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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믿음이 소중합니다. 댓글[0]
믿음, 신앙, 의심 (2014-01-11 오전 10:08:08) http://blog.somang.net/holylove/8051
돈보다 믿음이 소중합니다.
 
 
본문: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돈이 무엇보다도 귀중하게 여겨지는 시대입니다. 교회에서도 돈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교회의 크고 작은 활동들에 돈이 개입되지 않는 경우가 없습니다. 교육도, 전도도, 봉사도, 구제도 거의 대부분 돈이 없이는 할 수 없어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도 돈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헌금이 많이 나오며 돈을 많이 쓸 수 있는 교회일수록 성장하는 교회, 부흥하는 교회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런 모습은 신자 개개인의 신앙생활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주님을 향한 헌신을 일종의 투자로 여기는 교인들마저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헌금을 복의 기준으로 삼아 헌금을 많이 하면 물질의 축복이 클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받을 축복도 돈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돈이 개인과 가정과 교회에서 많은 위력을 발휘하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과 인생살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돈이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돈이 우상이 되고 맙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풍요를 위해 바알 우상을 섬긴 것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우상숭배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신 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이 ‘우상숭배하지 말라’인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돈이 우상이 되면 안됩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골3:5)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성령을 돈으로 사려고 했던 마술사 시몬의 어리석음이, 은혜라는 이름 아래 우리에게도 반복되지는 않습니까? 우상숭배를 하는 큰 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반드시 우리 자신과 가정, 교회의 안팎을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돈과 함께 우리도 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는 만족함이 없습니다. 돈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으며, 우리는 태어날 때 벌거벗고 왔고, 저 세상 갈 때도 아무 것도 없이 빈손으로 갑니다. (전5:10- 15)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23:4,5)
 
 
종교 개혁자 칼빈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교회에서 돈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해서 바르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에 있다.” 존 웨슬리도 비슷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의 회개를 믿을 수 없다.” 복음을 듣고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사람이 되었다면 제일 먼저 변화가 있어야 할 삶의 영역 중의 하나가 ‘돈의 사용처’ 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생활은 우리의 가치관이 민감하게 반영되는 영역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생겼고, 하나님 앞에 정말 감사하게 나 자신을 드리고 싶다고 할 때 그의 헌금 생활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헌금’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어느 정도로 헌신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헌금 행위야말로 우리의 헌신 행위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돈의 씀씀이를 알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돈 쓰임새야말로 우리의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을 대변해주는 삶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참된 헌금은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대한 응답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각하는 의식의 결정체가 우리의 헌신이어야 하고 또, 우리의 헌금이어야 합니다.(잠3:9)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헌금은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마가복음 10장 21- 22절과 누가복음 18장 22- 23절에 보면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할 때 예수님께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 하자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고 돌아간 말씀이 나옵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 보다 돈을 더 사랑하였기에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 세상에는 돈(물질)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시간, 건강, 명예(잠22:1), 부모형제, 자유, 국가, 지혜(잠3:15, 잠16:16) 등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생명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
 
이처럼 생명이 소중하지만, 이 생명을 바쳐서라도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신앙)입니다. 많은 순교자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버렸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이 믿음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롬10:17)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대표적인 인물로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을 들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믿음이 산믿음이라고 했습니다.(약2:21- 25)
기생 라합은 여행객 손님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애굽과 광야에서 행하신 일들의 소문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겼고, 믿음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수2:8-24)
우리가 교회를 왜 나갑니까? 사람들과 교제하려 나갑니까?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거해야 성령님이 역사 하십니다. 믿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목사들 중에는 거짓목사, 삯꾼 목사들이 있습니다. 돈을 밝히는 지도자들입니다. 부자교인들의 헌물로 배불리운 자입니다. (갤34:2-5, 슥11:16) 또한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하거나 말씀 한 두 구절을 가르치면서 온갖 세상 이야기하다가 설교를 마치는 엉터리 목사들이 있습니다. 지도자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물질에 깨끗하고 믿음이 좋은 지도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는 담임목사보다 더 큰 믿음을 갖기 어렵습니다. 담임목사의 외모나 학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바르고 굳건한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돌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잠27:23) 삯꾼은 목자가 아닙니다. 이리가 오면 달아납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요10:1- 17)
돈을 사랑하는 목사는 삯꾼 목사입니다. 그들을 멀리 하십시오.
 
성경은 말씀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6:17-18)
 
 
하나님은 돈과 물질에 깨끗하고, 정직하고, 믿음이 굳건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돈에 욕심 부리지 않고, 정직하고 신의가 있는 사람을 칭찬합니다.
 
성도여러분,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보다 값진 재산은 주님께서 내게 주신 믿음과 부활의 삶임을 깨달으시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돈을 유산으로 주기보다는 믿음을 유산으로 남기시는 지혜로운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사랑하는 주님! 물질만능주의 시대에서 돈과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지나친 물질 중심의 가치관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이 교회와 신앙인의 삶 속에서 우상으로 둔갑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를 늘 깨어있게 하소서. 주님보다 물질에 더욱 큰 가치를 두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고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주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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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믿음이 소중합니다. 댓글[0]
믿음, 신앙, 의심 (2014-01-11 오전 10:08:08) http://blog.somang.net/holylove/8050
돈보다 믿음이 소중합니다.
 
 
본문: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돈이 무엇보다도 귀중하게 여겨지는 시대입니다. 교회에서도 돈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교회의 크고 작은 활동들에 돈이 개입되지 않는 경우가 없습니다. 교육도, 전도도, 봉사도, 구제도 거의 대부분 돈이 없이는 할 수 없어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도 돈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헌금이 많이 나오며 돈을 많이 쓸 수 있는 교회일수록 성장하는 교회, 부흥하는 교회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런 모습은 신자 개개인의 신앙생활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주님을 향한 헌신을 일종의 투자로 여기는 교인들마저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헌금을 복의 기준으로 삼아 헌금을 많이 하면 물질의 축복이 클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받을 축복도 돈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돈이 개인과 가정과 교회에서 많은 위력을 발휘하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과 인생살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돈이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돈이 우상이 되고 맙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풍요를 위해 바알 우상을 섬긴 것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우상숭배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신 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이 ‘우상숭배하지 말라’인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돈이 우상이 되면 안됩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골3:5)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성령을 돈으로 사려고 했던 마술사 시몬의 어리석음이, 은혜라는 이름 아래 우리에게도 반복되지는 않습니까? 우상숭배를 하는 큰 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반드시 우리 자신과 가정, 교회의 안팎을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돈과 함께 우리도 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는 만족함이 없습니다. 돈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으며, 우리는 태어날 때 벌거벗고 왔고, 저 세상 갈 때도 아무 것도 없이 빈손으로 갑니다. (전5:10- 15)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23:4,5)
 
 
종교 개혁자 칼빈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교회에서 돈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해서 바르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에 있다.” 존 웨슬리도 비슷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의 회개를 믿을 수 없다.” 복음을 듣고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사람이 되었다면 제일 먼저 변화가 있어야 할 삶의 영역 중의 하나가 ‘돈의 사용처’ 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생활은 우리의 가치관이 민감하게 반영되는 영역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생겼고, 하나님 앞에 정말 감사하게 나 자신을 드리고 싶다고 할 때 그의 헌금 생활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헌금’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어느 정도로 헌신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헌금 행위야말로 우리의 헌신 행위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돈의 씀씀이를 알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돈 쓰임새야말로 우리의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을 대변해주는 삶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참된 헌금은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대한 응답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각하는 의식의 결정체가 우리의 헌신이어야 하고 또, 우리의 헌금이어야 합니다.(잠3:9)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헌금은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마가복음 10장 21- 22절과 누가복음 18장 22- 23절에 보면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할 때 예수님께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 하자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고 돌아간 말씀이 나옵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 보다 돈을 더 사랑하였기에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 세상에는 돈(물질)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시간, 건강, 명예(잠22:1), 부모형제, 자유, 국가, 지혜(잠3:15, 잠16:16) 등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생명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
 
이처럼 생명이 소중하지만, 이 생명을 바쳐서라도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신앙)입니다. 많은 순교자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버렸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이 믿음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롬10:17)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대표적인 인물로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을 들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믿음이 산믿음이라고 했습니다.(약2:21- 25)
기생 라합은 여행객 손님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애굽과 광야에서 행하신 일들의 소문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겼고, 믿음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수2:8-24)
우리가 교회를 왜 나갑니까? 사람들과 교제하려 나갑니까?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거해야 성령님이 역사 하십니다. 믿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목사들 중에는 거짓목사, 삯꾼 목사들이 있습니다. 돈을 밝히는 지도자들입니다. 부자교인들의 헌물로 배불리운 자입니다. (갤34:2-5, 슥11:16) 또한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하거나 말씀 한 두 구절을 가르치면서 온갖 세상 이야기하다가 설교를 마치는 엉터리 목사들이 있습니다. 지도자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물질에 깨끗하고 믿음이 좋은 지도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는 담임목사보다 더 큰 믿음을 갖기 어렵습니다. 담임목사의 외모나 학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바르고 굳건한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돌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잠27:23) 삯꾼은 목자가 아닙니다. 이리가 오면 달아납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요10:1- 17)
돈을 사랑하는 목사는 삯꾼 목사입니다. 그들을 멀리 하십시오.
 
성경은 말씀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6:17-18)
 
 
하나님은 돈과 물질에 깨끗하고, 정직하고, 믿음이 굳건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돈에 욕심 부리지 않고, 정직하고 신의가 있는 사람을 칭찬합니다.
 
성도여러분,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보다 값진 재산은 주님께서 내게 주신 믿음과 부활의 삶임을 깨달으시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돈을 유산으로 주기보다는 믿음을 유산으로 남기시는 지혜로운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사랑하는 주님! 물질만능주의 시대에서 돈과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지나친 물질 중심의 가치관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이 교회와 신앙인의 삶 속에서 우상으로 둔갑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를 늘 깨어있게 하소서. 주님보다 물질에 더욱 큰 가치를 두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고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주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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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믿음 댓글[0]
믿음, 신앙, 의심 (2012-03-22 오후 7:56:53) http://blog.somang.net/holylove/7298
대담한 믿음
 
다섯 살배기 아들과 해변에서 파도 뛰어넘기 놀이를 했다. 얕은 물가보다 깊은 곳에서 놀아야 재미있지만, 아들은 무서워하며 깊은 곳으로 가려하지 않았다. 내가 한참 설득한 끝에야 비로소 아들은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깊은 곳으로 가는 내내 나는 아들의 등 뒤에 서 있었다. 어느덧 물이 아들의 가슴까지 차는 곳에 이르렀다. 막상 저 앞에 파도가 덮쳐 오자 아들은 다시 겁먹고 얕은 곳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내가 재미있을 거라고 하자,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한 번만이야." 마침내 파도가 눈앞까지 다가왔다. 파도가 아들을 덮치기 직전, 나는 재빨리 녀석을 들어 올렸다. 바닷물이 귀에 들어가지 않을 만큼 아들을 높이 올렸다. 갑자기 아들이 정신없이 웃어 댔다. "나는 파도를 뛰어넘는 자다! 아빠, 다음 파도도 뛰어넘어요!" 그런데 당연한 말이지만, 아들 녀석이 스스로 파도를 넘은 것이 아니다. 파도를 넘게 만든 사람은 바로 나였다. 따라서 아들은 "나는 아빠의 손을 잡고 있는 자다!"라고 외쳐야 옳았다. 녀석은 그저 손을 높이 뻗은 채로 아빠가 파도 위로 자신을 올려 주리라 믿었을 뿐이다. 이것이 대담한 믿음의 핵심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믿음과 만날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깊은 곳까지 나아가는 믿음뿐이다.
/스티븐 퍼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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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믿음의 가치 댓글[0]
믿음, 신앙, 의심 (2012-03-01 오후 3:55:45) http://blog.somang.net/holylove/7252

영원한 믿음의 가치

 

본문 :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33인의 예수 이야기’란 책에는 어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당당히 신앙을 고백하는 33명의 크리스천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탤런트 이유리 씨는 사춘기 때에 성공만 바라보고 달려온 인생에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심각한 두려움을 느꼈던 이 유리 씨는 우연히 다른 친구가 꺼낸 교회 얘기에 무작정 자기도 교회에 가겠다며 따라갔습니다. 처음 드려본 예배에 눈물이 쏟아졌고 그렇게 하나님과의 첫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 오빠였던 전도사님과 결혼까지 한 이 유리씨는 지금도 하나님과의 사랑을 키워가며 신앙을 가꿔가고 있습니다.

탤런트 한혜진 씨는 극심한 가난 속에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없어서 힘들었던 기억 말고는 추억이랄 것이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심정으로 교회에 나가며 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고, 점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수록 길이 열려가는 기적을 삶 속에서 체험하며 믿음이 굳건해졌습니다. 지금도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4장의 성경은 꼭 읽고, 새벽기도를 챙기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차인표 씨와 신애라 씨 부부도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제대로 구원의 확신을 가진 것은 결혼 생활을 통해서라고 합니다. 행복한 결혼과 수많은 선행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본을 보이는 부부는 교회의 익숙함과 편리성에 빠져서 진정한 신앙의 감동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가치도 영원한 믿음보다 귀할 수는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 기도: 주님! 영원한 믿음의 가치를 목표로 값진 인생을 살게 하소서!

* 묵상: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필요한 사역을 감당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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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 댓글[0]
믿음, 신앙, 의심 (2012-02-27 오후 4:47:45) http://blog.somang.net/holylove/7229

무신론

 

▣ 무신론자의 어리석음

 

어리석은 자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일인가? 태엽을 감아줄 에너지가 없는데 시계가 움직이고 있다. 태엽이 끊긴 시계를 수선할 사람이 없다. 시계 방이 없는데 시계가 있다. 기관차가 없는데 기차와 시간표가 있다. 심지를 태울 기름부을 사람이 없는데 등불이 켜져 있다. 정원사가 없는데 뜰이 있다.

꽃을 만드는 사람이 없는데 꽃이 있다. 조건을 세울 사람이 없는데 조건이 있다. 도대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늘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은, 어리석은 무신론을 웃으실 것임에 틀림없다

 

▣ 무신론자의 자리는 없었다

 

폭격기 한 대가 원인 모를 화재 때문에 파손되어 추락할 위기에 놓여지게 되자, 승무원들은 낙하산으로 탈출하였다. 그들은 바다에 떨어져 고무 보트에서 약간의 음식과 물만을 지닌 채 구조를 기다렸다. 표류 엿새째가 되자 식수가 떨어졌고, 승무원들 중 한 사람이 절망감에 휩싸여 이렇게 말했다. "자, 우리 기도합시다."

일곱째 날에 그들은 말레이시아의 한 섬에 안전하게 도착하였다. 후에 표류자들 중 한 사람이 기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제 생각으로는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나는 기독교인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지금은 내가 분명히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지난 표류기간 동안의 체험은 제게 아주 소중한 것을 얻게 해주었는데 그것은 태평양 한 가운데의 고무 보트에는 무신론자가 있을 만한 자리가 없다는 것이죠!"

 

의미 없는 생각

 

본문 : 행 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프랑스의 한 유명한 천문학자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 학기의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학생들에게 하나님을 믿지 말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전 이미 천체망원경으로 넓은 우주를 샅샅이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엔 하나님이 없었고 천국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주 어디에도 있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이 강의를 듣고 빨리 깨달아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그 말을 들은 학생 중 하나가 용감히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교수님. 그것은 좀 이상합니다. 저에겐 바이올린이 하나 있는데 그것을 아무리 뒤져보고 분해를 해보아도 소리가 안에 들어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이올린이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바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바람이 움직이는 물체를 보고 그 존재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문학자는 학생의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시인하고 사과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체험입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많은 것들을 우리가 전부다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하나님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체험함으로 그 존재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 기도: 주님! 아는 것보다 믿음이 우선하게 하소서!

* 묵상: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지 말고 체험으로 느끼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가장 좋은 논쟁

 

몇 해 전 영국 런던에서 구제 사역을 하는 선교회 회장이 유명한 무신론자의 논쟁 도전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은 각자 자기 입장을 지지하는 후원자를 100명씩 데리고 오도록 했습니다. 그 회장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삶이 확실하게 변한 100명의 사람을 데려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회장은 상대방에게도 불신앙이 주는 유익을 발표할 수 있는 100명의 증인을 데려와서 반격하라고 도전했습니다. 약속한 날짜에 선교회 회장은 100명의 증인과 함께 토론장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무신론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유익에 대해 말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지만 무신론의 유익에 대해 자신 있게 증언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무신론이 오히려 기적 같은 일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을 부인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무서운 교만입니다.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 무신론자의 강연

 


과거에 로버트 잉거솔이라고 하는 무신론자가 있었다. 그는 무신론을 강연하는 강대상 위에 탁상시계 하나를 올려놓고 하나님은 안 계시다고 주장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면 5분 후에 자기가 벼락을 맞거나 심장마비로 죽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하나님께 5분간 시간을 드리고, 자기가 5분 후에 살아있다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기자들을 불러 모으고 큰 소리를 쳤다. 그는 그렇게 자기 생각과 판단력으로 하나님을 사망 처리해버렸다. 그러나 데오도르 파커라는 그리스도인은 그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하나님은 오랫동안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는 분이시므로, 로버트 잉거솔이 이긴 것이 아니라 패배했다고 증거했다.

그렇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탕자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와 같으신 분이시다.

예를 들어서 불량한 아들이 동네 한 가운데에 서서 “나는 아버지가 없다. 만약 아버지가 있다면 여기 있는 이 총으로 나를 쏘아죽일 것이다. 시간은 5분이다. 5분 내에 아버지가 나를 총으로 쏘지 않으면 아버지는 안 계신 것이다. 오늘 내가 그것을 증명한다.”라고 하면서 눈을 감고 아버지를 기다린다면, 과연 그 아버지가 그 아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겠는가? 그 아들이 친 아들이 아닐지라도, 자기 아들을 총으로 쏘아죽일 아버지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탕자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믿지 않고 방황하는 불신자들을 큰 인내심을 갖고 세상 끝 날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김학규 목사

 

무신론의 어리석음 - 시14편


 

시편기자는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무신론의 오류는 지적이라기 보다도 먼저 도덕적입니다. 하나님이 있다라는 생각이 죄인들에게는 거추장 스럽기만 한 것입니다. 어리석음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지만 혹시 어떤 사건이나 진실을 받아드리면 그것이 나에게 손해가 되지 않을까해서 거절하는 미련함이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신앙을 갖게되면 더이상 죄를 즐기지 못하리라는 계산도 존재합니다.

무신론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라이프 스타일에 있어서 대체적으로 파괴적이고 적대적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서 그렇습니다. 스탈린이 그랬고 히틀러가 그랬습니다.

무신론의 사상적 원조는 사단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의 존재를 가르켜 대적 마귀라고 묘사합니다. 시편기자는 무신론자들의 폭력성이 내면적 갈등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들안에 내재한 깊은 두려움이야 말로 무신론의 이론적 본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면서 더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인생을 살아갑니다. 유신론자들이 하나님이 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존의식때문에 신을 제조한 것이라고 공격한 이들은 신이 정말 없었으면 좋겠다는 투사의식으로 살아갑니다. 그럴수록 신은 존재할지 모른다는 의식으로 갈등합니다. 니체의 광기는 이런 심리적 갈등의 결론 이었습니다. 시편기자는 무신론자들에 대한 우리의 반증은 그리스도인들의 삶 그 자체 이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론적 반증이 무익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우리의 무신론적 이웃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로마시대에 믿음으로 생명을 박탈당하면서도 원수를 향해 용서를 선포하던 빛나던 그들의 얼굴은 로마의 무신론자들로 하여금 크리스천들의 신을 알고 싶어하게 만든 목마름의 원천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으로 우리는 이 시대의 무신론과 싸워야 합니다.

* 기도: 주여, 우리시대의 무신론은 더욱 간교한 이론적 무장을 하고 우리 곁에 다가옵니다.

이들에 대해 철저한 이론적 반증을 게을리 않게 하시되 더 중요한 구별된 삶으로 무장하고 무신론에 빠진 이웃들을 만나게 하소서, 구원하게 하소서. 아-멘.

/이동원 목사

 

▣ 신앙인과 무신론자의 차이

 

“종교가 있든 없든 선한 일을 하는 착한 사람과 악한 일을 하는 나쁜 사람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착한 사람이 악한 일을 하려면 종교가 필요하다.”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요 무신론자인 스티븐 와인버그의 말이다.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종교는 기독교이다. 교회사는 이런 비판이 근거 없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역사의 고비마다 교회는 강한 자, 가진 자의 편을 들기 일쑤였다. 십자군전쟁과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인종차별, 성차별, 독재정권의 편들기에 이르기까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악에 연루되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허나, 무신론으로 개종하면서 삶이 극적으로 변했다는 보고는 많지 않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은 헤아릴 수 없다. 역사의 변혁기마다 교회가 약자와 빈자, 소수자의 편을 들었다는 증거 또한 많다. 와인버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종교가 있든 없든 사람은 착한 일도 하고 악한 일도 한다. 그러나 악한 사람이 착한 일을 하려면 반드시 종교가 필요하다.”

/김기현 목사 (부산수정로침례교회) <국민일보/겨자씨>

 

▣ 무신론자와 돼지의 같은 점

 

한 청교도적인 농부가 하루는 늘 무신론을 주장하는 어떤 지식인을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 농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기도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지식인이 농담조로 그것은 18세기 인간들의 낡은 유물이니까 내버리는 것이 어떠냐고 응수했습니다. 농부는 하는 수 없이 혼자 기도한 다음, "우리 집에도 당신 같은 식구가 하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지식인이 "그것 참 다행이군요. 내 동료가 있어 기쁨니다. 누군가요? 대학에 다니는 자제분인가요?"하고 묻자 농부가 "아니오 우리 집 돼지들이지요."라며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돼지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습니다.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현대인의 마음에는 감사함이 메마르기 쉽고 모든 것이 자신의 힘으로 되어진 양 교만하기 쉽습니다. 로마의 키케로도 감사는 최고의 덕이요, 모든 덕의 어머니라고 했거니와 성경은 범사에 주를 인정하며, 감사하라(잠3:6, 살전5:18)고 했으며,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하였습니다. 감사를 아는 참 인간이 됩시다.(시50:23, 딤전4:4, 엡5:4)

 

▣ 무신론은 지독한 죄

 

무신론은 단순히 어리석은 사상일 뿐 아니라 죄악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작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선언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없다는 선언입니다. 무슨 범죄든 가능합니다. 죄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모두 사라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신론을 죄악이라고 말합니다. 한 기독교 심리학자는 무신론자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무신론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기 안에 각인되어 있는 하나님 의식을 지워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지워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 그것이 무신론자의 정체성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무신론자가 자신의 주장을 선전하기 위해서 자기 집 지붕 위에다 이런 간판을 붙였습니다. "God is nowhere." 하나님은 아무데도 계시지 않는다는 말 이죠.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글자색이 바래기 시작했습니다. 맨 끝에 있는 here라는 글자가 희미해지면서 그 앞의 단어 now가 차별화되어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보니 간판에 아주 멋있게 이렇게 쓰여졌더랍니다. "God is now here(하나님은 여기에 계시다.)"라고 말입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아, 하나님은 참 유머가 있으시구나.

회개행전 / 이동원

 

▣ 무신론자가 쓴 벤허

 

무신론자 두 사람이 나사렛 예수에 대해 한참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옆 사람에게 “당신 실력 정도면 예수님에 대한 글을 충분히 쓸 수 있어요. 처음엔 근본주의자들처럼 예수님의 신성을 제시하고 나서 다음에는 그 견해를 완전히 까부숴버리고 예수님이 그저 인간이란 사실을 단번에 증명해버려야 해요” 라고 말했다.

제안한 사람은 미국에서 유명했던 무신론자 잉거솔 대령이었고 그 글을 쓴 사람은 바로 루 왈레스 장군이었다. 그 글은 결국 ‘벤허’라는 소설로 나타났다. 왈레스는 예수님의 생애와 인격에 대한 자료를 연구하면 할수록 예수님이 특유한 인물이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신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서있던 로마군 중대장처럼 “참으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로다”라고 고백하고 말았다.그는 무신론자에서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희한한 광고 전쟁

 

영국에서 버스와 지하철에 희한한 광고판이 붙었답니다. "아마도 신은 없을 것이다. 이제 걱정을 멈추고 인생을 즐겨라(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라는 광고입니다. 영국의 무신론자들은 1인당 5파운드 모금 운동을 벌여 모은 14만 파운드(2억 8000만원)로 버스와 지하철에 광고를 낸 것입니다.

이에 자극은 받은 스페인 무신론자들이 이 광고를 스페인어로 번역하여 시내버스에 게재했답니다. 이탈리아 무신론자 단체도 "나쁜 소식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좋은 소식은 우리가 신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라는 문구의 광고를 게재하였답니다.

반(反)종교 광고가 유럽 대륙으로 확산되자 각국 기독교 단체들도 맞대응에 나서 "신은 존재한다. 예수와 더불어 당신의 인생을 즐겨라"라는 버스 광고를 시작했답니다.

무신론(Atheismus)은 말 그대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론입니다. 이들은 신은 인간의 자유와 발전을 반대하며, 인간을 속박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빼앗으며, 인간의 소외를 가져 오게 하였다고 주장합니다. 무신론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이론적 무신자는 자신의 판단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이론적 무신론자 중에는 비판적 무신론자와 신의 존재를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자가 있습니다. 극단적 무신론자는 모든 정신적이고 초감각적인 존재를 부정하는 물질주의(Materialismus)자와 실증주의(Positivismus)자입니다. 범신론(Pantheismus)자는 세계를 초월하는 인격적 신을 믿지 않으며 실천적 무신론자는 신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으나 자신의 삶의 과정을 통하여 부정합니다.

서양 근세의 무신론은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생겨난 무신론으로 영국의 경험론과 18세기의 프랑스 계몽주의에 근원을 두고, 19세기의 실증주의, 물질주의에서 지속되면서 포이에르바하와, 마르크스, 니체에 와서 절정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포이에르바하는 인간을 지고의 존재로 만들었고, 마르크스는 신을 물질로 대체하였으며,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포함으로 인간이 신이 되고자 신이 없기를 원하는 몸부림을 했습니다.

무신론자들은 한결같이 신은 인간의 산물이니 자유롭게 살려면 신을 믿지 말라고 외칩니다. 그들은 유신론자를 향하여 신이 존재하면 증명해 보라고 합니다.

무신론자 볼테르는(1694-1778) “100년만 지나면 하나님을 믿는 따위의 미신가는 이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그의 무신론 연설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자 파리의 대로에서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렇게 욕지거리를 퍼붓는 나를 이 자리에서 쓰러뜨려 보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14: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 없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에 대한 본유적 지식 혹은 선천적 지식(Innate Knowledge)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은 종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인간은 성장하면서 일반계시와 특별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획득되는 후천적 지식(Acquired Knowledge)을 갖게 됩니다. 이성은 인간에게 우주는 반드시 시작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모든 결과는 적당한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정교한 우주가 우연히 발행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러 부속품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니까 어느 날 우연히 시계가 만들어졌다고 믿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라고 말씀합니다. 천체의 질서나 동식물과 사람의 구조 등은 그것을 만드신 이지적(理智的) 창조자 곧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시계가 있으면 그 시계를 만든 제작자를 만나 보지 못했지만 어디엔가 제작자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신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의 양심이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종교적 본능이 있습니다. 동물은 무엇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도 신을 숭배합니다.

성경은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1:19)”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3:11)”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양심은 의로운 절대적인 입법자를 요구합니다. 인간의 도덕성 뿐만 아니라 인간의 온갖 성격이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파스칼은 “무신론은 일종의 질환이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그의 존재를 부인하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어서 무신론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신을 부정하고 자신의 의지로 믿지 않을 뿐입니다.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하지 않고 단순히 전제하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3:14)”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논증에 의해 증명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천문학자들이 별을 만들지 않았듯이, 식물학자가 꽃을 만들어 낼 수 없듯이 신학자가 하나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전제되고 선포된 하나님은 인간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을 창조하신 영원한 자존자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은 본래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그의 선하심을 신뢰하고 그를 경배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성경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 1:20)”라고 말씀합니다.

- 열린편지/김필곤 목사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

 

본문: 시편 14;1~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온전케 하심이니󰡓(살전 4;7)

 

다윗은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께서 너를 앞으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실 것이라󰡓는 언약을 받았습니다. 블레셋의 거장 골리앗을 이겨 영웅이 되고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다윗은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첫째, 󰡐어리석은 자가 될 수 있구나󰡑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어리석은 자가 될 수 있겠구나󰡓고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어리석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창조해놓은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을 받고 하나님께 도전했다가 실패함으로써 땀 흘리는 수고와 해산하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땅은 저주를 받고 흑암이 세상을 뒤덮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이 좋았던 아브라함도 위기에 처하자 부인을 누이라고 속이는 실수를 했습니다. 다윗도 역시 어리석은 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자신을 신중히 돌아보게 됐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없다며 교만해질 수 있구나󰡑하는 깨달음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악행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하나님은 없다󰡑고 했지만 망하고 말았습니다. 자본주의자들도 󰡐진짜 하나님 없이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다윗시대에도 악한 자들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했는데 이것은 가장 무서운 저주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은 저주에서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에 점점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 왕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은 탓에 악령에 사로잡혀 결국 비참하게 죽은 것입니다.

셋째, 그래서 어려움 당할 때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신데 믿음 약한 자에게 시험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언제든지 하나님의 계획을 헤아려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좋은 것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나쁜 것을 주고 하나님은 의인과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다윗은 왕이 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큰 힘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살려고 몸부림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했습니다. 다윗은 복음을 올바로 이해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올바른 믿음을 가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프랜시스 볼테에르는 프랑스의 유명한 철인, 작가요, 위대한 인문주의자였습니다. 그는 건강할 때 말하기를 "기독교란 안방 부녀자나 양복 수선공이 믿기에는 좋은 것이리라. 그러나 지혜로운 자가 믿을 바는 못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죽기 직전에 담당의사에게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도다. 내게 6개월만 생명을 연장해 준다면 내가 가진 값진 것 중에서 절반을 당신께 주리라. 그리고 나서 나는 기꺼이 지옥으로 가리라.󰡒

󰡒오! 그리스도시여, 예수 그리스도여."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가 가장 어리석은 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믿으며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하나님, 고난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하며 축복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용학 목사(일산능력교회)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

 

성경: 시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 1924년 세상을 떠나기 바로 직전 레닌이 마지막으로 고백한 <현대 무신론의 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는 공산주의의 주역을 맡고 있는 가까운 친구 한사람과 전에 학생으로 자기를 따르던 사람에게 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피압박 대중은 자유를 얻어야만 했다. 그러나 우리가 취한 방법은 한층 더 압박과 잔악한 대학살만을 선동했을 뿐이었다. 생사의 악몽에서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희생자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는 망망대해 가운데 버려져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지난 일을 뉘우치기에는 이젠 너무 늦었다. 러시아를 구하는 데에는 열 사람의 아씨시의 프란치스코가 필요했다. 열 사람의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와 우리가 힘을 합한다면 러시아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훌륭한 신앙인입니다. 바로 나라를 건질 수 있는 것은 훌륭한 신앙인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훌륭한 신앙으로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볼테르의 예언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Voltaire)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그는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글을 집필해 자신이 운영하는 인쇄소에서 책을 출간했다. 프랑스 국민들은 볼테르의 글과 연설에 갈채를 보냈다. “100년 후에는 지구상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미신가들이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이렇게 욕을 퍼붓는 나를 가만 두겠습니까” 결국 볼테르도 나이가 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몸을 떨며 의사에게 6개월만 생명을 연장해 달라고 애원했다. “오, 이제 나는 지옥불에 들어가는구나”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0여년이 지났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수는 약 8억 명에 이른다. 볼테르가 운영하던 인쇄소에서는 지금 성경을 찍어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죄는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다.

 

▣ 골빈 장교

 

옛 소련에서 신병들에게 신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무신론 교육을 시켰습니다. 한 장교가 나와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말합니다.

“신병들, 저기 하늘을 보라. 신이 보이나, 안 보이나?” 신병들이 일제히 “안 보입니다!”라고 하자 장교는 “그렇다. 신은 없다!”고 소리쳤습니다. 이때 신을 믿고 있는 한 사병이 벌떡 일어나서 손가락으로 무신론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장교의 머리를 가리키며 “여러분, 장교님의 머릿속이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라고 외쳤습니다. 신병들이 “안 보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그 사병은 “그렇습니다. 우리 장교님은 골빈 장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의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존재하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자가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자가 나라의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최병남 목사(대전중앙교회)

 

▣ 사르트르의 최후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 P. Sartre)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뛰어난 문필가로서 「자유의 길」, 「파리」 등 많은 문학 작품을 남겼다. 그는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의 거두답게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인간은 종교적 가르침 없이도 충분히 선할 수 있다면서, 천국과 지옥에 관한 기독교의 교리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의 주장에 영향을 받아 많은 젊은이가 교회를 떠났다.

사르트르는 노년에 폐수종이라는 병에 걸렸다. 의사는 프랑스의 자랑인 대철학자에게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렸다. 그러자 사르트르는 의사에게 욕을 하면서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의 이런 발악은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병원 측은 인생의 철학을 정립한 노학자이기에 담담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줄 알았는데, 보통 사람보다 더 크게 반항하고 행패를 부리는 모습에 몹시 당황했다. 그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면회를 제한하기까지 했다. 얼마 후에 사르트르는 죽었고 죽음 앞에서 보인 그의 반응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매우 실망하고 의아해했다. 인간의 선한 의지와 자긍심을 주창한 대철학자가 누구나 겪는 죽음 앞에서 그토록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한 지방 신문 기자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심판의 하나님을 만날 사실이 샤르트르를 공포로 몰아넣어 그로 죽음을 그토록 거부하게 했다”라고 말했다.

「교회만이 희망이다」/ 홍성욱

 

콘웰의 약속

 

미국의 남북전쟁 때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한 젊은 장교가 치열한 전투 중 에 심한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죽음의 위기를 느낀 청년은 『하나님, 살려만 주신다면 남은 인생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이 기도 후 청년은 기적적으로 구출되어 새로운 삶을 살았다. 그 후 청년은 「 죽음직전의 약속」대로 독실한 신앙을 유지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았다. 이 청년이 바로 세계적인 템플대학과 세개의 종합병원, 필라델피아에 큰 침례교회를 세운 레셀 콘웰박사다

 

▣ 천문학자 케플러의 친구

 

천문학자 케플러는 신실한 신앙인이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천문학을 연구하는 한 친구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무신론자로 늘 “태양계란 그 자체의 힘으로 생성된 것이며 견지되는 것이니 누가 만든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케플러는 그 친구에게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알게 해주고자 고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양계의 모형을 실제 크기의 축소 비율에 맞게 만들어 아름다운 색을 칠하고 별들이 빛을 발하며 빙글빙글 돌아가도록 하여 그 친구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을 본 친구는 매우 감탄을 했다.

“누가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었나?” “아무도 만들지 않았네. 자기 힘으로 생겨나서 자기 힘으로 도는 것일세” “뭐야? 어서 말해봐. 어떻게 만든 사람이 없이 절로 만들어지고 돈단 말인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잖나?” “이 친구야! 이렇게 작고 보잘 것 없는 장난감도 만들어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면 이 거대한 우주 만물이 창조주가 없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질서있게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무신론자 케플러의 친구는 변화되었다고 한다.

/김우영 목사(만나교회)

 

▣ 오 하나님 우리의 창조주시니 (찬송가 68장, <통> 32장)

 

1. 오 하나님 우리의 창조주시니 내 주님께 귀한 것 드립니다 내 주께만 엎드려 경배드리며 내 주의 이름 높이 찬양하네

2. 오 하나님 우리의 대주재시여 큰 풍랑이 일 때도 도우셨네 죽음에서 우리를 구하셨으니 내 주의 이름 높이 찬양하네

3. 주 하나님 이름을 함께 높이며 대주재께 영광을 돌리오리 그 능력이 우리를 지켜주시니 주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네 아멘

 

▣ 저 높고 푸른 하늘과 (찬송가 78장, <통> 75장)

 

1. 저 높고 푸른 하늘과 수없이 빛난 별들을 지으신 이는 창조주 그 솜씨 크고 크셔라

날마다 뜨는 저 태양 하나님 크신 권능을 만백성 모두 보라고 만방에 두루 비치네

2. 해지고 황혼 깃들때 동천에 달이 떠올라 밤마다 귀한 소식을 이 땅에 두루 전하네

행성과 항성 모든 별 저마다 제길 돌면서 창조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 널리 전하네

3. 엄숙한 침묵 속에서 뭇별이 제길 따르며 지구를 싸고 돌때에 들리는 소리 없어도

내 마음 귀가 열리면 그 말씀 밝히 들리네 우리를 지어내신이 대주재 성부 하나님 아멘

 

▣ 창조, 무신론에 관한 성경 말씀

 

0 태초(太初)에 하나님이 천지(天地)를 창조(創造)하시니라(창1:1)

0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0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0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6:6)

0 만국의 모든 신은 헛것이나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도다(대상16:26)

0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시8:3)

0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시10:4)

0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14:1)

0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53:1)

0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시104:24)

0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시104:30)

0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이사야 43: 15)

0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편 121:2)

0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이사야 45: 7)

0 보라 숯불을 불어서 자기가 쓸 만한 연장을 제조하는 장인도 내가 창조하였고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도 내가 창조하였은즉(이사야 54: 16)

0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사 64:8)

0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이사야 65: 18)

0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막10:6)

0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1:16)

0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3)

* 주의: 본 자료를 무단 수집, 제작 배포 출판하면 저작권법에 저촉(위배)됩니다.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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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의 믿음 댓글[0]
믿음, 신앙, 의심 (2012-02-14 오후 9:17:49) http://blog.somang.net/holylove/7165

링컨의 믿음
 

성경: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이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렇게 연설하였습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해 나아가려면 지혜, 애국심, 기독교 정신 등이 절대 필요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이 나라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지켜 주실 하나님을 굳게 믿는 믿음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오늘에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이라고 봅니다.

* 묵상 성경 말씀

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0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요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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