들게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하나님의 세계를 정성을 다하여 그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집가 루이스 칼더가 우연히 시골 구멍가게 창가에 있는 그녀의 그림을 보게 하셨고, 그 그림을 사가게 하셨습니다. 이듬해 미술 기획가 오토 칼리어가 그녀의 그림을 뉴욕의 전시관에 내놓으면서 할머니는 일약 스타가 됩니다. 이어 유럽과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모지스의 그림 전시회가 열리면서 세계적인 화가로 떠오르게 됩니다. 1949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그녀에게 ‘ 여성 프레스클럽 상 ’을 선사했고, 1960년 넬슨 록펠러 뉴욕주지사는 그녀의 100번째 생일을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선포했습니다. 모지스는 시골의 풍경을 그렸으며 그의 화풍은 단순하면서도 밝습니다. 그녀의 마음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반영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나님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의 세계를 아름답게 드러내고자 하는 진심을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자녀 5명의 죽음, 관절염의 아픔을 겪을 때에는 그 마음이 얼마나 상심이 되었겠습니까? 그녀는 병들고 상처 입은 시골의 불행한 할머니에 불과하였습니다. 주변 이웃들도 본인도 그렇게 여겼을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이 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녀의 아픔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픔 중에도 변함없이 주님을 찾는 그녀를 보면서 심히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날에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손길로 축복하십니다. 사람들은 그 때까지 인내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놓쳐버립니다. 우리는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76세의 할머니에게, 어쩌면 처참하게 깨어진 인생을 살아왔다고 볼 수 있는 한 할머니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아직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  시련 중의 소망
 
플로리다에 101세 흑인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항상 침대에 누워 지냈다. 그녀의 가족은 이미 다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약 50년 전에 죽었고, 자녀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남편과 자녀들을 다 여의고 홀로 무의탁 노파로 남아 있었다. C.I. 스코필드 박사가 그 할머니를 격려하기 위해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스코필드 박사는 방문한 지 10분도 채 되기 전에 할머니에게 자기를 격려해 주고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제가 하늘에 계신 제 아버지께 당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할머니는 죽음 앞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 미래에 들어갈 "영광의 집"에 대한 소망을 지닌 사람이었던 것이다.
 시련 중에도 소망으로 인한 벅찬 기쁨이 있다면 그는 참된 성도이다. 진정한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를 하늘 기업의 산 소망으로 낳으시고 능력으로 보호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돌리 마음이 있는가? 시련 중에도 하늘 기업의 소망으로 인한 벅찬 기쁨이 있는가? 우리는 생존경쟁으로 처절한 삶의 현장에만 관심이 있을 뿐, 죽음 저편의 영광스러운 소망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자들이다. "시련 중에도 산 소망 때문에 찬양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사는가?" 오늘 이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봐야 하지 않겠는가.
[시련을 너끈히 이기는 하나님의 은혜 / 권성수]

* 금언: 이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마음 중 천국에 대한 소망과 비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윌리엄 거널
 
▣  내일의 행복을 기대하라 
 
 산고를 겪을 때 모든 여성들이 다시는 아기를 안 낳겠다고 결심한다고 한다. 아기를 낳을 때 207개의 모든 뼈가 흔들리고 살이 늘어난다고 하니, 그 아픔이야 나 같은 남성 따위는 죽을 때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하는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결심을 한 여성이 둘도 낳고 넷도 낳는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9명을 낳았다. 어째서일까? 그것은 ‘뒤의 기쁨’이 ‘앞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하기 때문이다. 환희는 아픔을 삼키는 마술을 지니고 있다. 또다시 임신하는 것은 ‘결과의 기쁨’이 ‘과정의 고통’을 삼켜버리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 쓴 나물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탈출하기 전날 밤 누룩을 넣지 않은 맛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그리고 노예생활에서 해방되려면 적어도 그런 고통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지시였다. 아픔과 고난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으로 해석한 것이다.
 인간이 사는 세상 안에는 고통이 없는 곳이 없다. 깨끗한 것만 있는 곳도 없다. 분명 오늘의 아픔이 기쁨을 가져올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 의연하게 아픔을 아파하자.
/최승일 목사(서울 상도교회)

 
*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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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와 절망감 댓글[0]
소망, 희망 (2012-03-24 오전 11:34:50) http://blog.somang.net/holylove/7304
스트레스와 절망감
 
펜실베니아 대학의 한 심리학 교수가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용 쥐 300마리에게 암세포를 주입한 후 그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인 100마리 쥐에게는 그들이 있는 자리에 전기충격을 준 후, 쥐들이 깜짝 놀라서 도망가면 도망간 곳에서도 전기충격을 주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의 100마리 쥐에게도 전기충격 후 쥐들이 도망을 가면, 그곳에서는 전기충격을 주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그룹의 쥐들에게는 아무런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방치해 놨습니다.  어느 그룹의 쥐에서 암발병률이 가장 높았을까요?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전기충격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또 피하려고 다른 방으로 갔을 때에도 전기충격을 받은 첫 번째 그룹에서 암 발병률리 75%로 가장 높았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피할 곳이 있었던 두 번째 그룹에서는 31%, 마지막으로 아무런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던 그룹에서는 50%의 발병률을 보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쥐의 세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요? 사람들의 세계는 안 그럴까요?
 실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트레스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위기상황을 극복해 나가려는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반응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적응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생기게 합니다. 문제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는 절망감입니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고 느낀 쥐들은 저항 능력이 매우 축소되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암세포는 정상세포와는 다르게 반응합니다. 일반적으로 정상세포는 옆의 세포와 대화를 나눕니다. 다시 말하면 정보를 교환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필요에 따라 도와주다가 자기 역할이 끝나면 조용히 사라집니다. 그러나 암세포는 다릅니다.  옆의 세포와 대화를 나누거나 정보를 공유하지 않습니다. 혼자 영양분을 독점합니다. 그리고 무한대의 분열과 증식과정을 통해 다른 세포들을  잡아먹게 되어 있습니다. 이 암세포를 이기는 것은 우리 몸 안에 있는 면역세포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면역세포는 어떤 때 가장 활발하게 운동할까요?  그것은 마음에 평안이 있을 때, 마음에 도전의식이 있을 때, 용기가 있을 때입니다. 아! 절망이다 나는 이제 끝이다. 나는 암에 걸려서 더 이상은 살 가망이 없다‘고 스스로 자기를 차단하면 면역체계는 취약해집니다. 그러나 ’난 가능성이 있어, 암세포가 나를 어쩌지 못할 거야, 난 도전할거야. 내가 절제해 볼 거야. 내가 내 몸을 귀히 여길거야 하며 스트레스 상황에서 용기를 내면, 면역세포가 강해지고 암세포를 이길 수가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김지철 목사(소망교회) 설교중에서

 
성경: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5)
 
▣ ‘아스합’이라는 풀
 
성지순례를 하면서 풀 한 포기 자랄 것 같지 않은 사막에도 풀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신기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끈질김에 새삼 감탄이 나왔습니다. 요르단에서 일행을 안내하시는 분께  사막에서 자라는 풀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 풀의 이름은 아스합(ashap)이었습니다. 아스합의 씨앗은 이글이글 타는 태양 아래 뜨거운 모래에 파묻혀 오랫동안 비가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심지어 10여 년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비가 오면 모래 밑에서 솟아나 싹을 틔우고 자라나 꽃을 활짝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씨를 뿌린 뒤 쓰러집니다. 열매를 맺어 씨를 뿌리는 꿈을 이루기 위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낸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대한 비전에는 아름답게 다듬은 정원의 삶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와 시련의 바다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거대한 비전을 미리 잘라 버리지 마십시오. 광야와 시련의 바다까지 하나님의 큰 비전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믿음의 사람은 그들의 삶 속에서 좌절을 맛보고 쓰러지기도 하며, 절망을 쌓아 믿음의 산을 이루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믿음의 거장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베드로, 바울 모두가 이렇게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입니다.
「희망을 노래합시다」/ 안두익

* 금언: 아무리 강한 권력자도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수레바퀴에 끼인 먼지에 불과하다(드위트 탈미지
 
▣  절망의 씨앗
 
본문 : 살후 2: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동심리학 박사 제임스 돕슨(James Dobson)은 아이들에 대해서 절대로 해서 안 되는 행동 중 하나는 ‘외모 평가’라고 말했습니다. 4,5살이 된 아이들도 외모에 대한 개념과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개념이 생겨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어른과 달리 그것을 여과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 때 평가받는 자신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평생을 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5살 때 들었던 외모의 혹평 때문에 평생을 고통 받는 성인들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이들의 어린 시절의 중요성을 매우 간과하기 때문에 너무나도 쉽게 ‘예쁘다, 못생겼다’고 평가하고, 무시하거나 놀리기도 합니다. 물론 악의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경우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 결과는 아이의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돕슨 박사는 아이들에게 외모와 학력과 같이 능력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근면, 관용, 정직과 같은 미덕을 강조하는 것이 훨씬 값진 일이며, 또 좋은 때라고 조언했습니다. 모든 말에는 씨앗이 담겨 있습니다. 어린이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섣부른 평가는 하지 말고, 희망이 되는 씨앗을 심어주십시오.
* 기도: 주님! 선한 말로 위로하고, 영혼을 세우게 하소서!
* 묵상: 희망이 피어나는 말의 씨앗을 곳곳에 심으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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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꿈을 회복하라 댓글[0]
소망, 희망 (2012-03-12 오전 7:40:52) http://blog.somang.net/holylove/7284

무너진 꿈을 회복하라

 

본문: 창37: 1- 11

 

오늘의 주인공 요셉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자수성가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여 신수성가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요셉은 팔려간 노예였습니다. 죄수였고, 아무 자격도 없던 그가 하나님이 손이 함께하여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분의 배경은 크게 세 장면이 나옵니다. 첫 째는 야곱이 요셉을 지극히 편애하는 모습, 두 번째는 요셉이 아버지 앞에 충성과 성실을 다하는 모습이요, 세 번째는 형들의 시기와 질투와 이기와 답답함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은 요셉을 말년에 낳았습니다. 또 요셉은 아버지에게 성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실함은온갖 소용돌이에도 일관적으로 자신을 추스리는 것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게 된 이유는 요셉의 꿈과 야곱이 요셉을 깊이 사랑하여 채색옷을 입힌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채색옷은 맏아들 루우벤으로부터 장자권을 빼앗아 요셉에게 주려고 한 의도였다고 합니다. 야곱은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것을 보는 형제들의 입장은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히브리 민족에게 장자권은 축복권과 직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형들은 요셉을 시기와 질투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17세였던 요셉은 자기 조상들과 자기 아버지인 야곱의 삶을 보면서 많은 혼란을 겪었을 것입니다. 4절을 보면 알듯이 형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고귀한 성품과 믿음직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되고 있었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은혜를 견지했습니다. 오늘은 남들을 살리는 요셉의 꿈이 나의 꿈이 되기 위해 몇 가지 말씀을 나누어보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모든 상황에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이 사건에 대한 신약의 재해석을 사도행전 7장 9절에서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 오늘 우리 마음 속 끝까지 깨달아야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입니다. 간직하십시오.

형들의 질투에서도 견딜 수 있는 요건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아 사람은 은 일에 충성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모든 자리에서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노예였을 때에는 주인에게, 감옥에 있을 때는 동료에게 한결같이 성실하게 임했습니다. 주어지고 작은 일에 충성된 사람에게 하나님이 다음 길을 열어 주십니다. 요셉은 그 모델 케이스 입니다. 요셉을 보며 깨달아야 할 것 중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질투에도 불구하고 충실하고 의로운 자를 끝까지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우리 중에 맡은 일 충성함으로 질시를 받고, 자리에서 떠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맡은 일에 충실함으로 받는 질시와 역경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과 확고성 안에 있을 때에 요셉은 꿈을 끝까지 견지할 수 있었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요셉은 고통과 실패 중에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는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얻었는데, 자신의 실패뿐만 아니라 아버지인 야곱을 보면서도 배웠습니다. 요셉이 6살 때 외할아버지 라반으로부터의 야반도주를 보면서, 떳떳하지 못한 인간관계는 좋은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형들의 잔인한 복수극을 보면서 가문의 위신이 실추되는 것과 생명의 위태로움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훗날 그로 하여금 용서의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그후 야곱이 재단을 쌓고 회개하고 회복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하는 것임을 체득하게 된 것입니다. 고통과 미움을 껴안는 것도 배웠습니다. 또 멘토 역할을 했던 할아버지 이삭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삭은 요셉에게 온유, 포용, 아량, 용서, 우물을 파서 나눠주는 모습 등, 야곱과는 다른 인격을 배웠을 것입니다. 좌절과 고통스러운 환경에서도 특별히 남들의 실패를 보면서 요셉은 귀한 교훈을 얻었고, 자기의 약점과 부족함이 오히려 강점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성실성을 배가 시켰습니다. 우리 모두 요셉과 같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기 자신만이 아닌 사람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원합니다.

/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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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그리스도인 댓글[0]
소망, 희망 (2012-03-03 오후 2:03:33) http://blog.somang.net/holylove/7265

소망의 그리스도인

 

본문 : 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의 신앙인들에게는 많은 어려움과 유혹이 있었습니다. 일부는 그 유혹에 넘어가 신사참배와 같은 잘못된 길과 타협하고 친일로까지 돌아선 실수를 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대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투쟁을 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당시 일본의 요구를 받아 들이지 않아 80여개의 교회가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계열의 학교 8곳이 폐교를 당했습니다. 3.1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신도는 3,373명이었고, 목사님은 54명 전도사님은 127명, 장로님은 63명이라고 합니다. 총독부에 사실로 기재된 것만 이 정도입니다. 그러나 조국 광복과 신앙에 대한 열망은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국의 광복과 하늘의 소망 하나로 3월 1일에 태극기 하나를 들고 거리로 나왔던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하늘의 소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대에도 주님의 길을 바르게 따르는 사람이 있었고 아무리 신앙이 번영하던 때에도 주님의 길에서 멀어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더욱 빛나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향한 소망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 기도: 주님! 흑암에 비추이는 주님의 빛을 바라보게 하소서!

* 묵상: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믿음의 자세를 가지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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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소망의 길 댓글[0]
소망, 희망 (2012-02-27 오후 7:42:19) http://blog.somang.net/holylove/7231
새 소망의 길

 

성경: 시편 43 장 5 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존 해거이라는 미국의 전도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에게는 존이라고 하는 외아들이 있었는데 정신박약아였습니다.

존은 휠체어를 타고 앉아서 아버지가 설교를 하면 뒤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했습니다. 부모님은 어떻게 하든지 그 아이를 고쳐 보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이 아이를 안고 다니면서 22년 간을 지내다가 결국 그 아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들이 죽은 후에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내가 이제 해야 할 일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해거이 인스티튜트’(Haggai Institute)라는 기관을 설립했습니다. 제3세계의 선교를 연구하고 그들을 훈련시키는 사람들을 보내는 휼륭한 기관입니다.

해거이 박사는 자기 가정의 실망과 낙담과 좌절을 통해, 선한 일을 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실망과 좌절만 바라볼 때 우리는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한 일, 의미 있는 일을 하며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헌신하게 될 때에 새 소망의 길이 열립니다. 아무리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며 그분을 생각하면 소망이 샘 솟듯 하게 되는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께만 소망을 둘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시편을 통한 매일 묵상집(아가페)

 

▣ 소망 안의 한 부부

 

투르니에는 스위스의 내과 의사이자 정신의학자이며 유명한 저술가입니다. 그가 쓴 책 중에 "듣는 귀"라고 하는 제목의 신앙 간증집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는 금실 좋은 남편과 아내로 소문났는데 한번은 그리스에 휴가를 갔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죽기 직전에 아내는 평화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남편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숨을 거두기 전, 그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천국에 도착하면 먼저 가 계신 시부모님을 만나 정말 즐거운 것 같아요".

그 말에 그의 남편 투루니에 박사가 굉장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내가 죽음을 마치 기차를 타고 제네바에 다시 돌아가는 것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재회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를 보낸 후 그의 믿음은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에 대한 믿음이 강해질수록 그의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해방되는 놀라운 자유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아내와 육체적으로만 결혼한 부부였던 것이 아니라 아내의 소망과 믿음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말입니다.

 

▣ 소망과 인내

 

성경: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잠13:12)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다가 물 속에 진주를 빠뜨렸습니다. 이 사람은 배가 육지에 닿자마자 큰 바가지로 바닷물을 떠서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사흘 동안을 끈기 있게 물을 퍼내고 있을 때 물 속에서 거북이가 나와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얼 하려고 물을 긷고 있소?”

“바닷물 속에 빠뜨린 진주를 찾으려고 물을 푸고 있소”

“그런데 그 일은 언제까지 할 생각이오?”

“물론 이 바닷물을 다 퍼낼 때까지 하지”

이 말을 들은 거북이는 깜짝 놀라 물 속으로 급히 들어가서 진주를 찾아다가 그 사람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소망이 성취되는 것처럼 기쁜 일은 없습니다. 소원을 성취한 사람은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때에 예상했던 계획대로 소망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소망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동치 않는 믿음으로 소망을 굳게 잡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때까지 인내하며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 카잘스의 소망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아흔다섯살이었을 때 기자가 물었다.“선생님께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로 손꼽히는 분입니다.그런 선생님께서 아직도 하루에 6시간씩 연습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카잘스는 활을 내려놓고 대답했다.“왜냐 하면 지금도 제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은 75세에 순례의 길을 떠났다. 모세는 애굽에서 신음하고 있던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80세에 부름을 받았고 120세에는 자기 민족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갈렙은 85세에 공격부대의 지휘관이 되었으며 욥은 노년에 새로운 가문을 이루었다. 나이나 환경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인이라도 자신에게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기억하고 노력하는 자에게는 소망이 주어지게 된다. 소망의 사람은 숙명론을 극복한다. 그는 모든 것을 하늘이 주신 기회로 알고 활용하기에 환경이나 시대가 자기의 기회를 앗아가지 못하게 한다. 우리의 이 땅이 다시금 소망의 땅이 되기를 꿈꾸어본다.

/정삼지 목사

 

▣ 소망은 오직 예수

 

한때 테니스 세계의 정상을 차지했었으나 자살을 시도했던 보리스 백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윔블던에서 두 번이나 우승을 했습니다. 그중 한 번은 가장 나이 어린 선수였습니다. 나는 부자였습니다. 필요한 모든 물질을 소유했지만 아주 불행했습니다. 제 마음에는 평화가 없었습니다. 저는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였습니다. 이런 공허감을 느끼는 사람은 그만이 아닙니다. 유명한 소설을 쓴 한 작가는 소년 시절에 알았었으면 하는 것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정상에 도달해 봐야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무엇이 부족했을까요? 사람이 그렇게 많이 소유하고도 여전히 불만스럽고, 자살까지 기도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우리를 오직 그분만이 만족시켜 주실 수 있는 의미와 목적과 희망을 갈망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때 주님께서는 이 갈망을 채워 주십니다. 성공을 했든 안했든 누구든지 이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는 길은 주 예수를 구주로 모시는 것뿐입니다

 

▣ 소망, 영혼의 닻

 

독일에서 태어난 베르너 렘케(Werner Lemke)는 유년 시절에 2차 세계대전을 겪었는데, 연합군이 진격해 오는 바람에 온 가족이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그들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심정으로 짐을 꾸린 뒤, 마지막으로 정든 집을 한 번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때 큰아들이 “잠깐만!”이라고 하더니 피아노 앞으로 달려갔다. 가족이 함께 모여 웃고 찬양하던 피아노 앞에 앉아, 큰아들은 그들이 즐겨 부르던 ‘예부터 도움 되시고’(찬 438장)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찬송 가사 가운데 하나님을 가리켜 ‘내 소망 되신 주’라고 고백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 부분을 부르며 그들은 하나님이 정말 그들의 소망이 되신다는 격려를 받고 담대함과 평안함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렘케 가족은 피난길에 오르면서도 하나님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삶의 경주를 달려갔다.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아주 평안했다. 성경은 소망을 ‘영혼의 닻’(히 6:19)이라고 부른다. 닻은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영혼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꽉 붙들어 주는 것이다. 닻이 없으면 배는 바람과 물결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도 중심을 잡아 주는 닻이 없으면 예측 불가능한 인생의 기후로 인해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품으면 그분과 하나로 묶이게 되어 삶의 경주를 달려갈 수 있는 새 힘을 얻게 된다. 또한 모든 역경을 헤치고 날아오를 수 있는 힘도 얻게 된다. 피곤함이나 지침도 모르고서 말이다.

「더치 쉬츠의 소망」/ 더치 쉬츠

 

▣ 사랑은 소망을 주는 것

 

제임스 미케너의 실화소설, ‘알라스카’의 줄거리이다.

어머니는 딸이 세상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규율이 가장 엄한 어느 대학에 진학시킨다. 착한 딸은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심정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된다. 어머니는 주말이면 200마일이 넘는 거리를 자동차를 몰고 달려가 딸을 집에 데려온다. 어머니는 스물두살인 딸이 아직도 미덥지가 않다.

“알코올이나 마약에 빠지진 않을까. 나쁜 친구를 사귀지는 않을까. 교회에는 잘 출석하고 있을까.”

어머니의 사랑의 근심은 하루도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딸의 심정은 어떨까. 딸은 어머니의 간섭과 구속에 거의 정신이 돌 지경이었다. 그녀는 결국 어머니를 떠나 알라스카로 도망쳐 완전히 독립한다. 어머니는 사랑을 주었는데 딸은 왜 그것을 못견뎌하는 것일까. 사랑은 간섭과 감독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끊임없이 희망과 소망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열매맺도록 격려하며 기다린다.

- 임한창기자 (국민일보)

 

▣ 소망의 줄

 

왈츠라고 하는 사람의 그림 가운데 소망이라는 그림이 있다. 둥근 지구 위에 어떤 젊은 여인이 홀로 외롭게 앉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눈은 수건으로 싸맸는데 앞을 보지 못한다. 그 가슴에는 비파를 안고 있는데 그 비파의 줄이 거의 다 끊어지고 오직 한 줄만이 남아 있었다. 뒤에는 희미한 별 하나만 반짝이고 있었다. 이 여인은 우주에 외로이 혼자 앉아 보지 못하는 눈으로 오직 남은 한 줄의 비파를 가지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그 줄은 소망의 줄이다. 그 별은 소망의 별이다. 이 그림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고 한다.

 

▣ 소망은 생명

 

샤르니라는 한 프랑스인이 나폴레옹 황제에게 밉게 보여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는 친구들에게서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주 면회를 오던 가족들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그는 너무나 쓸쓸했습니다. 그는 돌 조각으로 벽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

소망을 잃어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 바닥에 깔려 있던 돌 틈에서 푸른 싹 하나가 고개를 들고 나왔습니다. 샤르니는 간수가 매일 주는 물을 조금씩 남겨서 푸른 잎사귀에 부어주곤 했습니다. 그 싹은 마침내 꽃 봉오리가 생기더니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꽃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썼던 글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신다."

소망이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 옆방에 면회왔던 죄수의 딸이 이 감옥 안을 들여다보다가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감옥에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는 소문은 귀에서 귀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조세핀 여왕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여왕은 말했습니다.

"꽃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돌보는 이는 결코 나쁜 사람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 황제에게 건의했습니다. 그래서 샤르니는 석방되었습니다. 샤르니는 감옥에서 핀 꽃을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생명이 다하기까지 가꾸었습니다. 소망은 생명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소망을 잃지 말고 전진하여야 합니다. 소망은 좋은 동역자입니다.

 

▣ 꼴찌의 소망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는 대학에서 계속 낙제점수를 받았다. 교수들은 그에게 ‘배우기를 포기한 젊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지혜를 얻은 그는 ‘전쟁과 평화’라는 명작을 남겼다. 프랑스 조각가 로댕은 예술학교 입학을 세 번이나 거부당한 꼴찌였다.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통탄했다. “이런 바보가 왜 우리집에서 태어났는가.” 그러나 그는 조각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아인슈타인은 선생님으로부터 ‘정신발달이 느리고 환상에 사로잡힌 아이’라고 무시당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천재로 평가받는다. 영국의 성직자 제레미 테일러는 “하나님은 꼴찌를 택해서 1등으로 만드신다. 하나님의 일꾼들은 연약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했기 때문에 위대한 일을 성취했다”고 말했다. 지금 당신은 혹시 밑바닥에 서 있지는 않은가. 지금이 바로 하나님이 당신을 사용하실 기회다. 하나님은 세상의 약한 것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만드신다.

/장학일 목사 (예수마을교회)

 

▣ 부활의 소망

 

성경: 에베소서 2: 1-5 * 찬송 168장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부활에 대하여 성경을 상고하여 보면 세 가지 종류의 부활이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과거의 부활은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첫 무덤을 깨뜨리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을 말하는 것인데 과학을 운운하는 현대에는 잘 믿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과의 대면을 통해 "우리는 다시 사신 예수를 보았노라"고 증언할 뿐 아니라 그 후에도 부활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미래의 부활은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라는 성경의 기록이 있는데 이는 우리의 영혼만이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 살과 뼈까지도 그리스도의 변화하심 같이 우리도 변화되며 영원한 복락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부활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은 현재에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은 에스겔이 본 해골 골짜기와 같아서 육신은 살았으나 그 영은 죽은 자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영은 다 죽은 영입니다. 우리의 영이 다시 살기 위해서는 영혼의 햇빛이 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하며, 기도의 호흡과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 말씀을 들어 진리의 생명수를 항상 마셔야 합니다.

* 기도: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에게 부활의 메시지를 담대히 전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 주께 소망을 두다

 

많은 사람이 얄팍한 현실의 세계에 자신의 영혼의 닻을 내리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현실 어디에도 우리 마음의 닻을 내릴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 우리 영혼의 닻을 내릴 수 있는 곳은 하나님의 품뿐입니다. 우리가 피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생의 행복과 만족을 추구하는 것과 같이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겉핥기식의 신앙생활로 영적 만족을 누리려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진실한 내적 동기도 없이 의미 없는 기도회와 세미나 등에 참여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자신을 속이며 살아갑니다. 믿는 사람들이 흔하게 하는 말 가운데 ‘하나님 중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질, 성공, 출세, 권력과 같은 것을 생의 궁극적 목적으로 삼고 그것을 위해 하나님을 열심히 찾는 사람이 자기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산다고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단지 교리의 틀만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은 하나님 중심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집과 독선을 하나님 중심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진정한 하나님 중심은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허락하는 삶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포기하고 버릴 수 있는 삶의 용기, 진실성, 담대함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이 하나님 중심의 삶입니다.

- 「삶, 그리고 성령」/ 임영수

 

▣ 한가지 소원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에 ‘한가지 소원’이라는 글이 있다.

한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어떤 노인이 나타나서 아기 엄마에게 아기를 위한 소원을 물었다. 아기의 엄마는 “이 아이가 자라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 아이는 자라면서 정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 아이는 사랑을 받을 줄만 알았지 사랑할 줄 몰랐고 점점 교만한 사람이 되어갔다. 어느날 우연히 노인을 다시 만난 어머니는 간곡히 소원을 말했다. “제게 한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제 아이가 사랑받기보다는 사랑을 줄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사랑의 비밀은 받는 것보다 나눠줄 때 그 기쁨이 커진다는 것이다.

/정삼지 목사

 

▣ 내 소망의 근거

 

우리는 어디에 소망을 두고 있는가? 몸이 아파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의 진단이 내려지고 그 결과가 결코 좋지 않을 때, 우리는 예수님과 바울, 삶의 고통 속에서 인내를 배웠던 여러 신앙의 위인이 걸어갔던 길을 걷겠는가? 아니면 고통을 싫어하고 반감에 매달릴 것인가? 치유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성숙하게 하려고 고난의 시기를 허락하시기로 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타락한 세상의 가식이 우리의 삶을 파고들 때-그것은 고약한 폭풍우나 음주 운전자, 무서운 사고일 수도 있다-우리는 역경 너머에 있는 영광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슬픔에 파묻혀 버리고 말 것인가? 슬픔은 극히 정당하다. 하지만 우리는 소망 없는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않는다. 죄에 대한 저항이 고통스러워질 때-솔직히 술을 마시지 않고는, 그 사람 없이는, 옛 습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될 때-우리는 그 고난을 받아들이고, 영적 고뇌를 견디면서 하나님께 신실하겠는가, 아니면 또다시 중독이라는 달콤한 감옥 안으로 무너지고 말겠는가? 당신의 성숙을 가장 효과적으로 도와주는 고통을 쉽게 거절하지 말라.

- 「상 주시는 믿음」/ 게리 토마스

 

▣ 우리에게 있는 소망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살아가는데, 이 말은 용서 받음으로써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용서 받은 죄인인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사역에서 일정한 분깃을 받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받을 것 이상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온갖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분 나라의 일들과 관련해서 당신과 나에게도 분명한 역할을 알려 주실 것이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모습으로 우리의 인생을 만들고 또 유지해 나가기를 구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와 싸우고, 우리의 생각을 다스리며, 우리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우리의 욕망을 분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결함 있는 사람까지도 당신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시는 주님을 신뢰합시다. 그리고 힘에 부친다고 느껴지는 선한 사역과 선한 자세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믿음 안에서 힘을 구합시다. 구하는 자는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오래 참으시고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 「소망」/ 제임스 패커

 

▣ 무덤에는 소망이 없다

 

이집트 왕 쿠프는 길이가 230m나 되는 피라미드를 쌓았다. 10만 명의 노예가 30년 동안 7Km나 떨어진 곳에서 2.5t짜리 돌을 날라와서 쌓았다고 하니, 이 무덤을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돌에 깔려 희생되었겠는가?

사람이 무덤을 보고 갖는 생각은 그의 종교와 사상을 나타낸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욥기3:13)라고 말한 욥처럼 절망을 안고 있는 자는 무덤에서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누릴 것을 기대하며, 인생에서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은 이집트 왕처럼 자기 이름과 무덤을 보존하려한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조상신 숭배 사상에 젖어 있는 사람에게는 무덤이 자손을 축복하는 조상신의 전각이다. 그러나 예수 믿는 자에게 무덤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유해를 안치하는 공간이다. 무덤에는 소망도 평안도 없다. 무덤은 복과 화를 빌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우리의 진정한 안식처는 하늘나라이며,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이 복과 화를 주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 11:25-26)

/옥한흠 목사

 

▣ 소망과 욕구는 다르다

 

유난히도 남자가 귀했던 저의 집안은 당연히 남아선호 사상이 가득했습니다. 게다가 1남 9년 중 첫째이신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첫 번째 사내아이라는 타이틀은 제겐 언제나 따라다니는 부담이었습니다. 그런 가정 환경에서 자라다보니 당연히 온 식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되었고 특히 저희 어머니는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까지 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다른 친구들은 다들 야자가 끝나고 나면 즐겁게 이야기도 나누고 길거리에서 간식도 사먹으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는데 저만 유독 시간에 쫓겨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야자수업 후 정해진 시간까지 집에 돌아와야만 하는 엄한 가정교육 때문이었죠.

그런데 그런 숨막히는 생활 속에서도 제겐 유일한 소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학을 들어가게 되면 무엇을 해도 관여하지 않겠다는 부모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만 가게 되면 나의 인생이 새롭게 시작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대학도 가기 전에 저는 친구들의 유혹에 못 이겨 술과 담배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공부는 아예 손을 놓아버렸습니다. 그러면서도 부모님에게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양 부모님을 속여 가며 자꾸 밖으로만 돌았죠.

결국 대학은 떨어지고 당시의 전문대학(지금의 2년제 대학)이라도 저는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곳도 대학이라며 내 마음대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희 부모님은 가차없이 재수를 하게 하셨습니다. 고등학교 때보다도 훨씬 힘든 생활이 시작되었고 저는 그 시간을 견뎌내기가 너무나도 힘이 들었습니다. 고3 말에 만난 지금의 아내가 그 시기를 잘 견뎌낼 수 있도록 옆에서 큰 힘이 되어 주었고 결국 재수 끝에 대학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고대하고 인생의 마지막 지점이라고 생각했던 대학생활은 제 생각과 달랐습니다. 무언가 특별한 곳일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지닌 채 시작한 대학생활은 오히려 고등학교보다도 못한 인간관계와 술로 찌든 생활을 보며 엄청난 실망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후 실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휴학 후 돈을 벌다가 지금의 아내의 전도로 교회를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저는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진정한 편안함과 휴식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저는 사역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고 지금은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욕구를 이루는 것이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자신이 하고 싶은 무언가를 이루고 나면 더 큰 욕구를 꿈꾸거나 허탈감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것을 우리는 소망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소망이란 변하지 않는 무엇, 좇아 갈수록 기쁘고 감사한 그것,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인 것입니다. 대학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던 생각이 틀렸듯이 우리가 지금 꿈꾸고 있는 우리의 마음이 소망인지 욕구인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으로 가능할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만 점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엔 무엇이 있습니까?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의 욕구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소망입니까?

/박요한 목사

 

▣ 믿음과 소망

 

약 100년 전 이집트에서 3천년 된 고분을 발굴했는데 미이라가 나왔고, 그 옆에 꽃병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꽃병을 런던의 대영박물관으로 보냈는데 그만 어떤 사람이 실수로 떨어뜨려 깨졌습니다. 꽃병이 깨지자 바닥에 몇 개의 완두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너무 오래되어 겉이 쭈글쭈글했고 차돌처럼 딱딱했습니다. 전문가들이 연구 검토한 후 땅에 심었더니 30일 후 새파란 싹이 돋아났습니다. 3천 년간 침묵을 지킨 생명이 잠에서 깨어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고 그 믿음에는 분명히 소망이 있습니다. 이 소망은 믿음만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분명히 이루어집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콜론의 지하실에는 “나는 태양이 빛을 발하지 않을 때도 그 태양을 믿으며, 나는 사랑을 느끼지 못해도 믿으며,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실 때도 그를 믿는다”라고 쓴 글이 있었는데, 이것은 분명히 어떤 전쟁 포로가 장차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조국으로 무사히 돌아갈 소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글일 것입니다. 좌절과 핍박과 기근과 환란이 와도 작은 믿음이 있으면 좌절하지 마십시오. 실제적인 무신론자는 입으로만 믿는 사람입니다. 생활로 당신의 믿음을 보이십시오.

* 기도: 주님, 어두움가운데 있더라도 소망을 갖게 하옵소서.

* 묵상: 소망이 있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영생의 소망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한 노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숱한 고난과 시련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서로의 사랑과 신뢰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사람들은 금실 좋은 이 부부를 통해 노년의 여유와 아름다움을 느꼈다. 하루는 명주실에 열심히 수를 놓던 아내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노인은 깊은 고독과 슬픔에 잠겼다. 정원에 덩그렇게 놓인 빈 깃대를 바라볼 때마다 슬픔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어느 날, 노인은 빈 깃대에 아내가 수놓은 깃발을 꽂았다. 깃발에는 이 부부의 인생 좌우명이 적혀 있었다. 노인은 정원의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순간, 슬픔의 그림자가 걷히고 밝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깃발에 적힌 글을 보고 노인은 위로를 받았다. 영생의 소망. 이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인간의 삶이 이 땅에서 끝난다면 인간은 한없이 비극적인 존재다.

 

▣ 천국에 대한 소망

 

초대교회 당시였다. 어떤 어머니와 그녀의 어린 아들이 기독교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로마의 원형극장에 던져졌다. 잠시 뒤에 사자굴의 문이 열렸다. 굶주린 사자들은 으르렁거리면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어린 아들은 무섭게 달려드는 사자를 보고서 어머니의 품에 꼭 안기면서 울부짖었다. “엄마! 무서워요!” 어머니는 아들의 몸을 꼭 안아주면서 조용히 위로해주었다. “얘야! 눈을 꼭 감고 조금만 참아라. 그러면 곧 눈앞이 환하게 밝아올 것이란다! ”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을 받아 감옥에 끌려가면서도, 또 매를 맞으면서도, 심지어는 사자굴 속으로 던져지면서도 기뻐하고 또 기뻐했다. 이는 저들의 마음속에 천국에 대한 소망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현대는 물질 문명이 극도로 발달되어 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의 삶에만 너무 치중하고 있지 않나 우려된다. 이 세상에 대한 집착 때문에 우리의 복 된 영적 시야가 가리워져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식어져서는 안될 말이다. 인생은 길가는 나그네라고 했다. 이 세상은 잠시 거쳐가는 곳이요, 우리에게는 영원한 본향이 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주를 인하여 당하는 핍박과 환난이 있더라도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주신 영원한 하늘나라가 있음을 생각하고 주를 위해 더욱 충성하자!

내일이 무엇이냐? 영생이 무엇이냐? / 박상훈

 

하늘의 소망에서 비롯된 사랑

 

내 친구 두 명은 교육 수준도 높고 연봉도 높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 노숙자 보호소에 있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 동정심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이다.

얼마 전에 친구 한 명이 직장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그 여자와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점심 식사를 함께하려고 몇 번 그 여자를 초대했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핑계를 만들어 빠져나가곤 했다. 한번은 그 여자의 비서가 이렇게 말해 주었다.

"전해 드린 메모를 그분이 보고는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지며 절대로 식사할 이유가 없지라고 하셨어요."

그로부터 일주일쯤 후, 우연히 어느 식당에서 그 여자가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내 친구가 봤다. 그가 어떻게 했겠는가? 그들의 식사비를 대신 내주었다. 이 사실을 안 그녀는 내 친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지난 일에 대해 사과했다. 예수님의 제자답게 사는 것은 가정생활에서나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심지어는 계산할 때 내 앞을 끼어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조차 하나님 나라의 사람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지(그리스도가 그 안에 거하시는 사람),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 소속), 그리고 어떠한 운명(예수님과 영원한 영광을 누릴 운명)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고통 속에서도 웃을 수 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할 수 있다.

 

소망이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원칙 두 가지가 있다. 곧 소망과 성실이다. 소망을 가지고 성실을 다하면 거기에서 반드시 자신이 구하는 것을 얻게 된다. 따라서 소망은 정신의 피와 같다. 그것이 없으면 정신에 생명력이 없다. 피가 육체에 생명력을 주듯이 소망은 인간의 마음에 생명력을 준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에게 소망을 가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아직도 바라고 있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다. 단테는 “지옥은 아무런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 들어갈 곳이다”라고 했다. 성경은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다”(잠 14:32)고 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인간에게 소망으로 앞을 바라보게 하셨고, 한숨으로 뒤를 바라보게 하셨다. 한숨을 쉬는 사람은 길을 걸으면서 자꾸 뒤를 바라보는 사람과 같다. 당연히 잘 걸을 수 없다. 넘어지기 십상이다. 반성과 자책도 필요하지만 더 필요한 것은 소망을 가지고 내일을 바라보는 것이다. 큰마음에 큰 소망이 깃든다. 소망이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이 되는 예는 거의 없다.

/최승일 목사(서울 상도교회)

 

▣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찬송가 488장, <통> 539장)

 

1.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주 나의 반석 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2. 무섭게 바람 부는 밤 물결이 높이 설렐 때

우리 주 크신 은혜에 소망의 닻을 주리라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3.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4 바라던 천국 올라가 하나님 앞에 뵈올 때

구주의 의를 힘입어 어엿이 바로 서리라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찬송가 95장, <통> 82장)

 

1.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 뿐일세

2. 나의 사모하는 선한 목자는 어느 꽃다운 동산에 양의 무리와 늘 함께 가셔서 기쁨을 함께 하실까

3. 길도 없이 거친 넓은 들에서 갈길 못찾아 애쓰며 이리 저리로 헤매는 내 모양 저 원수 조롱 하도다

4. 주의 자비롭고 화평한 얼굴 모든 천사도 반기며 주의 놀라운 진리의 말씀에 천지가 화답하도다

5. 나의 진정 사모하는 예수여 음성 조차도 반갑고 나의 생명과 나의 참 소망은 오직 주 예수 뿐일세 아멘

 

▣ 소망, 희망에 관한 성경 말씀

 

0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은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39:6- 7)

0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나는도다(시62:5)

0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시78:7)

0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5)

0 나는 너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시81:10)

0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2)

0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24:14)

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29:11)

0 내가 내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2:28)

0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0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

0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행23:6)

0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니니(히6:19)

 

▣ 소망, 희망에 관한 금언

 

0 아름다운 꿈을 지녀라. 그리하면 때묻은 오늘의 현실이 순화되고 정화될 수 있다. 먼 꿈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그 마음에 끼는 때를 씻어나가는 것이 곧 생활이다. 아니, 그것이 생활을 헤치고 나가는 힘이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싸움이며 기쁨이다.(릴케)

0 희망은 사람을 성공으로 이끄는 신앙이다.(헬렌 켈러)

0 희망은 크게, 준비는 세심히(영국 격언)

0 희망은 믿음의 어버이다.(사루스 바톨)

0 위대한 희망은 위대한 인물을 만든다.(토마스 풀러)

0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기쁘게 한다는 희망 위에서 산다.(사무엘 존슨)

0 희망은 질병, 재앙, 죄악을 고치는 특허약이다.(엘리오트 라이스)

0 희망은 그 자체가 일종의 행복이며 이 세상이 베풀어주는 주권 행복일 것이다.(사무엘 죤슨)

0 희망은 가난한 자의 방이다.(소포클레스)

0 희망은 가난한 자가 살아가는 양식이다.(죠지 허버트)

0 나의 희망은 항상 실현되지는 않지만 나는 항상 희망한다.(오비디우스)

0 행복하다는 것은 희망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헤르만 헤세)

0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희망이다. 얼마 후 성장하여 새로운 종자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면, 농부는 밭에 씨를 뿌리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난다고 하는 희망이 없다면 젊은이는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익을 얻게 된다는 희망이 없다면 장사꾼은 장사를 할 수가 없다.(마틴 루터)

0 꿈꾸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칼 샌드버그)

0 꿈을 지녀라 그러면 어려운 현실을 이길 수 있다.(릴케)

0 미래는 꿈의 아름다움을 믿는 사람의 것이다. (엘리노어 루스벨트)

0 태양이 빛나는 한 인간의 가슴에는 희망이 빛난다.(라스커 쉴러)

0 겨울이 지독하게 추우면 여름이 오든 말든 상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냉혹한 날씨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고, 화창한 아침이 찾아오면 바람이 바뀌면서 해빙기가 올 것이다. 그래서 늘 변하게 마련인 우리 마음과 날씨를 생각해 볼 때,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빈센트 반 고흐),

0 너의 행동을 낮게 하고 너의 희망을 높게 하라.(조지 허버트)

0 희망은 잠자고 있지 않는 인간의 꿈이다. 인간의 꿈이 있는 한, 이 세상은 도전해 볼만하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꿈을 잃지 말자, 꿈을 꾸자. 꿈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에겐 선물로 주어진다.(아리스토텔레스)

0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깨어 있으면 꿈을 이룬다.

0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희망이다. 수확을 할 희망이 없다면, 농부는 씨를 뿌리지 않는다. 이익을 얻을 희망이 없다면, 상인은 장사를 하지 않는다. 좋은 희망을 품는 것은 바로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다.(루터)

0 살아있는 한 희망은 있다

0 건강을 가진 사람은 희망을 가졌고 희망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가졌다.

0 가정은 희망의 발원지요 행복의 중심지다.

* 주의: 본 자료를 무단 수집, 제작 배포 출판하면 저작권법에 저촉(위배)됩니다.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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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댓글[0]
소망, 희망 (2012-02-27 오후 7:38:51) http://blog.somang.net/holylove/7230
순종

 

슈바이쳐 박사는 유명한 오르간 연주자이고 철학자이고 과학자이고 의사이고 또한 유명한 설교자였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찬란한 조명 아래에서가 아니라 어둡고 미개한 아프리카에서 끝을 맺게 되었다. 그가 아프리카로 갈 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붙잡았다. 만일 그가 그곳에 남아 있었더라면, 그저 평범한 한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인생을 마쳤을 것이다. 그 많은 환호와 추앙, 재물들을 포기하고 혜택받지 못한 곳으로 가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전도 장소는 아프리카였다. 그곳에 가서야 그의 삶은 빛을 발했고, 인류의 위인이 되었고, 봉사하는 삶을 완성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하나님께서 섭리를 이루시기위해 그대를 언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간에 순종하며 따를 수 있는 믿음을 갖도록 노력하자.

 

▣ 순종의 300파운드

 

스펄전 목사는 타 도시에서 자기가 돌보는 런던의 고아들을 위해 300 파운드를 모금했다. 그런데 기도하던 중 “그 돈을 조지 뮬러 목사에게 갖다 주라”는 음성을 들었다. “오! 주님, 저희 고아들도 이 돈이 필요한데요” 그러나 그 음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네,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스펄전 목사는 그 돈을 들고 뮬러에게 갔다. 뮬러는 무릅을 끓고 기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조지, 하나님께서 내가 모금한 300파운드를 당신에게 주라고 해서 가져 왔소” “스펄전 목사님, 저는 지금 바로 300파운드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중이었는데요”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함께 기뻐했다. 스펄전 목사가 사무실에 돌아오니 책상 위에 편지가 하나 와 있었는데 300기니의 헌금이 들어있었다. “주여, 제 300파운드에 이자까지 보태서 주시는군요!” 그는 감격하여 감사를 드렸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님께 빌려드리는 것이니 그가 준 것을 주께서 갚아 주시리라”(잠언19: 17)

/김상복 목사

 

▣ 아브라함의 순종

 

성경: 창26: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로 아노라 (창세기 22: 7~12)

한 번은 레오날드 우드(Leonard Wood) 경이 프랑스 왕을 방문했습니다. 왕은 그가 무척 마음에 들었으므로 다음 날 만찬에 초대한다는 기별을 보냈습니다. 레오날드 경은 다음 날 궁전으로 갔고, 한 홀에서 왕을 만났습니다. 프랑스 왕은 약간 의외라는 표정으로 반갑게 그를 맞으며 말했습니다.

"레오날드 경, 나는 이곳에서 당신을 보게 되리라고는 정말 기대도 못했소. 어떻게 된 일이오?"

그러자 레오날드 경은 몹시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폐하께서 저를 초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었소. 하지만 경은 나의 초대에 아무런 응답도 보내지 않았소." 비로소 사태를 이해한 레오날드 우드 경은 정중히 대답했습니다.

"왕의 초대에는 결코 가타 부타 대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순종만 있을 뿐이죠."

하나님 앞에서도 이와 같은 아름다운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시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벧전 2:18)

 

▣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라

 

임금이 한 신하를 불러 이상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우물물을 길어 저기 밑 빠진 독에 가득히 채우시오.”

밑 빠진 독에 물이 채워질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충성스러운 신하는 오직 임금의 명령만 생각하면서 밤을 낮 삼아 물을 길어 날랐습니다. 결국 우물 바닥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물 바닥에 무엇인가 번쩍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엄청나게 큰 금덩어리였습니다. 신하는 임금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임금님, 용서하소서. 독에 물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물 바닥에서 이 금덩이를 건졌나이다.” 임금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겠다고 우물이 바닥나도록 수고했구려. 그대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신하요. 그 금덩이는 그렇게 순종하는 신하를 위해 준비된 것이라오.”

세상에는 꾀를 내세우며 똑똑한 체하다가 망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충성된 사람의 성실을 기억하십니다.

/임종수 목사(큰나무교회)

 

▣ 축복이 없는 이유

 

외국의 어떤 며느리가 친정 때문에 고민이 많았답니다. 자기가 보기엔 친정 가족들이 신앙생활도 더 열심히 하고 부지런해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시댁이 더 잘되더라는 겁니다. 시댁은 한번은 다른 종교를 믿기도 했고 신앙생활도 그다지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오히려 시댁은 하나님께 더 축복을 받는다면서 어찌 된 영문인지 유명한 목사님을 찾아뵙고 상담을 했다고 합니다. 헌데 이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제가 시댁과 친정 가족들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시댁 식구들은 누군가가 자기들에게 잘못을 했을 때 빨리 빨리 용서를 하고 하나님이 이게 아니다 하시면 재빨리 태도를 바꾸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친정 식구들은 신앙생활은 열심히들 하시지만 무언가 마음에 미움이 있을 때 그걸 빨리 풀어버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이 들려올 때도 자세를 빨리 바꾸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며느리는 목사님께 정말 목사님의 말씀이 맞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성경에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먼저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귀하게 보시지만 더 중요한 것은 순종하려는 마음입니다.

사울왕은 제사를 드리려고 소를 안 죽이고 데려왔지만 하나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 무조건적인 순종

 

1933년 예수전도단 북아메리카 총재였던 피터 아일런의 아버지는 5살이었다. 공산권 소련을 떠나 성령의 도우심으로 중국까지 탈출하였다. 안전을 위해 밤에 걷고 낮에는 수풀 속에서 잠을 잤다. 한순간 그들은 자신의 판단을 믿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불순종했다. 그 때부터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구하지 못하고 다음날 해가 내리쬐는 날 죽게 되어 고통 속에서 물을 구하며 기도하였다. "물을 주세요."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다. "조금만 걸어가라 왼쪽으로 돌아라."

그들이 순종했을 때 갈대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모래를 파기 시작했는데 백연못이 나오더니 물은 점점 더 맑아졌다. 그들은 마음껏 마시고 다시 걸을 수 있는 기력을 찾았다. 무조건적 순종은 거룩한 삶의 증거이다.

/김철한 목사

 

▣ 순종과 복

 

가스펠 헤럴드지에 게재되었던 이야기입니다. 세실 씨는 어느 날 그의 사랑하는 어린 딸의 방으로 갔습니다. 딸은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어떤 사람이 그녀에게 준 아름다운 구슬 상자를 아버지에게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버지는 구슬이 아주 예쁘다고 감탄을 하고 나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얘야, 그것을 불속에 던져버려라.”

어린 소녀는 잠시 당황하고 망설였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시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계속 말하는 것입니다.

“네게 강요하지는 않겠다. 너에게 맡기겠다. 이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니 네가 나를 믿는다면 그렇게 해라.”

어린 소녀는 고심을 하다가 결국 순종하기를 택하고 그 상자를 불속에 던졌습니다. 그일 후 어느 날 아버지는 그녀가 오랫동안 갖고 싶어하던 휠씬 더 아름다운 구슬 상자를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딸아 내가 이렇게 한 것은 네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신뢰하도록 가르치기 위해서였단다. 너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은 여러 차례 네가 이유를 모르는 가운데 포기하고 버릴 것을 요구하실 것이다. 그때 네가 나를 믿었듯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너는 언제나 그것이 최선임을 알게 될 것이다.”

 

▣ 순종하라

 

성경: 삼상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

 

유명한 설교가인 Caryle Marney 목사는 이런 경험담을 애기했습니다. 본인이 경찰 훈련을 받은 개를 샀는데, 어느 날 동네아이들의 야구공이 날아와 유리 한 장을 깼습니다. 화난 목사님은 "학교 운동장에 가서 놀아라" 고 소리쳤습니다. 그 순간 이 개는 서너 번 문에 뛰어오르더니, 안 열어주니까 넓은 유리창으로 돌격하여 나아가 공을 물고 왔다는 것입니다. "가라"하는 말을 알아듣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나간 이 개만큼의 결단이 크리스천들에게 있는지를 마니 목사는 반문하고 있습니다. 바로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 것입니다. 순종의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순종으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 아버지 말씀에 순종

 

항구에 정박한 한 상선에서 선장의 아들이 원숭이와 어울려 놀고 있었다. 그런데 원숭이가 소년의 모자를 낚아채 돛대 위로 올라갔다. 소년은 모자를 빼앗기 위해 정신없이 원숭이를 뒤쫓았다. 소년이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너무 높은 곳에 올라가 있었다. 발 맡을 내려다본 소년은 겁에 질려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소년은 공포에 몸을 떨며 밧줄을 잡은 채 울음을 터뜨렸다.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때 선장이 돛대 위에서 울고 있는 아들을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아들아, 밧줄을 놓고 빨리 바다로 뛰어들어라. 그렇지 않으면 총을 쏘겠다."

소년은 두 눈을 감고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아버지의 말만 믿고 뛰어내린 것이다. 그러나 물 속에서 솟구쳐 올랐을 때는 아버지의 아늑한 품에 안겨 보트에 태워져 있었다. 신앙이란 세상의 밧줄을 놓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 가장 탁월한 군인

 

하루의 전투가 끝나고 나서 지휘관이 그날의 전투 상황에 대해 장교들과 함께 평가를 하고 있었다. 지휘관이 물었다. 어느 군인이 그 날 가장 탁월한 군인이었는지 생각들을 말해보라고 했다. 어느 장교는 가장 탁월한 군인은 그 날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한 군인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장교들은 이 군인,저 군인 자기 나름대로 의견을 제시했다. 지휘관은 말했다.“아니오. 여러분 모두가 다 틀렸어요. 오늘 전장에서 최선의 군인은 적을 죽이려고 칼을 들어 막 내리치려는 순간 퇴각 나팔 소리를 듣고 적을 치지 않고 팔을 내리고 나팔 소리대로 후퇴한 군인입니다. 지휘관의 명령에 복종한 것이 오늘의 가장 고귀한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순종이 바로 믿음이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더 기뻐하시겠느냐? 보라 순종하는 것이 희생제물보다 낫고 말을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삼상 15:22)

/김상복 목사

 

▣ 순종의 비결

 

평소 말을 잘 안 듣는 소년이 산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그 날도 그 소년은 부모의 당부와는 반대로 혼자 깊은 곳으로 갔던 것입니다. 해가 지고 어두워졌지만 소년은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두려움과 후회가 소년을 덮쳐 있을 때 지나가던 사람이 그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아저씨였습니다. 아저씨는 소년에게 집까지 데려다 줄 테니 잘 따라오라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아저씨의 말을 한치 거스르는 일 없이 따라 산을 내려왔습니다. 순종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은 너무나 소수입니다. 우리는 순종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핑계를 댑니다. 하지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순종만큼 쉽고 좋은 일도 없습니다. 결국 문제는 순종의 어려움이 아니라 우리에게 전적인 의존의 마음이 없는 데 있는 것입니다.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 길들여진 개

 

호주의 인구는 2000여만 명, 양은 1억5000여만 마리. 목장에는 길들여진 개들이 많다. 개 한 마리가 보통 3000마리의 양을 돌본다. 나는 브리스베인의 파라다이스 컨추리에서 길들여진 개가 양을 어떻게 모는지 보았다. 개는 양을 주인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기 전에 먼저 주인의 손 움직임을 본다. 그리고 거리가 멀어지면 휘파람 소리를 들은 후 양을 몬다, 주인 앞에서는 겸손히 엎드린다.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때로는 빨리 뛰고 느리게 걷는다. 좌우 방향도 정한다. 호주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어떤 개가 양을 모는 일에 잘 길들여졌는지를 시험해 보는 양몰이 대회가 열린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는가. 주님의 음성과 손짓에 순종하며 세상의 양들을 주님께 인도하고 있는가.

/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

 

▣ 순종의 실천

 

저는 어렸을 때 운동을 참 좋아했습니다. 특히 축구와 야구를 아주 잘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많이 흘러서 중년이 되었습니다. 신학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학생들이 편을 짜서 축구를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경기를 지켜보고 있노라니 선수들의 활동이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선수들 중 가장 못하는 학생 하나를 불러낸 뒤 대신 선수로 들어갔습니다. 열심히 공을 찼습니다. 그러나 제가 열심히 하면 할수록 관중들은 더 많이 웃었습니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따라주지를 않았기 때문입니다. 순종할 마음이 있다고 해서 모두 그 순종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능력이 없으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실질적으로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실천하면서 살고자 할 때에 그렇게 실천하며 살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며 살려는 자에게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도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 「이름뿐인 신앙을 벗어나라」/ 김남준

 

▣ 수박 씨의 신비

 

미국의 정치가요 웅변가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남긴 글입니다. “나는 수박 씨의 힘을 관찰해 본 적이 있다. 수박 씨에는 흙을 밀어젖히고 나오는 힘이 있다. 그것은 자기보다 20만 배나 더 무거운 것을 뚫고 나온다. 수박 씨가 어떻게 이런 힘을 내는지 알 수 없다.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색을 껍질 바깥으로 우러나오게 하고, 그 안쪽에 하얀 껍질, 그 안쪽에 다시 검은 씨가 촘촘히 박힌 붉은 속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 하나하나의 씨는 또다시 차례차례 자기 무게의 20만 배를 뚫고 나올 것이다. 이 수박 씨의 신비를 설명할 수 있다면, 나도 신의 신비를 설명해 주겠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생명 씨앗인 말씀의 가능성을 더욱 확고히 깨달았습니다. 말씀은 씨앗입니다. 수박 씨와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이 말씀의 씨앗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을 받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이 말씀을 받으면 마귀의 유혹을 이깁니다. 이 말씀을 받으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용기를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무리 말씀을 많이 부어 주셔도 마음이 닫혀 있으면 말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을 받기 원한다면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그릇은 열려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하늘에서 소낙비가 내린다 할지라도 그릇이 닫혀 있으면 빗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열린 마음이란 믿음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는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순종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받고 순종할 때 우리 삶은 변화됩니다.

/ 강준민

 

한 사람의 순종과 불순종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류가 죄에 오염된 것처럼,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순종으로 인류 구원을 이뤘습니다. 노아가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았기에 그 가족은 재앙의 날에 구원의 방주 안에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순종과 불순종은 결코 자기 자신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속한 가정과 공동체, 나라와 인류와 관계된 중대한 문제 입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면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삶을 살기를 열망하게 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순종하는 자의 뒷모습을 보여 주어, 다른 이들을 순종의 자리로 이끕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하나님 앞에 돌이키지 않고 불순종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사람들의 애곡 소리를, 그 영혼들을 보고 안타깝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탄식 소리를 듣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면서 그 곳에 들어가 첫째도, 둘째도 순종하는 백성이 되라고 거듭 당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를 기업으로 삼은 백성인 우리에게도 순종을 요구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순종을 통해 주위의 가족과 친구들이 아울러 구원받아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형식적인 신자 백 사람의 영향력보다는 진실한 신자 한 사람의 영향력이 탁월합니다. 한 사람의 순종, 그것이 관건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위해 여러분을 순종의 제물로 드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순종-거룩한 삶을 위한 능력, 교리묵상』/김남준

 

순종의 제사

 

“나는 능력보다 순종을 원한다.” 교회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고백이다. 당시 루터가 부패한 교회를 향해 개혁의 횃불을 든 용기는 성령께서 주신 능력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능력보다는 순종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고백했다. 능력은 순종에서 나온다. 어거스틴이 “주여, 많이 명령하시옵소서. 그리고 명령하신 것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 것도 하나님은 명령에 순종하는 자에게 그것을 감당할 능력 또한 주신다는 깨달음의 표현이다.

초대 안디옥교회의 주교 이그나티우스는 주후 107년 순교를 당했다. 처형이 임박하자 성도들은 그의 구명을 위해 총독에게 탄원했다. 그러나 이그나티우스는 “나는 차라리 맹수의 이빨에 갈려서 하나님의 성결한 떡이 되기를 원한다”면서 성도들을 만류하고, 기꺼이 순종함으로써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고 한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 15:22) 무신론적 어둠의 세력들이 국가와 교회를 파괴하려 도전하는 이때에 우리 모두 순종의 제사를 드리자.

/김성영 목사(전 성결대 총장)

 

순종

 

중세 유럽의 수도원에서 제자를 삼기 위한 시험을 했습니다. 첫 번째 관문은 배추 심기 였습니다. 그런데 수도원장이 배추 뿌리를 하늘을 향해 심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제자가 되고 싶어 찾아온 두 청년이 밭으로 갔습니다. 한 청년은 수도원장의 말씀대로 배추 뿌리가 하늘을 향하도록 심었고 한 청년은 수도원장의 말씀과 반대로 배추 뿌리가 땅을 향하도록 심었습니다. 수도원장은 배추를 심어 놓은 모습을 살펴보고는 두 번째 청년을 불러 말했습니다.

"청년처럼 똑똑한 사람은 혼자서 사십시오. 당신은 선생으로서의 자격은 있을지 모르지만, 제자로서의 자격은 없습니다."

순종은 제자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입니다.

*용혜원 지음, 지하철 사랑의 편지

 

순종은 생명이다

 

내가 처음 집례한 장례식은 어린 꼬마의 장례식이었다. 우리 교회 한 부부의 첫아이였고, 조부모에게는 첫 손주였다. 어느 날 그 집에 심방을 가서 보니 그 아이는 부모의 말을 대놓고 무시했다. 오라고 하면 갔고, 앉으라고 하면 일어섰다. 부모는 그런 행동을 나무라기보다는 그저 귀여워했다. 하루는 그 집 앞마당 문이 열려 있었다. 딸아이가 마당을 빠져나가 길 쪽으로 가는 것이 부모 눈에 띄었다. 저쪽에서 차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딸아이는 주차해 둔 두 대의 차 사이로 빠져나가 도로 쪽으로 달려갔다. “안돼! 돌아와!” 부모가 다급한 목소리로 어린 딸에게 외쳤다. 아이는 잠깐 서서 부모를 보고 씩 웃더니 다시 돌아서서는 달려오는 차 쪽으로 곧장 뛰어들었다. 차는 아이를 세차게 들이받았다. 아이의 죽음 앞에서 터져 나오는 부모의 통곡은 그야말로 단장(斷腸)의 비애였다. 그것은 한 아이가 부모 말에 순종하도록 훈련되어 있지 않아서 일어난 비극이었다. 나는 그 사건을 통해 큰 교훈을 얻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분의 음성이 들릴 때 반드시 즉각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음성을 알아듣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 바로 생명이다!

- 「하나님 음성에 응답하는 삶」/ 헨리 & 리처드 블랙커비

 

▣ 헌신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성령님이 그것을 이해하도록 도우셨다고 하더라고 순종하지 아니하면 여전히 안일한 신앙 속에 남아 있게 된다. 성경에 대한 이해가 우리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죽은 교리에 얼마든지 빠져들 수 있다. 우리가 단지 말씀을 이해했다는 사실 하나에 만족하고 안심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는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곧 말씀을 망각하는 듣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약 1:22∼25). 아마 순종은 현대에서 가장 인기 없는 단어일 것이다. 우리의 사고로부터 순종이라는 개념을 제거하면 우리는 골자가 빠져버린 종교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복음주의자들의 설교에 있어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그들에게 진실한 믿음이란 기꺼이 우리의 죄된 행동들을 버리고 자신을 그리스도의 주권에 굴복시키는 것임을 일러주는 데는 실패했다. 본 훼퍼는 믿음과 순종은 떨어질 수 없는 하나로 보았다. "믿는 자들만이 순종할 것이며 순종하는 자들만이 믿게 될 것이다." 불순종하는 자들은 참으로 믿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희망을 안겨준다. 우리 믿음이 요동하고 곤란한 지경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 순종하는 것! 순종과 믿음이 함께 가면 우리 행동은 점점 성경의 가르침대로 되어 갈 것이며 우리 믿음은 날로 활력을 찾을 것이다.

/균형잡힌 그리스도인 / 게리 콜린스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라

 

본문: 요한복음 13:34~35

 

하늘나라에 󰡐미하엘󰡑이란 천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한 여인의 영혼을 데려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땅에 내려온 천사는 그 여인의 집에 가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여인은 하루 전에 쌍둥이 딸을 낳았는데 너무나 탈진한 상태여서 갓난아기에게 젖도 먹이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자기 영혼을 데리러 온 미하엘을 본 여인은 애원합니다.󰡒천사님,제 남편은 며칠 전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사고로 죽고 우리에게는 일가친척 한 사람도 없는데 제가 죽으면 이 핏덩이들을 누가 돌보겠습니까?󰡓

천사는 그 말에 되돌아갔습니다.󰡒하나님 저는 그 딱한 어머니의 영혼을 도저히 불러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라, 가서 그 여인의 영혼을 불러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천사는 다시 내려와 그 여인의 영혼을 가지고 올라갔지만 그 일로 해서 금빛 두 날개를 잃고 지상으로 추방당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세 가지 과제를 풀어야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째, 인간의 가슴속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 가였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 밤 미하엘은 추위와 배고픔으로 얼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그는 도저히 남을 도울 처지가 못된다고 생각되는 가난한 구두방 주인 내외의 뜨거운 사랑을 받게 됩니다. 투박한 식탁에서 따끈한 식사를 대접받으면서 미하엘은 최초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습니다. 가난한 구두방 내외의 가슴속에 깃든 사랑의 실체를 본 것입니다.

둘째, 인간에게 주어져 있지 않는 것은 과연 무엇일 까였습니다. 미하엘은 추운 겨울밤의 인연으로 구두방에서 기술을 배우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건장한 사나이의 신발 주문을 받게 됩니다. 그 사나이는 거만을 떨며 일년간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주문했습니다. 그 때 미하엘은 사나이의 등뒤에 서있는 죽음의 사자를 발견하고 빙긋 웃었습니다. 과연 인간에겐 자기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가 없구나. 그는 이렇게 제2의 과제를 풀고서 일년만에 다시 웃었던 것입니다. 과연 그의 미소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방금 나간 그 사나이의 마차가 뒤집혀 죽었다는 전갈을 받게 됩니다.

셋째,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 가입니다. 미하엘이 세상에 내려온지 어언 6년이란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중년 부인이 귀엽게 생긴 쌍둥이 소녀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무척 행복해 보였습니다. 미하엘은 그 소녀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이 아이들은 6년 전 어머니를 여읜 핏덩이들이 아닌가󰡓

미하엘은 아주머니의 자초지종을 듣고는 실로 5년만에 하늘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어머니가 죽었으니 갓난아기들도 애처롭게 죽어갔으리라 생각했는데, 이웃아주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저렇게 해맑게 자라다니….미하엘은 자신의 염려나 인간의 걱정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이 마지막 숙제를 깨닫는 순간 그의 등뒤에 후광이 서리고 황금빛 날개가 다시 돋더니 홀연히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러시아 민화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네 번째로 하나님의 사명자로서 너무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늘의 천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서는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신자에게 가장 큰 죄는 불순종입니다.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것입니다(야고보서 4:17).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지나친 인간적 배려가 미하엘처럼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그르칠 수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빛의 사자

 

자동 속도 조정식 순종

 

대부분의 성도는 자동 속도 조정식 순종을 합니다. 오늘날 많은 차에 지정속도를 자동으로 유지해 주는 편리한 기능이 있습니다. 원하는 속도로 가속하고 자동 속도 조정 버튼을 누르면, 그 속도가 유지됩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수준에 이를 때까지 순종의 가속 페달을 밟는데, 그 수준은 다른 성도들의 행동 표준에 의해 결정됩니다. 자신의 영적 수준이 뒤처지기를 원하지 않지만, 앞서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적당한 순종의 수준에 도달하면 마음속에서 자동 속도 조정 버튼을 누르고 긴장을 풉니다. 그러면 말씀이란 계기판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마음과 성품과 뜻을 다해 주님께 순종하느라 애쓸 때의 피곤을 겪지 않아도 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경주차 운전자들은 오직 운전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발은 언제나 가속 페달 위에 놓여 있고, 차의 성능이 허락하는 한 최고 속도로 달리고자 합니다. 눈은 언제나 트랙에 가 있으며, 트랙을 돌 때는 모든 기술을 총동원합니다. 이런 식으로 사랑하는 것이 바로 마음과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마음과 성품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마음과 성품과 뜻을 다해 그분께 순종하고자 하는 열망이 잇어야 합니다. 가진 모든 것을 총동원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날마다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라]/제리 브릿지즈

 

▣ 무책임한 남편


많은 아내들이 남편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으면 남편은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평소 남편이 제시한 방법에는 따르지 않으면서 아내가 불평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들 부부 사이에는 갈등이 끊이질 않습니다. 한마디로 남편의 우유부단한 성품과 아내의 지배적인 욕구가 서로 부딪치기 때문이지요. 이 같은 부부들의 경우 남편이 먼저 가정의 영적 지도자로서 아내를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가정의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회복해야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남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범을 보이면서 남편 자신의 고민과 갈등을 부드럽게 아내에게 이야기 하는 겁니다. 남편의 결정에 대한 아내의 무시하는 태도가 자신에게 어떤 좌절감을 안겨주었는지를 솔직하게 말해야겠지요. 그러면서 아내의 의견과 불만의 이유도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겁니다. 그리고 남편이 조금씩 가정의 일들을 주관하기 시작하십시오. 이것은 쉽지도 않고 하루아침에 바뀌지도 않는 어려운 일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가정을 회복하려는 선한 노력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열매로 보상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골3: 18)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벧전3:1)

 

명령에 따르라

 

본문 : 요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에디슨이 하루는 소리를 녹음하고 재생하는 기계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많은 연구 끝에 드디어 설계가 완성되었고 에디슨은 곧 기술자를 불러 설계도를 보여주고 이대로 기계를 만들어 달라고 얘기했습니다.

“이것은 축음기라는 기계라네. 빨리 다음 연구를 진행해야 되니 되도록 신속하게 만들어주게.”

“글쎄요. 이대로 기계를 만들어봤자 소용없을 거 같은데요?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에디슨은 설계도를 기술자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습니다.

“여기 설계도에 나온 대로만 기계를 만들어주면 되네. 이것이 작동을 하나 안 하나는 내가 알아서 할 일이라네.”

기술자의 역할은 에디슨의 설계도를 따라 기계를 만드는 것이지 그것의 가능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자는 에디슨의 고용주이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의 역할은 그것을 평가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언제나 순종함으로 응답하십시오.

* 기도: 주님! 명령에 언제나 순종하게 하소서!

* 묵상: 믿음에 대해 아는 만큼 순종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가라면 간다

 

루실 티즈데이(Lucille Teasdale)은 13세 때 의료 선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몬트리올 의대생 시절 미스 의과대학으로 뽑힌 미인으로 의술과 미모가 곧 돈인 시대에 루실의 앞날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에 여의사로서 자리를 잡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유일한 여성 외과의였지만 병원에 취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은 평생 외과의라는 신념으로 프랑스로 가서 본격적인 의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피에르 코르티가 그녀를 찾아와 우간다에 병원을 세우려는 자신의 계획에 동참하기를 청했습니다. 두 달 동안의 우간다 의료 선교는 두 사람을 평생의 동역자요 부부의 길로 이어 줍니다. 루실은 어려서부터 의료선교의 비전을 가졌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취직하기가 어려웠고, 혼자서 선교하는 것은 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꿈을 버리지 않고 준비했더니 하나님은 최고의 동역자를 허락하시고, 비전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1960~1980년 우간다에서는 끊임없는 내전과 독재정치 속에서 15만 명 이상이 에이즈에 감염되었습니다. 수많은 수술로 사람을 살린 그녀도 환자를 치료하던 중에 에이즈에 감염되고 말았습니다. 에이즈에 감염되어 마지막 생을 달릴 때 비로소 세계는 루실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에이즈라는 죽음의 병을 통해 보지 못했던 많은 것을 보고 큰 사랑을 받은 루실은, 1996년에 생을 마쳤습니다. "우리는 꿈을 꾸고 실현시키며, 사랑할 수 있답니다. 산다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돼요. 심지어 에이즈와도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절대 순종」/ 김양재

 

왕을 섬기기에 합당한 자

 

유럽의 왕들이 타는 말을 선발하는 과정을 TV에서 보았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월등한 말들을 모아 몇십 마리로 추리고 훈련을 시킵니다. 마지막 훈련은 어떤 상황에서도 조련사들이 휘슬(whistle)을 불면 그 자리에 멈춰서도록 하는 것입니다. 조련사들은 이렇게 훈련한 말들을 3일 동안 사막으로 보냅니다. 말들이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놔두었다가 다시 불러 물 있는 곳에 놓아줍니다. 말들은 정신없이 물가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조련사들은 말들이 물을 마시기 바로 직전에 야속하게도 휘슬을 붑니다. 말들은 평소 휘슬 소리에 모든 행동을 멈추도록 훈련받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훈련받은 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몇 마리는 제자리에 멈춰 섭니다. 그러면 조련사들은 그 말에게 낙인을 찍습니다. "왕을 섬기기에 합당한 말!"

말들도 훈련을 통해 이렇게 될 수 있는데, 하물며 만왕의 왕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 말들보다 못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세상에는 우리는 부르는 달콤한 우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분의 휘슬소리,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예배의 우선순위가 확실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과 방법을 택해 순종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마음의 할례」/ 김승욱

 

순종할 때 복(福)

 

경기도 도농의 큰 회사 앞 길가에서 시계 수리를 하던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p가 그 사람에게 가서 시계를 고치면서 “당신도 예수를 믿으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청년은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가 처음 교회에 나왔을 때 저는 복받는 비결은 ‘주일 성수와 십일조 생활’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는 이 말씀에 큰 충격을 받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자신의 집안 사람들은 모두 폐병으로 죽었고 현재 어머니도 폐병으로 누워 계시며 온 집안이 자기가 길가에서 시계를 수선한 수입으로 먹고 산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주일에 예배당에는 나올 수 있지만 십일조 생활은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먹고 살 수조차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당신이 십일조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물질을 쌓을 곳이 없도록 주실 것이고 사장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저와 약소하고 매월 십일조를 드렸고 3년 뒤에 그 지역 전자제품 대리점 사장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말씀에 순종했기에 순종의 열매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우리 앞에 오늘 주님이 오셔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죄악의 신을 벗고 주님께 절대 순종하면서 앞으로 갈 때에 주님께서 놀라운 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 기도: 만복의 근원되신 하나님, 세상의 부요함보다 주님을 더욱 좇아 살기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먼저 듣고 즉각 순종함으로 확신과 평안을 누리며 진정한 복을 가족과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빛의 사자

 

예수 따라가며 (찬송가 449장, <통> 377장)

 

(1)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안위해 주시리라

(2) 해를 당하거나 우리 고생할 때 주가 위로해 주시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안위해 주시리라

(3) 남의 짐을 지고 슬픔 위로하면 주가 상급을 주시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항상 복내려 주시리라

(4) 우리 받은 것을 주께 다 드리면 우리 기쁨이 넘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은혜 풍성케 하시리라

(5) 주를 힘입어서 말씀 잘 배우고 주를 모시고 살아가세

주를 의지하며 항상 순종하면 주가 사랑해 주시리라

<후렴>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 순종, 복종에 관한 성경말씀

 

0 (사무엘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0 (잠언 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0 (예레미야 26:5)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0 (요한복음 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0 (로마서 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0 (로마서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0 (로마서 11:30)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0 (고린도전서 16:16)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0 (에베소서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0 (골로새서 3: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0 (골로새서 3: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0 (히브리서 5: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0 (히브리서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0 (베드로전서 2: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0 (베드로전서 3: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 순종에 관한 금언

 

0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믿음의 기초를 놓는 것이다.(플로이드 맥클랑 )

0 항상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데 열려 있지 않은 사람이다.(하인리히 아놀드)

0 악인들은 두려워서 순종하고 선인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한다.(아리스토텔레스)

0 다스릴 줄 모르는 자는 순종하는 것이 상책이다.(윌리엄 세익스피어)

0 나는 시간마다 순종의 교리를 배운다.(윌리엄 세익스피어)

0 하나님은 은혜의 사슬로 당신의 자녀들을 묶어 놓으시고 조정하신다. 우리가 그의 뜻에 순종하면 모든 것이 순조로우나 거역하고 나의 고집대로 하려고 하면 결국 고통을 당하고 돌아올 뿐이다.

0 가정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가 순종하는 후손을 본다.

0 순종은 성공의 어머니요, 그 순종은 안전과 짝지워졌다.(아이스킬로스)

0 마음에 없는 순종은 아무리 육신의 순종적 행동을 하였다해도 진정으로 순종한 것이 아니다.(사디)

* 주의: 본 자료를 무단 수집, 제작 배포 출판하면 저작권법에 저촉(위배)됩니다.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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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와 절망감 댓글[0]
소망, 희망 (2012-02-19 오전 11:25:51) http://blog.somang.net/holylove/7201

스트레스와 절망감

 

펜실베니아 대학의 한 심리학 교수가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용 쥐 300마리에게 암세포를 주입한 후 그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인 100마리 쥐에게는 그들이 있는 자리에 전기충격을 준 후, 쥐들이 깜짝 놀라서 도망가면 도망간 곳에서도 전기충격을 주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의 100마리 쥐에게도 전기충격 후 쥐들이 도망을 가면, 그곳에서는 전기충격을 주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그룹의 쥐들에게는 아무런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방치해 놨습니다. 어느 그룹의 쥐에서 암발병률이 가장 높았을까요?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전기충격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또 피하려고 다른 방으로 갔을 때에도 전기충격을 받은 첫 번째 그룹에서 암 발병률리 75%로 가장 높았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피할 곳이 있었던 두 번째 그룹에서는 31%, 마지막으로 아무런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던 그룹에서는 50%의 발병률을 보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쥐의 세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요? 사람들의 세계는 안 그럴까요?

실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트레스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위기상황을 극복해 나가려는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반응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적응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생기게 합니다. 문제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는 절망감입니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고 느낀 쥐들은 저항 능력이 매우 축소되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암세포는 정상세포와는 다르게 반응합니다. 일반적으로 정상세포는 옆의 세포와 대화를 나눕니다. 다시 말하면 정보를 교환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필요에 따라 도와주다가 자기 역할이 끝나면 조용히 사라집니다. 그러나 암세포는 다릅니다. 옆의 세포와 대화를 나누거나 정보를 공유하지 않습니다. 혼자 영양분을 독점합니다. 그리고 무한대의 분열과 증식과정을 통해 다른 세포들을 잡아먹게 되어 있습니다. 이 암세포를 이기는 것은 우리 몸 안에 있는 면역세포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면역세포는 어떤 때 가장 활발하게 운동할까요? 그것은 마음에 평안이 있을 때, 마음에 도전의식이 있을 때, 용기가 있을 때입니다. 아! 절망이다 나는 이제 끝이다. 나는 암에 걸려서 더 이상은 살 가망이 없다‘고 스스로 자기를 차단하면 면역체계는 취약해집니다. 그러나 ’난 가능성이 있어, 암세포가 나를 어쩌지 못할 거야, 난 도전할거야. 내가 절제해 볼 거야. 내가 내 몸을 귀히 여길거야 하며 스트레스 상황에서 용기를 내면, 면역세포가 강해지고 암세포를 이길 수가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김지철 목사(소망교회) 설교중에서

 

성경: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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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댓글[0]
소망, 희망 (2012-02-15 오후 5:48:45) http://blog.somang.net/holylove/7182

멈출 수 없는 희망

 

아프리카 케냐의 나이로비 외곽에 쓰레기 더미를 뒤져 생활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고로고초라는 마을이 있다. 그 마을에 에스더라는 15세 소녀가 살고 있다.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소녀의 집은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방 한 칸으로 되어 있다. 바람을 막기 위해 문을 빼고 모든 벽을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소녀의 아버지는 교도소에 있고, 소녀는 어머니, 동생과 셋이서 살고 있다. 그런데 소녀의 얼굴은 밝고, 행동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소녀는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 외과의사가 되어 마을 사람들을 도우려는 꿈을 꾸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소녀에게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것도 소녀의 마음에서 자라나는 희망을 멈추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연히 지라니 합창단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얻게 된 한국 후원자의 사랑은 소녀를 절망의 상황 가운데서 희망을 노래하게 하고, 희망을 가꾸게 했다. 사랑을 먹는 소녀의 희망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김상현 목사(인천 부광교회)

 

희망

 

유난히도 추운 겨울입니다. 아무리 깊고 혹독한 추위라 해도 지금쯤은 어디에선가는 조용히 봄이 오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 해도 어디에선가는 빛은 다가옵니다. 봄도 새벽도 홀연히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진 않습니다. 오직 봄이 오고 있다고 믿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찾아옵니다. 희망은 처음에는 작은 씨앗이지만 기다리고 준비하는 자의 마음 안에서 스스로 자라 큰 나무가 됩니다. ‘한 겨울에도 움트는 봄이 있는가 하면 밤의 장막 뒤에도 미소 짓는 새벽이 있다.’ 칼릴 지브란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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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는 소망이 없다 댓글[0]
소망, 희망 (2012-02-14 오후 9:34:23) http://blog.somang.net/holylove/7167

무덤에는 소망이 없다 

성경: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나는도다(시62:5)

 

이집트 왕 쿠프는 길이가 230m나 되는 피라미드를 쌓았다. 10만 명의 노예가 30년 동안 7Km나 떨어진 곳에서 2.5t짜리 돌을 날라와서 쌓았다고 하니, 이 무덤을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돌에 깔려 희생되었겠는가?

사람이 무덤을 보고 갖는 생각은 그의 종교와 사상을 나타낸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욥기3:13)라고 말한 욥처럼 절망을 안고 있는 자는 무덤에서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누릴 것을 기대하며, 인생에서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은 이집트 왕처럼 자기 이름과 무덤을 보존하려한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조상신 숭배 사상에 젖어 있는 사람에게는 무덤이 자손을 축복하는 조상신의 전각이다. 그러나 예수 믿는 자에게 무덤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유해를 안치하는 공간이다. 무덤에는 소망도 평안도 없다. 무덤은 복과 화를 빌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우리의 진정한 안식처는 하늘나라이며,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이 복과 화를 주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 11:25-26)

/옥한흠 목사

 

* 묵상 성경 말씀 

0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시78:7)

0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5)

0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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