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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전파자료 모음(교회) 댓글[0]
교회, 공동체 (2014-01-30 오전 11:41:25) http://blog.somang.net/holylove/8057
복음전파자료 모음(교회)
 

▣ 작은 교회의 힘

 
본문: 마 23: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미국의 워싱턴에 있는 세이비어 교회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교회 중 하나입니다. 성도 150여명의 작은 교회이지만 지역 사회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그 어떤 대형 교회에 비교를 해도 뒤지지 않습니다. 1947년 ‘토기장이의 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서점과 카페를 겸한 자그마한 매장이 세이비어 교회의 시작입니다. 처음부터 지역 주민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았기 때문에 교회보다 서점과 까페로 먼저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 교인들은 ‘하나님을 위한 철저한 헌신’의 마음으로 지역 주민들을 섬깁니다. 지금은 200여개의 소그룹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지속적인 모임을 갖고 있는데, 주로 노숙인, 마약 중독자, 알코올의존증 환자와 같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세이비어 교회의 앤 딘 목사님은 적은 성도로도 이 같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비결에 대해서 “우리 성도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봉사합니다. 그런데 이 헌신의 과정에서 우리들도 하나님과 함께 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교회의 가치는 성도들이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지, 얼마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는지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교회의 비전을 따라 협력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 기도: 주님! 사역할 수 있는 교회를 주심을 감사하게 하소서!
* 묵상: 교회의 가치를 규모로 판단하는 실수를 조심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마음이 열린 교회
 
본문: 롬 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한국 교회의 청년, 학생들이 점점 줄고 있는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1998년부터 진행된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교회의 청년들의 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종교호감도에도 불교(36%), 천주교(35%), 개신교(24%)의 순서로 사실상 꼴찌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도 리서치기관인 바나 그룹에서는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 대대적인 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다음의 다섯 가지 이유가 주요결과로 나왔습니다.(복수 응답 가능)
1. 교회 밖의 문화를 모두 사탄의 것으로 취급한다.(25%)
2. 과학적인 주장들을 모두 무시하고 거부한다.(23%)
3. 의심하거나 호기심이 많은 사람에 대해서 매우 공격적이다.(22%)
4. 다른 신앙과 종교를 지나치게 공격한다.(29%)
5. 삶에 직면한 문제와 완전히 동떨어진 해답을 제시한다.(31%)
위 이유가 모두 교회 자체의 문제는 아니며, 응답을 한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청년들이 점점 교회를 떠나는 현실에서 믿음의 선배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은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지혜롭게 현 세대의 청년들과 학생들을 향해 먼저 다가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조금 더 열린 태도로 미래 세대에 복음을 전하고자 노력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 기도: 주님! 시대에 맞는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지혜를 주소서!
*묵상: 교회에서 자리를 못 잡는 청년, 학생들의 믿음생활을 위한 멘토가 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http://cafe.naver.com/newgal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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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전파자료 모음(교회) 댓글[0]
교회, 공동체 (2014-01-30 오전 11:41:25) http://blog.somang.net/holylove/8056
복음전파자료 모음(교회)
 

▣ 작은 교회의 힘

 
본문: 마 23: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미국의 워싱턴에 있는 세이비어 교회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교회 중 하나입니다. 성도 150여명의 작은 교회이지만 지역 사회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그 어떤 대형 교회에 비교를 해도 뒤지지 않습니다. 1947년 ‘토기장이의 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서점과 카페를 겸한 자그마한 매장이 세이비어 교회의 시작입니다. 처음부터 지역 주민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았기 때문에 교회보다 서점과 까페로 먼저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 교인들은 ‘하나님을 위한 철저한 헌신’의 마음으로 지역 주민들을 섬깁니다. 지금은 200여개의 소그룹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지속적인 모임을 갖고 있는데, 주로 노숙인, 마약 중독자, 알코올의존증 환자와 같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세이비어 교회의 앤 딘 목사님은 적은 성도로도 이 같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비결에 대해서 “우리 성도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봉사합니다. 그런데 이 헌신의 과정에서 우리들도 하나님과 함께 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교회의 가치는 성도들이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지, 얼마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는지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교회의 비전을 따라 협력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 기도: 주님! 사역할 수 있는 교회를 주심을 감사하게 하소서!
* 묵상: 교회의 가치를 규모로 판단하는 실수를 조심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마음이 열린 교회
 
본문: 롬 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한국 교회의 청년, 학생들이 점점 줄고 있는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1998년부터 진행된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교회의 청년들의 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종교호감도에도 불교(36%), 천주교(35%), 개신교(24%)의 순서로 사실상 꼴찌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도 리서치기관인 바나 그룹에서는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 대대적인 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다음의 다섯 가지 이유가 주요결과로 나왔습니다.(복수 응답 가능)
1. 교회 밖의 문화를 모두 사탄의 것으로 취급한다.(25%)
2. 과학적인 주장들을 모두 무시하고 거부한다.(23%)
3. 의심하거나 호기심이 많은 사람에 대해서 매우 공격적이다.(22%)
4. 다른 신앙과 종교를 지나치게 공격한다.(29%)
5. 삶에 직면한 문제와 완전히 동떨어진 해답을 제시한다.(31%)
위 이유가 모두 교회 자체의 문제는 아니며, 응답을 한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청년들이 점점 교회를 떠나는 현실에서 믿음의 선배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은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지혜롭게 현 세대의 청년들과 학생들을 향해 먼저 다가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조금 더 열린 태도로 미래 세대에 복음을 전하고자 노력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 기도: 주님! 시대에 맞는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지혜를 주소서!
*묵상: 교회에서 자리를 못 잡는 청년, 학생들의 믿음생활을 위한 멘토가 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http://cafe.naver.com/newgal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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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교회 탐방 및 전도실습 댓글[0]
교회, 공동체 (2013-10-28 오후 8:58:58) http://blog.somang.net/holylove/7990
농어촌 교회 탐방 및 전도실습
 

오늘은(2013년 10월 28일) 소망교회 국내 선교부 주관으로 농어촌 교회 방문 및 전도실습을 위해 강원팀(10개 교회 방문)과 영남팀(4교회 방문)으로 나누어 출발하였다.
나는 영남권에 속하여 세계로교회(송치수 목사), 덕율교회(김태일 목사), 척곡교회(김영성 장로), 안동화곡교회(백영주 목사) 중 척곡교회를 방문하였다. 척곡교회는 목사님 없이 연로하신(89세)김영성 장로님의 인도하에 노인 교인 7명으로 교회를 유지하고 있었다. 봉화척곡교회는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교회이다.
 
즉 봉화척곡교회는 대한제국 말엽에 탁지부(현 재경부) 소속의 관직을 사임하고 외가마을에 정착한 김종숙과 이웃 동지인 장복우, 최재구 등이 합하여 1907년 5월 17일에 설립한 토착교회로서 문화재등록교회이다.(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57호) 교회가 오래 되고 낡아서 내년에 3억 이상의 예산으로 보수할 계획이라고 한다. 특히 교회내에 화장실이 남녀공용 하나밖에 없어 외부인사 초청 방문이 매우 불편하다고 한다.
교회초창기에 교회와 학교를 겸하였기 때문에 교회건물 옆에 지금도 명동서숙이 남아 있다.(예배당과 명동서숙은 1909년 6월 2일에 건축되었음) 그리고 또 눈에 띄는 것은 옛날 종각의 모습이었다.
이 교회는 문화유산으로서 건축사. 종교사 및 향토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연로하신 김영성 장로님은 실로 한국 기독교사의 인간문화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쪼록 우리나라 농촌교회와 봉화척곡교회가 앞으로 더욱 부흥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 기도: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사랑, 나의 왕되신 하나님,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가 농촌교회와 미자립교회에 도움을 주고 희망을 주기를 원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내 교회부흥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작은 교회에도 관심을 갖고 힘을 합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한국교회 특히 농촌교회와 작은 교회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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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교회 탐방 및 전도실습 댓글[0]
교회, 공동체 (2013-10-28 오후 8:58:58) http://blog.somang.net/holylove/7989
농어촌 교회 탐방 및 전도실습

오늘(2013년 10월 28일)은 소망교회 국내 선교부 주관으로 농어촌 교회 방문 및 전도실습을 위해 강원팀(10개 교회 방문)과 영남팀(4교회 방문)으로 나누어 출발하였다.
나는 영남권에 속하여 세계로교회(송치수 목사), 덕율교회(김태일 목사), 척곡교회(김영성 장로), 안동화곡교회(백영주 목사) 중 척곡교회를 방문하였다. 척곡교회는 목사님 없이 연로하신(89세)김영성 장로님의 인도로 노인 교인 7명으로 교회를 유지하고 있었다. 봉화척곡교회는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교회이다.
즉 봉화척곡교회는 대한제국 말엽에 김영성 장로의 할아버지가 탁지부 소속의 관직을 사임하고 1907년 5월 17일에 설립한 토착교회로서 문화재등록교회이다.(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57호) 교회가 오래 되고 낡아서 내년에 3억 이상의 예산으로 보수할 계획이라고 한다. 특히 교회내에 화장실이 남녀공용 하나밖에 없어 외부인사 초청 방문이 매우 불편하다고 한다.
교회초창기에 교회와 학교를 겸하였기 때문에 교회건물 옆에 지금도 명동서숙이 남아 있다.(예배당과 명동서숙은 1909년 6월 2일에 건축되었음) 그리고 또 눈에 띄는 것은 옛날 종각의 모습이었다.
이 교회는 문화유산으로서 건축사. 종교사 및 향토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연로하신 김영성 장로님은 실로 한국 기독교사의 인간문화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쪼록 봉화척곡교회가 앞으로 더욱 부흥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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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와 로마 카톨릭과의 차이점 댓글[0]
교회, 공동체 (2012-07-28 오후 7:39:37) http://blog.somang.net/holylove/7422

개신교와 로마 카톨릭과의 차이점

 

본문: 갈라디아서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본래 기독교는 하나였다. 카톨릭(Katholikos)이라는 말이 그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즉 "정통"이라든지 “공동” 또는 “공정”이라는 의미이다. 거기에 대해서 프로테스탄트란 “대항” 또는 “반항”한다는 의미로 영어사전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카톨릭 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차이점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카톨릭 교회에 잘못된 것이 있으므로 이것을 바로잡고자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반대하여 할 수 있는 한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교회를 세운 교회이다. 교회도 천년 이상을 계속해서 내려오니까 여러 가지 색채를 띠게 되고 더군다나 정치의 권력까지 장악하니까 더욱 심했던 것이다. 또 인쇄술도 생기지 않았을 때이니 성경을 평생 보지도 못한 그리스도인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므로 인간의 토속종교와 기독교가 결합되는 상황도 생기게 되었다. 거기에 반대해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이다.

역사상 알려지고 있는 종교 개혁자를 꼽는다면 루터, 칼빈, 쯔빙글리, 낙스 등을 들 수 있다. 그밖에도 더 많이 있다. 그러면 카톨릭의 어떠한 점에 반대했는기?

1. 성경만이 절대 권위가 있다고 하는 것(카톨릭에서는 교황과 교회가 권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베드로가 초대교황이라고 주장한다.)

2. 성경 이외의 사도전승의 권위는 인정할 수 없다.

 

* 참고:

가톨릭에서는 예수님이 초대 교황인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었다고 주장한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16: 13- 19)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천국열쇠는 베드로 개인에게 주신 것이 아니고,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모든 이에게 주신 것이며, 당시 초대교회의 수장은 베드로만이 아니라 요한과 야고보의 공동 사역이었음을 주장한다.

 

3.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이기는 하지만 기도나 예배의 대상은 될 수 없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3:31- 35)

 

4. 교회의 사제에게 특별한 권능은 주어지지 않는다. 신자 전원이 사제이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5. 지상과 천국 사이에 연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 참고: 가톨릭에서 말하는 연옥은 비교적 경미한 죄로 인해 완전히 구원받지도 못하고 완전히 지옥에 처해지지도 않은 사람들이 거하는 임시 형벌의 장소라고 함

 

6. 면제부 판매에 대한 부당성

교황 레오 10세: 성베드로 성당 건립을 위한 대사(헌금)- 면제부를 사면 죽은 영혼을 연옥에서 하나님 나라로 보낼 수 있다고 주장하여 성당 건축비를 모금함, 이를 통해 헌금수령증을 가지면 고해 신부를 선택할 권리를 부여할 수 있다는 혜택(?)를 주었다고 한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기본 신앙은 비슷하지만 교리를 살펴보면 내외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

 

첫째, 성경관이 다르다.

개신교는 성경은 유일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계시이며 성경은 유일한 죄로부터 구원해주는 통로라고 본다(Sola Scriptura) 그런데 가톨릭은 성경 +가톨릭의 교회전통을 중시한다. (연옥설, 성자의 중보기도, 마리아의 숭배는 교회전통에 근거함)

그리고 성경을 개신교에서는 구약 39권, 신약 27권 합 66권만을 정경으로 보는데. 가톨릭은 66권 이외에 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등의 외경을 경전으로 본다.

 

* 참고: 경전에서 차이가 난다. 모두 『성경』에 근거하지만 가톨릭은 『성경』과 『성전』을 믿고 개신교는 『성경』만을 믿는다. 가톨릭교회는 세계적으로 통일된 통제시스템을 강조한다. 평신도를 가르쳐 이끄는 권위의 상징인 ‘교도권’은 주교의 것이다. 이 교도권이 없으면 신도가 하나님의 가르침을 제멋대로 해석하거나 왜곡하여 모순이나 대립이 생긴다고 여기기 때문에 성직자가 교도권에 근거한 해석으로 『성경』을 강론해야 한다. 반면 개신교는 각 교회나 개인이 직접 성령의 도움으로 자유롭게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

 

둘째, 구원관

개신교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구원의 자격을 얻는다(롬4:1- 12, 딛3: 3- 7). 즉 구원이 먼저요 선행은 크신 은혜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며, 오직 믿음으로 구원(Sola Fide) 얻는 다고 보는데 비해, 가톨릭은 믿음 + 선행으로 본다.

* 참고: 영생을 얻는 방법에서 차이가 난다. 가톨릭교회는 믿음, 소망, 사랑 세 가지 덕목이 영생을 얻기 위한 필요조건임을 강조하고 믿음에 따른 상벌과 천당, 지옥, 연옥이 있다고 주장한다. 개신교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득의(以信得義)를 강조한다. 즉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믿음에 따른 상벌과 천당, 지옥은 있지만 연옥은 없다고 주장한다.

 

셋째, 성현을 받드는 데에서 차이가 난다. 가톨릭교회는 성모, 천사, 성인, 성녀, 인류 역사의 성현과 선조 등을 존경하고 받들지만 개신교는 우상숭배를 금한다. 하늘과 땅에서 우리의 보호자는 예수님이기에 인류 역사의 성현과 선조를 받들지 않는다.

위대한 인물의 훌륭한 면은 본 받을 수 있어도 예수님 이외에 어느 누구도 숭배하면 안된다. 예수님 이외에는 누구나 죄인이기 때문이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마19:17)

 

* 참고: 제사

개신교는 우상숭배라 하여 조상에게 제사드리는 것을 일체 허용하지 않으나, 가톨릭은 200년전 한국에 초기 전파시에는 허용하지 않아 많은 순교자를 냈으나 지금은 허용하고 있다.

 

넷째, 성사와 기도에서 차이가 난다. 가톨릭교회는 일곱 가지 성사를 집행하고 세계적으로 통일된 기도문과 지방 교회가 자체적으로 편집한 기도문을 사용한다. 반면 개신교는 각 종파별로 세례 방식이 다르고 미사와 다른 성사는 없다. 성찬은 예수의 최후 만찬을 기리는 성찬식만 있다. 예배를 드릴 때 성경 낭독과 설교에 중점을 두고 성가대의 찬송과 대표기도도 한다.

 

* 참고: 가톨릭은 성례에 대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위한 가시적인 교회의 의식으로 보고 7가지 성사(세례성사, 고해성사, 성체성사, 병자성사, 혼배성사, 신품성사)를 신부가 집행한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세례와 성만찬 이외의 성사는 성경에 없는 의식이며 사제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허례허식으로 보고 형식적인 예식보다 본질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 참고: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은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성만찬에 대한 해석으로서 집례자인 사제가 축사하는 순간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인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해석이다.

즉 성만찬 의식을 행할 때에 개신교에서는 예수님의 최후의 성만찬을 기념하고 하나님의 지체됨을 확인하는 믿음으로 행함에 비해 카톨릭에서는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주님의 피요 살임을 주장하여 의식이 끝나고 남은 것도 함부로 취급하지 아니한다. 그 결과로 신부 중에는 술중독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특히 카톨릭에서는 술과 담배를 허용하나 개신교에서는 술 담배를 금할 것을 가르친다.

 

다섯째, 선교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가톨릭교회는 수도회의 남녀 수사가 세계 각지로 가서 가톨릭 교리를 전파하고 교회를 세우는 데 중점을 둔다. 반면 개신교의 개별 교회 성직자는 선교보다 목회에 치중해서 활동한다. 개신교는 처음부터 교인과 각 개별 교회가 주체였다. 선교 역시 교인이 직접 주변 지역에 『성경』의 말씀을 전파하고 교회를 확장한다. 이 과정에서 현지 문화를 무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여섯째, 교회관

개신교는 교회 건물을 성전으로 보지 않고 성도의 모임과 성도의 몸을 성전으로 본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그런데 가톨릭은 교회는 인간성이 회복되고 구원의 유일한 장소라고 보고 타기독교의 세례를 불인정한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가톨릭에서 수세받은 것을 인정하고 입교 세례를 허용한다. 또한 행정 조직에서 차이가 난다. 가톨릭교회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관리하는 중앙집권 체제로 추기경단이 교회를 다스리고 교구 주교가 해당 교회를 다스린다. 반면 개신교는 교인과 개별 교회가 주체가 되고 교인들이 선출한 장로들이 교회를 다스린다.

 

* 참고: 교황제

개신교는 모든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으며(엡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고 보며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라고 보는데 비해 가톨릭은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교황은 신앙과 실천에 있어서 오류가 없는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성직자로 본다. 교황만이 성경을 해석할 권위가 있다고 본다.

 

* 참고: 만인제사장의 직무

가톨릭은 사제만이 제사장으로 보는데 개신교는 만인 제사장을 주장한다. 이는 가톨릭과는 달리 사제(성직자)의 중재 없이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칠 수 있으며, 성직자가 아니라도 죄 고백을 듣고 용서하고 중보의 기도를 할 수 있고 이웃을 섬길 수 있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차별이 없고 다만 일반직과 특수직으로서 구분할 뿐이다.(눈, 코, 귀, 입의 역할이 다르듯 사역이 다를 뿐이다.)


일곱째, 예배당에서 차이가 난다. 가톨릭교회는 예배당 꼭대기에 십자가가 있고 십자가는 각양각색이다. 개신교는 일반적으로 붉은색의 십자가가 예배당 꼭대기에 걸려 있다. 가톨릭교회 예배당 중앙에는 십자가 위에 예수상이 있고 양측에는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성인, 성녀, 성상 등이 있다. 벽면 좌우에 교인들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도록 안내하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있다. 반면 개신교 예배당 안은 일반적으로 붉은 십자가 하나만 걸려 있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다. 그리고 가톨릭교회 예배당 중앙에는 미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제대라고 하는 큰 탁자가 놓여 있고 개신교는 설교를 위한 작은 강단이 있다. 가톨릭교회 교인은 예배당에 들어갈 때나 기도 전후에 이마와 가슴에 성호를 그림으로써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표시한다. 그러나 개신교 교인은 이러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 가톨릭교회 교인은 기도할 때 한마음 한뜻으로 곡조에 맞춰 통일된 기도문을 읊고 개신교 교인은 자신의 언어로 자유롭게 기도한다.

 

여덟째, 가톨릭 독신제도에 대하여 개신교는 가톨릭이 주장하고 있는 초대 교황이라고 하는 베드로도 독신이 아니었으며(마8:14, 막1:30, 눅4: 38), 독신은 초대교회의 전통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2:1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마19: 9- 12)

카톨릭에서 독신을 최초로 기록한 것은 1123년 라테란 공의회에서이며, 1545년 트렌트 공의회에서 가톨릭 법령으로 선포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반대하는 일부 사제들의 주장이 있었으나 이들은 즉시 교회에서 제명 축출하였다. 즉 교회의 교리나 도그마가 아니라 로마 카톨릭의 질서를 위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자손을 많이 두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말씀하고 있고, 교회 감독의 직분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는 성도로 선출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딤전3:2).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잠19:14)

오늘날 많은 이단과 사이비종교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을 분별하고 거짓과 유혹에 넘어가지 말자.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한1서 4:1)

 

* 기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예수님만이 나의 목자요 인도자이십니다. 다른 복음에 미혹되지 않고 오직 믿음, 오직 성경만을 좇아 살아가게 하소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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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와 기독교의 개교회주의 댓글[0]
교회, 공동체 (2012-05-03 오후 2:23:41) http://blog.somang.net/holylove/7334
한국교회의 사명과 회개
 
본문: 요한계시록 2: 1-5
 
 한국 교회의 성장이 어느 때부터 인가 정지, 또는 하락하고 있다고 합니다. 즉 오늘의 한국 기독교는 세속화되어가면서 점점 그 쇠퇴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 교회가 새롭게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한국 교회 개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목회자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의 의식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기독교는 이 땅에서 설자리가 없어질 것입니다. 유럽 기독교가 쇠퇴하고 있지만 서양은 그래도 기독교적인 기반이 있었기에 이 정도의 서서히 죽어 가는 흐름을 타고 있으나 한국적인 상황은 기독교적인 기반이 아니고 무속적이고, 유교적이고, 불교적이고, 기타 혼합적인 기반 위에 기독교의 영성이 세워져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신차리지 못하면 그 죽어 가는 속도는 가속도가 붙어 막을 방도가 없이 속수무책이 될 것입니다. 촛대를 한국에서 옮기우기 전에 회개합시다.
 
* 한국교회가 갱신되어야 할 점
 오래 전에 아프리카 콩고의 한 마을 전체가 다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선교사들의 사역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 놀라운 부흥은 두 여인과 한 남자 성도의 진실한 회개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 가운데 두 여인의 마음이 성령님께 깊이 붙들리어 자기의 삶을 돌이키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한 여인은 교회에 바쳐진 쌀을 한 자루 갖다 쓴 것이 왜 그런지 마음에 자꾸만 걸렸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그것을 교회에 가지고 와서 성도들 앞에 고백합니다. 사실, 이 쌀은 교회에서 쓰여져야 할 것인데 제가 썼습니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그랬더니 또 한 여인이 성도들 앞에 나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저는 남의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인집의 계란 한 개를 주인에게 말하지 않고 가져온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회개합니다. 이어서 한 남자가 나와서 고백을 합니다. 저는 어떤 선교사와 교제를 하면서 선교사 집에 갔다가 선교사에게 말하지 않고 책 한 권을 몰래 가지고 나왔습니다. 내가 그것을 다시 돌려 드리며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자기의 삶을 바로 잡으려는 이 세 사람의 진지한 고백 때문에 이 마을은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에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호세아서에 나오는 고멜이 바로 우리입니다. 한국교회가 갱신되고, 회개하려면 먼저 어떤 점이 잘못 되었는가를 알고 바로 잡아야 합니다.
 
1. 개교회 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얼마전 나는 이태석 신부의 헌신적 삶을 그린 영화 <울지마, 론즈>를 보았습니다. 나는 이 분의 훌륭함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가 천주교 성장에 크게 기여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신교 선교사님과 목사님 중에는 그 분보다 더 훌륭한 분들이 얼마든지 계십니다. 그런데 그 분들을 알리고 선교하는 데 한국 기독교가 전혀 힘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를 나는 개교회주의 때문이라고 봅니다.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보다 자기 교회를 우위에 두고 있습니다. 자기 교회 건물 건축과 홍보에는 많은 돈을 투자 하지만 기독교 문화 창출과 어려운 이웃 교회를 돕는 데는 너무나 인색합니다. 심지어는 담임 목회자들 중에는 성도를 하나님의 양으로 보지 않고 자기 양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성도가 다른 교회로 이전할까봐만 전전긍긍하여 뛰어난 부목회자들을 홀대하고 내 교회의 안정과 성장에만 분투 노력합니다. 한국 교회가 부흥하려면 이점부터 회개하고 이제 개교회주의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되기 운동이 벌어져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T.V, 영화, 신문 등을 통하여 기독교의 진리됨과 헌신된 일꾼들을 널리 알리고, 뛰어난 일꾼들을 발굴하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내 것이라 생각하여 움켜쥐려고만 하지 말고 손을 열고 베풀려고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교만과 음란과 거짓과 탐심으로 가득했던 나(자아)를 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 이 내 삶과 교회의 주인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삽시다.

 
 2. 한국교회의 성도는 우선순위를 바뀌어야 합니다.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어야 합니다.(마22:37, 38) 하나님보다 더 우선하고 사랑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재물이 소중하지만 하나님과 재물은 함께 섬길 수가 없습니다.(눅16:13) 자기 사업이나 물질보다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가족과 가정이 소중하지만 하나님보다 먼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딤후2:4, 마10:37).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삭 대신 양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복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축복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입니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가 중요하지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지 오직 기도하는 것이 내 가족의 행복이나 건강, 사업의 성공을 추구하면 잘못된 기도입니다.(마6:33) 내가 소중힌 존재이지만 나보다 하나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불신자보다 믿는 형제를 먼저 도와야 하고 북한주민을 돕기보다 먼저 대한민국의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가 중요하지만 말씀이 먼저입니다. 말씀이 뒷받침되지 않은 은사와 능력은 교만만 불러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자기가 받은 계시의 음성과 예언을 성경말씀과 동등 또는 그 위에 두려고 말합니다. 이는 이단입니다. 목사나 지도자를 높이지 마십시오. 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면서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는 말을 하면 이는 이단이요,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멋대로 해석하는 자도 거짓이요 이단입니다. 이들에게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교회는 무엇보다도 성경의 권위를 강조합니다.(딤후3:16-17) 그러나 이단들은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여 가감하며 교주의 신비체험이나 계시, 설교를 더 믿게 만듭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찌어다"(갈1:7,8)
 하나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30:5,6)
  아무리 성령의 능력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괭과리에 불과합니다.
 믿음과 소망이 다 중요하지만 사람이 제일입니다. 한국교회와 성도는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신30: 19- 20)

 
 3. 한국교회의 직분이 계급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당회장 제도와 권사, 서리 집사는 세계 어느 나라 교회에도 없고, 오직 한국교회에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하기 위해, 집사제도를 두었습니다.(행6:4) 그리고 모세와 예수님만이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담임목사가 당회장과 주일학교 교장, 유치원 원장 등의 교회내의 높은 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 안의 독재자(교주)가 되기 위해 한국교회가 만든 자리입니다. 이 자리가 모세의 자리로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앉은자리입니다.(마23:2) 웃시야 왕은 제사장이 하는 일을 자신이 하려다가 문둥병이 걸렸고(대하26:16-26), 사울 왕은 사무엘 선지자를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번제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습니다.(삼상13:8-14) 교주가 되려는 이러한 제도는 없어져야 합니다. 많은 교회가 원로목사 밑에 당회장, 그 밑에 부목사, 강도사, 전도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권찰, 서리집사, 성도 순으로 계급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장로(감독), 집사외에 이러한 직분들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엡4:11의 목사는 오늘날 성가대나 교사와 같은 사역임) 또한 장로와 집사도 동등한 직분이었지, 장로 밑에 집사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도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며, 모두가 한 형제입니다.(마23:8-10)
 
 4. 오늘날 일부 교회 목회자들은 율법 중 하나인 십일조와 헌금을 강요합니다. 그래서 맥추감사, 추수감사, 부활절 감사, 생일 감사, 성탄절 감사 및 건축헌금, 헌신예배헌금, 선교 헌금, 주정 헌금, 작정 헌금, 구역 헌금, 개축 헌금, 일천번제 헌금, 약속 헌금 등 성경에도 없는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 교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습니다.(마23:4, 마21:12-13)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율법, 죄, 죽음 등)진 자들을 쉬게 하리라 하시고(마11:23),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를 사라고 하십니다.(사55:1) 하나님은 돈이 필요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 정성을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십일조나 헌금을 바치는 것 보다 인애와 긍휼과 순종과 선행을 더 기뻐합니다.(시40:6, 호6:6, 마9:13, 마12:7, 히13:16, 삼상15:22, 요5:29 등) 또한 십일조와 헌금은 하되 말씀대로 바르게 사용되어야 합니다.(신14:28-29), 신26:12, 렘22:16 등)
 
 5. 교회는 제자 양육 후 흩어져 복음 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12제자를 양육하시고, 그들이 나가서 또 제자를 양육하고, 그 제자들이 또 나가서 제자를 양육하고 하여서 땅 끝까지 복음 전파하기를 원하시는 데, 한국교회는 평신도들을 교회 우리 안에 가두워 놓고, 평생 그 교회의 교인화되기 만을 원합니다.
 
 6. 일부 교회 목사들은 화려한 교회 건축에 열을 올리고 있으나, 주님은 이 같은 행위를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사66:1, 행7:47-48, 행17:24 등)
 말세를 만난 지금은 교회건물을 거대하게 건축할 시기가 아닙니다. 교회건물을 우상화하지 맙시다. 예수님은 교회건물을 지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며, 초대교회 당시는 성도들의 집에서 예배를 보았습니다.(골4:15, 고전16:19, 몬2 등) 비록 조그만 교회건물이라도 매일과 같이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모여 예배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히10:25)

 
 7. 기독교 교단, 교파간 반목과 분쟁 그리고 자격 없는 목사 후보생들을 양성한다는 무인가 신학교의 난립과 엉터리 석, 박사학위 등의 남발입니다. 이밖에 한국교회의 일부 목사들은 스스로를 섬기는 자들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옛날 바리새인, 서기관들처럼 외식하며, 상석(높은 감투)을 좋아하고 대접받기를 즐기며...(마23:1-35) 해외 나들이, 고급승용차(비교: 마21:5), 고급호텔 세미나 등 물량주의와 권위주위를 추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날에 그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떠나가라 하실 것입니다.(마7:21-23) 그리고 교회의 대형화와 양적인 증가에 치중하다가 보니 거품교인이 많습니다. 여기서 거품교인이란 믿음이 없어도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 거품교인의 유형도 여러 가지입니다. 우리 사회가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교회에 나오는 교인, 기복적 신앙에 의해 믿음 없이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 실리 추구적인 측면 즉 자기 사업이나 이익을 위해 교회를 나오는 교인, 친교를 위한 장으로서의 교회의 이용 등 이런 저런 목적으로 출석하는 교인의 수가 많아짐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세속화를 부추기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솔로몬 시대에 이방여인들이 이스라엘에 우상문화를 퍼트린 것처럼 말입니다. 이들 거품교인들이 세상이 추구하는 돈, 명예, 권세 등 허망한 가치관과 잘못된 사고의식들을 교회 내에 끌어 들어와 그리스도의 근본정신인 사랑, 겸손, 온유, 희생의 정신 등을 희석하여 교회의 섬기는 직분을 계층적 서열로 바꾸어 놓고 교회적 리더쉽을 혼돈케 만들고 이런 저런 텃세로 인해 새신자들이 발 부칠 곳을 잃게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교회가 무자격 교역자 양산으로 목회자의 자질이 함량부족이라는 점과 영적인 준비가 철저하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목회자들은 교회의 일 때문에 혹은 세속적인 관심 때문에 매우 분주합니다. 그 때문에 목회자는 기도하는 무릎을 상실하였고 성경과 신학을 심도 있게 연구하기는커녕 연구할 생각조차 갖지 않아도 그 양심이 괴로움을 당하지 않게끔 되었습니다. 목회자 자신은 안일한 성경연구로 인해 기존에 나와 있는 성경 공부 책이나 외국의 베스트셀러를 번역하여 그대로 교인들에게 소개하는 대리자로 전락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 목회자들이 눈에 보이는 양적 증가와 성도들의 삶의 아무런 변화를 줄 수 없는 비전만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더 이상 불신자들에게 매력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를 향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한국교회는 자체의 물적, 인적 자원을 사회봉사나 구제에 활용하기보다는 대부분을 교회당 증축, 기도원이나 수양관 건립, 교회묘지 구입 및 교육관 건축 등 보이는 일, 대형화하는 일에만 치중했다는 점입니다. 이러다보니 교회가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나 마치 교회가 교역자들의 사업장이나, 교인들의 친교장소나 지식을 전하는 강연장, 심지어 결혼식장이나 구제단체로 변모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되찾을 때만이 부흥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요, 예배하는 곳이요, 찬송하는 곳이요, 선교하고 봉사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곳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참된 터는 주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진심으로 회개하여 바른 교회, 좋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힘을 합하고, 마음을 합하고, 뜻을 모읍시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8. 많은 성도가 빛과 소금, 사랑 운운하면서 말과 행함이 일치하지 않습니다.(약2:14-16, 계3:8, 딛1:16) 당신은 그리스도인의 이름에 합당한 즉 세상의 빛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과 세례요한이 복음 전파하실 때에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이 하실 것이요”(요일 1:8∼9)

 
 9. 교회 건물을 사고 파는 행위입니다. 많은 교회가 이전을 할 때 목사의 의도에 따라 교회 건물을 팔고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려고 할 때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의 집 운운 하다가 교회 부흥을 말하면서 이사를 하려고 기존의 교회 건물을 팔아치웁니다. 그러다보면 함께 가지 못하는 성도는 예배장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것은 분명히 큰 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모든 교인의 동의가 없는 한 교회 건물을 팔아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역자에게 넘겨주고 이사하여 개척할 생각을 하여야지 이전 것을 팔고 옮기는 행위는 분명히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행위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우리 사회를 총체적 위기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정치 경제 사회 환경에서 많은 문제가 나왔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희망이 없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그저 제도적 구조적인 면만 바뀌면 될 것 같으나 사람의 강퍅한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진정한 해결은 없습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극단적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시대에서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또 윗사람을 인정하지 않아 권위가 땅에 떨어졌고 어른을 공경할 줄 모릅니다. 스트레스에 시달린 현대인들은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정신적 경련 속에서 일을 저지릅니다. 최근 청소년들이 자살사이트를 보고 직접 살인을 저지르는 등의 문제가 우리 시대에 나타나는 한 모습일 것입니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한국교회는 부패한 사회도덕성과 아울러 민족갱신을 통한 국민 의식개혁에 중차대한 사명과 책임을 통감하면서 교회가 어떻게 그 본연의 사명을 다해야 할지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십자가가 많은 나라도 없을 텐데 이 사회에 미친 영향력을 보면 스스로 부끄럽게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한국교회는 이 사회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교회가 스스로 새로워지며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안에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나라와 이 사회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교회일치운동, 사랑의 운동, 회개의 운동으로 빛과 소금이 되어 민족의 등불이 되기를 힘쓰며 기도해야 합니다. 또 우리 젊은이들은 미래 사회를 여는 기둥입니다. 민족에게 정신적 시멘트가 되어 세계 속에 한국을 빛내줄 것으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그리스도인의 행복한 삶을 위해 평안과 소망을 가져다주십니다. 그 시대의 종교는 바로 그 시대의 수준을 재는 척도입니다. 이것은 역사 속에서 배워온 교훈입니다. 사회가 병들고 흔들릴 때 그 사회를 살려내는 것은 정치도 경제도 군사도 교육도 아닙니다.
 사회가 파멸로 치달을 때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영적 대각성의 파도를 일으켜 한 시대의 갈등과 모순을 극복시키는 사회개혁에 앞장 서왔습니다. 100여 년전 이 땅 위에 흑암이 짙었을 때에 복음의 빛으로 역사의 새벽을 일깨웠던 신앙의 선배들은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순교의 피와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 진리 가운데 민족을 영도했던 우리 신앙의 선열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앞서가신 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토양 위에서 한국 교회는 성장했고 짧은 역사 속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세속문화의 오염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그로 인해 점차로 신앙의 본질마저 위협 당하는 시점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면에서 한국 교회가 부흥하고 왕성하여 민족사에 있어서 선도적인 역할을 감당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이 어느 덧 교회 내부 뿐이요 사회와 동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 사회는 부표처럼 비전을 잃고 정도와 원칙을 벗어나서 표류하고 있습니다. 사회를 지탱해야 할 교회의 진정한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거울인 것입니다. 이 겨레의 마지막 진실이어야 할 한국교회는 민족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아픔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교회는 깨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불 꺼진 등처럼, 맛 잃은 소금처럼 걷기를 포기해야 할 때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낮은 자로 오신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는 겸손으로 회개의 열쇠를 다시금 손에 쥐어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어리석은 상처를 반복하지 말고 이 세상에 영원한 하늘의 생명력과 피묻은 십자가 복음으로 채워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교회는 이 시대 속에서 진실과 정의를 지켜야 할 양심의 보루가 되도록 거듭 자신을 정화시키는 개혁에 힘써야 할 때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진실에로의 회귀입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가 된 것을 돌이켜 진실한 열매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숫자가 적어도, 가난해도, 무식해도, 진실해야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해방직후 38선을 넘어 월남하려던 작은 배가 밤새도록 노를 저었건만 아침에 보니 어젯밤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닻줄을 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얻기 위해 우리는 세상줄을 끊어야 합니다. 허수의 줄, 허세의 줄, 욕심과 교만의 줄, 죄악의 쇠사슬을 말씀과 성령의 검으로 잘라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당면한 교회의 갱신은 민족을 살리는 생명의 근원이며 세계를 이끌고 나갈 핵심윈리이며 동시에 이 민족 겨레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할 원동력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 13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은 성전으로 들어가서 채찍으로 장사꾼들을 내몰았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굴로 만들지 말라”고 야단을 치시면서 채찍으로 내리치셨습니다. 당대의 성전이 기도하는 거룩한 장소가 아니라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장소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채찍을 높이 드신 것입니다. 이 썩어 냄새나는 부패의 상징, 유대교의 상징인 성전을 완전히 개혁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자들은 바로 이 성전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성전을 독차지하고 있는 저들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가 일반 백성들 속으로 전파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해야 하는 성전이 오히려 하나님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 성전을 타고 앉아 있는 종교지도자들을 몰아내고 성전을 다시 재건하시려고 예수님은 성전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거대한 변화가 일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는 급변이라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기업이나 모든 조직들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한다는 시대의 필연적인 요청 때문입니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교회도 변화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해나가야 합니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회뿐만 아니라 많은 기관들과 조직체들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사회적 변화가 학교 병원 대학 봉사기관 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아직도 교파간의 경쟁과 대립, 성장과 업적주의의 옛 패러다임의 옷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새 술은 마련돼 있는데 새 술을 담을 그릇이 준비돼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로 고백하는 예수님은 낡은 패러다임을 바꾸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왔던 혁명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패러다임 변혁운동은 성전체제의 정화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그는 바리새, 에세네, 열심당 운동 등과는 달리 세계변혁운동의 목표를 권력구조의 개혁이나 사회경제구조의 변혁에 두지 않고 성전체제의 정화에 두었습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개혁운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공동체 가운데 살롬이 파괴된 근본적인 원인을 하나님을 섬겨야 할 성전이 장사하는 사람들의 소굴로 변질된 데서 보았던 것 같습니다.때문에 성전을 중심으로 한 권력구조를 혁파하는 것이 참된 정의와 자유를 보장하는 평화를 이루는 첩경이라고 여겼습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서 유대를 통치하기 위해 세운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성전을 완공하기 위해 헤롯에게 온갖 아첨을 다 떨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의 물질공세를 통한 정치목적과 종교목적이 혼합된 타락의 온상이었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극에 달한 대제사장 세습과 유대교의 교권주의는 잘못된 권력구조와 상업주의로 나아간 나머지 진정한 예배는 온데 간데 없고 형식주의에 빠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전정화운동은 종국에는 정치·경제·종교·사회를 움직이는 특권층의 기득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했습니다. 또 십자가와 부활사건으로 이어진 이스라엘 민중들의 대변혁운동으로 발전돼 낡은 권력구조와 사회체제의 붕괴를 가져왔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교회의 탄생을 가져온 것입니다. 오늘 한국사회가 이처럼 타락하고 부패한 것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할 교회들이 이 세속 세계의 권력과 결탁하고 상업주의의 온상이 돼 버린 데 있지 않나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진정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키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님께서 회복하신 진정한 교회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교회에 침투한 세상 가치와 맘몬의 지배를 물리치고 성장주의와 공적주의로 얼룩진 과거의 낡은 모습을 청산해야 합니다. 종교 개혁은 부패한 교회, 경직된 종교, 변질된 신앙을 썩지 않고 부드럽게 열린 종교, 영원토록 변치 않는 신앙으로 개조하는 데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새로운 시대에 걸 맞는 구조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첫째, 교권주의의 틀을 지양하고 전문영역과 전문성을 중심하는 선교구조로 개혁돼야 합니다. 둘째, 목회자나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개혁 운동을 통해 딱딱하게 굳어진 구조를 열린 구조로 바꿔 가야 합니다. 셋째, 성직자에게 편중된 교회구조를 평신도 중심의 분산된 구조로 재편해야 합니다. 넷째 성장에서 사회 섬김으로 교회구조를 바꿔가야 합니다. 다섯째,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연합기구 탄생을 통해 화해와 일치를 이루고 기독교의 위상을 높여가야 합니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긴급한 과제는 정체성을 되찾아 교회가 서야 하는 자리를 되찾고 섬김과 나눔에 힘쓰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이 시대의 등불과 소금으로서 한국교회의 사명과 역할과 책임은 큽니다. 한국교회의 현주소는 생활신앙의 부재로 인한 신뢰의 붕괴, 정체성 상실로 인한 힘의 상실, 교단분열로 인한 힘의 약화, 성장의 담보로 한 이기적인 모습, 신앙의 이중성에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도도한 영적 도전 앞에 직면해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교만으로부터 해방되고 잃어버린 영성과 진실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사회에 섬김과 나눔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지역사회를 섬김과 나눔으로 감당할 때, 지역사회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역사회로부터 우리지역 교회로 칭찬을 받게 되며, 교회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하고 전도의 접촉이 쉽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게 됩니다. 교인들의 은사를 개발하여 적재 적소에 섬기게 하므로 교회가 살아 움직이는 교회, 평신도를 개발하는 교회가 됩니다. 이처럼 지역과 이웃에 대한 봉사의 사명을 감당할 때 목회의 위기는 극복되고 건강한 교회, 성장하는 교회, 성숙한 교회, 우리지역 교회, 우리동네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이웃을 섬기고 나누는 봉사의 공동체가 될 때 교인들만의 이기적인 집단이 아님을 보여주게 되며 지역사회에서 비난받는 교회가 아니라 존경과 사랑을 받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미 한국교회는 지역사회 섬김과 나눔를 위한 시설과 재정,인적 자원를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세계화, 지방화 시대에 지역사회 기독교문화를 창조해야 하겠습니다.

 추운 겨울밤 넓고 큰그릇에 고슴도치 떼를 담아 밖에 내어놓았습니다. 영하 20도 혹한 속에 찬바람이 불어오자 부들부들 떨던 고슴도치들이 한 마리 두 마리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따뜻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저마다의 침이 상대방을 찌르자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피를 흘립니다. 고슴도치들은 아파서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흩어지면 춥습니다. 추워서 부들부들 떨다가 견딜 수 없어 다시 몰려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모이고... 날이 밝아왔습니다. 아침에 나가 보았더니 다 죽어 있었습니다. 절반은 얼어서 죽었고 절반은 피를 흘리고 죽어 있는 것입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공동체들이 급속히 깨어져 가고 있습니다.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저마다 혼자 살아가겠다고 합니다. 내가 중심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그립습니다. 용서와 용납의 자리가 그립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교제의 자리가 그립기만 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아쉽고 외로워서 모여 봅니다. 서로들 의지해 봅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연습이 안되어 있기에 갈등을 느끼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문제를 극복할 줄 모릅니다. 나는 너에게 상처를 받고 너는 나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흩어져갑니다. 흩어지면 다시 외로움을 느낍니다. 춥습니다. 추위에 떨어 봅니다. 세상이 혹독하기만 합니다. 공동체가 그립습니다. 은혜의 자리가 그립습니다. 다시 몰려옵니다. 그러나 몰려와서는 또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증오심만 키워갑니다. 주님 오시는 마지막 날 교회 문을 열고 보았더니 절반은 피를 너무 흘려 죽어있고 절반은 추위에 얼어서 죽어있는 것이 아닌가. 사랑 받고 사랑 나눌 공동체가 없어서, 상처가 치유되고 쓰러진 자아가 회복될 삶의 자리가 없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벅찬 감격과 은혜를 경험할 자리가 없어서 부둥켜안고 씨름하다 죽어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면류관 쓰는 아름다운 교회를 건설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픕니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받은 은혜와 감격을 나누기 위해, 받은 상처와 약점을 내어놓고 회복하며 치유 받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수고하고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지 않음을 인해 아프기만 합니다. 오히려 저마다 썩을 세상만을 위하여 일하고 살고 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웠던 영광스러운 성도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저마다 가슴속에 상처를 안고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추위에 떨고만 있는 것입니다. 참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주님이 그토록 세우기를 원했던 그 거룩하고 아름답고 능력 있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바로 한가족이요 함께 삶을 나눈 하나된 공동체였습니다. 로마의 창칼과 핍박, 콜로세움과 십자가에서의 순교 앞에서도 성도들은 매일 카타콤에서 가정에서 소그룹으로 대그룹으로 함께 모여 주님의 피와 살을 나누며 감격하고 사랑을 나누고 상처를 치유하며 복음 전파의 사명에 불타 있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하였다’고 말씀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공동체, 주님의 마음이 담겨있는 교회. 바로 이것이 오늘날 주님께서 보고 싶어하시는 공동체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 시대에도 이 일을 감당할 동역자들, 성도들, 교회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초대교회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4-47)
 
* 기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금의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이 시대에 온전히 말씀이 선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를 올바르게 이끌지 못하는 한국교회를 용서해주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한국교회가 처음 복음을 받아들일 때 가졌던 믿음과 사랑을 회복하는 은혜를 다시 베풀어주소서. 모든 입이 주를 고백하며 주께 영광 돌리기를 원합니다. 서로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중보하는 하나 된 모습을 갖게 해주소서.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의 강물로 이 땅의 반목과 질시를 씻어주소서. 깊은 갈등의 골짜기를 메워주시고 상처를 싸매주소서. 그리하여 한국교회가 이 시대의 소망이 되게 해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빛의 사자(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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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공동체 (2012-04-29 오후 3:14:39) http://blog.somang.net/holylove/7329
교회 바로 세우기
 
본문: 딤전3:15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이런 교회가 되게 하여 주소서  말씀이 있으면서 행동이 있는 교회
사랑이 있으면서 순교가 있는 교회  모임이 있으면서 역사가 있는 교회
기도가 있으면서 능력이 있는 교회 감사가 있으면서 찬송이 있는 교회
연약한 자들에게 힘이 되게 하시고 실패한 자들에겐 희망이 되게 하사
살아있는 교회로 부흥하게 하소서(작자 미상)

 
 오늘날 목회 현장을 보면 마치 성공에 미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효과적인 교회의 성장전략을 마련하고 적용하기에 여념이 없다. 새로운 시대이기 때문에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은 단지 일리 있는 이야기일 뿐이며 시대가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일과 교회의  부흥을 주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은 영원히 진리이다.
 우리는 방법과 기술과 지식을 과신하는 세대에 살고 있다. 하나의 성공사례가 나오면 마치 방법 그 자체가 교회의 부흥을 가져온 것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만,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그 방법을 사용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방법 자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회가 교회 되는 것은 결코 인간의 기계 문명이나 새로운 조직이나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다. 교회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성령이 쓰실 수 있는 사람,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삶의 꿈과 죽음에 대한 가치 인식이 거듭난 사람, 그분의 이름의 영광 하나를 위하여 살도록 목회 사역의 동기가 영적인 만져 주심으로 정화된 사람을 필요로 한다.
 인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교회의 묵은 땅을 기경하는 위대한 영적인 역사는 오직 성령을 통해 흘러나온다. 하나님의 영은 제도 위에 부어지지 않고 당신의 종들 위에 임하신다. 당신이 기뻐하시는 기도의 사람 위에 친히 임하신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성도는 누구일까요? 하나님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일 것이다. 즉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에 같이 기뻐하고, 하나님이 분노하는 일에 같이 분노하는 사람일 것이다. 성경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잠25:13)고 하였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같이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할 충성된 사자가 부족하다. 그러므로 교회는 바로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할 충성된 자들을 키워야 한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주님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제사장들과 성도들이 “편리성”만을 추구하다 보니, 성전 앞에서 제물을 사고 팔고, 심지어는 환전을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제사장들은 점점 영성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돈벌이에만 눈이 어두워진 것 같다. 지금의 교회가 이런 모습은 아닐까? 상업화되고, 외식과 형식, 권위주의와 거짓이 판치는 곳은 마귀의 소굴이요, 강도의 굴혈이다. 하나님은 다른 것은 다 참아도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질을 떠나는 것은 참지 못하신다. 그렇다면 교회의 본질은 무엇이고 바른 교회는 어떠해야 할까?


 첫째, 교회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요4:23-24)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곳은 하나님의 집이 아니다. 어떤 집에서 술을 팔면 술집이 되고, 빵을 팔면 빵집이 되고, 예배를 보면 예배당이 된다. 예배를 통하여 진리의 말씀이 가르쳐지고 배우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훈련되어야 한다. 교회는 결코 교역자들의 사업장이나, 교인들의 친교장소나 지식을 전하는 강연장이 아니며 더욱이 결혼식장이나 구제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곳이다.


 둘째, 교회는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마21:13)
 예수님이 교회를 가르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교회를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어야 한다. 교회에서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해야한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 되거나 “강도의 굴혈”이 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주일 아침마다 온 성도가 모였을 때, 기도소리로 성전을 가득 채워야 한다. 그러면 많은 죽어 가는 영혼이 모여들고 살아나기 시작한다. 교회를 기도로 채우자. 기도가 있는 곳에 능력이 있고, 기도가 있는 곳에 모든 악한 영의 세력은 물러간다.


 셋째, 교회는 병든 자를 고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성경에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마21:14)라는 말씀이 나온다. 교회는 병든 자의 치유가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범죄한 인간은 영육간의 질병으로 시달린다. 머리 아픈 자, 실직의 아픔, 실연의 아픔, 인간관계의 고독의 아픔, 사랑 받지 못한 자의 아픔 등등, 교회는 이런 것들을 치유하는 것이 사명이다. 그러면 이런 치유가 나타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능력”이다. 성도에게는 이미 이런 능력이 예수님으로 인해 주어졌다. 마가복음16장17절의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는 말씀이 바로 성도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제사장과 서기관은 예수님의 치유의 사역을 이상한 일로 보았다.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닌가. 살리는 일에는 아무 능력도 없는 무력한 자들이 이것저것 따지면서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영육의 치유와 죄인을 살리는 사역은 ‘이상한 사역’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역’이 되어야 한다.

 넷째, 교회는 성도들로 하여금 찬양케 해야 한다. 성경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마21:16)라는 말씀처럼 성도들의 입에서 참된 찬양이 흘러나오게 해야 한다. 성도는 찬송하는 자들이다. 이사야 43장21절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계시록의 천국의 모습은 찬양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으로 묘사되어 있다. 역대하 20장을 보면 여호사밧은 찬송으로 모압을 물리쳤다. 바울과 실라는 찬송으로 옥문을 열었다. 찬송은 성도의 무기이다. 우리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부를 찬송이 있다. 어떤 순간에도 찬송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승리한 것이다. 짐바브웨 출신의 니프라이스라는 골프선수가 있다. 그는 골프를 치다가 슬럼프가 오면 항상 휘파람을 분다. 왜?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어려서부터 “어려움이 있을 때는 휘파람을 불어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버지 되신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찬송을 불러라. 기쁠 때에든지, 슬플 때에든지 찬송을 불러라. 힘찬 찬송은 마귀를 물리치며, 막힌 곳을 뚫으며,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니라”

 다섯째, 교회는 선교하고 봉사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과 사명은 복음 전도를 통해 영혼을 구원하고, 나아가 세상에 사랑을 실천하기 위함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복음16:15)고 명령하셨을 뿐만 아니라, “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가복음12:31)고 말씀하셨다. 선교는 교회의 열매이다. 선교를 열심히 하면 교회가 축복을 받는다. 그리고 교회는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 등 불우한 이웃을 돌봐주고, 착한 일을 행하는 데 힘써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깨닫고 그 말씀을 따라 살도록 해야 한다. 이런 교회가 바른 교회이다. 그 무엇보다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데 있다.(고전10:31, 엡1:14)
 학교가 무너져가고 교회의 주일학교에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그냥 내버려두면 이 땅의 수많은 가정과 학교와 교회는 손쓸 수 없는 심각한 영적 공황에 빠질 것이다. 학교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학교와 교회가 본질과 대안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국에 많은 교회를 세워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피로 값주고 세우신 교회들이 세속화되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한 교회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뜻대로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어 마지막 때에 주님께 칭찬받는 교회가 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더욱 더 부흥하고 성장하기 위해서 성도간에 서로 사랑하고 주 안에서 하나되는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교회, 기도에 힘쓰고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하고 배우기를 힘쓰는 교회, 경건한 교회, 봉사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 성령충만한 교회, 하나님을 경외하고 언제나 찬양이 넘치는 교회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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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공동체 (2012-02-14 오후 6:57:21) http://blog.somang.net/holylove/7155

신나는 교회 생활
 

성경: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3:15)

 

어떤 사람은 주일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주일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교회에서 분주하게 하루 종일 지내면서도 별로 피곤해하지 않고 밝은 얼굴로 보낸다.


  어떤 사람은 주말이 되면 또 어느새 일요일이 돌아왔는가 하면서 짜증스러워 하기도 한다. 예배가 시작된 예배당에 걸어들어와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털썩 자리에 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성경책을 들고 오지도 않고 멍청하게 앉아서 찬송을 부를 때에는 다 죽어가는 것처럼 개미 소리만하게 따라 부르고, 헌금하는 시간에는 주머니에서 부시럭거리면서 구겨진 돈을 꺼내서 언짢다는 듯이 헌금 주머니에 넣는다. 설교가 시작되면 영락없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설교가 끝나면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축도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교회 문을 나서는 것이다. 

 

 신나는 교회생활을 하고 싶은가? 우선 "내가 정말 예수님을 바로 믿고 있는가?"부터 다시 검토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사람이 축쳐진 어깨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느릿느릿 가겠는가? 시간에 늦을까봐 부리나케 달리고 서둘지 않겠는가?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정직한 마음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마음으로 나의 믿음을 재확인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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