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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의 웃음보 댓글[0]
우리사람,우리사랑 (2008-08-14 오후 5:27:32) http://blog.somang.net/3500185/3888
       웃음에 관한 책이 봇물을 이루다시피 하고 있는 작금에   웃음에  관한 최고의 텍스트가 성경이라는 주장이 있다.
  성경에는 웃음이라는 뜻을 가진 laughter라는 단어와 기쁨"
  이라는 gladness란 단어가 무려 544회나 등장한다고 한다.
  성경은 가끔 웃어주는것이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고
  빌립보서 4장에 분명하게 항상 기뻐하라고 강조한다.
  아니 강한 명령투다. 그것도 한번 만이 아니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고 연거푸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성경학자들은 무시로 기뻐하면 무시로 웃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과학자들과 더불어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당시 뇌속에 웃음보를 숨겨 놓으셨다고
  주장한다. 웃음보가 이미 있다는 것은 인간이 웃도록 디자인 된
  피조물이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왜 인간만이 웃는가에 대한
  어떤  학문적인 설명도 뇌속에 웃음보를 숨겨 놓았기 때문
  이라는 창조주의 인체 설계앞에 할 말을 잃게 된다는 것.
  인간은 웃을 줄 아는 존재라고 말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은 웃게 만들 줄 아는 존재라고 주장한 사람은 베르그송
  인데 이 말은 인간은  웃을 수 있는 능력과 웃길 수 있는 능력이
  이미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니 능력 운운 할 일은 아닌듯 싶다.
 
       성경이 그렇게도 기뻐하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를 데살로니카 5장에서 찾는 이들이 많은것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모세가 표현한 하나님의 창조역사, 6일째를 보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는 것 이라면 이는 아마도 하나님께서
  웃으시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웃음의 원인에 대해 우리들의 일상에서도 그렇지만 성경은 기쁨
  과 감사가 넘칠 때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것으로 보고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포로들을 시온에 돌아오게 하셨을 때, 우리는
  (기뻐)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시 126:1)"
  이어서 "꿈꾸는 자의 입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시 126:2)"고
  노래했는데 이는 웃음이 곧 꿈꾸는 자들의 몫이라는 의미가
  된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마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100세요, 
  사라는 90세였다. 창세기 17장에서는 아브라함이 웃었고 18장
  에서는 그 말을 엿들은 사라가 웃었다. 그 웃음은 기쁨에 겨운
  행복한 웃음은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결국 아들을 얻었
  는데 이를 두고 복이 와서 웃은 것이 아니라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최초로 적용된게 아니냐는 말들도 있다.
 
       예수님은 웃었다는 기록이 없고 대신 우셨다는 기록만 있다.
  그러나 주님안에 거하는이들의 복을, 새 생명에의 기쁨을
  설파하신 주님께서 기쁨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을리가 없다.
  영원한 나라에의 소망을 알려주시던 주님께서, 구하는대로
  이루어 주시마고 약속하셨던 주님이 만면에 웃음을 띄고 그
  말씀을 하시지 않았을까?
  덕담중에 부자되세요가 유행했었다. 하지만 사실 인사치레다.
  노력과 성실함과 시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건강하세요도 마찬가지. 안전한 환경과 유전적인 요인, 그리고
  좋은 먹거리 등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즉각적으로 할 수 있는
  진짜 알찬 덕담으로 많이 웃으세요를 드는 이들이 많다.
  이것이야말로 자기 스스로만 개입하면 되는 것이니 얼마나 간단
  한 일인가?
  웃으면 우리 몸의 650개 근육중 231개의 근육이 조깅을
  한다던가? 헛웃음, 억지웃음도 진짜 웃음과 효과가 똑같다니
  지금  행복하지 않아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새로운 달, 9월을 준비하면서 작심하고 웃어
  보는 날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웃기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다고,
  또 웃으면 웃을 일이 생긴다고 하는 전문가들의 말을 이번만
  은 한번 믿어보기로 하자.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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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기적을, 베풂은 확증을 댓글[0]
우리사람,우리사랑 (2008-08-14 오전 11:09:50) http://blog.somang.net/3500185/3886
 "피에르 신부". 20세기 초, 프랑스의 상류층에서 태어났으나 19세에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수도회에 들어가 신부가 된다. 독일 점령하에서 레지스땅트 운동. 전쟁이 끝나자 집없는 이 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엠마우스 공동체 설립. 얼마 전 8년동안 프랑스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 프랑스인들의 국민영웅이라 할만한 인물이다.
"세 사람이 있는데 가장 힘 센자가 가장 힘없는 자를 착취하려 할 때 나머지 한 사람이 "네가 나를 죽이지 않고서는 이 힘없는 자를 아프게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할 때 하늘나라는 이미 그곳에 있다"라고 말헀던 사람.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이 죽기 세 시간 전에 피에르 신부에게 물었다.
"신부님! 정말 신이 존재할까요?" 그러자 피에르 신부가 대답했다.
"뭐 그렇게 바보같은 질문을 다 하나?  언젠가 자네가 가난한 이에게 가진 것을 다

주고 돌아설 때 자네 마음이 어땠는지 생각해보게. 그 바보같은 짓을 하고도 자네의 마음이 기뻤다는게 그 증거라네"
 
     1997.9.5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두 여인이 동시에 이 세상을 떠났다.

한 사람은 영국의 태자비였던 다이애나. 또 한 사람은 인도 콜카타에서 살았던,
겨우 50kg도 나가지 않는 작은 여자, 테레사. 너무도 다르게 살았던 그 두 사람이
왜 같은 날, 이 세상을 떠났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시리라.
다이애나. 두 번의 자살소동. 우울증에 시달렸고 폭식증으로 치료를 받았다.

세계적인 명소, 파리에서 연인과 함께 교통사고를 당한 세기의 여인.
부러울 것 없는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살다가 산 이 여인을 세상은 어떻게 기억할까?
여자들은 하나같이 테레사를 칭송하면서도 다이애나처럼 살고싶어 한단다.

가시를 가진 장미, 그녀들의 역설은 어디까지인가? 


    "소박한 기적" 이라는 책이 소개하는 마더 테레사.
그녀는 수녀가 되어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던 중, 여행길에서 "목이 마르다

라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빈민들을 위해 일할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 틈틈이 병원에서 봉사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한 남자가 무엇을 안고 왔다.
"바짝 마른 나뭇가지 같은게 삐져나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죽어가는 소년의 여윈

다리였다. 남자는 "당신들이 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풀밭에 내던져버리겠소"
테레사 수녀는 연민의 감정이 물밀듯 밀려와 앞도 보지 못하는 가련한 그 아이를
팔에 안고 앞치마로 감쌌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기쁨으로 마음이 벅차올랐다"
이것이 현대와 한 세기를 뒤흔든 "성녀"의 조그만 시작이었다.
 
     어느 해질 무렵, 수녀들은 문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나가보니 헐벗은 나환자가 추위에 떨고 있었다. 테레사 수녀는 즉시 음식과 담요를 내주었다. 그런데 그 가난한 나환자가 진지하게 말했다.
"수녀님, 오늘 제가 여기 온 것은 뭔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수녀님이 어디선가 큰 상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오늘 제가 구걸해서 번 돈을 선물로 드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수녀님, 비록 약소하지만 제 선물을 받아주십시요"
 
     
     이곳에서 헌신하는 수녀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

"우리들은 가진게 아무것도 없지만 이 아이들을 돌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비참한 아이들을 돌볼 수 있음을 기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어떠하며 또 구걸한 돈을 선물로 드리려는 헐벗은 나환자는 어떠한가?
기적이 기적을 낳는다던가? 나눔은 기적이요, 나눔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확증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색함은, 내 한 몸만을 채우려는 이기심은, 다른 이를 껴안지 못하는 배타성은 꾸준하게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미 10년도 더 지난 옛 이야기지만 같은 날, 이 세상을 떠난 두 여인의 모습에서 

어떤 흔적을 남기고 가야 할 것인가를 돌아보게 된다.
비록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우리 주님의 섭리가운데  어떤 역사적
사명을 지니고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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